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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
  분류 : 도시 정의
  영어 : meritocracy
  한자 : 能力主義

능력주의는 한 사회의 부, 권력, 명예 등과 같은 사회적 재화를 개개인이 지닌 능력(과 노력)에 따라 분배하는 게 올바르다고 보는 정의의 이념이자 그에 따른 사회체제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자본주의 사회 일반에서, 특히 오늘날 신자유주의 시대에 광범위한 대중들이 수용하고 있는 통상적인 분배정의의 이념이다. 이 개념은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Michael Young)1953년에 발표한 공상사회학 소설 능력주의의 발흥(The Rise of the Meritocracy)”)(한국어 번역은 능력주의(2020))에서 처음 사용했다.

그러나 능력주의는 명확한 개념이 만들어지기 전에도 서구 근대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혈통이나 신분 등에 따른 특권이나 차별을 비판하고 능력 있는 개인들의 성공을 고무하는 일반적인 신념으로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중국에서는 정치적 차원에서 지위의 세습에 따르지 않고 지혜롭고 능력 있는 사람을 선발하여 행하는 통치가 바람직하다는 선현여능(選賢與能)의 이념에 따라 이미 6세기 말 수()나라 때부터 시험을 통해 능력 있는 관리를 선발하는 과거제도가 정착했는데, 이것이 능력주의의 역사적 기원이라고 볼 수도 있다(장은주 2021, 97쪽 이하).

이 과거제도는 그 배경의 유교적 능력주의 이념과 함께 이후 한반도에 전해져 조선에서는 사회 전체의 신분 질서를 규정하는 핵심 제도로 자리를 잡았는데, 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능력주의가 서양 사회들보다 훨씬 더 압도적이고 강력하게 작동하는 게 된 역사적 배경이다. 이 능력주의는 우리 사회의 근대화 과정에서도 아주 강하게 사회적 주체들의 실천적 상상력을 사로잡으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것은 유교적인 입신출세주의(입신양명)의 이념과 결합하여 전통적인 유교적 주체들을 아주 효율적이고 적극적인 근대적 주체로 변모시키는 데에 기여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자본주의적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데서 결정적인 문화적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나아가 특권이나 반칙등에 대한 시민들의 민감한 비판의식을 고무함으로써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서도 일정하게 기여했다.

능력주의는 언제나 기회의 균()이라는 원칙과 함께 작동한다. 그것은 개인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계급, 종교, 지역, 인종, 성 등과 같은 배경 요소가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능력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정치 이념과 결합하며 근대 민주주의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능력주의는 또한 자본주의 사회가 낳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정당화 논리로 작동한다. 경쟁의 기회만 평등하게 주어진다면 아주 큰 결과의 격차, 심지어 승자독식도 능력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는 것이다.

한편 이런 고전적-자유주의적 능력주의가 고취하는 형식적인 기회균등의 원칙만으로는 경쟁 관계의 출발선상에 있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갖고 들어가는 능력이나 조건 등의 차이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오래전부터 제기되었다. 무엇보다도 교육이나 상속, 가정환경 등과 같은 사회적 배경이 경쟁의 출발선상 이전에 사람들 사이의 능력과 조건의 차이를 처음부터 결정지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개혁주의적 좌파’(사회적/진보적 자유주의나 사회민주주의)는 그런 사회적 배경의 작용을 무화하거나 중화시킬 수 있는 어떤 사회적 평등화 체제로서의 복지국가를 요구한다. 사회적 경쟁체계 안에서 참여자들이 제대로 자신의 능력에 따라 평가받고 또 그것이 정의로운 분배 결과를 낳을 수 있기 위해서는 그런 능력 형성의 전제 조건이 되는 사회적 배경의 영향이 사람들에게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 기획도 자본주의에 내재하는 능력주의적 분배정의의 이상을 강력하게 전제한다.

