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에서 “스케일이 크다/작다”는 표현을 쓴다. 여기서 스케일은 규모(規模)로 번역된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규모란 사물이나 현상의 크기나 범위를 의미한다. 유사하게 우리는 어떤 공간을 지칭할 때 ‘국가 스케일(national scale)’, ‘지구적 스케일(global scale)’처럼 스케일을 붙여 해당 공간을 떠올리고, 동시에 이러한 상이한 스케일들 간의 관계를 ‘서울(도시 스케일)보다 한국(국가 스케일)이 더 크다’면서 계층적으로 이해한다. 즉, ‘지역→도시→국가→지구’처럼 오른쪽 방향으로 갈수록 크기나 범위가 넓어지고, 보다 추상적인 공간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인문지리학에서의 스케일 개념은 앞서 소개한 공간의 물리적 크기를 가리키는 규모로 국한되지 않는다. 규모로서의 스케일이 ‘지역→도시→국가→지구’라는 계층을 당연한 것으로 가정한다면, 인문지리학에서의 스케일은 각 스케일의 형성과 스케일들 간의 관계가 고정적이지 않고, 지리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조건들에 의하여 역동적으로 형성되는 사회적 구성물로 이해한다(Delaney and Leitner, 1997:93). 이처럼 스케일이 규모로 오해되는 것을 피하고자 국내학계에서는 번역어를 쓰지 않고 원어 그대로 사용하는 추세이다.

지구적 스케일에서 활동하는 초국적 기업은 지역의 노동자들과 비교하여 강력한 행위자로 미디어에 재현된다. 어떤 지역의 노조가 파업을 한다면, 막대한 자금력과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보유한 초국적 기업은 파업이 발생한 지역의 공장을 폐쇄하고, 노조가 존재하지 않는 지역에 새로운 공장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지구적 스케일은 지역 스케일에 비하여 계층적으로 보다 상위에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인문지리학자들은 이러한 계층적 관계의 변화 가능성을 주목한다. 지역노조는 초국적 기업의 본사가 위치한 국가로 이동하여 공장폐쇄 결정의 부당성을 그 나라 국민들에게 알리거나 국제노동기구 제소 및 국제노동조직과의 연대를 통해 기업을 압박하여 공장폐쇄 결정을 취소시킬 수 있다.

즉, 초국적 기업만이 지구적 스케일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행위자가 아니며, 지역노조도 지구적 스케일에서 활동할 수 있고, 또한 초국적 기업에 맞서는 투쟁과정에서 저항과 연대라는 새로운 의미가 담긴 지구적 스케일을 형성할 수 있다(황진태, 2011:131; Hwang, 2021:52). 이처럼 인문지리학의 스케일 연구는 기존에 당연시했던 각 스케일의 특성과 스케일들 간의 관계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며, 사회세력들 간의 충돌, 갈등, 타협을 거친 권력관계의 산물임을 밝히려 한다. 또한 새롭게 형성된 스케일이 권력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주목한다.

스케일 연구는 도시, 국가와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스케일뿐만 아니라 신체(body), 가정(home), 4대강과 같은 다양한 존재와 공간도 스케일로서 분석될 수 있다(황진태·정현주, 2015:123; Hwang, 2015:1926).

참고문헌: 

Delaney, David, and Helga Leitner, "The political construction of scale," Political Geography, vol.16, no. 2, 1997.

Hwang, Jin-Tae, “A study of state-nature relations in a developmental state: the water resource policy of the Park Jung-Hee regime, 1961–79,” Environment and Planning A, vol. 47, no. 9, 2015.

Hwang, Jin-Tae, “The Multi-Scalar Practices of the Labour and Economic Geography of TNCs: A Study on the Labour Geography of Nestlé Korea,” Journal of the Economic Geographical Society of Korea, vol. 24, no. 1, 2021.

황진태, 「노동자 국제주의는 만병통치약인가? 로컬 공동체 노조운동의 가능성과 도전: GM 대우 비정규직 노조 투쟁을 사례로」, 『로컬리티 인문학』, 제6호, 2011.

황진태·정현주, 「페미니스트 공간연구에 다중스케일적 접근 접목하기: 여성운동연구를 중심으로」, 『대한지리학회지』, 제50권 1호, 2015.

작성자: 황진태(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