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종 간 정의(multispecies justice)’는 21세기의 상호 연결된 여러 위기의 맥락에서 등장한 정의의 이론과 실천이다. 이 이론은 우리 시대의 심각한 불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제공하고, 미래에 다가올 지구적 혼란에 대응할 수 없게 만드는 지배적인 정의 이론의 결함을 바로잡는 것을 목표로 생겨났다(Celermajer at al, 2025: 3).
다종 간 정의는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가 『종과 종이 만날 때』(When Species Meet, 2008)에서 사용한 용어이다. 그는 다종 간 정의가 하나의 원칙으로 유지되기보다 구체적 상황마다의 복잡성 속에서 판단해야 하는 것으로 본다. 다종 간 정의는 산업적 사육과 도축 시스템의 산물인 양고기, 그러한 고기로 만든 사료를 먹는 고양이, 값싼 고기를 먹지 않고 친환경 농가에서 재배한 유기농 곡물을 먹는 인간의 얽힌 관계처럼, 선과 악으로 명료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여러 상황들이 얽혀있는 우발적인 함께되기에 관한 것으로 본다(해러웨이, 2022: 346).
해러웨이는 또 다른 글에서 ‘다종 간 환경정의(multispecies environmental justice)’에 대해 말한다. “다종 간 환경 정의(multispecies environmental justice) 없이는 환경 정의도, 생태적 세계 재구성(ecological reworlding)도 있을 수 없다. 이는 인간과 비인간을 아우르는 지속 가능한 다종 친척 관계를 돌보고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함을 의미한다.”(Haraway, 2018: 102).
해러웨이의 테라폴리스(terrapolis)는 쑬루세의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다종 간 환경 정의를 실현해 가는 도시의 형상화(figuration)이다. 테라폴리스에 인간과 동물은 비대칭적이지만 상호 응답을 통해 함께 세계를 만들어 가는 역동적인 곳이다. 테라폴리스는 플라톤의 국가와 같은 대문자 인간(Homo)의 공간이 아니라 땅의 생물들인 퇴비(compost)들이 공유하는 공간으로, 인간과 동물은 다양한 접촉지대(일터, 놀이, 죽음의 공간 등)에서 반려종(companion species)으로서 함께 살아간다.
이러한 테라폴리스에서 해러웨이에게 정의는 ‘인간과 비인간을 아우르는 지속 가능한 다종 친척 관계를 돌보고 새롭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친척은 ‘혈통과 무관한 기이한 친척(odd kin)’으로 인간과 인간 아닌 것들을 포함해 지구상에 번성하는 다종을 일컫는다(해러웨이, 2021:9-10). 가장 깊은 의미에서, 다종 간 정의는 결국 지구에 사는 친척을 확대하고 재구성하여 그 집합체를 잘 돌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해러웨이, 2021: 178).
<참고자료>
도나 해러웨이, 『트러블과 함께하기: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 최유미 옮김. 서울: 마농지, 2021.
도나 해러웨이, 『종과 종이 만날 때: 복수종들의 정치』, 최유미 옮김. 서울: 갈무리, 2022
Celermajer, Daniel, et al. Institutionalising Multispecies Justic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5.
Haraway, Donna J, “Staying with the Trouble for Multispecies Environmental Justice”, Dialogues in Human Geography 8(1), 2018, pp. 102-105.
작성자: 현남숙(전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