그러나 능력주의는 많은 내적 문제들을 갖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많은 병리를 산출한다. 능력주의가 강조하는 능력에 따른 분배라는 원칙이 강한 대중적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그런 원칙만이 누군가가 자기 능력을 발휘하여 사회가 이루고자 하는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일정하게 기여한 정도를 제대로 평가하여 적절하게 보상할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능력주의적 분배는 제대로 평가된 개인의 능력과 기여에 따른 보상이라기보다는 사회가 특정한 방식으로 설정하고 제시한 기준에 따른 학력이나 이런저런 자격증 등에 대한 보상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령 정규직 자격증을 가진 어떤 교사는 설사 제대로 된 교육 활동을 수행하지 못하더라도 직업적 안정성과 높은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는 그러한 자격증이 없어서 저임금에 더해 지속적인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불안한 삶을 감수해야 한다. 여기서 보상은 그러한 자격증을 얻을 수 있었던 개인의 능력과 그것을 계발하기 위한 과거의 노력에 대한 보상일 수는 있어도, 그가 실제로 수행한 사회적 기여에 대한 보상은 아니다.

그 개인의 능력과 노력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오로지 성공한 개인 자신에게만 귀속시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개인의 뛰어난 자질은 사실은 부모에게서 또는 우연히 얻게 된 자연의 선물일 가능성이 크다. 손흥민의 능력은 축구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조선 시대에는 아무런 인정을 받지 못했을 텐데, 개인의 성공에는 그만큼 시대적 상황 같은 것도 큰 역할을 한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족의 경제적 지원 같은 사회적 배경의 작용이 없다면 좋은 자질을 타고난 개인도 쉽게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능력주의는 그것을 가장 매력적이게끔 만드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지점, 곧 세습체제의 극복이라는 지점에서 사실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 이것은 특히 능력주의적 경쟁체제의 출발선상의 불평등과 관련이 있다. 그러니까 그러한 경쟁체제에서 개인들이 가지고 시작하는 다양한 능력들은 기본적으로 그 개인들이 스스로 창출해 낸 것이 아니다. 능력주의 체제에서 개인들에 대한 평가의 기초가 된다고 가정되는 능력은 상당한 정도로 부모의 지능이나 외모의 유전에서부터 경제적 수준, 학력, 사회적 지위 등의 상속에 영향을 받는다. 능력주의는 능력에 따른 분배와 사회적 위계를 정당화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런 유전과 상속의 차원이 수행한 역할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능력주의적 질서 역시 현실적으로는 결국 모종의 세습체제이기를 완전히 벗어나기 힘들다(마코비츠 2020).

그런데도 능력주의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분명하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많은 부모는 자녀의 좋은 학력과 학벌을 위해 막대한 사교육비 지출에 인색하지 않다. 이것은 결국 자신들이 가진 경제적 자본학력 자본으로 바꾸어 부를 세습하는 변형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직접적인 세습이나 상속은 사회적으로 정당성을 충분히 인정받기 힘든 반면에, 그런 방식은 자녀가 누리게 될 사회적 지위가 능력, 곧 좋은 학력과 학벌에 따른 정당한 결과인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그리하여 현실의 불평등은 혈연적 세습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학력이나 학벌또는 자격고사로 상징되는 능력에 따른 정당하고 공정한 경쟁의 결과이기 때문에 정의롭다고 포장될 수 있다. 이런 배경 위에서 우리 사회에서는 사교육 광풍, 학교의 입시학원화, 대학서열화 등과 같은 심각한 교육 병리가 만연하게 되었다. 그러나 능력주의는 기본적으로 능력에 따른 분배의 결과라며 정당화하는 한 개인의 사회적 성공 배후에 있는 세습이라는 진상을 은폐한다. 그래서 모든 게 개인의 능력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포장하는 능력주의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신화’, 곧 허구다(맥나미/밀러, 2015).

능력주의의 가장 큰 위험은 그것이 심각한 수준의 승자독식조차 정당화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것은 능력과 노력에 따른 분배 원칙이 낳은 결과라면서 경쟁에서 이긴 일부 엘리트 계층에게 특권과 엄청난 보상을 안겨주고 패자에게는 최소한의 인간적 삶의 기회도 제공해 주기를 거부하는 심각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체제도 정의롭다고 포장한다. 여기서는 아주 심각한 불평등도 공정한 경쟁의 정당한 결과일 뿐이다.

