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프 테오도르 콘라드 코제뇨프스키에서 조셉 콘래드로(Joseph Conrad)

〈어린 시절의 콘래드〉

  조제프 테오도르 콘라드 코제뇨프스키(Józef Teodor Konrad Korzeniowsk)는 1857년 12월 3일 폴란드, 러시아를 거쳐 현재 우크라이나의 영토가 된  베르드조프(Berdyczow)에서 태어났다. 1863년 여섯 살이었던 콘래드는 자신의 정체성을 “폴란드인, 가톨릭교도, 신사”라고 규정지었다(Baines 14). 그러나 이러한 콘래드의 정체성은 그의 아버지 아폴로 코제뇨프스키(Apollo Korzeniowski)가 러시아에 대항해 조국인 폴란드의 독립 운동을 하다가 러시아로 추방당하면서 점점 뒤엉키기 시작했다. 러시아 유배생활 중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고아가 된 콘래드는 이후 외삼촌인 타데우슈 보브로브스카(Tadeusz Bobrowski)와 같이 폴란드에서 돌아와서 살다가 러시아로부터의 강제 징용위기에 벗어나고자 열여섯 살에 폴란드를 떠나서 프랑스의 마르세이유(Marseille)로 도망치게 된다.

『올메이어의 어리석음』

  마르세이유에 도착한 콘래드는 선원이 되어 이후 방콕, 시드니, 팔레스타인, 말레이시아, 마드리아, 콩고 등 여러 나라를 항해하면서 그의 청년기 대부분의 생을 바다에서 보냈다. 콘래드는 1886년에 여러 번의 낙방 끝에 어렵게 일등항해사 자격증에 합격했다. 같은 해에 영국시민이 된 콘래드는 조제프 테오도르 콘라드 코제뇨프스키에서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로 개명하였고, 이로 인해 러시아 강제징용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점차 항해사로서의 일을 찾기가 힘들었고 무직으로 지내는 날이 많아지자 콘래드는 오랜 바다생활을 통해서 그가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바다에 관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895년 콘래드는 처녀작 『올메이어의 어리석음』(Almayer's Folly)을 개명한 이름 ‘조셉 콘래드’로 발표하였다.

〈블랙우드 매거진에  처음 출간된 『암흑의 핵심』〉

이후 콘래드는 암흑의 핵심인 콩고 대륙에서 백인인 커츠(Kurtz) 대령의 도덕적인 파멸을 묘사한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 1899),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가상 국가 술라코(Sulaco)가 군사독재의 폭정에서 자본주의적인 근대국가로 전환하는 과정을 심도 있게 다룬 『노스트로모』(Nostromo, 1904), 그리니치 천문대(Royal Observatory, Greenwich)를 둘러싼 무정부주의자들의 암투와 이로 인한 한 가족의 비극을 다룬 『비밀요원』(The Secret Agent, 1907) 등 후세에 길이 남은 많은 대작을 저술했다. 유명한 영국의 문예비평 평론가인 F. R. 리비스(Leavis)는 『영국소설의 위대한 전통』(The Great Tradition)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양식’(form)을 완성시킨 콘래드를 제인 오스틴(Jane Austen), 조지 엘리엇(George Eliot), 헨리 제임스(Henry James)와 더불어 위대한 영국 소설가(the great English novelists) 중의 한 명으로 꼽는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어찌 보면 이방인인 콘래드가 영국의 위대한 소설가 중의 한 명으로 꼽혔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할만하다. 따라서 우리는 어린 콘래드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썼던 문구에 다음과 같은 단어들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폴란드인, 가톨릭교도, 신사, 항해사, 그리고 위대한 영국작가라고.

