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이미지
도시인문학 사전
모두보기모두닫기
박스하단
사전 > 도시인문학 사전
 
상대적 공간(라이프니츠의)
  분류 : 공간철학
  영어 : relativer Raum(relative space)
  한자 : 相對的 空間


공간이 인류 아니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무엇’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물리학과 철학에서 ‘공간’과 ‘시간’ 개념은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논의되고 있는 연구 주제이다. 공간 개념에 대한 이해는 분과학문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 있는데, 철학에서 공간 개념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그 하나는 절대적 공간 개념이며, 다른 하나는 관계적 공간개념이다. 절대적 공간을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뉴턴이다. 라이프니츠는 뉴턴의 절대적 공간을 비판한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서, 그의 공간론을 ‘상대적 공간론’이라고 한다.

라이프니츠는 1715년부터 1716년까지 뉴턴의 옹호자인 영국의 클라크와 다섯 차례의 서신을 주고받았는데, 그 편지들에 담겨있는 논쟁은 오늘날 클라크와 라이프니츠의 논쟁으로 잘 알려져 있다. 편지들에게서 다루어진 쟁점은 ‘공간’에 대한 것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신의 존재, 신의 간섭문제, 중력에 대한 문제, 진공과 원자에 대한 문제 등과 같이 형이상학적인 주제가 논의되었다. 공간개념은 네 번째와 다섯 번째의 편지에서 주로 다루어졌다.(라이프니츠, 2005) 이 편지들을 통해서 우리들은 뉴턴식의 절대적 공간과 라이프니츠가 주장한 관계적 공간 개념은 공간의 본질 및 공간과 사물의 관계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뉴턴의 절대적 공간은 우리의 관찰이나 사물의 유무에 상관없이 공간은 그 ‘무엇’으로 논의될 수 있는 실체이기 때문에 사물이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공간은 항상 존재하고 있다. 또한 공간은 사물(물리적 대상)들을 수용할 수 있는 도구(container, 容器)로 기능한다. 뿐만 아니라 실체이기 때문에, 우리의 인식에 상관없이 존재하고 있다. 어찌 보면, 공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물체라고 말할 수 있다.(로빈 르 푸아드뱅, 2010:69) 즉, 물리적 대상들은 공간 내에서 자신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데, 물체가 위치하고 있는 위치는 좌표계를 사용하여 표시할 수 있다. 두 개 이상의 물체들의 위치 관계는 좌표점들을 비교하면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마치 연극의 무대에 비유할 수 있다. 그렇기에 등장인물이나 무대 배경의 변화가 있을 뿐, 무대가 사라지지는 않는 것과 같이 공간은 시간이나 점유하고 있는 대상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라이프니츠는 공간이 함께 존재하는 것으로 고찰되는 사물의 존재 질서(order of the existence of things), (라이프니츠, 134)라고 말한다. 즉, 공간은 실재하고 있는 실체가 아니라 사물의 위치 질서, 혹은 관계 질서가 된다. 다르게 말한다면, 공간은 잘 근거 지워진 현상(phenomena bene fundata) 혹은 추상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코플스톤, 1996:492) 그러므로, 만일 이 세계에 물체가 없다면 공간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절대적 공간에서 공간과 사물의 관계는 서로 독립적인 반면, 라이프니츠의 상대적 공간에서 공간은 사물의 존재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연극무대의 비유와 같이) 변화를 겪어도 계속 존속하고 있는 어떤 구체적인 무엇(공간)이 있고 우리는 그 무엇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물체 사이에 항상 동일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을 인식하고, 그 동일한 관계를 ‘공간’으로서 구체화 시킨다고 한다. 공간은 동시에 존재하는 사물들의 질서(라이프니츠, 2005:74)라고 말할 수 있다.

