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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 공간(르페브르의)
  분류 : 공간사회학
  영어 : l’espace différentiel(differential space)
  한자 : 差異 空間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의 1975년 저술인 『공간의 생산(La production de l’espace)』에서 ‘차이 공간(l’espace différentiel)’은 공간적 실천이 도달해야 할 대안적 사회 공간으로 설정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차이 공간은 현대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해소하는 계기로서 공간과 사회에 내재한 생산적 가능성의 한 표현이다. 논의 영역은 크게, ‘생명체로부터 공간 발생’과 ‘사회적 공간의 역사’라는 두 차원으로 나뉜다. 전자는 차이 공간을 체험적인 것, 일상적인 것으로서 드러내며, 후자는 차이 공간의 사회적 실현을 변증법적 해방의 논리와 결부시킨다. 르페브르는 차이 공간의 이러한 두 차원으로부터 ‘공간의 정치’를 추동하는 구체적인 가능성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차이 공간의 발생과 전개

르페브르는 공간의 발생 과정을 생명체의 몸과 연관하여 제시함으로써 텅 빈 공간이 먼저 주어져 있다는 일상적 통념을 뒤흔들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공간을 말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어떤 중심축을 도입하고 그 진행방향에 따라 방위가 구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르페브르는 이 중심축과 방위를 결정하는 기준이 바로 생명체의 몸이라고 본다. 르페브르는 몸을 “에너지를 포획하는 장치”로 이해하며, 세포의 단계에서부터 내부적인 공간을 형성한다고 주장한다(르페브르, 2011:272). 즉 생명체의 몸은 그 자체로 이미 공간이며, 이로 인해 전체 공간은 총합으로 측정되거나 객관화될 수 없는 ‘그 자체로서 차이’를 포괄하게 된다.
생명체에서 기원하는 이 차이 공간은 사고되는 공간이나 개념화된 공간과 달리 오직 체험 속에서 나타나는 공간이다. 르페브르에 따르면 몸은 장소를 옮겨 다니면서 손짓과 몸짓을 통해 체험 공간을 확장하며 지속적으로 차이를 생성해나간다. 즉 몸 공간은 일상적 삶의 공간의 본질을 이루며 나아가 다른 모든 공간적 차이들의 근원이 된다.

물론 일상 공간이 오직 차이 공간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차이 공간은 그와 다른 공간성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르페브르는 이를 공간재현(Les représentations de l’espace), 재현공간(Les espaces de représentation)의 대립적 관계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공간재현’은 언어화된 구조의 질서에 따르는 지배적인 공간 규정의 논리이며 ‘재현공간’은 여기에 대립하는 체험된 공간성, 즉 차이 공간의 실현논리이다. 과학적 공간 인식 내지 공간에 대한 엄격한 체계화 시도가 ‘공간재현’의 사례라면, 예술 작품을 통한 공간적 일탈의 시도들은 ‘재현공간’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립적인 두 공간성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는다. 가령 신체 기관 일부에 대한 직접적인 지각은 해부학이나 생물학적 지식에 의존하는 인지 방식과 완연히 다르지만, 두 가지 방식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르페브르는 ‘공간재현’과 ‘재현공간’의 대립 관계에 덧붙여 일상의 관행적 실천 양식으로서 ‘공간적 실천(La pratique spatiale)’의 개념을 도입한다. 그에 따르면 ‘공간적 실천’은 재현공간과 공간재현의 이항대립의 구도를 다층화한다. 공간적 실천은 ‘공간재현’과 ‘재현공간’의 대립을 종합하고 반영하면서, 또 때로는 그 둘과 불화하기도 하면서, 두 항과 다른 층위에서 공간의 총체적 생산에 개입한다(르페브르, 2011:80, 86-92, 96-7).

