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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 공간(데카르트의)
  분류 : 공간철학
  영어 : extended space
  한자 : 延長 空間


데카르트는 공간(spatium) 개념을 내부 장소(locus internus)라는 용어와 병치해 사용한다. 이런 데카르트의 공간 개념은 그의 실체 형이상학에서의 연장 개념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데카르트는 개별적인 특수 사물을 구성하는 연장은 물체가 점유하고 있는 공간을 구성하는 연장과 정확히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사물의 본성과 공간의 본성을 이루는 연장이 동일한 것이며, 이 둘의 차이가 종이나 류의 본성과 개별자의 본성간의 차이 이상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쉽게 인식할 수 있다.” (『철학의 원리』II, art.11, AT VIII A 46: CSM I 227.)

데카르트의 이러한 주장의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 이러한 공간 이해는 용기(container)로서의 공간 개념에 대한 데카르트의 반박에 기초해 있다. 데카르트의 공간 개념에 대한 한 가지 해석은 공간을 물체 일반으로 보고 거기서 개별적인 물체는 그런 공간의 어떤 변경된 부분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여기서 연장 그 자체는 연속적인 공간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특수한 개별 물체들이 들어 있는 컨테이너로서의 이와 같은 공간 개념을 거부하였다. 데카르트의 입장에서 이 컨테이너 이론은 공간을 구성하는 연장과 그 공간을 점유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물체의 연장이 실제로는 서로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함의하게 된다. 즉 이 이론에서 공간의 물체들은 신이 다 없애버릴 수 있는 것이지만 텅 빈 컨테이너 공간은 그 속에 들어있던 물체가 없이도 계속 존재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데카르트의 위와 같은 주장은 이런 용기 이론에 대한 명백한 반론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데카르트의 주장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총합(plenum) 이론과도 차이를 갖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간이 단지 특수한 개별 물체들의 모음이거나 그런 물체들이 꽉 찬 총합(plenum)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이 이론에서 한 물체의 위치는 컨테이너로서의 장소 내부의 어떤 좌표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꽉 찬 공간으로서의 총합 내에서 그 물체와 다른 물체와의 관계에 의해 규정된다. 이러한 설명은 공간적인 차원들인 길이나 넓이 그리고 깊이를 갖는 두 사물들은 동시에 한 장소에 있을 수 없다는 주장에 기초해 있다. 따라서 어떤 개별 물체가 컨테이너 안의 연장된 공간을 차지하게 된다면 이때 두 연장된 사물들이 같은 장소를 차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의미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설명에서 모든 연장은 침투불가능한 종류의 것이다. 이 점에서는 데카르트도 같은 입장을 갖는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컨테이너로서의 공간 개념을 지지하던 데카르트 당대의 일부 학자들은 두 종류의 연장을 설정함으로써 이런 공간 개념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한계를 극복하려고 하였다. 한 종류는 개별적인 물체들로 구성된 침투불가능한 연장이다. 이것은 물질적인 것이며 공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또 다른 물질적인 양(quantity)과는 한 공간에 존재할 수 없다. 두 번째 종류는 침투가능한 연장이다. 특수한 물체와 함께 공존할 수 있게 해주는 연장이다. 이것은 공간의 연장이고 당시 ‘가상적인 공간’으로 불리던 것이다. 이 공간은 그 안에 물체들이 현재 들어있으며 또 예전에도 있었던 것으로 기술된다. 따라서 물질적이거나 침투할 수 없는 연장, 또는 양이 부여된 물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용량으로 정의되는 컨테이너로 생각되었다.

앞에서 물체들의 연장과 공간의 연장이 정확히 같은 것이라고 말한 데카르트의 주장은 이런 가상적인 공간의 현존 가능성을 배제하게 된다. 개별적인 물체들을 구성하는 것으로서의 연장 외에 어떤 다른 연장의 실제적인 존재 가능성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데카르트는 이렇게 물체와 공간의 연장이 정확히 같게 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까?

