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토피아(ustopia)는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Margaret Atwood)가 만든 신조어로, 유토피아(utopia)와 디스토피아(dystopia)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호 내포된 세계관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애트우드가 발표한 『In Other Worlds: SF and the Human Imagination』(2011)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나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상상 속의 완벽한 사회와 그와 정반대되는 사회를 결합해 유스토피아(ustopia)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유토피아에는 디스토피아가 잠재되어 있는 측면이, 디스토피아에는 유토피아에 잠재되어 있는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마거릿 애트우드, 2021:112)
애트우드는 유토피아에 잠재된 디스토피아적 요소와 디스토피아에 내재된 유토피아적 가능성을 꿰뚫어 봄으로써, 이 두 범주가 혼재하고 상호침투하는 복잡한 현실 인식을 가시화했다. 이러한 인식은 전통적으로 구분해오던 유토피아/디스토피아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해체하고 단일한 유토피아 서사나 디스토피아 서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러한 관점은 애트우드의 대표작 『시녀 이야기(The Handmaid’s Tale』(1985)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 소설의 배경인 청교도 신권정치 체제인 ‘길리아드(Gilead)’는 일부 남성 지배자에게는 새로운 질서가 실현된 유토피아로, 시녀로 분류된 가임여성에게는 억압과 착취의 디스토피아로 작동한다. 일반적으로 디스토피아 소설로 읽히는 이 작품과 관련하여, 애트우드는 “『시녀 이야기』에 숨어 있”는 “두 개의 유토피아”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하나는 과거(우리의 현재다)에 존재”했던 자유롭고 민주적인 질서이고, “다른 하나는 중심 서사 뒷부분에 주해 형식으로 실린 미래” 시점에 존재한다. 여기서 길리아드 체제는 이미 “종말을 맞이”했고, 이제 그 역사는 “학술 논문용 주제”로 다뤄지며 학문적 연구의 대상으로 전락한다.(애트우드, 2021:150) 이는 디스토피아 내부에서 유토피아적 가능성이 서사적으로 열려 있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이야기 내에 배치된 복수의 시간성과 목소리는 ‘디스토피아 안에 유토피아가, 유토피아 안에 디스토피아가’ 서로 내포된 구조임을 드러내며, 서사 구조 자체가 “유스토피아의 양면적 서사”(노대원, 2024:62)를 구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유스토피아적 서사 전략은 『오릭스와 크레이크』(2003)와 『홍수의 해』(2009)에서도 이어진다. 전자는 인류가 거의 전멸한 디스토피아에서,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신인류 ‘크레이커(Crakers)’를 통해 기술 기반의 유토피아 가능성을 탐색한다. 후자는 같은 세계를 다른 인물의 시선으로 재구성하며, 생태적 경외와 공존을 실천하는 소수 공동체 ‘신의 정원사들(God’s Gardeners)’을 통해 디스토피아에 내재된 유토피아적 윤리를 드러낸다. 애트우드는 이 두 작품을 “속편 혹은 후속편”이 아니라 “하나의 동일한 작품을 구성하는 장(章)들”(애트우드, 2021:154)이라 칭하며, 복수의 관점과 시간, 목소리가 교차하는 서사 구조의 이중성과 중층성을 강조한다. (애트우드, 2021:150)
결국, 애트우드에게 ‘유스토피아’란 단지 주제나 배경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서사를 끌고 가는 내적 긴장과 양가성, 엇갈린 시선과 시간들이 교차하는 이야기의 구성 방식 그 자체다.
이러한 서사 전략은 문학이 젠더, 권력, 기술, 윤리, 생명, 생태 등의 문제를 복합적이고 비결정적인 방식으로 사유하게 한다.
참고문헌
마거릿 애트우드, 김선형 옮김, 『시녀 이야기』, 황금가지, 2018.
마거릿 애트우드, 차은정 옮김, 『오릭스와 크레이크』, 민음사, 2019.
마거릿 애트우드, 이소영 옮김, 『홍수의 해』, 민음사, 2019.
마거릿 애트우드, 양미래 옮김, 『나는 왜 SF를 쓰는가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 사이에서』, 민음사, 2021.
노대원, 「인공지능은 기후 위기를 해결할까? -한국 SF 속의 기후 위기와 AI 서사」, 『대중서사연구』 제30권 1호, 대중서사학회, 2024.
작성자: 김혜선 (한양대학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