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이미지
도시인문학 사전
모두보기모두닫기
박스하단
사전 > 도시인문학 사전
 
직관의 순수형식으로서의 공간(칸트의)
  분류 : 공간철학
  영어 : Raum als reine Form der Anschauung(space as pure form of intuition)
  한자 : 直觀의 純粹形式으로서의 空間


칸트(Immauel Kant)는 『순수 이성 비판』의 선험적 원리론(die transzendentale Elementar lehre)의 선험적 감성론(die transzendentale ästhetik)에서 공간을 “감성적 직관의 순수한 형식”(Kant,1956;B36)이면서 “아프리오리한(경험에 독립적인) 인식의 원리”(Kant,1956;B36)라고 주장한다. 공간에 관한 칸트의 이러한 주장이 독특한 이유는 공간이 뉴턴처럼 실재적 사물, 즉 사물 자체(Ding an sich)도 아니고, 라이프니츠처럼 실재적 사물의 성격(내적 규정 혹은 외적 관계)도 아니라는 데 있다. 오히려 칸트의 공간은 감성에 근거하면서도 직관 일반의 순수한 형식에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간적 규정의 대상은 직관을 통해 우리의 주관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즉, 우리에게 인식되는 공간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현상이다. 순수 공간은 사태가 우리에게 현상하는 형식이다. 순수 공간 안에 감성적 직관작용이 주어지기 때문에, 이에 관한 연구는 선험적 감성론의 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칸트는 “감성의 모든 아프리오리한 원리에 관한 학문”(Kant,1956;B35)을 선험적 감성론이라고 부른다.

칸트는 선험적 감성론에서 공간을 형이상학적 논구와 선험적 논구로 나누어 설명한다. 공간에 관한 형이상학적 논구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1) 공간은 경험적이 아니라 아프리오리한 표상이다. 이를 통해 공간은 현상들의 형식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든 가능한 현상들의 보편적이면서 필연적 조건이라는 것이다. 2) 공간은 개념이 아니라 순수 직관이다. 이것은 공간의 부분들을 경험과 상관없이 전체 공간으로서 인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는 공간에 관한 형이상학적 논구 전체를 두 가지 의미에서 순수 직관임을 밝힌다. 그것은 공간이 한편으로 주어진 현상들을 정돈하는 공간현상의 형식임을 의미하고, 다른 한편으로 공간형식의 부분들로서의 공간적 다양성을 의미하는 직관의 형식들을 포함하는 것이다(김정주,2001,61). 우선 칸트에게 1) 공간은 “외적 경험에서 추상된 경험적 개념”(Kant,1956;B38)이 아니라 아프리오리한 표상이다. 그리고 2) 공간은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므로 “모든 외적 직관의 근저에 있는 필연적으로 아프리오리한 표상”(Kant,1956;B38)을 전제해야만 한다. 이 둘을 종합해 보자면, 칸트에게 공간은 경험대상의 지각된 관계로부터 나중에 추상된 경험적 개념이 아니라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아프리오리한 표상이다. 공간표상이 개별적인 것이더라도 공간에 주어진 것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외적 현상의 경험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적 경험 자신이 공간표상에 의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칸트에게 3) 공간은 “사물 일반의 관계들에 의한 보편개념이 아니라 순수 직관”(Kant, 1956;B39)이며 추리된 개념으로 드러나는 지성(Verstand)의 개념과 구분된다. 그리고 4) 칸트의 공간은 “주어진 무한의 크기로 표상된다”(Kant,1956;B39-40). 표상방식에 대한 칸트의 이원론에 따르면 개념과 직관은 구별된다. 개념이 개별 대상에 타당한 공통 특징들을 포함하는 일반적 표상인 반면, 직관은 개별 대상의 표상이다. 지성은 개념을 사고하지만, 직관은 개별자를 직관한다. 3)에 따르면 공간이 하나이기 때문에, 칸트는 공간표상이 순수 직관임을 밝히고자 한다. 만일 여러 공간들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동일한 공간의 부분들을 뜻한다. 따라서 공간의 부분들은 하나의 포괄적인 공간에 속하는 것들이지만, 하나의 포괄적인 공간은 여러 부분의 단순한 집합일 수 없다. 공간의 부분들은 그 자체로 인식될 수 없고, 오직 하나의 포괄적인 공간으로서만 인식될 수 있다. 그리고 칸트의 공간이 순수직관을 통해 아프리오리하게 인식된다는 것은 공간을 아프리오리한 조건들로서 인식한다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하나의 전체로 인식할 때 경험과 상관없이 그 부분들의 특성도 필연적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4)에 따라 만일 무한한 크기의 공간이 구획을 통해 자신 속에 무한한 부분적인 공간표상을 갖는다면, 우리는 공간개념을 “가능한 상이한 표상들로부터의 무한한 집합에 포함되어 있는 표상”(Kant,1956.B;40)으로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칸트는 공간개념을 무한히 많은 표상의 집합을 자신 속에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칸트는 공간을 개념이 아닌 감성적 직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칸트의 공간은 “외적 직관의 형식이고 각각의 공간의 내적 규정은 전체 공간에 대한 외적 관계의 규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Kant,1976;39). 칸트는 선험적 논구에서 순수 직관으로 규정된 공간을 아프리오리한 인식의 근원적 조건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공간의 모든 부분은 그 자체로 순수 직관이기 때문에, 기하학의 판단들은 직접적으로 증명되고 직접적 확실성을 가진다. 이를 통해 칸트의 공간은 경험이 가능한 전체 영역에서의 인식의 원천으로 고찰된다. 그런데 공간에 관한 선험적 논구에서는 공간에 관한 우리의 순수 직관이 모든 현상의 형식을 포함하고 있으며, 공간에 있어 우리의 순수한 직관이 감성에 근거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만일 칸트의 선험적 논구가 엄밀한 의미에서 선험적이라면 공간표상이 순수 직관인 이유는 근원적으로 우리의 마음에 감성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공간표상은 우리의 마음에 의존하지 않은 사물 자체에 타당하지 않고 단지 우리의 감성에 주어진 현상에만 타당하다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물론 칸트는 순수 직관의 주관적 근원과 객관적 타당성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 여기에서 공간은 선험적으로 관념적이면서 동시에 경험적으로 실재적인, 즉 현상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타당한 직관으로 규정된다.

