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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도시 영화
  분류 : 중국도시문화
  영어 : Chinese Urban Cinema
  한자 : 中國城市電影


1978년 이후 진행된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은 기존의 농촌 중심의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도시 중심의 시장 경제체제로 전환시켰다. 덩샤오핑이 제기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黑描白描)의 실용주의 노선과 “누구든 먼저 부를 얻게 되면 그 효과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쳐 모두가 부유해지게 된다”는 선부론(先富論)은 개혁개방의 기본 원칙이 되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중국의 경제 성장은 비약적인 속도로 진행되었고 중국의 도시들 역시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1980년대 중국의 사회적 변화는 ‘거티후(個體戶, 개인자영업자)’, ‘완위안후(萬元戶, 연간 수입이 1만 위안 이상인 사람)’, ‘라오반(老板, 사장님)’, ‘샤하이(下海, 공무원이나 교육자가 사업에 뛰어드는 것)’ 같은 용어가 보편적으로 유행하는 것으로 대표된다. 도시와 농촌은 물론, 도시 내부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소득에 따른 빈부격차는 점차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중국의 사회, 경제, 문화적인 변화 속에서 1980년대 후반 중국 영화계에는 ‘도시 영화(城市電影)’라고 불리는 일련의 영화들이 출현하였다. 도시 영화는 개혁개방 이후 급격히 변화한 중국의 현실, 즉 포스트 사회주의 시대 중국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소시민의 생활을 영화에 담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개혁 개방 정책은 일견 모든 사람들에게 풍요로움과 행복을 가져다 준 것처럼 보이지만, 그 혜택은 단지 소수의 사람들에게 국한되었을 뿐이었다.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중국의 현실에 적응하지 못했다. 도시 영화는 그들의 소외감과 방황을 주목하였다.

황젠신(黃建新)의 블랙코미디 영화들은 대표적인 중국 도시 영화에 속한다. 예를 들어, 그의 영화 <흑포사건>(黑袍事件, 1987)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중국의 현실과 아직도 변화하지 않은 공산당의 관료주의가 빚어낸 해프닝을 경쾌하게 그리고 있다. 개혁 개방 시기 등장한 ‘거티후’와 작가, 당 간부 등이 등장하는 <일어서라, 기지 말고>(站直了別趴下, 1992)는 당시 중국 사회를 대표하는 세 가지 유형의 사회 문화적 신분을 보여준다. <결혼증명서>(誰說我不在乎, 2001)는 여전히 생활 속에 깊이 남아 있는 관료주의로 인해 유발된 현재의 핵가족 사회와 과거의 집단주의 사회 사이의 모순과 갈등을 풍자한다. (장동천, 2008: 257-8) 베이징 영화 학교 78학번으로서 소위 ‘중국 5세대’ 감독에 해당하는 여성 감독 닝잉(寧瀛)의 ‘베이징 삼부작(Beijing trilogy)’ 역시 도시 영화를 대표한다. 베이징의 골목(후통)에서 하루하루 여가를 보내는 노인들이 경극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는 과정을 그린 <즐거움을 찾아서>(找樂, 1992), 베이징의 뒷골목을 순찰하는 경찰들의 모습과 그들이 마주하는 사람들의 사소한 일상을 다룬 <경찰 이야기>(民警故事, 1995), 한 택시 기사의 시선을 통해 현대의 베이징을 살아가는 청춘들의 일상을 경쾌하게 그려낸 <아이 러브 베이징>(夏日暖洋洋, 2000)은 모두 개혁개방 이후 베이징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출현하여 1990년대를 거쳐 2000년대 중국 영화의 주류적 흐름이었던 도시 영화라는 개념은 좁게는 황젠신과 닝잉의 영화처럼 중국 내에서 상영된 체제 내의 상업 영화를 가리키지만, 넓게는 중국 내에서 상영할 수 없었던 체제 바깥의 영화, 소위 ‘지하영화’(地下電影, underground film)라고 일컬어지던 중국의 독립영화들을 포함한다. 중국 ‘5세대’ 감독들의 후속 세대라는 의미에서 소위 ‘6세대’ 감독이라고 불리는 장위안(張元), 지아장커(賈樟柯), 허지앤쥔(何建軍), 왕샤오슈아이(王小帥), 로우예(婁燁) 등의 감독들은 1990년을 전후하여 그들이 직접 겪고 살아온 도시를 배경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기 시작했다. 이들이 주도한 1990년대 중국 영화 문화의 변화는 미국의 중국 영화학계에서는 ‘도시 세대’라는 명명으로 소개되었다. 미국의 중국 영화학자 장전(Zhang Zhen)은 2001년 뉴욕의 링컨센터에서 개최된 중국 영화 프로그램에서 ‘도시 세대(urban generation)’라는 명칭을 통해 1990년대 중국 영화에 대해 논의 했던 일화를 회상하며, 1990년대 중국 영화에 출현한 새로운 세대를 묶는 키워드를 도시라고 제기한다. 그녀는 1990년대 중국 영화에 대한 다양한 글들을 묶어 ‘도시 세대’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였다. (Zhang Z, 2007)
1980년대 후반 출현한 도시 영화는 중국 영화사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같은 시기 세계 영화계에서 중국 영화를 대표하던 영화는 중국 5세대 영화였다. 장이머우(張藝謨), 천카이거(陳凱歌), 티앤주앙주앙(田壯壯) 등으로 대표되는 중국 5세대 영화는 주로 중국의 농촌을 배경으로 중국의 자연 풍경과 봉건적 전통에 집중했던 반면, 도시 영화는 급변하는 현대의 도시를 배경으로 변화하는 중국인들의 삶을 그리고자 하였다. 전자의 경우, 중국의 외딴 농촌이나 오지에서 살고 있는 농민이나 소수 민족들의 모습을 다루었는데, 이는 중국인에게도 매우 낯설고 신비로운 풍경이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5세대 영화는 중국의 모습인 동시에 중국의 모습이 아니었다. 레이 초우(Rey Chow)는 이러한 5세대 영화의 특징을 스스로를 타자화하면서(self-orientalism) 서구의 시선에 스스로를 전시하고자 하는 중국 남성 감독들의 욕망, 즉 ‘원시적 열정(primitive passions)’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반면 후자의 경우, 중국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들이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삶의 모습을 통해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현재를 영화에 담아내고자 하였다. 도시 영화는 현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리얼리즘의 태도를 통해 사회 현실의 부조리를 파고들었기 때문에 주로 체제 비판적인 성격을 보였으며 종종 중국 내에서 상영이 금지되기도 하였다.

