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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성과 쾌락
  분류 : 한국의 도시영화
  영어 : Sexuality in City Movie
  한자 : 性/快樂 都市 映畵


성적 욕망이 공식적으로 승인되는 지점이 결혼제도에 의거한 부부관계가 거의 유일하지만 한국 영화는 이들의 섹슈얼리티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결혼 이야기>(1992, 김의석)에서 부부의 침실이 성과 쾌락이 상호 교환되는 공간으로 나타나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일 것이다. <애마부인>(1982, 정인엽)에서 침실 공간이 남편의 성적 불능을 암시하는 장소인 데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이 공간은 오히려 불륜을 합리화하는 장소가 되어왔다. 따라서 혼외정사 혹은 미혼남녀의 연애로써 성과 쾌락의 재현이 이루어지는데, 그 공간은 아파트, 성매매공간, 호텔과 여관, 술집으로 나타났다.


집단 거주 양식인 아파트는 해방 후 재현의 대상이 되었다. 그곳은 <자유만세>(1946, 최인규)에서 일제 경찰의 정부 미향(유계선 분)의 공간이었으며, <오발탄>(1961, 유현목)에서는 바에서 일하며 학비를 버는 아프레-걸의 거주 공간이었다. <명동에 밤이 오면>(1964, 이형표)의 윤 마담(최은희 분)은 미군이 드나드는 바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녀가 거주하는 고급 아파트는 사회적 지위가 있는 남성이 일회성 쾌락을 즐기고 정숙한 마담으로 형상화된 여성이 상처를 입는 장소로 재현되었다. 이러한 영화에서 아파트는 전통과 근대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성적 타락과 오염을 뜻하는 근대의 기표였다. 1970년대 호스티스 멜로드라마는 사회성을 드러내며 하층민 여성과 그들이 거주하는 성매매공간을 다루었으므로 세련되고 서구화된 근대의 미장센을 보여주기 어려웠다. 반면, <애마부인>(1982, 정인엽)으로 시작되는 1980년대 에로 영화는 중산층 주부를 주인공으로 설정함에 따라 장소 변화가 수반되었다. 전통적 가족관계로부터 자유로운 공간, 성과 쾌락이 교환되는 장소로 아파트가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강남 개발과 함께 생활 방식의 서구화가 급속도로 이루지면서 가속화된다. <적도의 꽃>(1983, 배창호)은 타이틀 롤에서부터 한강의 모래사장 위 아른거리는 아파트의 스카이라인을 보여주면서 공간성을 강조한다. 아버지의 경제력에 의존해 살지만 가족애를 부정하는 미스터 M(안성기 분)은 가족 해체가 본격화되는 공간으로 아파트를 재현한다. 그는 고층아파트에서 망원경과 녹음기 같은 최신 장비를 동원하여 이웃 훔쳐보기로 소일하는 인물이다. 아름다운 선영(장미희 분)을 발견하면서 그의 행동은 병적 색채를 더해간다. 선영에 대한 그의 관음증은 <겨울여자>의 요섭을 연상시키는데, 이 시기 급격한 도시화로 익명성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남성의 스토킹 행위는 영화적 재현에서 순수한 사랑으로 포장되는 경향이 있었다. 동시에 익명적 접근은 관객의 관음증적 시선을 합리화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었다. 선영이 성공한 사업가의 정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미스터 M은 그녀에 대한 매혹 이면에 끓어오르는 환멸을 감출 수 없게 되고 그녀의 성적 오염을 심판하는 응징자로 변신한다. 아파트는 도시의 익명성을 뚫고 사랑과 친밀감을 나누는 장소이자 전통에서 자유로워진 도시인이 성적 주체성을 실현하는 장소인 동시에 프라이버시와 안전이 위협 당하는 장소로 나타난다.