▶콘래드, 런던, 그리고 『비밀요원』

〈20세기 초반의 그리니치 천문대〉

 1894년 2월 15일 그리니치 천문대(Royal Observatory, Greenwich) 인근에 위치한 그리니치 공원(Greenwich Park)에서 폭탄이 터진다. 다행히 희생자는 단 한 명뿐이었고, 그는 바로 폭탄을 운반하던 장본인이었다. 이후 경찰 조사를 통해서 사상자는 프랑스 국적을 가진 26살의 무정부주의자 마샬 부댕(Marshall Boudin)으로 밝혀진다. 비록 폭파의 대상이 천문대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반적으로 부댕이 그리니치 천문대를 폭파하기 위해서 폭탄을 운반했으며, 운반도중에 실수로 넘어지면서 변을 당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리니치 폭파사건은 19세기 후반의 런던의 암울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콘래드가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던 19세기 후반 런던은 영국의 제국주의가 가장 활발했던 시대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제국주의에 의해 몸살을 겪고 있었던 암흑의 시대였다. 당시 런던에는 콘래드 자신을 포함해 다양한 국가의 외국인들로 넘쳐났다. 부푼 꿈을 안고 런던으로 이민해온 외국인들도 많았지만, 범법행위를 저지르고 자국에서 영국으로 도망쳐온 범법자들도 많았다. 이 중 독일과 프랑스계 범법자가 가장 많았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인 이민자의 유입으로 인해 제국주의와 심장과 영국성(Englishness)의 상징 역할을 해왔던 런던은 이제 그 의미가 퇴색된 채 코즈모폴리턴(cosmopolitan) 도시로 변모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코즈모폴리턴 도시로서 런던은 그다지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하지 못했다. 이주해온 일부 선한 이민자들과 범법자들 대부분은 무정부주의자와 테러리스트로 변모했고 런던의 곳곳에서는 이들에 의해 자행되는 테러행위로 인해 죄 없는 희생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1880년대와 1890년대에는 이런 테러행위가 극에 달했고 그리니치 천문대 폭파사건도 이중의 하나였다.

 그리니치 천문대 폭파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 『비밀요원』(The Secret Agent)은 당시 19세기 후반의 혼돈에 찬 런던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이야기 속의 런던은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방인들로 넘쳐난다. 주인공인 벌록(Verloc)은 영국인이자 프랑스인이며, 그의 아내인 위니(Winnie)는 명확히 서술되지 않지만 프랑스인으로 묘사된다. 벌록에게 그리니치 천문대를 폭파하라고 지시한 블라디미르(Vladimir)는 러시아인이며, 늙은 무정부의자인 칼 윤트(karl Yundt)는 독일인이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전형적인 테러리스트로 간주되는 교수(the Professor)는 영국인이 아닌 것으로 추측되지만 그의 국적은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처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인 런던은 무정부주의자들과 테러리스트로 가득 찬 위기의 도시였다.

 하지만 콘래드는 런던을 단순히 위기에 찬 혼돈의 도시로 묘사하지 않는다. 벌록과 위니의 죽음을 통해서 콘래드는 런던을 탈출구 없는 미로로 묘사한다. 블라디미르에게 그리니치 천문대 폭파 명령을 받은 벌록은 위니의 동생인 스티비(Stevie)에게 폭탄을 그리니치 천문대 안쪽에 놓고 오도록 부탁하지만, 스티비는 폭탄을 운반하다가 나무뿌리에 걸려서 죽음을 맞이한다. 스티비를 죽게 한 벌록은 경찰의 눈을 피해서 런던을 벗어나려고 하지만 동생의 죽음을 안 위니에게 죽음을 맞이하고 자신의 집에 영원히 갇히고 만다. 마찬가지로 벌록을 죽인 위니 또한 경찰의 눈을 피해서 런던을 떠나려고 하지만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영원히 런던을 떠나지 못한다. 콘래드의 런던은 곳곳에 테러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위협적인 도시일 뿐만 아니라 영원히 이 위협에서 탈출할 수 없는 악몽과도 같은 미로이다.

<참고문헌>

Baines, Jocelyn. Joseph Conrad: A Critical Biography. London: Weidenfeld and Nicolson, 1960.  

Leavis. F. R. The Great Tradition. London: Faber and Faber Ltd, 2008.

Sherry, Norman. “The Greenwich Bomb Outrage and The Secret Agent.” The Review of English Studies Vol. 18.72 (1967): 412-28.

Stape, J. H. The Cambridge Companion to Joseph Conrad. Lond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https://www.theguardian.com/science/the-h-word/2016/aug/05/secret-agent-greenwich-observatory-bombing-of-1894

작성자: 장성진(중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