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공동체(immunitary community)는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로베르토 에스포지토(Roberto Esposito)가 현대 생명정치와 공동체 개념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며 제안한 개념이다. 이 용어는 공동체 내부에서 타자를 배제하려는 ‘면역(immunitas)’의 논리가 작동할 때, 공동체가 자기 보호를 위해 오히려 타자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폐쇄적으로 조직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공동체를 지키려는 시도가 도리어 그 근본 조건인 연대와 공통성을 해체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는 것이다. 여기서 ‘면역’이라는 생물학적 용어는 정치적·법적·존재론적 차원으로 확장된 비판적 개념으로 자리매김한다.
우선, 임무니타스(immunitas)는 코무니타스(communitas)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에스포지토는 “면역성, 임무니타스가 중요해지는 의미론적 맥락을 유일하게 구축하는 것이 공통성, 즉 코무니타스”(에스포지토, 2022:12)라고 말하며, 이 둘의 개념적 긴장을 강조한다. 그는 근대 이후 공동체(communitas)가 주로 동일성이나 귀속감에 기반해 사유되어 왔음을 비판하며, 공동체의 어원이자 존재론적 핵심인 무누스(munus)—선물, 의무, 부채—에 주목한다.(에스포지토, 2022:11~15) 공동체는 본질적으로 타자에게 자신을 내어주고 그 위험을 함께 감수하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이며, 무누스(munus)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책임과 개방성의 구조를 드러낸다.
반면, 임무니타스(immunitas)는 이 무누스(munus)로부터의 ‘면제’ 혹은 ‘유예’를 의미한다.(에스포지토, 2022:13) 즉, 면역은 공동체가 타자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거나 유예하는 자기 보호 전략이며, 공동체 내부에서 위험을 차단하고 배제하는 방어 장치로 작동한다. 이러한 면역의 논리는 공동체 내부의 개방성과 상호성을 약화시키고, 타자와의 관계를 제한함으로써 폐쇄적이고 배제적인 공동체 구조를 형성한다.
이러한 면역공동체의 폐쇄적이고 배제적인 구조는 팬데믹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개인과 사회는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타자와의 물리적 접촉을 차단하고, 감염 위험 집단을 분류·통제하며 사회 전체를 일종의 ‘면역 상태’로 만든다. 이는 “공동체 안에 함축되어 있는 죽음의 위험에 맞서 실행되는 ‘면역화’ 과정”(에스포지토, 2022: 62)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면역화는 타자와의 관계를 단절시켜 공동체의 본래적 성격—상호성, 개방성, 수용성—을 약화시키며, 궁극적으로 공동체 자체의 해체와 붕괴 가능성을 초래할 위험을 안고 있다. 면역공동체는 생명을 보호하려는 의도로 시작되지만, 타자에 대한 배제와 차단을 구조적 전제로 삼는 한,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한 근본 조건들을 스스로 해체하게 된다.(에스포지토, 2022:20)
이러한 양상은 임무니타스(immunitas)와 코무니타스(communitas), 즉 면역성과 공동체성 사이의 긴장과 대립을 기반으로, 근대 정치 질서가 형성되는 전 과정을 관통해온 현대 생명정치(biopolitics)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이해될 수 있다.(에스포지토, 2022: 62) 에스포지토는 이처럼 타자를 배제하는 면역화의 정치적 폭력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으로, 면역의 논리에 기반한 공동체 사유를 ‘긍정적 생명정치(biopolitica affirmativa)’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김은주, 2022: 143) 이 개념은 타자의 침입을 차단하는 폐쇄적 공동체가 아니라, 상호노출과 취약성의 공유를 통해 타자와 함께 구성되는 새로운 공동체 가능성을 지향한다. 에스포지토에 따르면, 공동체의 본질은 경계의 수호나 자기 동일성의 강화가 아니라, 끊임없는 열림과 타자에의 확장에 있다. “이는 곧 타자들과 관계하는 긍정적, 동의적, ‘정치적’―혹은 ‘윤리적’―방식이 ‘함께-열어젖히는’ 방식 외에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유일하게 가능한 방식은 고유의―우리의, 그들의, 분간할 수 없는―배려에 대한 공동의 책임을 향해 함께―스스로를-열고 함께-서로를-열어젖히는 것뿐이다.”(에스포지토, 2022;195)
참고 문헌
로베르토 에스포지토, 윤병언 옮김, 『코무니타스 –공동체의 기원과 운명』, 크리티카, 2022.
로베르트 에스포지토, 윤병언 옮김, 『임무티타스 –생명의 보호와 부정』, 크리티카, 2022.
김은주, 「에스포지토의 증여로서의 면역(immunitias)과 공동체(communitas): 근대 면역 패러다임의 생명 정치를 넘어서는 커먼즈의 구축」, 『탈경계인문학』 통권 31호,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 2022.
윤병언, 「각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모두의 생명이다 –에스포지토의 팬데믹 보고서 『사회 면역』의 의미에 대하여」, 『문학들』 73, 심미안, 2023.
작성자 : 김혜선 (한양대학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