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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재의 공간(하이데거의)
  분류 : 공간철학
  영어 : Space of Dasein
  한자 :


하이데거는 그의 주저 『존재와 시간』에서 “존재론적으로 잘 이해된 ‘주체’, 즉 현존재는 공간적이다”라고 말한다. (Heidegger, 1977:111) 여기서 ‘현존재’(Dasein, 거기 있음)는 객체와 대립하는 주체 또는 세계 안에 실재하는 사물이 아니라 주체와 객체의 이분적 대립 이전에 이미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의 존재방식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그리고 현존재가 공간적이라는 말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공간 없는 주체로서 존재할 수 없으며, 공간이 인간과 독립하여 단순히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은 그의 신체를 통해 규정된 공간을 채우고 있다거나 인간이 상자 속의 어떤 대상처럼 공간 안에 처해있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현존재의 공간성은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 구조적 계기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현존재의 공간성은 근대철학에서 논의되어 온 주체의 순수 직관형식(칸트)도 아니며, 연장된 것을 규정하는 수학적 형식(데카르트)도 아니다.

현존재의 공간성은 인간 존재의 근본구조로서 규정된 세계-내-존재(In-der-Welt-sein)에서 “내-존재”의 계기를 통해 해명된다. 내-존재는 현존재의 정신적 또는 신체적 특성으로 해명할 수 없는 “현존재의 존재에 대한 형식적이며 실존론적인 표현”으로서 현존재가 이미 세계에로 초월해 있음, 즉 이미-곁에 존재-함(schon-sein-bei)을 의미한다(54). 이때 세계는 객체 또는 대상의 합이 아니다. 세계는 현존재의 밖에 있는 것 또는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와 외부를 포괄하는 전체적 현상으로서 현존재가 이미 던져져 있으면서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기획투사(Entwurf)하는 의미의 지평이다. 현존재가 세계 내에 있다는 것은 “세계 공간” 안에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아니며 도구나 사물과 같이 있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것들은 현존재가 세계에서 만나는 존재자들이다. 이 존재자들과 “배려하며 친숙하게 왕래”하며 현존재는 세계 내에 존재한다(104). 이 세계에는 지시적 연관에서 드러나는 손안의 존재자(도구)의 주위세계, 이것과의 경계에서 드러나는 눈앞의 존재자(사물)의 자연세계, 도구와 함께 열어 밝혀지는 타인과의 공동세계, 그리고 이 세계들과 함께 개시되는 현존재의 자기세계가 속해 있다. 따라서 현존재의 공간성은 세계에서 만나는 타인, 도구, 사물의 공간성과 함께 세계-내-존재의 전체적 구조에서 밝혀져야 한다. 내-존재와 관련하여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공간성을 “거리-탈취”(Ent-fernen)와 “방향취함”(Ausrichtung)의 성격을 통해 제시한다.

먼저 현존재는 존재자의 거리를 탈취하여 가깝게 함(Näherung)이라는 이행적 의미의 공간성을 가진다. 일상에서 필요한 것을 조달하기 위해 현존재는 둘러보며 배려하는 왕래를 통해 손안의 존재자의 공간성, 즉 “멀리 있음”(Entferntheit)을 가깝게 있는 것으로 변화시킨다. 이렇게 가깝게 함에서 “간격을 둠”(Abstand nehmen)이라는 공간성을 가진 눈앞의 존재자도 발견된다. 이 모든 가깝게 함에서 눈앞의 존재자를 도구로 변화시키는 현존재의 일상적 접근과 이에 기초하여 눈앞의 존재자를 순수하게 인식하려는 과학적 접근이 가능하다.(105)

일상적인 거리-탈취에서 거리는 물리적인 거리계산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게 둘러보는 배려로부터 해석된다. 이 배려는 주관적인 것이 아니다. 거리-탈취는 주관적-객관적 분리 이전에 존재자와 만나는 왕래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모든 객관적인 측정보다 더 현실적이며, 오히려 계산하는 학문을 가능하게 하는 기초이다. 그러나 자연적 태도에서는 거리-탈취에서 드러나는 거리보다 객관적으로 측량된 거리가 더 우선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현존재의 공간성과 근본적인 세계현상을 간과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가깝고 먼 것은 결코 짧고 긴 계량적인 거리를 가진 것이 아니라 우선 손안의 존재자의 권역에서 배려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안경은 그것을 착용하는 자에게 가장 가까운 것이지만 그것을 통해 보고 있는 벽에 걸린 그림보다 훨씬 더 멀다. 현존재의 공간성에서 가까움과 멂을 결정하는 것은 둘러보는 배려이며 거리측정이 아니다. 이러한 거리-탈취의 성격을 가진 현존재의 공간성에서 세계 내에 있는 손안의 존재자는 “우선”과 “손안의 있음”(Zuhandenheit)에서 알려진다. “우선”은 먼저라는 시간적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공간적인 “가까움”도 나타낸다. 이 가까움은 거리-탈취에 의해 “어떤 것이 손에 닿아(zur Hand) 있음”을 나타낸다.(102)

