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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상실, 탈장소
  분류 : 공간철학
  영어 : placelessness, displacement
  한자 : 場所喪失, 脫場所

지리학자들이 공간개념으로서 장소를 중시하는 이유는 장소가 인간이 정서적으로 공간과 연결되는 측면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현상학, 실존주의처럼 인간의 의식과 주체를 탐문하는 철학을 수용하여 장소의 특성을 밝히려는 학풍은 인간주의 지리학이다. 인간주의 지리학의 선구자인 Yi-fu Tuan은 장소애(場所愛, topophilia) 개념을 통해 인간과 장소의 정서적 관계를 설명한다. Edward RelphTuan의 장소애가 장소의 중요성을 환기시킨 점에 동의하면서도 장소애만으로는 장소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오늘날 대중산업의 발달로 장소의 획일화(, 가짜 장소(가령, 디즈니랜드)의 확산)가 심화되면서 장소의 고유성이 사라지는 장소상실(placelessness)의 상황을 주목해야한다고 주장한다(김덕현 외 역, 2005:15; 황진태, 2011:55).

서울의 강북은 도시가 형성된 지 오래되면서 대체로 건물들이 낡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남아있다. 반면 서울의 강남은 1960년대만 하더라도 논밭이었던 공간을 근대적 도시계획에 의하여 순식간에 넓은 대로와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건설되면서 세련된 도시공간으로 탈바꿈되었다. 건설업체나 정부관료에게 강북은 강남에 비하여 낡고, 촌스럽고, 강남처럼 개발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강북에서 태어나 동네 골목길에서 추억을 쌓아오며 강북과 특별한 정서적 관계를 맺어온 강북 거주민들 중에는 강북을 강남과 같이 재개발하려는 기업이나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의 기저에는 장소상실에 대한 우려가 자리한다(황진태, 2020:9).

다음으로 언뜻 장소상실과 유사해보이지만 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탈장소를 살펴보자. 탈장소를 의미하는 영단어 displacement는 거주공간에서 쫓겨나는 퇴거를 의미하기도 한다. 퇴거가 국가, 자본에 의해 거주자들이 자신의 의견과 상관없이 살던 집에서 쫓겨나게 되는 수세적인 상황을 가리킨다면, 탈장소는 특정한 규범이 작용하는 장소로부터 떠나기 위한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실천을 의미한다.

특히 탈장소 개념은 여성주의 지리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들은 인간주의 지리학에 바탕을 둔 장소 연구가 남성 중심주의에 빠져있음을 지적한다(정현주 역, 2011:133). 남성에게는 집, 동네, 고향에서 장소애를 형성하고, 이곳을 잃게 되면 장소상실감이 생기지만, 동일한 집, 동네, 고향이더라도 여성에게는 가부장적 논리가 만연하고, 그들의 사회활동을 제약하고, 재생산(출산)의 역할만을 요구하는 감옥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탈장소 개념은 이러한 특정 이데올로기에 고정되어있는 장소로부터 벗어나려는 이동성을 강조한다. 탈장소의 예시로 이주(migration), 여행이 주목받고 있다(최미정, 2021:63).

 

참고문헌:

 

김덕현·김현주·심승희 역, 장소와 장소상실, 서울: 논형(Relph, Edward., 1976, Place and Placeless, London: Pion), 2005.

정현주 역, 페미니즘과 지리학: 지리학적 지식의 한계, 파주: 한길사(Rose, Gillian., 1993, Feminism and Geography: The Limits of Geographical Knowledge, UK: Polity Press), 2011.

최미정, 재미한인 여성수필의 공간과 젠더지리: ‘차이사이’, ‘탈장소, 한국문학과 예술, 40, 2021.

황진태, 장소성을 둘러싼 본질주의와 반본질주의적 이분법을 넘어서기: 하비와 매시의 논쟁을 중심으로, 지리교육논집, 55, 2011.

황진태, 내 고향 서울엔: 82년생 서울내기가 낭만하는 기억과 장소들, 파주: 돌베개, 2020.

 

작성자: 황진태(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