라이프니츠는 공간의 절대성을 인정하면 충족이유율이 적용되지 않는 사건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공간은 절대적 존재로 여길 수 없다고 논증하고 있다. 충족이유율은 ‘모든 존재는 존재할 이유가 있다’라는 진술로 요약할 수 있다. 절대 공간론에서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균일하다고 말한다. 공간 내의 한 지점은 다른 지점과 다르지 않다. 공간 내의 한 지점이 다른 지점과 다를 수 있는 것은 사물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공간에 사물이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이 한 지점이 다른 지점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간을 물체의 질서가 아닌 그 자체의 어떤 것이라고 한다면, 한 지점의 상태와 다른 지점의 상태가 똑같을 것이고,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물이 그 위치에 있는 이유를 논의할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충족이유율의 원칙에 어긋나게 된다. 그러므로 공간은 절대적 존재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이프니츠, 2005:75) 라이프니츠는 이렇게 세상이 배열된 것은 신의 섭리로 설명하는데, 신은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 없이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절대적 공간을 인정하면 왜 세계의 사물이 이렇게 배열되어 있는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라이프니츠의 주장이다.

라이프니츠는 사람이 공간관념을 형성하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은 한꺼번에 많은 사물들이 존재하는 것을 보고 그들 가운데서 다소간에 단순한 사물에서 다른 사물과의 관계에서 어떤 상존질서(order of co-existence)를 관찰한다. 이 질서는 그들의 상황이나 떨어진 거리이다. 만약 상존하는 사물의 하나가 타자와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일이 일어난다. 다른 사물이 새로이 들어온다. 그것은 전자가 취했던 동일한 관계를 후자에서 취한다. 그러면 후자는 전자의 자리에 들어온다고 말할 수 있다. … 상존하는 사물들 가운데 … 고정된 존재자에 그러한 관계를 갖는 것은, 지금 이전에 타자들이 그들에 대하여 갖는 동일한 장소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모든 장소를 포괄하는 것을 공간이라고 부른다. … 고정된 물체와의 관계 A에서 A와 B의 장소가 같다는 것은 B가 동일한 고정된 물체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가질 수 있는 관계가 똑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 관계만은 일치한다. … 정신은 이 일치와 만족하지 않고 동일성, 참으로 동일한 것이어야 하는 어떤 것을 찾고 그것을 주어의 외적 존재로서 지각한다. 우리는 이것을 장소 그리고 공간이라고 부른다.”(라이프니츠, 141~144)

임의의 두 물체 A와 B는 항상 일정한 거리만큼 떨어져서 존재한다. 사람들은 늘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있는 A와 B를 본다. 어느 날, B가 있던 자리에 C가 존재하고, 또 어느 날에는 C 대신에 D, E, F … 등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라이프니츠의 주장에 따르면, 실재하는 것은 A와 다른 사물들과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는 질서(여기서는 일정한 간격)이다. 이 질서를 공간이라고 말한다.

그의 공간론에 따르면, 공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공간을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이 먼저 존재하고 그 사물들은 바뀌더라도 두 사물 사이에는 항상 일정한 무엇만큼 간격을 두고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라이프니츠가 말하는 두 사물들 사이의 관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상존질서이다. 우리는 그 관계를 공간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공간이 구체적인 무엇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인식될 수 있는 것은 사물이 존재하고 있고, 사물들 사이의 관계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에게 공간은 실재가 아닌 추상적인 관념에 지나지 않지만, 라이프니츠는 사물들의 관계는 실재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라이프니츠는 실재적인 시간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시간적으로 선후에 존재하며, 공간적으로 공존한다는 사실은 실재라고 말한다.(코플스톤, 1996:492) 여기서 절대적 공간론과의 결정적인 차이점, 근본적인 관점의 차이를 드러낸다. 뉴턴을 비롯한 절대론자들은 공간을 실재하고 있는 실체이므로 물체와 동일하게 취급할 수 있는 개념이다. 하지만 라이프니츠는 실재하는 것은 사물들 간의 관계이지 공간이 아니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라이프니츠의 공간론을 상대적 공간론이라고 말하지만, 관계적 공간론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할 것이다.(임진아, 2014:166)

