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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
  분류 :
  영어 :
  한자 : 驛站

중앙과 지방 사이의 명령 전달, 관리의 사행(使行) 및 운수(運輸)를 뒷받침하기 위해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이미 역참제가 활용되었고, 진(秦)․한(漢) 때에는 국가의 통치제도의 일환으로 필수적인 국가기구로 발전하였다. 한국에서는 삼구시대에 역참의 유래가 비롯되었다. 《삼국유사》에는 417년(눌지왕 1)경에 박제상(朴堤上)이 일본에 인질로 갔던 왕자 미해(美海)를 구해서 신라로 돌려보내자 왕이 굴헐역(屈歇譯)에서 맞았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로 미루어보아 이미 이전 시기부터 역참이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의 경우 국내성(國內城)과 평양성(平壤城) 사이에 17개의 역이 있었고, 신라 천정군(泉井郡)에서 고구려의 책성부(柵城府)까지는 39개의 역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삼국시대의 역 운영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와 영역이 확대되면서 역참업무를 전담하는 기관으로서 경동역(京都譯)을 설치하였으나, 그 규모와 실상은 알기 어렵다. 역참제가 보다 구체적이고 전국적으로 정비 조직된 것은 고려에 들어와서였다. 고려시대에 역참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은 병부(兵部)의 속사(屬司)인 공역서(供譯署)였다. 성종․현종대에 지방제도의 정비 및 지방관의 파견이 이루어지면서 역참제도 정비 되어 22역도(譯道) 525역(譯)의 고려의 역참제가 완성되었다. 몽골의 침입 이후 원나라의 간섭을 받게 되면서 고구려의 역참제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당시 원나라의 역참제도는 고도로 발달하였는데, 차자(箚子)의 발행, 수참(水站)․이리간(伊里干)의 설치 등이 몽골의 영향으로 생긴 변화였으며, 역참이라는 용어 자체도 몽골에서 역참을 참적(站赤)이라고 하였던 것에서 유래 하였다. 조선시대의 역참제는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면서도 4군(郡)․6진(鎭) 등 북방 역로의 신설과 역의 합병 등을 통해 부분적으로 개편 하였다. 조선시대 역참업무를 담당했던 기관은 병조의 속사인 승여사(乘輿司)였다. 조선시대에는 초기부터 중앙집권체제의 지향에 따라 역참제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보여 수십차례의 개편이 반복되었다. 또한 필요에 따라 역․관(館)․참(站)․합배(合排) 등 다양한 형태의 역참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역참제의 개괄적인 모습은 《경국대전》에서 41역도 516역의 전국 역로망체제로 완성되었다. 그 후에는 큰 변화 없이 그 체제가 한말까지 그대로 유지되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그 기능이 거의 마비되어 봉수제(烽燧制)․파발제(擺撥制) 등이 운영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