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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대상
  분류 : 공간철학
  영어 : digital objects
  한자 :

유우 쿠이는 디지털 대상의 실존에 대하여』¹에서 디지털적 대상이 새로운 형태의 산업적 대상(Yuk Hui, 49)이기 때문에 새로운 대상철학이 필요하다고 논증한다. 기존의 철학사적 전통에 따르면 대상은 이념이나 본질을 통해 규정되거나 속성의 결합물로 여겨지지만, 유우 쿠이는 이러한 태도를 거부한다. 그는 데이터와 메타데이터와 같은 디지털 대상을 기존의 범주를 통해 규정하는 대신 그것의 생산, 사용, 실행 면에서 접근한다.(Yuk Hui, 75) 디지털 대상을 이와 같은 존재방식의 면에서 규정해야 하는 이유는 디지털 대상이 확대되고 연장되는 방식은 관계로부터만 고유하게 규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우 쿠이는 컴퓨터과학과 인지과학자인 캔트웰 스미스와 현상학자인 후설과 하이데거 이론을 경유하여 관계적 존재론으로서의 디지털 대상의 존재론을 구축한다.  

[1] 이 책의 한글 번역본은 책의 제목인, On the Existence of Digital Objects디지털적 대상의 존재에 대하여라 옮기고 있다. 이 때 ‘Existence’존재로 옮기는 것도 나름 타당성이 있겠으나, 서구철학의 역사에서 ‘Existence’의 개념사를 고려해 보았을 때, 무엇보다 사르트르나 하이데거의 실존철학 내에서 이 개념이 인간의 세계 설립과 관계한다고 보았을 때, ‘실존이라는 번역어가 보다 타당해 보인다. 유우 쿠이가 이 책에서 전개하는 디지털 대상의 존재론의 핵심 주제는 주위세계(Umwelt), 보다 엄밀하게는 환경’(milieux)과 맺는 관계를 통해 그것의 존재방식의 고유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논지를 고려했을 때, 우리는 인간만이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대상도 실존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관계적 존재론

유우 쿠이가 주목하는 캔트웰 스미스의 논의(대상의 기원에 대하여(On the Origin of Objects), The MIT Press Reader, 1998)에 따르면 디지털 대상은 하나의 통일체로 보아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는 데이터가 갖는 두 가지 의미와도 관련된다. 첫째 데이터1946년 이래 전송 가능하고 저장 가능한 컴퓨터 정보를 의미한다. 둘째 데이터는 라틴어인 datum의 복수형인 주어진 것([a thing] given)’이라는 어원을 갖는다.(Yuk Hui, 48) 최근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식은 데이터가 확대, 연장되는 방식으로 발전되어 왔다. 데이터플랫폼에서 플랫폼으로, 데이터베이스에서 데이터베이스로 확대되며 데이터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 연결망을 수립함으로써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한다.(Yuk Hui, 49) 나아가 디지털적 대상은 데이터베이스, 알고리즘, 네트워크프로토콜과 같은 디지털 대상의 연합환경과 관계맺음을 통해 개체화된다.

유우 쿠이는 이와 같이 하나의 통일체로 작동하는 데이터 처리 방식을 고유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소여성(givenness)으로서 상호대상성(간대상성, interobjectivity) 개념을 제시한다. 유우 쿠이는 상호대상적 관계 이론의 기원을 전후기 하이데거 논의에서, 존재와 시간에서의 망치와 후기 하이데거의 단지(jar)’가 주위세계와 맺는 관계 분석에서 찾는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는 인간이 망치질을 하는 사태를 인간 현존재(Dasein)에 의해 개시되는 일종의 의미 맥락으로서의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기존 분석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유우 쿠이에 의하면 하이데거의 망치 분석은 도구, 혹은 사물이 주위세계와 맺는 물질화된 관계를 통해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논의 전개는 디지털적 대상이 주위 환경세계와 맺는 특정 물질화된 관계, 데이터스키마, 온톨로지, 프로토콜의 개발과 발달이 가져온 기술시스템 내의 관계 분석으로 나아간다.

 

관계적 존재론과 상호대상성

상호대상성과 관련하여 유우 쿠이는 기존의 하이데거가 분석하는 기술적 대상인 손안의 존재자로서 망치 분석에 주목한다. 하이데거에게 어떤 도구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망치는 못을 박기 위한 것으로, 못은 옷을 걸기 위한 것으로 있다. 망치와 같은 개별 도구들은 무엇을 하기 위해 유용하다는 도구들의 수단관계(um-zu)의 전체 연관인 사용사태전체성(die Bewandtnisganzheit)²으로부터 규정된다(Heiegger, 1977, 116). 나아가 상호대상성 개념은 하이데거의 단지와 같은 사물분석에서 보다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단지는 자기 안에 신적인 것, 죽을 수 있는 자들인 인간, 그리고 땅과 하늘인 사방세계’(das Geviert)를 자신 안에 모으는 방식으로 있다. 그렇기에 단지가 단지로서 있다는 것은 단지가 네 개의 방역을 모으는방식으로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르면 주체-대상이 아니라 현존재와 현존재가 포함되는 존재자들의 모음만이 있다(Yuk Hui, 163).

