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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도시 영화(부심 공간 영화)
  분류 : 한국의 도시영화
  영어 : Boundary City Movie (Sub-central Area Movie)
  한자 : 境界 都市映畵 (副都心 空間 映畵)


경계의 사전적 정의는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분간되는 한계’, ‘지역이 구분되는 한계’이다. 케빈 린치(Kevin Lynch, 1960)에 의하면 경계(Edge)는 해안이나 철로에 의해 잘린 선, 개발지의 경계, 벽 등으로 두 면들 사이에 있는 선형의 계속되는 경계를 의미한다. 또한 경계가 가지는 분열적인 힘은 동시에 무엇을 합산하는 힘 또한 가진다. 많은 경계가 고립된 장애이기보다 하나로 묶어주는 이음면(seam)이다. 따라서 경계를 지나갈 수는 있지만 사람들에게는 장애물 쪽에 더 가깝고 하나의 영역을 다른 것과 구분 짓는 선이거나 두 지역을 관련시키고 연결하는 선이라 할 수 있다. 근대 이후 산업화에 의한 도시인구의 증가와 도시공간의 확장,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도시구조의 무분별한 개편은 도시외곽에 존재하던 경계요소를 도시내부로 유입시킴과 동시에 도시내부에 개발에 의한 수많은 경계 요소를 생성시켰다.

경계는 성격, 기능, 구조가 서로 다른 공간 사이에 삽입되어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급격한 변화를 완화시키고, 여기서 이루어지는 인간행태의 흐름을 부드럽게 하는 완충 역학과 공간의 범위를 구획하는 한정적 역할, 그리고 독자적으로 존재하여 단위 공간의 다양한 관계와 성격을 부여하면서, 공간의 효율을 높이고 공간 체험을 제공하는 다양성 역할을 수행한다. 도시의 경계는 도심과 변두리의 사이에 존재하는 부심이라고 볼 수 있다. 경계는 중간 영역에 위치하여 건축 형태와 생활 형태 등이 상호 침투와 교차가 일어난다. 이는 건축과 거주민의 생활 유형과의 연계 속에서 도시인의 사회적 관계와 장소의 정체성이 다양하고 모호하게 재현되게 하는 요인이다. 대도시 서울은 중심이 정부 주요 부처가 자리한 태평로와 종로 그리고 명동이었다면 부심을 형성하는 ‘경계’는 신촌, 왕십리, 등이다. 전근대적 시간에서는 중심에 가까웠으나 공간의 영향력을 점차 잃어 간 북촌과 서촌도 부심으로 구획 지을 수 있다.

신촌은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대학가라는 청년 문화의 토양이기도하다. 동시대 청년의 고뇌와 희망 그리고 좌절을 재현한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은 신촌의 대학생의 인터뷰를 통해 캐릭터와 정신을 반영한 바 있다. 1990년대 신촌은 오병철의 <숲 속의 방>에서 양면적인 공간의 정체성으로 발현된다. 신촌은 연세대와 서강대가 있는 곳이면서 동시에 유흥가와 옷가게의 상점공간이 있고 동시에 최루탄과 이한열 열사의 기억이 공존한다. 신촌에서 대학 생활을 한 작가가 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숲 속의 방>은 신촌이라는 부심의 공간이 영화의 많은 부분을 설명한다. 신촌은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 공간이자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투쟁한 저항의 공간이라는 경계성을 담아낸다. 유흥과 저항이라는 이미지는 신촌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드러나며 전자는 멜로 영화에서 후자는 <고래 사냥>, <바보들의 행진>와 같은 최인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청춘영화가 대변한다. 청춘영화의 계보를 이어가면서 멜로드라마의 요소를 가미한 배창호의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 영민이 사랑하는 혜린을 바라보는 장소도 신촌이다. 두 남녀의 사랑이라는 청춘 영화의 고유한 테마의 공간은 신촌의 대학가와 그 주변의 다방과 분식집 그리고 대로의 버스 정류장이 소환되어 부심 공간 영화의 미장센으로 배치된다.

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북촌은 청계천을 중심으로 북쪽 방향에 자리한 거주지이다. 북촌은 하급관리가 거주하는 남촌과 다르게 왕실 고위관료와 권문세가와 육조 관아에 근무하는 관리들이 거주하던 한옥촌이다. 2001년부터 서울시가 시행한 ‘북촌가구기 사업’을 통해 한옥 보존 사업으로 한옥의 전통적 가치를 살려냈다. 북촌은 전통 가옥과 현대적 건물이 공존하는 곳이다. 부심도시 공간 영화는 한옥이라는 전통과 양옥이라는 외래가 공존하는 장소이다. 김기덕의 <빈집>에서 여주인공은 한옥에서 전통이 주는 평온함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고 돌아간다. 전통의 공간과 문화에 대한 회귀 처로서 북촌의 한옥과 공간이 경계 도시 영화의 미장센으로 자리한다. 부심은 중심과 주변의 경계라는 공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등장인물의 내면은 전통과 외래, 과거와 현재라는 서로 상이한 시간이 만나거나 맞서는 풍경을 내비친다. 북촌의 장소는 홍상수 영화에서 주요한 배경으로 자리하면서 경계 도시 영화의 관습(convention)과 도상(iconography)을 형성한다.

