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인류학자 필리프 데스콜라는 1949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파리의 생클루 고등사범학교(École Normale Supérieure de Saint-Cloud)에서 철학을 공부한 이후 사회과학 고등연구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레비스트로스에게 지도를 받으며 1983년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00년부터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자연의 인류학(Anthropology of Nature)’을 가르치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길들여진 자연(1986), 자연과 문화를 넘어서(2005) 등이 있다.
데스콜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찾아간 에콰도르에서 아추아르(Achuar) 공동체를 만나며 처음 ‘자연’이라는 개념에 주목하게 되었다. 애초 그의 계획은 ‘사회와 환경의 관계’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고백하듯 3년에 걸친 현지조사를 통해 그가 깨달은 것은 이들에게 서구의 ‘자연’에 해당하는 범주 자체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추아르와의 공동생활은 그에게 자연과 문화의 구분이 보편적이지 않다는 깨달음을 주었고, 이는 곧 자연/문화 이분법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훗날 라투르가 ‘근대인’을 성찰하는 데에도 큰 영감을 준 이 통찰은(Kohn, 2009:139), 서구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가 ‘자연’이라는 범주를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 분석하는 작업으로 확장된다. 데스콜라의 동일화 양식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정립된 일반 원칙이다.
데스콜라에 따르면 “세계를 조직한다는 것은 모든 존재자(existing beings)에 성질을 부여하여 동일화를 행한다는 것(Descola, 2008)”과 같다. 동일화 양식은 존재자들에게 이러한 성질을 부여하고 분류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프로이트적 의미의 감정적 동일시와 구분되며 자기와 타자를 유비·대조하는 인지적 구조이다. 즉 동일화는 “내가 나 자신에게 부여하는 외양, 행위, 성질과 내가 다른 존재하는 존재들에게 부여하는 외양, 행위, 성질 사이의 유추와 대조를 추론함으로써, 나 자신과 다른 존재들 사이의 차이와 유사성을 설정할 수 있는 보다 일반적인 스키마”을 의미한다(Descola, 2014:112).
신체성(physicality)과 내면성(interiority)은 존재자를 분별하는 대표적인 기준이 된다. 신체성은 외형이나 물질, 생리적·감각적인 운동 과정은 물론 습성이나 행동양식에 영향을 미치는 식이(diets)나 해부학적 특성 등 “특정 존재에게 고유한 성향들이 그 존재에게 내재된 형태학적(morphological) 및 생리학적(physiological) 특성에서 비롯된다고 간주될 때, 그 성향들의 가시적이고 촉각적인 표현 전체”를 의미한다. 반면 내면성은 의도성이나 주체성, 성찰성, 감정은 물론 생명의 원천으로 간주되는 숨이나 에너지 등의 비물질적 원리 등 “어떤 존재가 그 내부에 고유한 성질을 지니거나, 그 존재로부터 비롯되는 특성을 가진다고 믿는 보편적인 신념”을 의미한다(ibid:116).
존재자가 다른 존재자의 신체성과 내면성을 인지하는 방식에 따라 네 가지 조합의 존재론이 도출된다. 토테미즘(totemism)은 내면성과 신체성 모두에서 연속성을 전제로 하는 존재론이다. 인간과 비인간이 모두 동일한 정신적 내면과 물리적 형태를 공유한다고 보기 때문에, 토테미즘이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종과 종을 가로질러 계보적·혈연적 관계가 맺어진다. 애니미즘(animism)에서는 인간과 비인간이 내면에서는 연속하지만, 신체적으로는 불연속한 세계를 구성한다. 여기서 인간과 비인간은 같은 감정과 의지를 지닌 존재로 여겨지지만, 이들이 서로 다른 신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분된다. 자연주의(naturalism)는 신체적 유사성과 내면의 차이를 강조하는 존재론으로서, 서구의 근대과학의 세계관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비인간은 진화론적으로 같은 신체적 기원을 공유하지만, 인간만이 고유한 정신을 지닌 존재로 간주된다. 마지막으로 유추주의(analogism)는 내면성과 신체성 모두에서 불연속성을 전제한다. 인간과 비인간은 모두 서로 다른 내면, 서로 다른 신체를 가지기 때문에 이들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상징이나 매개 장치가 필요하며, 이는 종종 위계화된 상징체계나 제의 구조로 구체화된다.
데스콜라는 각 사회가 이러한 존재론들 가운데 하나 또는 복수의 양식을 바탕으로 세계를 조직한다고 본다. 동일화 양식은 단지 인식 틀이나 신념체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제의, 생산양식, 공간 배치, 생태적 실천 등을 통해 구체적인 삶의 양식 속에서 드러나는 실천체계다. 이와 같은 점에서 동일화 양식은 형이상학적 사유이기보다는 존재자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조율하는 실천적 틀로 이해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사회가 하나의 동일화 양식에 의해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많은 사회에서는 여러 양식이 공존하거나 충돌하며, 역사적 맥락과 실천의 국면에 따라 서로 다른 존재론이 병렬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처럼 동일화 양식은 세계를 인식하고 구성하는 방식일 뿐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형식들을 포착하려는 인류학적 시도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Descola, Philippe., “Constructing natures: symbolic ecology and social practice”, Descola, P., & Pálsson, G.(Eds.), Nature and society: anthropological perspectives. Taylor & Francis, pp. 82~102, 1996.
Descola, Philippe., Who owns nature?, https://booksandideas.net/Who-owns-nature, 2008.
Descola, Philippe., Beyond nature and culture, Lloyd, Janet(trans.), University of Chicago, 2013
Descola, Philippe., “Beyond nature and culture”, Harvy, D.(ed.), The handbook of contemporary animism, Routeledge, pp. 77~91, 2014.
Kohn, E., A conversation with Philippe Descola. Tipití: Journal of the Society for the Anthropology of Lowland South America, 7(2): 135~150, 2009.
작성자: 김수경(서울대 인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