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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용기로서의 공간(기든스의)
  분류 : 공간사회학
  영어 : space as power container
  한자 : 權力容器로서의 空間


권력용기로서의 공간은 사회학자 기든스(Anthony Giddens)의 구조화 이론에서 제시된 바대로 자원들(resources)이 집중된 곳(현장)을 말한다. 이 개념은 특별히 기든스 사회이론의 독특한 측면인 '시-공간 원거리화'(time-space distanciation) 개념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먼저 기든스가 제시하는 구조화 이론은 사회생활의 반복적 성격에 기반한 ‘실천’ 개념을 구조와 행위라는 전통적인 이원론의 두 축을 매개하는 주요한 순간으로 보며, 이 사회적 실천들 안에서 구조와 행위를 화해시키고자 한다. 여기서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자 실천의 결과로서 구조가 강조되며, 이에 따라 구조와 행위는 서로 독립되어 있지 않고 ‘이중성’(duality)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구조는 더 이상 고전적 이원론들이 가정하는 바와 같이 개인 행위자들의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행위가 실천의 재생산의 매개와 결과로서 시간과 공간 가운데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한에서 존재한다. 이렇듯 기든스는 구조화 이론에 시간과 공간을 포함시키는데, 이는 사회적 실천에 의해 구성되는 모든 사회 체계들은 항상 시간과 공간 안에 배태되어 있기 때문이다. 곧, 사회 체계를 구성하고 사회 체계에 의해 구성되는 행위들은 바로 사회적 실천이 일어나는 공간을 생산하며, 동시에 사회 체계는 행위들을 특정한 시-공간적 맥락에 결속시킨다.

모든 행위와 상호교섭은 특정한 장소와 한정된 기간 안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시공간을 가로질러 사회체계가 확장되는 시-공간 원거리화와 함께 사회적 교섭은 같은 공간(space)에서 일어날 수 있지만, 반드시 같은 지리적 ‘현장’(locale)에서만 일어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든스는 ‘장소’(place) 대신에 ‘현장’ 개념을 선호하는데, ‘현장’은 교섭의 무대로서 그 안에서 교섭과 사회적 관계의 체계적 측면들이 집중된다. 발전된 소통 매체들로 인해 우리는 현장을 떠나 물리적으로 부재한 상대와 상호 교섭할 수 있다. 이렇듯 사회 체계가 시간과 공간에서 확장되는 것은 인간 사회의 전반적인 발전의 명백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행위한다고 하는 것 또는 행위자가 된다는 것은 일정한 범위의 인과적 힘을 (매일의 삶의 흐름에서 지속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것임을 가정한다. 곧, 달리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은 세상에 개입하거나 그러한 개입을 삼감으로써 사건 과정이나 사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뜻한다. 행위는 기존의 사태 또는 사회 과정을 ‘다르게 만드는’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게 된다. 그래서 구조화 이론에서 행위자는 권력의 소유자와 동의어가 된다. 행위한다는 것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만약 행위자가 이렇듯 다르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다면, 그는 더 이상 행위자로 여겨질 수 없다. 정리하자면, 기든스에게 있어서, 권력은 행위자가 기존 상태를 다르게 만드는 ‘변형 능력’(transformative capacity)이다.

권력은 지배구조의 재생산 내에서 그리고 그 재생산을 통하여 생성되는 데, 그 지배구조를 구성하는 것이 자원이다. 자원은 변형 능력이 사회적 교섭의 일상적 과정 안에서 권력으로서 작동하게 하는 매개이다. 그래서 권력의 범위나 권력을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바로 자원의 특징과 양에 따라 결정된다. 지배의 구조를 구성하는 자원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첫째로 물질적 또는 ‘할당적 자원’(allocative resources)은 주체와 객체 사이의 관계에 근거하는 것으로, 자연환경과 물리적 가공품을 포함하여 권력의 발생에 포함되는 물질적 자원이다. 할당적 자원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에서 파생된다. 둘째로 ‘권위적 자원’(authorative resources)은 주체와 주체 사이의 관계에 근거하는 것으로, 인간의 활동을 이용하는 능력에서 파생되었으며, 권력의 발생에 포함되는 비물질적 자원이다. 권위적 자원은 행위자에 대한 지배로부터 나타난다.

