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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매체
  분류 : 디지털도시성
  영어 : Digital Media
  한자 :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라는 기능적 측면에서 보자면 디지털 매체는 예전의 매체(아날로그 매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디지털 매체와 아날로그 매체의 근본적인 차이는 정보를 생산하거나 저장 혹은 기록하는 형식에 있다. 얼핏 보면 형태에서도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인다. 우리가 접하는 디지털 매체의 정보의 형태는 아날로그 매체와 동일한 이미지, 소리, 문자 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지털 이미지나 소리, 문자 등은 아날로그 정보와 달리 데이터로 이루어져있다. 가령 아날로그 사진 이미지와 디지털 사진 이미지는 외관상 같지만, 아날로그 사진과 달리 디지털 사진의 경우에는 이미지 배후에 그것이 만들어진 데이터가 존재한다. 디지털 매체의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여 마크 핸슨은 디지털 이미지를 정보화된 이미지’(informed Image)라고 부르며(Hansen, 2004:16), 에드몽 쿠쇼는 디지털 아날로곤’(analogon numérique)이라고 부른다.(Couchot, 1998:145)

예를 들어 보자.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 그림은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완벽하게 알 수 없으므로 훼손되었을 경우 완벽한 복구나 완전한 모작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만약 다빈치가 21세기에 활동하여 디지털 매체로 작업을 하였다면 상황은 다를 것이다. 그의 작품은 불과 몇 십 메가바이트의 데이터 파일로 저장될 것이며, 똑같은 이미지를 복제하는데 몇 초도 걸리지 않는다. 베냐민이 예견한 예술작품의 아우라가 완전히 붕괴되는 것은 바로 디지털 매체에 이르러서이다. 또한 디지털 이미지의 경우 데이터의 수정을 통해서 얼마든지 변형가능하며 애초의 상태(디폴트값)으로 되돌릴 수도 있다. 과거의 아날로그 사진과 달리 디지털 사진의 합성(변형)이 가능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디지털 매체의 경우 어떤 정보도 최종적이지 않으며 변형에 대해서 개방적이라는 사실을 함축한다. 데이터화된 정보는 적절한 프로그램만 있다면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은 디지털 매체가 지닌 두 가지 상반된 경향을 낳는다. 우선 어떤 정보도 최종적이지 않고 변형에 개방되어있다는 것은 누구든지 그것을 능동적으로 소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에코(Umberto Eco)가 현대 미술의 특성으로 본 열린예술작품’(open art works, 의미가 고정되어 있고 감상자의 자유로운 해석이 열려있음)의 특성에 부합한다. 심지어 디지털 이미지는 단지 임의로 해석될 가능성을 넘어서 실제로 사용자가 임의로 변형할 수 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디지털 매체는 매체이론가 맥루한(매클루언, Marshall Mcluhan)이 꿈꾸었던 쿨 미디어’(Cool Media)의 완벽한 구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쿨 미디어란 정보가 완성되지 않은 느슨한 형태로 주어지고 수신자의 참여에 의해서 완성되는 매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맥루한, 1997:36)

그러나 디지털 매체의 이러한 개방적인 특성은 반대로 조작가능성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을 지닌다. 디지털 정보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얼마든지 조작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에 진실한 매체의 상징이었던 사진이 디지털 사진의 등장 이후 조작과 허위의 상징으로 바뀐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딥페이크 기술과 이를 식별하는 기술, 혹은 해킹과 보안의 무한 숨바꼭질은 불가피하다. ‘대체불가능한 토큰’(NFT, Non Fungible Token)의 등장도 이러한 배경에서이다. 조작과 무한한 복제가능성의 환경에서 물리적으로 원본을 따지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원본의 가능성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기에 판화의 일련번호처럼 이미지 파일에 일련번호를 매기고 이를 블록체인 기술로 보증 받고자 한다. 그러나 단지 일련번호에 의해서만 원본성이 확보될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역설 자체가 디지털 매체가 지닌 두 가지 상반된 경향, 즉 개방성을 통한 진실의 확장과 허위성의 불가피한 공존을 나타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dmond Couchot, La technologie dans lart - de la photographie à la réalitè virtuelle, Édition Jacqueline Chambon, 1998.

 

Mark Hansen, New Philosophy for New Media, The MIT Press, 2004.

 

마샬 맥루한, 박정규 옮김, 미디어의 이해, 커뮤니케이션 북스, 1997.

 

심혜련, 20세기 매체철학, 그린비, 2012

 

박영욱, 매체, 매체예술, 그리고 철학, 향연출판사, 2008.

 

 

작성자: 박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