이런 능력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파괴할지는 명백하다. 일정한 평등주의를 전제하는 듯이 보이는 능력주의는 실제로는 민주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평등주의 문화를 근본에서 뒤흔들 수밖에 없다. 승자독식을 원리로 하는 능력주의적 경쟁에서 승자들은 사실은 세습 같은 엄청난 행운의 결과일 수도 있는 자신들의 성공이 오로지 자신들의 능력과 노력 탓이라고 여기고 뽐내면서 자신들이 특권과 높은 수준의 보상을 마땅하게 누릴 도덕적 자격이 있다고 여긴다. 반면 패자들은 실패가 결국 자신들의 부족함과 못남 때문에 일어난 것이므로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도록 강요받는다.

그런 식으로 정당화된 불평등은 아주 쉽게 약자/패자들에 대한 강자/승자들의 부당하고 자의적인 권력 행사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하여 사회적 귀족들의 약자들에 대한 갑질이 횡행하고, 비정규직에 대한 심각한 차별이 만연하게 된다. 반면 사회적 약자들이 요구하는 재분배나 사회적 연대에 대한 요구는 사회에 대한 정당한 기여도 없이 몫만 챙기려 하는 모종의 무임승차에 대한 주장일 뿐이라고 무시된다. 마이클 샌델(2020)은 적절하게도 능력주의의 이런 귀결을 능력(자들)의 폭정/전횡(the tyranny of the merit)’이라 불렀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능력자들의 전횡이 정치적 차원에서도 횡행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능력주의는 이제 능력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매우 심각한 사회경제적인 불평등뿐만 아니라 심지어 민주주의 원칙과 조화하기 힘든 정치적 불평등마저 낳고 또 정당화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능력주의는,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신계급사회또는 신신분사회를 만들어내는 것을 넘어, 이제 정치적으로도 신귀족정이라고 할 수 있을 과두정을 발전시킬 위험을 드러내고 있다.

한 마디로 이제 정치는 좋은 학력과 학벌을 가졌거나 이런저런 전문성을 가진 사람만의 몫이 되었는바, 민주주의가 정치적 능력주의로 변질 또는 타락하고 있다. 이 정치적 능력주의체제는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과 권력이 특정 분야의 전문성이나 학벌 또는 자격의 소유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소수 엘리트 계층에 의해 독점되는 과두정의 특별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대니얼 벨(2017) 같은 친중국 학자는 서구 민주주의와 대비하여 중국식 일당 독재 체제에서 복잡한 선발 과정을 거친 소수 엘리트의 지배를 미화하면서 통상적인 경제적 분배정의 차원의 능력주의와 구분하여 이 개념을 쓰지만, 오늘날 서구식 민주주의도 이런 정치적 능력주의의 틀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여기서는 단순히 선출직 정치인들과 그들이 임명하고 통제하는 장관직 같은 고급 관료만이 문제는 아니다. 국가 기관 전반이 문제다. 중앙은행이나 경제정책 분야 등에서 정책적 전문성과 독립성의 기치를 내세우며 주권자 시민들이나 선출직 대표들의 요구에 저항하곤 하는 엘리트 관료 권력은 물론, 별다른 민주적 견제를 받지 않는 검찰 및 사법 권력도 이 정치적 능력주의의 틀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 밖에 주류 언론, 엘리트 대학, 각종 씽크탱크와 연구소 등은 이 체제를 유지하는 핵심적인 이데올로기적 기구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대니얼 벨차이나 모델: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왜 유능한가, 김기협 옮김, 서해문집, 2017.

대니얼 마코비츠엘리트 세습, 서정아 옮김, 세종, 2020.

마이클 샌델공정하다는 착각: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함규진 옮김, 와이즈베리, 2020.

마이클 영능력주의. 2034, 공정하고 정의로운 엘리트 계급의 세습이야기, 유강은 옮김, 이매진, 2020.

스티븐 맥나미로버트 밀러 주니어능력주의는 허구다, 김현정 옮김, 사이, 2015.

장은주공정의 배신. 능력주의에 갇힌 한국의 공정, 피어나, 2021.

 

 

작성자: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