이 자원들은 개인 행위자에 의해 소유되는 것이 아니라, 체계의 생산과 재생산 과정에서 행위자에 의해 사용되는 사회 구조들의 특징이다. 그리고 모든 사회에는 이 두 가지 자원들이 집중되는 중심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기든스는 바로 이 자원들이 집중되는 곳을 ‘권력 용기’라고 불렀다. 이 권력용기는 사회 체계 안에 특정한 현장(locale)위치해 있어야 한다. 성(城), 요새, 도시, 민족국가(nation-state), 학교, 감옥 등은 특히 자원들이 강하게 집중되어 있는 권력용기들이다. 보기를 들어, 근대 학교는 ‘규율 권력’(disciplinary power)을 낳는 권력용기이다. 근대 학교가 가지는 관료제적 특성은 학교가 포괄하는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또 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학교는 일상적인 교섭으로부터 단절된 폐쇄적 경계 안에서 운영됨으로써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일련의 대면적 교섭들이 엄격하게 조정될 수 있다.

권력용기들은 바로 할당적 자원과 권위적 자원의 집중을 통하여 권력을 생성해 낸다. 모든 사회는 이 두 종류의 자원을 어떻게 조직하고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한다. 자원들이 집중되는 방식에 따라 사회들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각기 다른 저장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이에 따라 기존 사회들을 구분지어 줄 수 있는 유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구술문화에서는 인간 기억이 실제로 정보의 유일한 저장고였다. 여기서는 여러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의 모든 접촉이 시공간적으로 제한된 면대면의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저장 능력으로서의 문자 곧 글쓰기의 발전은 과거, 현재 그리고 신체적으로 부재한 타인들과의 비구술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시간적 공간적 확장은 새로운 형태의 ‘계급-분할 사회’(class-divided society)의 등장의 기초를 형성한다. 계급-분할 사회란 일반적으로 제한된 정도의 계급 형성이 이루어진 농업사회들을 일컫는다. 전통적인 계급-분할 사회에서는 ‘도시’가 주요 권력 용기 또는 권력의 도가니(crucible)가 된다. 이것은 도시와 시골지역 사이의 공간적 분리로 나타났으며, 도시는 종교적, 상업적, 행정적 중심이 되었다. 그래서 도시는 부족적 질서에서 보다 더 거대한 시-공간 원거리화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자원의 집중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도시의 벽이 허물어지고, 영역적으로 한정지어진 민족국가라는 새로운 형태의 권력용기가 형성되었다. 자본주의로의 변화는 이전 시대와 비교해 중대한 결과를 낳았는데, 그것은 경제로부터 국가의 분리이다. 이 과정에서 경제적 권력은 할당적 자원의 이용에 관계되는 반면, 국가 활동은 감시와 행정의 형태를 띠는 권위적 자원에 의해서 확장된다. 후자의 과정, 곧 국가의 행정력의 강화는 여러 가지 조건들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먼저 교통수단의 기계화, 인쇄술의 발명, 정보를 기계적으로 저장하는 기술의 발명으로 인해 가능했으며, 이는 국가의 공간적 권력을 확장시켜 주었다. 또한 공식 통계 수집과 같은 국가의 기록 활동의 엄청난 확대와 다양한 총체적 제도(total institutions)들에 의한 '규율 권력'을 포함하는 효과적인 감시 체계의 발전, 동의와 정당성의 구성과 유지도 국가의 공간적 권력 확장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이로써 권력 용기로서의 민족국가는 점차로 전통적인 사회적 실천을 해체하면서 세세한 일상적인 사회적 삶 속으로 침투할 수 있게 되었다. 국가의 경계는 단지 행정적인 분화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폭력이 일어날 수 있는 경계의 형성과도 관련된다. 국가 권력의 기제는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 곧 전쟁을 위해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에도 의존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기든스, 안소니, 황명주·정희태·권진현 옮김, 『사회구성론』, 간디서원, 2006.
Giddens, Anthony, Central Problems in Social Theory - Action, Structure and Contradiction in Social Analysis. Berkeley and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9. 
                          , A Contemporary Critique of Historical Materialism. Berkeley and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1.
Kaspersen, Lars Bo, Anthony Giddens - An Introduction to a Social Theorist, Oxford: Blackwell Publishers.
Loyal, Steven, The Sociology of Anthony Giddens. London and Sterling, Virginia: Pluto Press, 2003.
Bryant, Christopher G. A. and David Jary(eds), Giddens’ Theory of Structuration - A Critical Appreciation. New York: Routledge, 1991.

작성자 : 하홍규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BK21플러스 사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