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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구
  분류 : 중국도시문화
  영어 : Artist Village
  한자 : 藝術區


중국에서 ‘예술구’는 예술가의 작업실이 모여 있는 작가 마을이나 전시 공간으로서의 갤러리가 모여 있는 지역을 말한다. 1980년대 중국에는 현대적인 의미에서 예술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개혁개방의 물결이 중국 사회를 급격히 변화시키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여전히 학교나 직장에서 자신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베이징의 예술구는 1990년을 전후하여 발생하였다. 베이징의 동쪽 다산쯔(大山子) 인근에 장환(張洹), 마리우밍(馬六明), 창씬(蒼鑫 등의 행위예술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동촌과 청나라 황실의 정원이었던 위앤밍위앤(圓明園) 일대 푸루먼촌(福綠門)촌과 과지아둔(挂甲屯)을 중심으로 딩팡(丁方), 팡리쥔(方力鈞), 위에민쥔(岳敏君) 등의 현대 회화 작가들이 모여 살던 서촌이었다. 이들이 베이징의 동쪽과 서쪽 외곽지역에 모여든 것은 모두 폐허나 다름없는 외딴 지역으로 경제적인 부담이 적었기 때문이다. (권은영, 2015: 68)

예술구의 예술가들은 현대 미술 작가들이 중심이었지만, 미술 이외의 다양한 종류의 예술가들도 함께 모여 살았다. 1989년 천안문 사건 직후, 위앤밍위앤 지역에 모여 살던 예술가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우원광(吳文光)의 다큐멘터리 <베이징을 유랑하다: 최후의 몽상가들>(流浪北京, Bumming in Beijing, 1990)에는 중국의 각지에서 베이징으로 올라와서 살고 있는 미술작가, 사진가, 연극 연출가, 행위 예술가 등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들은 베이징이 그들의 창작활동을 위해서 더 좋은 장소이기 때문에 불법거주의 위험과 경제적 곤궁함을 무릅쓰고 이곳에서 계속 살고 있다. 영화 속에서 그들은 더욱 자유로운 자신의 예술 활동을 위해서 해외로의 이주를 꿈꾸는데 영화의 마지막에는 영화에 등장하는 그들 대부분이 해외로 이주하여 자신의 작업을 지속한다.

다큐멘터리 <베이징을 유랑하다>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듯이 1990년대 초반 중국 정부의 호구제도는 자신의 지역에서 벗어나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했는데 이는 예술가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하지만, 1992년 노동부가 발표한 ‘전원 노동계약제 확대시행에 관한 통지(勞動部關於擴大試行全員勞動合同制的通知)’ 등을 통해 노동 인구의 이동을 점진적으로 개방하면서 작가들도 베이징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 정부는 거주와 이주의 자유를 점차 확대하는 한편 농민공의 밀집으로 형성되는 슬럼가를 정리하였다. 1995년 가을 베이징 외곽의 무허가 거주 지역을 철거하면서 위앤밍위앤 예술구는 해체된다. 1990년대 중반 방황하던 예술가들은 인근의 농촌 마을인 송좡(宋庄)으로 모여들었고, 이는 현재 ‘798 예술구’와 함께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두 개의 예술구 중 하나인 ‘송좡 예술구’로 성장하였다.

한편, 1995년 중국을 대표하는 미술 교육기관인 중앙미술학원(中央美術學院)이 베이징의 중심부인 왕푸징(王府井)에서 베이징 동북부 차오양구 왕징(望京)과 따산즈 사이의 화자디(花家地)로 이전하면서, 따산즈 전자공장 부지에 미술 작업실이 꾸려지게 되었다. 1990년대 말 장샤오강(張曉剛), 추즈제(邱志杰), 쑹융훙(宋永紅), 예융칭(葉永青), 마리우밍, 잔왕(展望) 등이 작업실을 왕징으로 옮기면서 베이징의 동북부에 거대한 예술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현재의 798 예술구로 성장한다. 798 예술구는 2006년 중국 정부에 의해 10개 문화 창의산업 집중구로 지정되어 ‘창의지구, 문화명원(創意地區, 文化名園)’의 슬로건 하에 베이징의 문화 아이콘이 되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798 예술구는 더욱 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이는 중국과 외국의 자본을 대거 유입시켰고, 결국 큰 폭의 임대료 상승을 불러오게 되었다. 현재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예술가들이 점차 이곳을 떠나면서 798 예술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798 예술구는 여전히 매일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베이징을 대표하는 예술구라고 할 수 있지만, 이를 위협하는 소규모의 창의적인 예술구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는 것이 사실이다.

2000년대 들어 베이징의 다양한 지역에서 예술구들이 등장했다. 지우창(酒廠), 추이거좡(崔各庄), 페이자춘(费家村), 이하오디(一號地) 예술구 등이 비슷한 시기에 생겨났다. 이어서 헤이차오(黑橋), 차오창디(草場地), 따산쯔환티에(大山子環鐵) 지역에 예술구가 형성되었고, 비교적 최근에는 스산링(十三陵), 창핑(昌平), 샤오탕싼(小唐三) 등지에도 작가들이 모이고 있다. 대부분의 예술구들은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형성되지만, 정부가 주도하여 정책적으로 개발한 예술구도 있는데 베이징의 남쪽 지역에 위치한 관인탕(觀音堂) 예술구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두 송좡 예술구나 798 예술구에 비교하면 비교적 소규모의 예술구들이지만 각자 자신만의 개성을 갖고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예술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권은영, 「명불허전 798 예술구」, 『월간 미술』, 2015년 1월호, 68-69쪽.
유강문, 「가난한 예술가의 터전 ‘베이징 798 예술구’의 타락」, 2009-07-24,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china/367714.html
김태만, 「따산즈 예술촌과 베이징의 도시문화 아이콘」, 『동북아문화연구』, 2008, 221-248쪽.
김성희, 「예술 창작촌의 형성 요인과 문화 예술 콘텐츠화에 관한 연구- 북경 따산즈 798 지역을 중심으로」, 『문화경제연구』, 2011, 53-76쪽.
吳文光, <流浪北京>, 다큐멘터리, 1990

작성자: 김정구(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