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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투르
  분류 : 공간철학
  영어 : Bruno Latour
  한자 :

상식적-실재론적 과학관에서 자연은 과학 밖에 놓여있는 것, 과학이 탐구하여 그 비밀을 이해해 가는 것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자연은 과학적 탐구의 출발점이며 원인이었다. 그러나 라투르에 따르면 과학적 탐구 또는 과학적 사실은 인간의 이해관계와 (비인간적) 기술이 협상과 결합을 통해 작동하는 과정에서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 구성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라투르가 과학 인류학(anthropology of science)”(라투르, 1979: 39)이라 부른, 과학실천의 현장 관찰을 통한 연구의 결과물이다. 1979년 라투르는 사회학자 스티브 울가(Steve Woolgar)와 함께 출간한 실험실 생활의 목표가 과학자의 한 특수 그룹에 대한 민속지학적(ethnographic) 탐구”(39)를 담은 단행본 제공이라고 말했다. “인류학적 관찰자가 제공한 실험실 활동을 배경으로 삼아 특정 사실의 역사적 구성과 뒤이은 실험실 작업에의 함의에 대해 세밀한 조사”(56)를 하고, 사실을 구성하는 실험실 구성원들의 전략에 대해 연구한 그 책 이후 라투르는 신생분야인 과학의 사회적 연구(social studies of science)’의 대표적 연구자로 인정받게 된다.

라투르는 1982년 파리 국립광업대학의 교수로 임명되어 재직하면서, 미셀 칼롱(Michel Callon), 존 로(John Law)와 공동작업을 통해 행위자-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ANT])“의 정식화를 위한 토대를 쌓았다. ”번역의 사회학이라고도 불리는 ANT, 권력 행사의 역학에 대한 이론이다. 그것은 기술혁신을, 다수의 이종적 요소를 소수의 강력한 대표자의 영향력 범위 안으로 번역해 넣는 과정으로 묘사했다. 그들은 번역과정이 행위자들의 특정 관계망에서 발생한다고 했고, 이로부터 행위자-연결망(actor-network)“이라는 유명한 용어가 유래했다. 『프랑스의 파스퇴르화(1984. 영어판 1988)는 루이 파스퇴르(L. Pasteur)의 미생물(microbes) 연구에 대한 책이다. 거기서 라투르는 사회는 사람들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미생물이 개입하고 행위한다”(라투르, 1984, 35)라고, 미생물 자체에 두드러지는 역할을 부여했다. 라투르는 이를 통해 비인간 행위자(nonhuman agent)”라는 용어로 지칭되는, 기술, 기계, 동물, 유기체 등에 초점을 맞추는 ANT의 입장을 형성해 갔다.

ANT를 집대성한 책이 1987년의 젊은 과학의 전선 Science in Action』이다. 여기서 라투르는 실험실 내부와 외부에서 사실-구축자들이 어떻게 이해관계를 변형, 또는 번역함으로써 동맹자들을 자신들의 프로젝트에 연관시키는지를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이해관계를 번역한다는 것은, 이들 이해관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공함과 동시에 사람들을 다른 방향으로 돌림을 의미한다.”(라투르, 1987, 235) 동맹에 참여하는 행위자는 실험실의 과학자들뿐이 아니다. 그들의 기입, 기입 장치, 특허, 고객도 동맹의 일원이다. “사실 구축자의 임무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제 분명하게 그 요지를 말할 수 있다. 인간 행위자들을 징병하고 관심을 유발하는 첫 번째 전략들이 있고, 그 첫 번째를 유지하기 위해, 비인간 행위자를 징병하고 이해관계를 갖게 하는 두 번째 전략들이 있다. 이들 전략이 성공적일 때, 구축된 사실은 불가결한 것이 된다.”(266) 라투르는 연결망의 안정화와 불완정화에 기여하는 모든 요소와 관계를 분석의 범위에 포함시키면서, 테크노사이언스의 형성과정에서 벌어지는 동맹 세력 규합, 힘겨루기를 강조함으로써, 과학의 증명과정과 군비 경쟁과의 유사성을 말했다.

이후 라투르는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1991. 영어판 1993)에서, “누구도 근대인이었던 적은 없다. 근대성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근대 세계는 존재한 적도 없다”(라투르, 1991, 128)라고 선언했다. 거기서 서구 근대 사유의 핵심 전제라고 할 수 있는 자연과 사회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서구 근대성을 일종의 집단적 자기기만이라고 폭로했다. “자연과 사회는 두 개의 상극을 이루는 초월성이 아니라 하나이며 모두 매개의 작용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반면에 능산적 자연(naturing-nature)들과 공동체들의 내재성도 하나의 영역, 즉 사건들의 불안정성, 매개 작용의 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근대의 헌법은 옳았다. 자연과 사회 사이에는 실제로 심연이 존재하지만 이 심연은 안정화가 채 일어나지 않은 상태일 뿐이다.”(223) 그는 서구 근대성의 주류적 해석을 거부하며 동시에 대안으로 등장했던 탈근대주의(post-modernism) 역시 거부하는, 비근대주의(amodernism)을 천명했다. 그 까닭은, “탈근대주의는 징후일 뿐 새로운 해결책이 아니다. ... 연결망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진행하는 대신에 탈근대주의는 모든 경험적인 작업을 환상에 불과한 기만적인 과학주의로 치부한다.”(126-127)고 보기 때문이다.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가 엮인 연결망을 이해하고, “부당하게 전근대인이라고 불리는 타자들의 집합체들도 포괄”(129)하는 모든 하이브리드를 동시에 고려할 때에 누구나 비근대인(amodern)“(129)인 것이다.

이후 라투르는 생태위기, 생명공학의 위협 같은 이슈에 대해 연구를 계속했다. 『판도라의 희망(1996. 영어판 1999)에서 그는 테크노사이언스가 낳은 여러 불확실성과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희망의 방향을 제시한다. 그 희망은, 과학이 초월적 진리를 생산하는 활동이 아니라, 인간-비인간의 새로운 연합을 낳은 활동이라고 생각하는 과학자, 인문학자, 예술가와 또 시민들이 공론장에서 토론해서 이끌어낼 합의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새로운 합의는 항상 전에 없이 더 거대한 숫자의 인간과 비인간에 의해 형성된 집합체(collective)가 코스모스가 된다는 사실을 집합적으로 보장하는 것“(라투르 1996, 411)이다. 『자연의 정치학 Politics of Nature』(1999. 영어판 2004)은 우리 시대 생태위기의 맥락에서 라투르가 자신만의 정치생태학을 설계한 책이다. 『사회적인 것은 재조립(2005)에서 라투르는, 인간-비인간의 결합들로 이뤄지는 이 세계의 진정한 현실을 분석하는 결합의 사회학(sociology of associations)“(라투르, 2005, 160)을 기존 사회학의 한계를 넘을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했다.

 

 

참고문헌:

 

브뤼노 라투르(1987), 황희숙 옮김, 『젊은 과학의 전선, 아카넷, 2016

브뤼노 라투르(1991), 홍철기 옮김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갈무리, 2009

브뤼노 라투르(1996), 장하원/홍성욱 옮김판도라의 희망, 휴머니스트, 2018

브뤼노 라투르(2010), 이세진 옮김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 사월의책, 2012

브뤼노 라투르, 스티브 울가(1979), 이상원 옮김실험실 생활, 한울, 2019

아네르스 블록/ 토르벤 옌센(2011), 황장진 옮김처음 읽는 브뤼노 라투르, 사월의책, 2017

 

 

작성자:황희숙(대진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