 [2]이때 사용사태란 특정 도구가 특정 작업에 적합한 성격, 즉 도구가 갖는 작업에의 적합성을 가리킨다. 또한 특정 도구가 어떤 사용사태를 갖는가는 그때마다 사용사태 전체성으로부터 특징지어진다. M. Heidegger. Sein und Zeit. Vittorio Klostermann. 1977. §18 참조.


유우 쿠이에 의하면 디지털적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사이버공간을 지시전체성(즉 그것의 세계--존재)으로, 나아가 사방세계의 모음으로 보고 접근해야 한다. “고립된 대상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상호대상성만이 있고 사물의 물성은 오직 환경과 관련된 관계(Yuk Hui, 162)”로서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상(der Gegenstand)은 맞서 세워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Beisammen)의 의미와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Yuk Hui, 162).”

유우 쿠이는 두 번째 상호대상적 사상가로 시몽동에 주목한다. 시몽동이 든 갱발터빈의 사례에 따르면, 강은 엔진의 외부 환경이지만 접촉면처럼 엔진과 관계를 수립하고, 그 관계는 엔진의 실현 속에서 물질화된다. 유우 쿠이는 이를 디지털적 대상에서도 발견한다. 자동화에 의해 제어되는 가상관계를 통한 물질화의 또 다른 유형이라 할 수 있는 GML이 그 예시로서, GML은 동일한 대상이 상이한 소프트웨어에 의해 다루어질 때의 호환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산한 공통대상에 해당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술적 대상은 대상 간의 관계를 물질화하고 내부환경과 외부환경의 양립불가능성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상호대상성을 발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Yuk Hui, 167). “데이터스키마, 온톨로지, 프로토콜의 개발과 발달은 대상과 유저를 서로 보다 가깝게 만들어주고, 정보획득에 수반되는 시간적, 지리적 거리를 단축시켰다. 그것은 새로운 수렴[혹은 모음-작성자]을 가져온다. [] 그러한 전체성을 기술시스템으로 부를 수 있다(Yuk Hui, 167).”

 

기술시스템 내에서 인간의 지위

기술시스템 내부에서 인간의 지위는 어떻게 접근되어야 하는가? 유우 쿠이는 기술발달에 의해 제기된 쟁점을 새로운 시각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령 20세기 후반 인간이 보철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됨으로써, 이는 비인간 또는 포스트-휴먼 개념으로 이어졌지만, 다만 비인간을 범주화하고자 하는 시도에 그칠 뿐이었다. 반면 21세기 기술발달에 준해서 인간-비인간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재개념화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비인간]을 함께 관계로 분석하는 기술시스템을 고려해야 한다”(Yuk Hui, 248)

인간은 기술시스템 내에서 존재 방식과 경험 양식의 면에서 변화를 겪고 있다. 한 편으로 인간은 디지털적 대상 자체에 불과한 것이 되고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기계와 통합되고 있으며, 소셜 컴퓨팅과 크라우드소싱이라는 이름 아래 일군의 기술시스템에 새로운 조작을 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Yuk Hui, 138) 협력적 주석달기(collaborative annotation), 태깅(tagging)(Yuk Hui, 215)이 그 사례이다. 단적으로 태깅은 자신이 올린 텍스트나 사진과 관련 있는 단어나 주제어(키워드)를 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를 통해 유우 쿠이는 기술시스템 내부에서 집단적인 동시에 개인적인 관계를 재조직화할 가능성을 본다. 즉 그는 태깅과 같은 사례에서 기술시스템을 새로운 방식으로 수렴하고 내적으로 변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다(Yuk Hui, 220)”고 보는 종래의 컴퓨터 엔지니어들과 결을 달리한다. 그는 기존의 상호대상적 기술시스템을 수정해, ‘우리의 테크놀로지(Yuk Hui, 219)로 재구축할 방식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참고문헌

Brian Cantwell Smith(1998). On the Origin of Objects. The MIT Press Reader.

M. Heidegger(1977). Sein und Zeit. Vittorio Klostermann.

-----------------(1978). Vorträge und Aufsätze. Vittorio Klostermann.

Yuk Hui(2016). On the Existence of Digital Object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6.

 

허욱(2021). 디지털적 대상의 존재에 대하여. 새물결.

하이데거(2018). 존재와 시간. 이기상 옮김. 까치.

하이데거(2008). 강연과 논문. 이기상·신상희·박찬국 옮김. 이학사.

 

작성자: 서영화(서울대 시간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