호스티스 멜로드라마는 <별들의 고향>(1974, 이장호)과 <영자의 전성시대>(1975, 김호선)를 거쳐 1970년대 후반 전성기를 누렸다. 하층계급의 순수한 여주인공이 순결을 잃고 호스티스로 전락하는 서사를 통해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자행하는 이 영화들은 사창가, 여관, 다방을 주요 미장센으로 선택했다. 이 계열에 속하는 영화로 <티켓>(1986, 임권택), <매춘>(1988, 유진선), <노는계집 창>(1997, 임권택)이 있다. 이들 영화는 성매매여성을 모티브로 한 ‘여성 몸 장르(female body genre)’에 소속된다(유지나, 2004:90-91). 이러한 영화들은 가부장적 성 산업에 예속된 주변부 노동자로서의 여성과 폭력이 동반된 성과 쾌락을 보여주었다.


변화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로맨틱 코미디에서 시작되었다. 이 계열에서 활성화된 1990년대 영화는 전문직 여성의 일상을 중심으로 하거나 전통적 관계에서 벗어난 대도시의 성과 쾌락을 보여준다(황혜진, 2005:34-35).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1995, 김동빈),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임상수), <정사>(1998, 이재용), <해피엔드>(1999, 정지우)가 일련의 영화이다.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의 잘 꾸며진 아파트는 일상의 균열을 외형상 봉합하는 공간이다. 표면적으로 평등한 남녀 관계를 학습했지만 일상에서 그러한 관계가 구현되는 것을 보거나 스스로 실천한 경험이 없는 은재(최진실 분)와 진우(이경영 분)의 결혼 후 일상은 위태롭기만 하다. 진우의 외도에 맞바람으로 대응하다가 가정으로 돌아오는 은재의 모습은 결혼제도의 안락함과 연애의 황홀함을 모두 포기할 수 없는 1970~80년대 남성의 성과 쾌락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여성 입장에서 미러링(mirroring)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영화들은‘정치적 올바름’으로 관객을 계도하려 않으며, 여성의 혼외정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즉, “유부녀의 연애는 그녀가 과도한 성적 탐닉자이거나 부부관계의 일방적 피해자라서가 아니라 관계 그 자체의 향락을 통해 자아를 보살피는 것으로 재정의”되는 것이다(황혜진, 2005:38). <처녀들의 저녁식사>는 결혼제도에 편입되지 않은 미혼의 이야기이기에 자유롭고 경쾌한 터치가 두드러진다. 연희(진희경 분), 호정(강수연 분), 순이(김여진 분)에게 중요한 것은 성적 주체로서 쾌락의 문제이다. 그러나 여성을 둘러싼 기존의 성 담론이 여성을 성적 주체로 위치 짓되 사방이 막힌 장소에 몰아넣고 답을 강요하는 것이었음을 돌이켜볼 때, ‘성적 욕망과 사회적 욕망을 혼동’하고 ‘이성애를 자원으로’ 삼았던 연희가 친구의 좁은 옥탑방에서 보여준 새로운 모습은 ‘사회적 주체이자 성적 주체’로 변화하는 여성을 그릴 수 있게 하는 장면으로 평가된다(김선아, 1998:11). “한국영화사 속에서 가장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불륜영화”인 <정사>의 서현(이미숙 분)은 혈연과 가족에 기반한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정사로써‘자아를 재구성한 선구적 여성’으로 나타난다(황혜진, 2005:44-51). <해피엔드>는 재회한 옛 애인 일범(주진모 분)의 오피스텔을 밀회의 장소로 삼는 성공한 직업여성 보라(전도연 분)의 불륜을 다룬다. 보라의 남편 민기(최민식 분)는 IMF로 공적 사회에서 퇴출된 거세당한 남성이며, 영화는 보라에 대한 민기의 처벌로 끝난다. 이 퇴행적 결론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아내나 모성으로 제한된 세계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여성의, 현실과의 충돌을 서사화했다는 미덕을 갖추고 있다(황혜진, 2005:63).