이로써 차이 공간을 비롯해 일상 세계에 나타나는 각각의 공간성들은 단일한 공간적 체계의 완성으로 귀결되지 않고, 복수(pluriel)의 가능성에 열리게 된다. 마치 개별적인 몸과 자아의 관계가 무수히 많은 것처럼, 르페브르는 차이 공간의 실현 방식이 원리적으로 다양한 가능성에 열려 있다고 본다.

다만 르페브르는 이와 같은 공간의 삼중적 계기가 추상적인 이론 모델이자 원리적인 접근일 뿐 그 자체로 현실적 공간을 온전히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대신 르페브르는 구체적 공간의 이해를 위해서 공간에 대한 역사적 접근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차이 공간의 역사적 전망

르페브르는 공간의 역사에서 차이 공간의 실현이 지속적으로 억압되어 왔다고 본다. 즉 차이 공간은 모든 공간성의 근원임에도 불구하고, 공간의 역사에서 당대의 지배적인 공간성에 그 자리를 내어주어 왔다. 특히 르페브르는 자본주의 지구화의 시대에 차이에 대한 억압이 극에 달한다고 본다. 그러나 르페브르는 변증법적 해방의 원리를 공간의 역사에 끌어들이면서 저항적 실천을 통한 공간적 혁명의 가능성을 전망한다. 르페브르가 제시하고 있는 공간의 역사는 다음과 같은 형태로 도식화할 수 있다(신승원, 2014:78-9).






절대 공간(L’espace absolu)
   → 역사적 공간(L’espace historique)
      → 추상 공간(L’espace abstrait)
         → 모순 공간(L’espace contradictoire)
            →공간의 모순(들)(Les contradictions de l’espace)
               → 차이 공간(L’espace différentiel)

먼저 ‘절대 공간’은 원초적인 자연공간, 신성화된 공간이다. 원시 공동체가 이 공간으로부터 출현하며 최종적으로 전제군주가 이 공간을 장악하지만, 본격적인 문명의 역사가 전개되면서 절대 공간은 서서히 물러나게 된다.

다음으로 ‘역사적 공간’은 절대 공간으로부터 상대화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공간이다. 서구의 중세 도시가 여기에 해당된다. 르페브르는 르네상스 시기에 중세의 종교적 질서가 세속적 질서로 대체되며 도시가 핵심적인 공간 형식으로 자리매김한다고 본다.

‘추상 공간’은 중세도시로부터 발전되어 나간 자본주의 공간이며, 소외의 공간을 의미한다. 이 공간에서는 소유의 논리가 지배하며 이전의 신성화된 공간이나 자연 공간, 역사적 공간은 일종의 상품으로 전락한다. 그런데 추상공간은 한편으로 소유의 논리에 따라 대다수 사회 구성원을 파편화하고 이들을 토지와 분리시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을 가부장적 가족 제도 안으로 포섭해 동질화시키려고 한다.

르페브르는 추상 공간의 이러한 모순이 지배적인 공간성을 뚫고 표면화될 것으로 보며, 그 과정에서 이행기의 공간으로서 ‘모순 공간’이 나타난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모순 공간은 추상공간의 분열적 과정이 극단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차이 공간’은 모순 공간에서 사회의 모순이 ‘공간의 모순’으로서 폭로되고, 공간적 현존이 이에 적극적으로 저항함으로써 도래한다. 공간의 모순이 드러난다는 것은 모순을 공간 안의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공간 그 자체가 모순임을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모순의 핵심은 공간의 원천인 몸을 배제하는 데 있으며 르페브르는 기독교 전통과 자본주의적 노동 분업이 몸을 억압하고 몸의 지위를 격하시키는 데 앞장서 왔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몸에 대한 억압이 극에 달했을 때 그에 대한 공간의 복수, 그러니까 차이 공간의 복원과 저항이 시작된다. 이 저항의 원천은 몸의 감각적인 자질이다. 르페브르는 감각에 대한 재전유가 나타나는 이 단계에 이르러 니체와 맑스의 철학이 서로 만나게 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영웅적인 길”과 청년 맑스의 “인간의 혁명적인 길”은 그 동안 억압되어 왔던 몸과 감각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르페브르, 2011:564). 르페브르는 두 철학이 공히 추상성의 지배를 벗어난 해방의 공간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차이 공간의 이념을 담고 있다고 본다. 즉 해방의 공간으로서 차이 공간은 탈소외의 공간, 즉 맑스와 니체의 전인적 인간상이 구현되는 공간이며, 이것은 더 이상 ‘사물’적인 것으로서가 아니라 ‘작품(œuvre)’으로서 공간이 생산되는 것을 의미한다.