공간이 감성에 근거한 감성의 형식이라는 칸트의 관점은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관점에 반대하는 결정적 근거다. 우선 뉴턴의 공간을 그 자체 내부에 아무런 물체가 없어도 물체들의 저장소로 규정한다. 칸트에 의하면 뉴턴은 공간을 사물 자체의 형식으로서 신의 현존도 포함하는 모든 현존의 필연적 조건이라고 이해한 것이다. 실재적 사물 자체로서의 뉴턴의 이른바 절대적 공간은 공간 속에서 사물에 대한 아프리오리한 인식을 낳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뉴턴은 순수 수학의 가능성과 현실세계에 대한 적용의 가능성을 설명한다, 그러나 뉴턴의 공간은 아무런 실재적 대상이 없으면서도 그 자체가 실재하는 것이다. 칸트가 『순수 이성 비판』에서 공간을 형이상학적 논구를 통해 제시한 것처럼, “공간은 논증된(추리된) 개념이거나 혹은 사물 일반의 관계에 관한 보편적 개념이 아니라, 순수 직관이다”(Kant,1956;B39). 우리는 추상적 사고를 통해 공간으로부터 감성적 대상들을 배제하고 공간을 순수 직관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공간은 그 자체에 존재하는 대상들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칸트에 의하면 뉴턴은 공간을 아무런 실재적 사물도 자체에 포함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단순히 모든 실재적인 것을 자신 속으로 수용하기 위해 존재하는 영원히 무한한 독립체로 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뉴턴은 이러한 가정을 불합리한 것으로 규정하고 만다. 뉴턴의 공간개념과 달리 칸트의 “공간개념은 객관적이며 실재하는 존재자나 속성에 관한 것으로 상상된 존재일 수 있다 하더라도 감각 가능한 모든 것과 관련하여 볼 때, 전적으로 참일 뿐만 아니라 외적 감성에서의 모든 진리의 기초”(Kant,최소인 옮김,2007;41)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칸트는 라이프니츠의 공간도 사물 자체의 현상관계나 질서로서 이에 따라 경험에서 추상되고 혼란스럽게 표상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때 공간은 현상들의 동시적 병존관계로 규정된다.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공간 속에서 연장되고 운동하는 물체들에 대한 최고로 판명된 표상으로 여겨지는 기하학적 인식은 물체들의 현상적 질서의 표상으로서 여전히 감성적인 것의 영향에 의한 혼란스러운 규정에 불과하다. 이러한 라이프니츠의 관점은 공간이 우리의 감성적 직관의 주관적 조건과 상관없이 단순히 사물의 규정이라는 데 있다. 이것은 공간이 논리적으로 이 성격들의 담지자인 사물에 의존하기 때문에 사물의 조건이 될 수 없음을 함축한다. 우리는 사물이 우리에게 주어진 함에서만 사물을 경험할 수 있으며 결코 경험과 상관없이 아프리오리하게 직관할 수 없다. 우리는 사물을 실제로 경험했을 때에만. 사물들 자체의 규정들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공간에 관한 우리의 표상들은 경험으로부터 일반화된 것이다.

