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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분류 : 디지털도시성
  영어 : platform
  한자 :

  플랫폼은 어원상으로는 주변보다 다소 높이 위치한 평평한 곳을 가리킨다. 예컨대 기차역 승강장처럼 선로보다 높아서 승객이 기차에 탑승할 수 있도록 만든 곳이기도 하고, 지휘자나 연설자가 다른 이들보다 높이 올라설 수 있는 연단이나 강단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는 선거 출마자가 내놓는 공약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의미들을 포함하여 플랫폼을 가장 단순하게 이해하자면, 그것에 올라서서 이후의 다른 활동, 작업, 행동을 취할 수 있는 기초가 되는 터이자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일이든 반드시 그 위에 올라선 다음에야 할 수 있다. 토대 없이 가능한 일이란 없다. 따라서 플랫폼은 어떤 계획된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미리 완결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플랫폼은 단순히 주변보다 높은 평면이라는 명시적 혹은 시각적 의미보다는 플랫폼의 수행성(performativity), 플랫폼이 실제로 행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 더 중요하다(Bratton, 2015: 41). 무엇보다도 플랫폼은 이것을 바탕으로 한 이후의 행동이 특정한 방식으로 진행되도록 만들어진 설계나 디자인이다. 즉 플랫폼 위에서 혹은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여 다수의 인간과 인간, 인간과 기계 혹은 인간과 또 다른 플랫폼들 사이의 복합적인 상호작용(interaction)이 미리 정해진 방식으로 혹은 특정한 방식으로 진행되도록 이루어진다. 우발적인 사건들이 가끔 발생할 수는 있지만, 대체로 플랫폼 위에서는 그 플랫폼이 계획되고 설계되어진 방식으로 다양한 일들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이해하는 플랫폼은 무척이나 복잡하고 다층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는 이러한 플랫폼의 복잡한 의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비가시적이기 때문에 작동하는 것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지 않을 지라도 그 어떤 규칙들이 프로그래밍되어 플랫폼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사용자가 상호작용하더라도 동일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비록 그 과정 자체가 우연성에 기대게 되더라도 그것마저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른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플랫폼의 의미를 따르다 보면,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인공적인 것들 중에 플랫폼이 아닌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2010년대 이후 플랫폼이라는 개념은 일상에서 사용되면서 보다 좁은 것을 지칭하게 된다. 그렇다고 플랫폼이라고 불리는 대상이 명확해졌다고 할 수는 없다. 우선 우리는 다양한 디지털 혹은 온라인 서비스들을 플랫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구글, 카카오와 같은 포털의 여러 애플리케이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 미디어, 우버(Uber)나 에어비엔비(Airbnb)와 같이 공유경제라고 불리곤 했던 여러 종류의 서비스, 배달이나 심부름을 위주로 하는 다양한 온디맨드(on-demand) 서비스 등이 주로 플랫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플랫폼들은 단지 소프트웨어 혹은 애플리케이션을 가리키는 것인지, 회사의 조직 운영 형태를 가리키는 것인지, 새로운 종류의 수익 모델을 가리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아마도 그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된 어떤 기술적 환경을 가리키는 용어로 대중들에게는 각인되고 있을 것이다.

 플랫폼에 관련된 담론이나 플랫폼이라고 자칭하는 기술, 기업, 사업 방식이 생산, 유통, 소비의 전 영역에서 폭넓게 사용되면서, 우리 사회는 그 자체가 어떤 플랫폼의 원리에 따라 혹은 플랫폼의 모습을 띠고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플랫폼 자본주의’(서르닉, 2020; 김상민, 2017)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가 역사적으로 겪어 온 중대한 경제적 위기의 국면들을 조직 운영의 개선, 생산기술의 혁신, 금융 조치 등으로 극복해왔듯이, 2008년 이후 전 세계적 경제의 한계와 위기를 극복하고 재편할 주요한 수단으로 플랫폼이 등장한 셈이다. 플랫폼은 새로운 형태의 기업으로서, 이 플랫폼 형태의 기업들은 다양한 이용자 집단을 매개하는 인프라구조를 제공하고 네트워크 효과가 유발하는 독점화 경향을 향유하면서 잡다한 이용자 집단을 끌어들이는 교차보조 전략에 의존하고,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통제하는 핵심 아키텍처를 설계한다”(서르닉, 2020: 54). 요컨대 생산자, 소비자, 중개자, 광고주 등을 포함하는 다양한 사용자들로 하여금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 플랫폼이다.

 플랫폼 기업의 형태는 단순히 다른 사용자들에게 각자의 사업 기반을 제공하는 것에 제한되지 않는다. 최근의 플랫폼의 유형을 광고 플랫폼, 클라우드 플랫폼, 산업 플랫폼, 제품 플랫폼, 린 플랫폼과 같이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는데(서르닉, 2020: 55-91), 플랫폼 기업들의 핵심적인 전략은 바로 플랫폼 내 고객들, 생산 기계들, 임대 장치들 등이 상호작용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데이터의 수확 혹은 추출을 새로운 가치로 변환시켜내는 데 있다. 플랫폼의 핵심은 플랫폼을 통해 발생하는 엄청난 데이터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 나아가 독점에 있다. 구글은 서치엔진 사용자들의 검색 데이터, 우버는 운전자와 탑승자들의 위치 및 교통 데이터, 페이스북은 개인정보 및 사회적 관계 데이터를 확보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기회를 만든다. 예컨대 우버는 전 세계 곳곳의 수많은 운전자가 도시를 횡단하면서 측정, 수집하는 위치, 운전, 지리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하여 자신들의 미래 사업, 즉 자율주행자동차의 알고리즘을 구축하고 개선하는 데 적용한다. 그런 점에서 플랫폼은 무엇보다도 데이터 추출의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데이터 측정 장치 혹은 센서를 통해서 어떤 종류의 데이터도 수집, 축적, 분석될 수 있기 때문에 플랫폼의 적용성은 거의 무한하다.

 그러나 플랫폼의 확장, 플랫폼 기업의 번성, 플랫폼 자본주의의 번영 이면에는 데이터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데이터를 산출하는데 기여하는 살아있는 인간의 노동이 있다는 점이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 우버의 운전자나 배달 노동자들은 플랫폼 기업에 고용되지 않고 플랫폼(모바일 앱)을 통해 할당받은 업무 혹은 주문만 수행하면 그에 대한 건당 수수료를 받는 방식으로 플랫폼과 관련을 맺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손쉬운 클릭이나 터치를 통해 이루어지는 깔끔하게 자동화된 플랫폼 자본주의는 매우 불안정하고 유연하며 비가시적인 플랫폼 노동의 확산과 병행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문헌:

김상민, 플랫폼 위에 놓인 자본주의 이후의 삶, 문화/과학92, 2017.

닉 서르닉, 심성보 옮김, 플랫폼 자본주의, 킹콩북, 2020.

Benjamin Bratton, The Stack: On Software and Sovereignty, MIT Press, 2015.

 

작성자: 김상민(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