거리-탈취와 함께 현존재의 공간성은 방향취함의 성격을 가진다. “둘러보는 배려함은 방향을 취한 거리-탈취이다.”(108) 거리를 탈취하며 존재자를 가깝게 함은 이미 현존재가 그 존재자를 어떤 방향으로 가깝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방향은 이미 그 존재자가 귀속해 있으며 거기로 움직이고 그곳을 향해 나아가려는 “방면”(Gegend)을 가진다. 이 방면은 현존재가 그때마다 자신이 방향을 정한 세계 내에 이미 있음을 나타낸다. 현존재가 방향을 정할 수 있기 위해 세계는 그때마다 이미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현존재의 방향취함에서 비로소 확정된 왼쪽과 오른쪽의 방향이 생겨난다.

이처럼 세계-내-존재로서 현존재는 거리-탈취와 방향취함 속에서 존재자를 만난다. 이것을 하이데거는 “공간-부여”(Raum-geben), “공간마련”(Einräumen)이라고 부른다.(111) 일상적인 왕래에서 현존재는 손안의 존재자를 위한 공간을 부여하고 마련하며 그때마다 공간이동과 공간설비를 가능하게 한다. 이로부터 손안의 존재자가 “향함”(Richtung)과 “멀리 있음”의 공간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진다.(103) 이러한 성격은 손안의 존재자가 놓인 정해진 “자리”(Platz)를 규정한다. 이 자리는 항상 이미 도구로서 손안의 존재자가 귀속되어 사용되는 방면과 지시하는 방향을 가지고 있다.

세계-내-존재로서 현존재의 존재방식인 둘러보는 배려함에서 거리-탈취와 방향취함의 성격을 가진 현존재의 공간성이 드러남과 함께 손안의 존재자의 공간성이 드러났다면 이러한 배려를 포기할 때 순수한 인식에서 파악되는 공간적 연관들의 가능성들이 발견된다. 둘러보는 배려함이 순수 인식으로 변양되는 것은 주위세계에 속한 손안의 존재자의 공간성이 중립화될 때 일어난다. 주위세계적 “방면”은 순수한 “차원”(Dimension)으로, 도구로서 손안의 존재자가 차지하는 “자리의 다양성”은 사물로서 임의적인 눈앞의 존재자를 위한 “위치(Stelle)의 다양성”으로, “주위세계”는 “자연세계”로 변양된다. 여기에서 비로소 추상적이며 이론적인 연장개념이 등장한다. 둘러봄(Umsicht)에서 드러나는 손안의 존재자의 공간성은 “위하여”(Um-zu)라는 지시 연관성에서 규정된 “자리”가 주어지는 반면, 거리측정을 규정하는 순수한 인식적 바라봄(Hinsicht)에서 드러나는 눈앞의 존재자의 공간성은 동질적인 3차원에서 임의의 위치를 가진다.

다양한 공간의 변양을 하이데거는 강을 건너는 도구로서 다리(橋)를 예로 들어 설명해주고 있다. 손안의 존재자로서 다리는 일상적 삶의 세계에서 고유한 “자리”(place)를 가진 공간이다. 그러나 다리가 차지하는 자리로서의 공간은 다른 공간개념으로 추상화될 수 있다. 우선 자리는 질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 평면 위의 순수한 위치(position)로서 파악될 수 있다. 이 위치파악으로부터 측정할 수 있는 “거리”가 성립한다. 위치들 사이의 거리는 질적 내용이 배제된 비어있는 “사이공간”이라 불린다. 사이공간에서는 현존재의 배려와 관련된 가깝고 멂이 계산될 수 있는 순수한 “간격”으로 평준화된다. 사이공간의 관점에서 다리는 자리를 가진 공간이 아니라 임의의 위치에 놓인 것이다. 그것은 항상 어떤 다른 것으로 대체되거나 그것의 위치가 임의적으로 변경될 수 있다. 사이공간으로부터 높이, 너비, 깊이로의 순수한 “펼침”(Ausspannung)으로 추상화된 것이 “3차원적 공간”이다. 이 공간은 가까움과 멂도 아니며 간격이나 거리도 아닌 “연장”(extension)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3차원의 공간은 연장적 공간이다. 차원(dimension)의 단위는 인간의 표상능력에 따라 수학적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는 3차원의 연장적 공간이 분석적-대수학적 “관계”로 추상화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공간은 기호와 공식으로 추상화된 영역이다. 이 공간에는 장소도, 자리도, 위치도 없으며, 당연히 사물도 없다. 이러한 공간 개념들의 추상화 과정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생활세계의 자리-공간 ― 사이공간 ― 연장적 공간 ― 대수학적 관계의 공간.(Heidegger, 1978:149 이하)