공간은 그 자체로 범주들에 의해서 수행된 선험적 연역(die transzendtale Deduktion)이기 때문에, 순수한 사유형식에 있어 객관적 타당성을 감성적 직관과 결합한다. 따라서 모든 범주의 종합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자기의식의 종합은 감성적 직관의 형식인 공간과 연관되고 이러한 형식을 아프리오리하게 제시한다. 선험적 연역은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로서 순수 지성개념에 관한 서술이다”(Kant,1956,B168). 공간은 지성의 형식에 관한 서술이면서 감성의 근원적 형식(Kant, 1956, B169)으로 된다. 이렇게 되면 공간의 통일은 자기관계의 산물로 규정되고, 아프리오리하게 직관될 수 있는 공간은 자기의식의 자체의 통일로 규정된다(권기환, 2012; 327). 자기의식의 근원적 종합인 선험적 통각(die transzendentale Apperzeption)은 공간의 통일을 보장한다. 페이튼은 『순수 이성 비판』의 선험적 분석론에서의 공간의 통일은 선험적 감성론과 달리 선험적 통각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반대로 헨리히는 공간의 통일은 이미 근원적으로 주어진 선험적-감성적 사실이라고 주장한다(김정주, 2001: 53). 둘 중 어느 관점이든 이 근원적 종합은 공간을 전체 현상에 있어 그 현존의 체계적 통일을 뜻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방식의 종합은 공간을 수학적 단일성으로 뿐만 아니라, 역학적 단일성을 통해 현상의 보편적 교호작용임을 뜻한다. 공간은 지성에 있어 상호작용(commercium)이고, 직관에 있어 상호관계(communio)로 나타난다. 칸트는 이것을 인과성과 교호관계라는 범주를 통해 총체적으로 규정해서 공간의 통일을 선험적으로 기초한다(권기환, 2012; 329)

칸트는 모든 경험 현상의 근저에 아프리오리하게 놓여 있는 것을 통해 경험의 기준을 마련해서 우리의 외부 공간에 대상들이 현존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간주하는 관념론을 비판한다. 그리고 칸트는 우리와 상관없이 외부 공간에 따로 존재하는 대상을 독단적으로 설정하는 실재론도 비판한다. 칸트가 우리의 외부에 있는 공간을 경험적 실재론의 관점에 근거해서 받아들이는 것은 공간의 내용이 감각적 소재에 의존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칸트는 공간을 내부로 끌어들인다. 그렇게 되면 공간이 대상을 인식하는 인식능력의 형식이 되기 때문에, 거기에 주어진 대상은 공간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현상이 된다. 따라서 공간과 그것에 주어진 대상을 표상으로 간주하고, 그것이 단지 우리에게 현상하는 것일 뿐, 그 자체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칸트의 주장은 관념론일 수밖에 없다.


<참고문헌>
Kant, Immanuel, Kritik der reinen Vernunft, Hamurg;Felix Meiner, 1956
Kant, Immanuel, Prolegomena zu einer jeden künftigen Metaphysik, Hamburg; Felix Meiner, 1976.
Kant, Immanuel, De mundi sensibilis atque intelligibilis forma et principiis, Berlin, Georg Reimer, 1912(이마누엘 칸트, 최소인 옮김, 『감성계와 지성계의 형식과 원리들』, 이제이 북스, 2007).
권기환, 「피히테에 있어서 시간·공간의 발생론적 연역­ -『개요』에서 칸트와의 방법론적 차이를 중심으로」, 『헤겔연구』 제31호, 2012.
김정주, 『칸트의 인식론』, 철학과 현실사, 2001.

작성자: 권기환(홍익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