루커만의 장소 개념은 다른 사물이나 장소와 관련된 위치와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변화와 함께 새로운 요소들이 더해지거나 삭제되는 역사성을 지닌다.(에드워드 랠프, 2005) 북촌은 역사성과 문화가 영화 공간을 통해서 소환된다. 북촌은 홍상수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북촌 방향> 그리고 <자유의 언덕에서> 영화 공간이다. 북촌의 영화 공간은 한국 전통 가옥이라는 시각적 미장센을 배경으로 상경한 감독과 내한한 일본인의 임시 거주지로 자리한다. 북촌이 지닌 권력자들의 집단 거주지라는 역사성은 희석되고 부심의 한적한 휴식 공간이거나 새로 조성된 한옥 게스트 하우스 공간이라는 현재성이 부각된다. 북촌의 골목과 음식점 그리고 전통 한옥 가옥의 마당과 방은 부심 공간 영화에서 보여준 전통적 이미지를 보존한 이미지를 재현한다. 북촌의 서양 음식점인 카페와 술집은 서구화된 문화의 일면을 보여주면서 한국과 외국, 전통과 현대 이미지의 경계와 융합된 미장센을 부심 도시 영화의 아이콘으로 만들어낸다.

왕십리는 을지로에서 동쪽으로는 동대문구와 성동구를 향하고 남쪽으로는 강남으로 이어지는 부심공간이다. 왕십리는 무학 대사의 일화와 연관되어있다. 무학 대사는 도성의 자리를 잡기위해 이곳에 당도하자 어느 노인이 여기서 십리를 더 가서 도읍터를 잡으라는 조언을 하였다. 한양은 왕십리에서 10리 떨어진 곳에 세워진 도읍지이다. 성에서 십리의 거리는 도심에서 도시 변두리로 향하는 길목이자 경계의 지형학적 위치를 암시한다.

임권택의 <왕십리>(1976)는 1970년대 도시 개발 중인 왕십리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14년 만에 왕십리로 돌아온 주인공 준태는 옛 연인 정희를 찾는다. 준태가 활동하는 당구장과 중국 음식점 그리고 골목과 천변은 과거의 풍경을 가시화한다. 준태는 과거의 연인을 찾지만 그녀는 이미 다른 이와 가정을 이루었고 변화된 태도를 보여준다. 달라진 연인의 태도는 도시 개발로 현대적인 도시로 얼굴을 바꾸어가는 왕십리의 공간 풍경과 어울리면서 몽타쥬를 이룬다. 주변의 연인이 모두들 떠난 후 준태는 왕십리에 남게 된다. 1970년대 영화에 등장한 왕십리는 도시 개발이 진행 중인 공간이며 동시에 전통의 고수와 변화의 수용이라는 경계에 위치한 장소의 가변성을 드러내는 곳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주인공이 당구장과 중국집과 천변을 배회하도록 한다. 부심공간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주인공은 골목을 배회하고 술집에서 누군가와 만나지만 돌아갈 거리를 배회하는 떠돌이 산책자들이라는 비슷한 양상을 보여준다. 장르의 요소는 인물의 성격과 플롯의 공식, 시각적 배경이 매우 유사한 하나의 특정한 영화를 지칭한다.(C. 소벅, 1998) 신촌과 왕십리와 북촌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주인공들이 집을 잃고 배회하는 공통이 두드러진다. 주인공은 중심도 주변도 지향하지 않으면서 경계를 떠도는 인물이다.

부심 공간 영화의 관습적인 장면은 만남의 장면이다. 만남은 과거의 인물인 친구와 만남을 통한 기억의 반추가 주된 이유이다. 기억의 반추는 장소성의 역사와 연관되고 부심 공간의 도시 개발 이전의 기억과도 관련된다. 만남 장소는 주로 술집과 식당 그리고 유흥의 공간이다. 이곳은 차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는 행위를 위한 소비 공간이자 게스트 하우스와 임시 거처인 여관과 같은 임시 숙소도 주요 공간으로 자리한다.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들은 주로 모텔이라는 숙박 시설에서 성애를 즐기고 임권택 영화의 주인공은 돌아갈 거처를 찾기 위한 모색으로 임시 거처에 기거하며 오병철의 영화에서는 유흥가와 정신적 거처를 찾기 위한 경유지로 자리한다.

이곳은 사회학적으로 소비와 저항, 중심과 주변, 전통과 현대, 과거와 현재라는 이항대립 항들이 출동하거나 혼재하는 경계적 이미지를 프레임에 담아내고 주인공의 떠도는 행위의 공간으로 골목이 부심영화의 도상과 관습으로 각인된다. 부심 공간 영화의 도상은 영화감독, 교수, 평론가 등 지식인들이 주로 착용하는 베이직한 아이템이며, 기본형 팬츠와 블루종 점퍼, 셔츠와 풀오버 니트, 모직코트 등 무늬가 없거나 적은 차분한 톤으로 영화의 플롯에 따른 캐릭터의 내재적 가치가 스며들도록 전개된다.

부심 공간 영화는 청춘영화와 멜로 영화 장르가 혼재되어 있고, 도시화로 인한 과거의 풍경과 개발의 변모 양상이 프레임에 배치되고 서로 충돌된 이미지의 장소에서 일상성을 전위적으로 보여주는 작가의 태도가 영화에 개입하여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만들어낸다. 부심영화의 특징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향연이 한 프레임으로 귀속된다는 점이다.


<참고문헌>
구동회, <영화 속의 도시>, 한울, 1999.
에드워드 렐프, 김현주, 김덕현, 심승희 옮김, <장소와 장소 상실>, 논형, 2005.
옥선희, <북촌 탐닉>, 푸르메, 2009.
토마스 소벅 · 비비안 C. 소벅 지음, 주창규 외 옮김,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의 역사. 형식, 기능에 대한 이해>, 거름 , 1998.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 http://www.kmdb.or.kr/index.asp

작성자: 문관규(부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