1990년대 중국 영화를 대표하는 도시 영화, 그리고 그것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도시 리얼리즘은 중국 영화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80년대, 즉 개혁개방 이전까지 사회주의 중국 체제에서 중국 영화는 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가치를 추구하였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현실을 혁명적 발전에 속에서 역사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주로 계급투쟁을 기반으로 하는 선전, 선동을 위한 예술 사조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영화를 설명함에 있어서 흔히 ‘사실주의(寫實主義)’ 혹은 ‘현실주의(現實主義)’로 지칭되는 사조는 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가리킨다. 1980년대 출현한 중국 5세대 영화가 사실상 모더니즘 계열의 영화라고 한다면, 도시 영화의 진정한 의미에서 서구식 리얼리즘 개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도시 영화의 리얼리즘은 기존의 사실주의 혹은 현실주의의 개념과 차별하기 위해 ‘기실주의(紀實主義)’라고 칭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관념화된 현실, 혁명적 발전을 위해 필요한 현실을 창조하기 위해 현실과 동떨어지게 되었다면 ‘기실주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에 현장성과 즉흥성을 강조한다. 이런 의미에서 기실주의는 ‘현장 리얼리즘’이라고 부를 수 있다. 영어권 학계에서는 현장 리얼리즘이라는 의미에서 기실주의를 ‘on-the-spot realism’으로 번역한다. (Zhang Zhen, 2007: 122-123) 
도시 영화의 이러한 특징은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의 성격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스타일’은 도시 영화의 양식을 설명하는 핵심이 된다. 또한 이는 소위 ‘신 다큐멘터리 운동(新紀錄片運動)’이라고 불리는 1990년대 출현한 새로운 중국 다큐멘터리와 궤를 같이 한다. 중국식 ‘시네마 베리테(cinema verite)’ 혹은 ‘다이렉트 시네마’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신 다큐멘터리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어떠한 간섭이나 왜곡 없이 카메라에 그대로 담아내고자 하는 태도를 취한다. 1990년대 도시 영화는 신 다큐멘터리와 밀접하게 공명하며 발전했는데, 때로는 극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현장성과 즉흥성을 중요하게 영화 안에 담아내었다. 비전문 배우가 연기를 하거나 통제되지 않은 현장의 빛과 소리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촬영 당시 벌어진 돌발적인 상황이 영화에 그대로 반영되기도 하였다. 결국 1990년대 중국영화를 대표하는 도시 영화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중국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고자 했던 중국 젊은 영화감독들의 의지가 녹아든 결과물이었다.


<참고문헌>
장동천, 『영화와 현대중국』,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8.
레이 초우, 정재서 옮김, 『원시적 열정』, 이산, 2004.
Zhang, Zhen, The Urban Generation: Chinese Cinema and Society at the Turn of the Twenty-first Century, Duke University Press, 2007.
Braester, Yomi, “From Urban Films to Urban Cinema: The Emergence of a Critical Concept”, in Zhang Yingjin (ed.), A Companion to Chinese Cinema, Wiley-Blackwell, 2012.

작성자: 김정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