2000년대에 오면 20~30대가 중심이었던 성과 쾌락의 재현이 연령을 초월하여 실현되는 양상이 나타난다. <죽어도 좋아!>(2002, 박진표), <바람난 가족>(2003, 임상수), <사마리아>(2004, 김기덕)가 그러한 경향을 대표한다. <죽어도 좋아!>는 노년기 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의 사회문화적 분위기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으며, <사마리아>는 모텔을 무대로 한 10대 소녀 영기(이얼 분)와 여진(곽지민 분)의 원조교제와 그로 인한 비극을 그리고 있다. <바람난 가족>은 10대 지운(봉태규 분)에서 호정(문소리 분)-영작(황정민 분) 부부와, 이들의 부모 세대인 60대 병한(윤여정 분)-창근(김인문 분) 부부의 성과 쾌락이 서사의 중심에 놓인다. 이들의 ‘바람난’육체적 욕망 뒤에 가려진 것은 “사랑을 통해 자신을 이해받고자 하는 것”이다. 구성원 간 소외를 양산하는 한국 가족의 불합리성에 ‘쿨’하게 접근한 이 영화는 남성들은 타자의 이해를 받는 데 실패하지만 여성들은 희망을 찾는 것으로 마무리된다(황혜진, 2005:82).


지금까지 살펴본 성과 쾌락은 이성애중심주의 속에서 기술된 것이다. 이를 벗어난 자리에 퀴어 영화가 놓인다. 퀴어는 “젠더와 이에 입각한 성차, 그리고 여성 대 남성, 여성성 대 남성성과 같은 도식을 거부하는 비성별화된 개념”(주유신, 2010:130)이다. 퀴어 영화는 기존 성차의 이분법을 넘어서 동성애, 양성애, 트렌스젠더, 복장도착자 등 모든 성적 관계를 포괄하는 다양한 관계성을 제시하는 작품을 가리킨다. 한국의 퀴어 영화는 <내일로 흐르는 강>(1994, 박재호)에서 시작된다. 이후 <로드무비>(2002, 김인식), <후회하지 않아>(2006, 이송희일), <종로의 기적>(2011, 이혁상)과 같은 작품이 나왔다. <내일로 흐르는 강>은 폭력적인 한국사와 가부장적 가족사에 대한 반작용으로 게이가 된 정민(홍상진 분)이 자신의 가족에게 애인 승걸(이인철 분)을 소개, 커밍아웃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게이 바’라는 낯선 장소는 퀴어물을 통해 비로소 한국 영화에 재현될 수 있었다. <종로의 기적>은 다큐멘터리로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편견 속에서도 유쾌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게이의 모습을 종로라는 공간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한국 영화가 보여주는 불륜은 병리적 양상을 띠는 도시적 사랑의 한 부분을 재현한 것이다. “도시라는 맥락에서 성과 사랑은 도시인의 익명적 상태, 성적 자극의 만연, 성의 상품화, 상실감에 따른 우울”과 같은 이유에서 폭력적이고 타나토스와 결합되기 쉽기 때문이다(홍준기, 2013:31). 한국 영화의 성과 쾌락은 전통 이데올로기와 식민지 상황, 근대화의 상처가 중첩되어 무반성적으로 여성의 대상화가 이루어진 경향이 있으며, 섹슈얼리티를 타락과 오염의 기표로 인식함에 따라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일반화된 방식으로 재현이 이루어졌다. 1990년대 이후의 재현은 결혼제도 내에서 파트너와 어떠한 방식으로 지낼 것인가라는 일상적 차원의 질문을 탐구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또한 탈(脫)세대적 흐름, 탈(脫)이성애중심주의 속에서 친밀감의 형성으로서 성과 쾌락에 대한 재현이 진행되고 있다.



<참고문헌>
김선아, 「우리 시대의 성과 <처녀들의 저녁식사>」, 『나눔터』, 제28호, 한국성폭력상담소, 1998.
유지나, 「여성 몸의 장르: 근대화의 상처」, 『한국영화 섹슈얼리티를 만나다』, 생각의 나무, 2004.
주유신, 「퀴어 정치학과 영화적 재현의 문제」, 『영상예술연구』, 16호, 2010.
황혜진, 『영화로 보는 불륜의 사회학』, 살림, 2005.
홍준기, 「도시와 성, 그리고 ‘법의 너머’로서의 사랑」, 도시인문학연구소 편, 『도시 성 사랑』, 라움, 2013.


작성자: 진수미 (서울시립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