차이 공간과 공간의 정치

몸의 저항적 중심성과 관련해 르페브르의 공간론에 가해지는 한 가지 비판은 그것이 몸의 리비도적 가능성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장세룡, 2006:324). 그러나 르페브르에게 몸은 개별적인 ‘몸공간(The Space of Body)’인 동시에 ‘공간 속의 몸(Body-in-Space)’으로서 이해되고 있다(Simonson, 2005:2). 르페브르는 후자의 차원에서, 그러니까 사회적 공간의 관점에서 몸을 공간의 유일한 중심성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르페브르에 따르면 공간의 중심성은 변증법적으로 이동한다(르페브르, 2011:563). 즉 르페브르의 이러한 입장은 몸의 중심성을 다차원적인 다른 중심성들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무엇보다 간과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르페브르 논의의 본령이 사회적 공간에 있다는 점이다. 공간의 문제를 제기한 르페브르의 진정한 의도는 공간이, 몸을 포함하는 일상적 삶의 차원과 사회경제적인 차원 모두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것,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공간이 정치적인 것임을 말하려는 데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차이 공간은 공간적 억압의 모든 당사자들이 공간적 이슈에 개입하는, ‘공간의 정치’에 대한 요구를 수반한다. 즉 르페브르는 사회 운동의 노동중심성을 넘어, 공간적 억압의 모든 당사자가 자본주의적 추상 공간에 저항하는 공동의 전선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이것은 도시와 일상, 문화의 차원을 노동 현장의 확장으로, 진정한 투쟁의 장으로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도시에 대한 권리’ 주장은 그 대표적인 구호이다. 특히 르페브르는 도시의 주변부나 빈민가로 밀려난 도시민들에 주목하며, 이들이 도시의 중심부를 재전유하려는 운동에 앞장선다고 본다(르페브르, 1996:173-4, 179).

다만 르페브르가 도시의 가능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그가 저항의 지점을 특정 공간으로 제한하려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르페브르는 사회적 모순과 갈등이 그 공간적 표현을 찾지 못한 모든 곳에서, 심지어 ‘여가’ 공간이나 ‘축제’ 공간으로부터도 반공간 혹은 대항 공간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대목은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는 푸코의 명제와 그의 헤테로토피아론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르페브르의 논의는 공간의 문제에 가능성의 변증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는 점에서 변증법적 논리를 부인하는 푸코의 입장과 구별된다. 즉 르페브르는 은폐된 공간의 모순이 혁명적 실천에 의해 폭로되고 이로부터 잠재된 차이 공간의 가능성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공간의 정치’는 이 혁명적 실천을 공간적 현존의 공동 기획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며, 이때 차이 공간은 모든 공간에 내재하는 잠재적인 가능성이면서 동시에, 궁극적으로 실현되어야 하는 실천의 지향점이 된다.


<참고문헌>
신승원. 「르페브르의 변증법적 공간 이론과 공간정치」.『도시인문학연구』. 6. 1.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2014.
앙리 르페브르. 『공간의 생산』. 양영란 옮김. 에코리브르. 2011(La production de l’espace. Anthropos. 2000)
장세룡. 「앙리 르페브르와 공간의 생산 -역사이론적 ‘전유’의 모색」. 『역사와 경계』. 부산경남사학회. 2006.
          . “Right to the City”. in Wringting on Cites. ed. Elenore Kofman and Elizabeth Lebas. 1996.

작성자: 신승원(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