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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매개
  분류 : 디지털도시성
  영어 : remediation
  한자 : 再媒介

재매개(remediation)란 제이 데이비드 볼터(Jay David Bolter)와 리처드 그루신(Richard Grusin)이 제시한 개념으로 “한 미디어를 다른 미디어에서 표상하는 것”을 뜻한다(볼터그루신, 2006:53). 특정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거나, 한 웹툰(webtoon) 작품이 텔레비전 드라마로 다시 만들어지는 현상이 재매개의 대표적인 예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는 이러한 차용을 ‘재목적화(repurposing)’라 부른다. 그러나 재목적화가 특정 미디어의 메시지를 다른 미디어에서 단순히 재사용하는 것을 뜻하는 용어라면, 재매개는 미디어가 곧 메시지라는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의 관점을 계승한다. 즉 재매개는 “하나의 미디어가 그 자체로 다른 미디어 속에서 융합되거나 표상”되는 복잡한 형태의 차용을 말한다(볼터그루신, 2006: 53). 예컨대, 디지털 미디어는 회화, 사진, 영화와 같은 기존 미디어의 내용 및 형식, 표현양식, 테크놀로지, 사회적 관습 등에 의존하며 그것을 개선 및 개조한 재매개체이다. 반대로 기존의 미디어 테크놀로지는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재매개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이와 같이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을 기존 미디어와의 ‘상호작용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재매개 개념은 디지털 미디어의 특성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콘텐츠 전환 현상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한 도구로 쓰인다(김은영, 2016).

재매개는 비매개(immediacy)와 하이퍼매개(hypermediacy)라는 이중의 논리를 갖는다. 우선 비매개 논리는 미디어가 수용자에게 “매개 없는 경험을 기약하는 것”으로, 다양한 전략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수용자가 느끼는 현전감(sense of presence)을 강화한다(볼터그루신, 2006: 22). 3차원 영상이나 가상현실이 이러한 투명성의 비매개 논리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가상현실은 수용자에게 1인칭 시점을 제공하고, 자신이 착용하고 있는 인터페이스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만듦으로써 수용자로 하여금 그래픽 이미지를 자신이 직접 시각적으로 경험한 세계로 인지하도록 만든다. 다시 말해, 미디어의 목적이 미디어를 사라지도록 만드는데 있는 것이다.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발달하면서 비매개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더욱 뚜렷해졌지만, 사실 이 욕망은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갖는다(볼터그루신, 2006). 서구적 시선의 출발점이라 볼 수 있는 원근법 또한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테크닉으로, 제대로 처리될 경우 관람객에게 캔버스 표면 너머의 장면을 제공한다. 그 후에 나온 사진이나 영화는 이러한 원근법의 테크닉을 자동화한 것으로 미디어는 이제 사진을 찍는 예술가의 존재마저 지워버린다. 종합하자면, 투명성의 비매개 논리는 표상하는 대상과 표상이 동일한 것이라는 믿음을 만들어내는데, 이 믿음은 각기 다른 시대에, 다양한 집단에 의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어 왔다. 

비매개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오랜 역사를 갖는 것처럼, 하이퍼매개의 논리 또한 표상 관습으로서 오랜 전통을 갖는다(볼터그루신, 2006). 비매개에 대한 욕망을 문화적으로 견제하는 하이퍼매개는 “공간과 미디어를 다중화하고 매개된 공간들 사이의 시각적, 개념적 관계들 –단순한 중첩으로부터 완전한 흡수까지 다양한 모습을 띠는 관계들–을 반복적으로 재규정”함으로써 수용자로 하여금 미디어를 초의식적으로 인정하게 만든다(볼터그루신, 2006: 48). 원근법 회화가 갖는 비매개성에 도전하는 콜라주(collage)나, 사진의 비매개성을 해체하는 사진몽타주(photomontage)가 하이퍼매개의 논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사진몽타주 작가들은 기존 사진을 찢고 재배열함으로써 사진이 주장하는 비매개성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다시 말해, 사진이 갖는 “비매개의 논리가 표상 행위를 지우거나 아니면 자동화하도록 유도한다면, 하이퍼매개는 다중적 표상 행위를 인정”하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가시화한다(볼터그루신, 2006: 38). 비매개의 논리가 시각적으로 통일된 공간을 구성한다면, 하이퍼매개는 이질적인 공간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비매개의 대립물로서 하이퍼매개는 투명성의 테크놀로지 주변을 맴돌며 오랜 시간 절대 억제되지 않는 타자로 존재해왔다. 

비매개와 하이퍼매개의 논리는 완전한 대립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표상의 한계들을 넘어 실재적인 것을 획득하고자 하는” 동일한 욕망을 내포하고 있다(볼터그루신, 2006: 62). 전자가 매개된 사실을 적극적으로 숨김으로써 실재적인 것을 추구한다면, 후자는 매개를 다중화함으로써 그 경험의 과잉(excess)을 통해 실재에 도달하고자 한다. 이 두 가지 논리는 모두 재매개의 전략이다. 디지털 미디어는 기존 미디어를 다양한 방식으로 재매개하며 투명성을 확보하기도 하고, 이질적인 공간을 생산하기도 한다. 이 스펙트럼은 “새로운 미디어와 오래된 미디어 사이의 지각된 경합(perceived competition)이나 경쟁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볼터그루신, 2006: 54). 예컨대, 컴퓨터를 통해 디지털로 전환된 회화를 감상하는 것이 –물론 어떤 방식을 통해서든지 수용자는 컴퓨터의 존재를 느끼지만 여전히 투명성이 그 목적이 된다는 차원에서– 비매개의 논리를 따르는 것이라면, 텔레비전 영상 클립이 디지털 공간에서 부자연스럽게 짜깁기 된 경우, 이러한 재매개는 공간의 불연속성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이 밖에도 <미스트>나 <둠>과 같이 영화를 재매개한 컴퓨터 게임은 두 미디어 사이의 불연속성을 최소화하기도 하고, <토이스토리> 같은 컴퓨터 애니메이션은 실사 영화가 갖는 투명성을 위협하기도 한다. 

결국 재매개의 이중 논리는 모든 매개가 재매개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하이퍼미디어가 투명성을 추구하는 것처럼, “투명한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그것이 매개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항상 재매개하는 것”으로 완성된다(볼터그루신, 2006: 64). 투명한 테크놀로지는 자신을 숨김으로써 미디어를 개선하려 하지만, 그 미디어에 의거해서만 자기 자신을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미스트>나 <둠> 같은 컴퓨터 게임도 사진이나 영화라는 전통에 의존해 실재성을 구성한다. 즉 모든 미디어는 다른 미디어에 의존하며, 서로를 대체하고 재생산한다. 이러한 과정은 미디어를 구성하는 절대적 요소이며, 재매개의 목적은 서로 다른 미디어를 개조 및 복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재매개는 미디어가 다른 미디어의 내용 및 형식에 의존하고 개조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참고문헌

제이 볼터리처드 그루신, 이재현 옮김, 『재매개: 뉴미디어의 계보학』, 커뮤니케이션북스, 2006. 

김은영,「웹툰 미생의 재매개 과정에서 나타난 디지털 서사의 변주」, 『미디어 젠더 & 문화』, 제31 2호, 2016. 

 

 

작성자:

유지윤(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