이처럼 현존재의 공간성은 세계에서 드러나는 존재자의 다양한 공간성을 함께 드러낸다. 무엇보다 현존재의 공간성은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논의에 기초해 있다. 모든 공간성은 존재자의 존재함, 즉 존재자의 개방성에서 드러난다. 현존재는 존재를 앞서 이해하고 있는 자로서 존재자를 존재하는 것으로 개방하는 존재론적 탁월함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탁월함을 통해 현존재는 자신의 존재를 개시하면서 다양한 영역의 존재자를 개방시킨다. 현존재(Dasein)의 ‘현’(Da, 거기)은 현존재 자신과 함께 존재자가 개방되는 장소이다. 거기에서 현존재의 공간성과 손안의 존재자의 공간성과 이로부터 파생되는 눈앞의 존재자의 공간성이 밝혀진다. 이런 의미에서 현-존재는 모든 공간성의 존재론적 조건이다. 현존재의 ‘현’을 하이데거는 독일어 ‘리히퉁’(Lichtung, 열린 터)과 연결시킨다. ‘리히퉁’은 빛(lux)의 의미와 함께 숲에서 나무를 베어 터를 만드는 벌목(Waldlichtung)의 의미를 가진다. 현존재는 존재자를 개방하는 열린 터이다.(Heidegger, 1977:132)

하이데거의 후기사상에서 인간의 본질은 존재 자체에 대한 사유를 통해 규명된다. 사유의 전회에서 공간에 대한 논구 또한 현존재의 공간으로부터 존재 자체의 장소를 숙고하는 “존재의 위상학”(Topologie des Seins)으로 바뀐다.(Heidegger, 1986:72, 82) 현존재의 공간성은 더 이상 세계-내-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열린 터 안에 있다는 “내존성”(Inständigkeit)으로 이해된다.(323) 현존재는 존재의 개방성, 즉 존재진리의 장소에 나가서 있는 “탈-존”(Eksistenz)으로, 존재의 가까움에 거주하는 “존재의 이웃”으로 자리매김 된다.(Heidegger, 1976:326, 337, 342) 기획투사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존재 자체이며, 인간은 “역사적으로 일어나는 존재의 던짐의 상대”(Gegenwurf des Seins)로 규정된다.(327) 이제 현존재는 세계-내-존재로서 자신의 공간성을 스스로 개시하거나 기획투사를 통해 다른 존재자의 공간성을 부여하는 자가 아니라 존재의 열린 터에 나가 서 있는 자로서 자신의 공간성을 부여받으며 존재진리를 보존하고 수호하는 자로서 존재 자체가 드러내는 역사에 따라 존재자의 공간성을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이데거는 사방세계(Geviert-Welt)를 통해 존재의 장소와 거기에 거주하는 현존재의 공간성을 제시한다. 사방세계는 사방(四方), 즉 땅과 하늘, 신적인 것과 죽을 자가 함께 서로를 비추는 장소로서 거기에서 사물이 개방되며 고유한 자리를 얻는다. 전통 형이상학에서 세계를 지배하고 구성하는 원리로서 상정된 실체들이 사방세계에서는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거울-놀이처럼 서로 비춤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한다. 이러한 통일적인 사방의 공속성에서 사물은 진정한 방식으로 “사물화”(dingen)한다.(Heidegger, 1978:170) 인간은 사방세계에 거주하면서 고유한 자신의 공간성을 부여받으며, 거기에서 다른 사방의 계기들과 함께 사물의 공간성을 드러낸다. 사방세계에서 현존재의 공간성은 사방의 하나로서 땅 위에, 하늘 아래, 그리고 신적인 것 앞에 거주하는 “죽을 자”로서 자리매김 된다.(Heidegger, 1978:141) 


<참고문헌> 
M. Heidegger, “Brief über den Humanismus”, in: Wegmarken. Frankfurt a. M. 1976. 313-364.
M. Heidegger, Sein und Zeit. 14. Aufl. Tübingen 1977.
M. Heidegger, Vier Seminare, Frankfurt a. M, 1986.
M. Heidegger, “Das Ding”, in: Vorträge und Aufsätze. 4. Aufl. Pfullinge.n 1978, 157-175.
M. Heidegger, “Bauen Wohnen Denken”, in: Vorträge und Aufsätze, 4. Aufl. Pfullingen 1978, 139-156.

작성자: 김재철(경북대 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