라이프니츠는 궁극적인 실체를 인정하고 있다. 그는 궁극적인 실체를 ‘모나드’라고 말한다. 모나드는 가장 단순한 실체이며, 연장도 형태도 분할도 되지 않는 사물의 근본적인 요소이다. 또한 모나드는 외부와의 상호작용을 할 수 없는, ‘창이 없는 실체’라고 한다.(윤선구, 2010. 250) 공간 개념을 형성하는 사물은 모나드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럼 이 모나드는 물리적인 실체로 이해할 수 있는 근본 요소는 아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모나드는 물질보다는 정신에 더 가까운 실체이다. 라이프니츠도 단순한 요소들이 서로 연합하여 복합적인 실체를 구성한다고 생각하였고,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만물은 복합적인 실체가 된다.

사물들 간의 상존질서(상황, 위치)로 인해 공간개념을 구성한다고 한다면, 라이프니츠의 공간론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에 봉착한다. 만일 하나의 사물만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공간개념을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는 모나들들로 구성된 사물들은 어떻게 항존 질서라는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라이프니츠의 공간 개념이 실제적인 사물의 관계에 그 토대를 두고 있고, 공간을 이상적인 무엇이며, 우리의 마음에 의해 부과된 질서라는 전제를 가정하고 있지만, 사물들은 공간적 성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Adams, 1994:255)은 라이프니츠의 상대적 공간론이 가진 치명적 약점 중 하나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사물들의 공존이라는 질서관계는 결국 모나드들의 공존이라는 질서관계라고 말할 수 있으며, 모나드의 위치는 사물의 위치에 의해 정해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단자들의 위치는 어떻게 정해지는가하는 의문점이 생긴다. 공존이라는 현상의 질서는 단자들의 지각에 의해서,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의 지각에 의해서만 가능한 개념이라면, 공간은 완전히 주관적인 것이다. 그러나 라이프니츠의 주장에 의하면, 공간은 주관적인 것이 될 수 없다. 창이 없는 각각의 단자가 각자의 관점이 있다는 말은 객관적인 관계(위치)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는 이 문제점의 해결법을 뚜렷하게 제시하지 않고 있다.(코플스톤, 1996:497)

라이프니츠의 공간개념에 대한 또 다른 비판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사물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면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대론적 공간론을 인정한다고 해도, 점유되지 않는 공간의 부피는 인정해야만 한다. 다만 점유되지 않는 빈 장소들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푸아드뱅, 2010:71). 이렇게 생각한다면, 공간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가진 개념으로 존재할 필요성이 없게 된다. 즉 우리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무엇으로 생각해야할 이유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공간에 대한 논쟁은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흐지부지하게 마무리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뉴턴의 절대적 공간개념은 물리학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반면, 라이프니츠의 상대적 공간개념은 철학적인 의의만을 지닌 것으로 치부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공간의 절대성이 무너진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관계성에 초점을 맞추어 새로운 공간개념을 제시한 그의 공간개념은 공간론의 역사에 있어 선구자적 논의였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참고문헌>
Leibniz, Gottfried Wilhelm, “Briefwechsel mit Samuel Clarke” in Jörg Dünne und Stelphan Günzel(Hg.), Raumtheorie, Frankfurt: Suhrkamp, 2006(라이프니츠, 배선복 옮김, 『라이프니츠와 클라크의 편지』, 철학과 현실사, 2005).
배선복, 『라이프니츠의 삶과 철학세계』, 철학과 현실사, 2009.
임진아, 「화이트헤드의 관계적 공간개념에 대한 비판적 분석」, 『화이트헤드 연구』, 제28집, 2014.
라이프니츠, 윤선구 역, 『형이상학 논고』, 아카넷, 2010.
Adams, R.M., Leibniz: Derterminist, Theist, Idealist,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4.
로빈 드 푸아드뱅, 안재권 역, 『4차원 여행:공간과 시간의 수수께끼들』, 해나무, 2010.
코플스톤, 김성호 역, 『합리론』, 서광사, 1996.

작성자: 임진아(경북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