“차이는 다음과 같이 발생한다. 우리는 물체의 연장을 특수한 개별적인 것으로 간주하며 따라서 물체가 변해서 새로운 물체가 생길 때마다 그 연장도 항상 변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공간의 경우 우리는 오직 유적인 단일성(unitatem genericam, unitas generca: generic unity)을 그 연장에 귀속시킨다. 따라서 새로운 물체가 그 공간을 채우게 되었을 때 에도 그 공간의 연장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이며 동일한 것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그것이 동일한 크기와 형태를 유지하고 또 우리가 문제 상의 그 공간을 규정하는 데 사용하는 특정한 외부 물체들에 관련하여 같은 위치를 유지하는 한 이렇게 공간은 변치 않고 같은 공간으로 유지된다고 보는 것이다.” (『철학의 원리』II부 10절, AT VIIIA 45: CSM I 227)

데카르트가 물체의 연장과 공간의 연장을 같은 것으로만 본 것은 아니다. 그가 이 둘 사이의 같음을 주장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가상적인 공간의 개념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둘이 같다고 주장했던 『철학의 원리』II부 10절과 11절에서 다시 둘 사이의 차이를 거론한다. 그는 한 물체의 연장이 특수하고 개별적인 반면 공간의 연장은 일반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런 둘 사이의 차이가 한 개체의 본성과 유 또는 종 사이의 차이 이상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데카르트는 보편자와 개별자 사이의 차이를 사고 작용의 측면에서 논의한다. 즉 유와 종 같은 보편자들이 특수한 개별적인 사물들이 공통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탐구로부터 도출된 사고 작용의 양태들, 이를테면 추상에 의한 것과 같은 양태들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일반적인 연장은 단지 특수한 연장된 사물들에 대한 관념들로부터 추상된 관념이거나 사고 작용의 한 가지 양태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만나게 된다.

“공간 또는 내적 장소(locus unternus)와 그 속을 채우고 있는 물질적인 실체들 사이에는 실재적인 구별이 없다. 유일한 차이는 우리가 그것들을 생각하는 방식에 있을 뿐이다.” (『철학의 원리』II, 10: AT VIIIA, 45) 이런 결론은 그가 물질 또는 물질적 실체를 단지 길이, 넓이, 그리고 깊이라는 세 가지 차원의 연장의 관점에서 정의하기 때문에 도출되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물질 또는 물체를 공간의 한 부분으로서 res extensa, 즉 “연장된 것”으로 정의한다. 연장은 ‘사유’처럼 “원초적”인 관념으로서 정의를 허용하지 않는다. 스콜라철학자들과 달리 데카르트는 그것을 “부분들의 외부에 있는 부분들”(partes extra partes)이라는 관점에서 정의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현실적인 연장, 또는 공간은 “한정된 크기와 형태”의 “구별가능한 부분들”을 갖는다는 점을 가정한다. (AT V 270-71: AT VII 86) 그런데 여기서 연장이 세 가지 차원을 갖는다는 것을 정말로 세 가지 구별되는 실재들, 길이, 넓이 그리고 깊이로 분해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데카르트의 경우 과도하고도 부당한 추상이 된다.

물질이나 물체가 갖는 모든 다양한 속성들은 연장의 ‘양태들’, 즉 연장되는 다양한 방식들로 설명될 수 있다. 따라서 비록 [두 번째 성찰]에서 논의된 밀랍 조각이 무한정한 다양성을 지닌 형태들의 외관을 지닐지라도 이것들은 모두 단순히 연장의 양태들일 뿐이다. (AT VII 31: CSM II 20) 이런 연장의 양태들은 형태, 크기 그리고 운동이다. 실체로서의 물체(corpus)와 달리 이런 양태들은 우유성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물체들에는 연장과 그것의 양태들 외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물체들의 경우 연장의 양태들이 아닌 성질들, 이를테면 색깔, 맛 또는 다른 감각적 성질들은 갖지 않는다. 그것들은 또한 “충전성solidity”이나 “침투불가능성impenetrability”도 갖지 않는다. 데카르트는 연장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그것만으로도 그것이 차지하고 있는 부피로부터 다른 모든 연장된 사물들을 배재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연장은 그 본성상 침투 불가능한 것이 되는데 이에 따라 두 개의 연장된 사물들은 결국 동시에 같은 장소에 실제로 있을 수 없다는 결론에 직면하게 된다. 공간은 이제 단지 특수한 개별적인 연장된 사물들의 지각으로부터의 단순한 추상으로 생각될 뿐이다. 따라서 ‘공간’이라고 불리는 것은 단지 정신 속의 하나의 관념일 뿐이며 특수한 연장된 사물들로부터 실제로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결국 물리적인 우주는 특수한 개별 물체들의 총합(plenum)으로서 이것들은 그것들 사이에 어떤 텅 빈 공간이나 가상적인 공간을 갖지 않고 나란히 붙은 채 존재하는 꽉 찬 공간이라는 것을 함축하게 된다.

