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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비타스
  분류 : 서양도시사
  영어 : Civitas
  한자 :


고대 로마시대에 키비타스(civitas)는 시민(citizen)을 뜻하는 키베스(cives)의 정치 공동체 혹은 시민권을 의미했다(William Smith, 1882: 260-2). 시간이 흐르면서 키비타스는 그 의미가 확장되어 도시와 그 주변 지역이라는 뜻도 포함하게 된다.(Charlton T. Lewis) 그러나 로마 말기가 되어서는 주변 지역을 포함하지 않고 오직 도시 자체만으로 의미가 한정되었다.

로마 제국 말기에 키비타스는 교회 조직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게 되는데, 그 시작점은 기독교의 국교화이다. 기독교는 국교화를 통해 제국의 공식 종교가 되었다. 교회 조직의 효율적 운영과 통제를 위해 (주)교구를 설립하고자 했던 교회는 제국 내부의 지역을 구획하여 (주)교구를 만들었다. 기독교가 국교였던 상황 하에서 이 작업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더욱이 교회는 제국의 기존 제도를 활용했다. 키비타스를 (주)교구의 중심지로 삼은 것이다. 세속 권력이 키비타스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을 통치했듯이 교회 권력은 키비타스를 (주)교구의 중심지로 삼음으로써 교구 전체를 효율적으로 관리·감독하고자 했다. 

로마 제국, 정확히 말하자면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에도 키비타스는 제국 시절만큼 번성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존재했다. 제국의 옛 영토는 게르만족이 세운 왕국들로 대체되었는데, 로마인들과는 비교하여 게르만 사회의 상공업 수준은 미미했으며 상공업 활동에 대한 관심도 작았다. 게르만족이 세운 왕국들에 위치했던 키비타스의 위상이 추락하고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비타스가 남아있던 곳들이 있었는데, 키비타스를 (주)교구의 중심지로 삼았던 경우가 그러했다. 이는 또 게르만족이 건립한 왕국들이 (주)교구 조직을 와해시키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게 해준 덕분이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중세 초인 6세기경부터 키비타스는 주교구의 중심을 뜻하는 주교도시(episcopal city)로 그 의미가 한정되었다(Henri Pirenne, 1952: 13-14)

그렇다고 키비타스가 주교도시만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중세 초 키비타스라고 불렸던 도시들은 간혹 교회 권력과는 대별되는 세속 권력의 중심지, 즉 세속인들의 활동 무대를 지칭하기도 했다(Andre Vauchez, 2000: 313). 다시 말해 중세 초 키비타스는 주교도시이면서 가끔은 주교도시가 아닌 세속 도시를 지칭하기도 했다.

9세기가 되면서 키비타스의 의미는 변하게 된다. 9세기 이전에 키비타스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로 주교도시를 지칭했다면 9세기부터는 주교도시와 세속도시 둘 다를 의미하기 시작했다(Henri Pirenne, 1952: 63-4). 이러한 경향은 중세 성기(盛期)에 더욱 짙어졌다. 중세 성기는 상업과 수공업이 성장하고 도시가 팽창하던 시기로 세속도시의 성격이 커졌기 때문이다. 결국 중세 성기 이후로 키비타스는 기독교적·세속적 차원 모두에서 도시를 의미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Charlton T. Lewis, Charles Short, A Latin Dictionary, http://www.perseus.tufts.edu/hopper/text?doc=Perseus:text:1999.04.0059:entry=civitas&highlight=civitas
William Smith ed., Dictionary of Greek and Roman Antiquities (New York: Harper & Brothers, 1882).
Andre Vauchez et al ed., Encylopedia of the Middle Ages I (Chicago and London: Fitzroy Dearborn Publishers, 2000).
Henri Pirenne, Medieval Cities: Their origins and the Revival of Trade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52).

작성자: 이상동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