공간과 물질 또는 물질적 실체를 동일시하게 되면 진공 역시 형이상학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철학적인 의미에서의 진공, 즉 그 안에 어떤 실체도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서의 공간과 같은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은 공간의 연장과 물체의 연장 사이에 전혀 차이가 없다는 사실로부터 명백하다.” (AT VIIIA 49) 이 글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인다. 우리는 어떤 바윗돌이 그 돌이 있었던 장소를 남기기 위해 특정한 영역으로부터 제거된 경우에서처럼, 그런 돌의 가능성을 확실하게 상상할 수 있다. (『철학의 원리』II. art. 12) 데카르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텅 빈’ 공간과 같은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진공(vacuum)을 인정하는 것은 모순이다. 공간 혹은 내적 장소의 연장은 물체의 연장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철학적인 의미로서의 진공, 즉 그 안에 어떤 실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서의 진공이란 있을 수가 없다. 우리는 단지 물체의 길이와 너비와 깊이로 연장되어 있다는 것으로부터 그 물체가 실체라는 결론을 내리기 때문에 진공으로 가정된 공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결론을 내려야 한다. 왜냐하면 무無가 연장을 가진다는 것은 명백하게 모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공으로 간주된 공간 속에 연장이 있기 때문에 그 속에 필연적으로 실체 역시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려야만 한다.”(『철학의 원리』II. art. 16)

‘텅 빈’ 공간에 대한 믿음은 감각에 의존한 우리의 편견 때문에 발생한다. 항아리 속에 물이 들어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면 우리는 그것을 텅 비었다고 말하고 또 그것이 사실상 공기로 가득 차 있을 때도 그 속에 문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다고 상상한다. 하다못해 그 공기가 제거된 후에도 미세한 물질이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그 주전자가 정말 아무 것도 포함하지 않은 경우는 결코 있을 수 없다. 사실상 데카르트는 만일 그 주전자에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다면 그 주전자의 측면들이 무(無)에 의해 분리될 것이라고 논증했는데, 말하자면 그 측면들이 서로 부딪칠 것이라는 뜻이다. (AT VIIIA 50) “만일 당신이, 신이 방 안에서 어떤 다른 물체도 그 장소 안에 놓지 않은 채 모든 공기를 다 제거한다고 생각하고 싶다면, 당신은 그에 따라 그 방의 벽들이 서로 부딪친다고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생각은 모순을 함축하게 될 것이다” (1639년 1월 9일 메르센에게 보낸 편지, AT II 482: CSMK 132)

연장과 물체를 동일한 것으로 보는 데카르트의 입장은 이후 보일이나 파스칼 등의 실험에 의해 점차 유지되기 어려워졌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일부 데카르트주의자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자연철학자들이 이런 이론에 반대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AT: ŒUVRES de DESCARTES, publiées par ADAM Charles & TANNERY Paul, Paris: Vrin, 1974.
CSM: The Philosophical Writings of Descartes I, II, Cottingham J., Stoothoff R., Murdoch D. tran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4.
CSMK: The Correspondence: The Philosophical Writings of Descartes III, Kenny Anthony 외 tran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7
데카르트, 원석영 역, 『철학의 원리』, 서울: 아카넷, 2002.
             , 『성찰: 성찰에 대한 학자들의 반론과 데카르트의 답변』, 1. 2. 파주: 나남, 2012.
레오나르도 믈로디노프, 전대호 옮김, 『유클리드의 창: 기하학 이야기』, 서울: 까치, 2002.
서양근대철학회, 『서양근대철학의 열가지 쟁점』, 파주: 창비, 2004.

작성자 : 이경희 (연세대학교 산학협력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