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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도티
  분류 : 디지털도시성
  영어 : Braidotti
  한자 :

로지 브라이도티(Rosi Braidotti, 1954)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비주류 백인 이주민으로 성장하면서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을 졸업하고(1977),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1981), 1988년부터 현재까지 네덜란드 유레히트 대학((University of Utrecht)에 재직하고 있는 대륙철학자, 여성학자이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유레히트 대학에 여성학 프로그램을 신설하였을 뿐아니라 유럽내 학제간 여성학 네트워크인 NOISE(Network of Interdisciplinary Women’s Studies in Europe) 등 여러 여성학 관련 네트워킹을 주도해왔으며, 주체와 차이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페미니즘을 다루는 여러 이론서들을 출간해왔다. 최근에는 21세기의 포스트휴먼 조건과 포스트휴먼 지식, 주체, 윤리의 문제를 중요하게 탐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브라이도티는 그녀의 중요한 초기 저서 유목적 주체: 우리 시대 페미니즘 이론에서 체현과 성차의 문제(Nomadic Subjects: Embodiment and Sexual Difference in Contemporary Feminist Theory)(1994, 2004년 한국어 번역)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 제기되는 브라이도티의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유목적 주체는 무엇보다도 페미니즘 이론과 운동의 맥락에서 개진된 개념이며, 이민의 증가와 정보화의 진전, 사회의 급속한 변화 등으로 높아진 세계의 복잡성을 잘 설명한다. 이탈리아 북동쪽 한 모퉁이에 있는 고향 땅의 복잡한 점령의 역사, 다문화주의를 내세우던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성장 경험, 이탈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 국적을 지니고 유럽에서 평생을 학자로, 교수로, 여성으로, 여성주의 운동가로 살아온 경험 등을 지닌 브라이도티가 자신을 유목적 주체로 정의할 때 그것은 단순히 이곳저곳을 오가며 살아가는 주체라는 의미가 아니라, 다층의 혹은 복수의 주체 위치를 동시에 비위계적으로 점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복합적이고 단일하지 않은 정체성을 지닌 주체라는 의미에서의 유목적 주체와 그러한 주체성을 형성하는 혹은 요구하는 삶의 조건에 대한 인식은 페미니스트들이 복잡한 세계를 단순화하지 않고 파악할 수 있는 눈과 개념틀을 준다고 브라이도티는 강조한다. 즉 그녀의 유목적 접근법은 이항대립적이지 않으면서 공격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타자들과 제휴하는 능동적인 방법을 모색하려는 시도이다. 이는 다름 즉 차이를 위계적으로 개념화하고 실천했던 유럽과 세계 여러 지역의 깊고 오랜 차별의 역사를 생각하면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와 현실 때문에 차이를 비위계적으로 재정의하려는 브라이도티의 투쟁은 페미니즘만이 아니라 자아와 타자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기를 요청하는 모든 오래된 그리고 새로운 상황과 실천에 의미가 있다.

오늘날 세계는 지정학적, 문화적, 민족적, 종교적, 인종적, 계급적, 젠더적, 성적 타자라는 오래된 타자들에 유전공학, 인공지능, 정보기술 같은 첨단 과학기술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타자들이 더해지고 있다. 그래서 오래된 그리고 새로운 타자들과 긍정적이고 건설적이고 역동적인 상호연계적 관계를 맺는 일이 중요하다고 브라이도티는 강조한다. 차이와 타자를 비위계적으로 재정의함으로써 현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주체 형식을 모색하려는 브라이도티의 이론적이면서 실천적인 투쟁은 흔히 삼부작이라고 말해지는 1994년의 유목적 주체, 2002년의 메타모포시스(Metamorphoses), 2006년의 트랜스포지션(Transpositions)에서만이 아니라 최근에 발표되고 있는 포스트휴먼(The Posthuman)(2013)을 비롯한 여러 포스트휴먼 관련 글에서도 예외없이 지속되고 있다.

유목적 주체우리 시대 페미니즘 이론에서 체현과 성적 차이라는 부제가 보여 주듯 주체성을 혼종적, 다층적, 비위계적으로, 즉 유목적으로 재정의하면서 성적, 문화적, 인종적 차이를 이분법적 위계의 틀 바깥에서 해석하려는 두드러지게 페미니즘적인 기획이다. 반면,메타모포시스와 트랜스포지션은 유목적 주체에서 제안한 철학적 유목주의와 유목적 주체 이론을 유물론적 되기(생성) 이론과 페미니스트 유물론적 윤리의 맥락에서 정교하게 이론화한다. “유물론적 되기 이론을 향하여(Towards a Materialist Theory of Becoming)”라는 부제가 붙은 메타모포시스는 젠더 차이만이 아니라 자아와 타자, 유럽과 외국인, 인간과 비-인간(동물 타자, 환경적 타자, 기술적 타자 등) 사이의 이분법적 구분을 분석하는데, 이는 체현과 근본적 내재성을 강조하는 페미니스트 육체유물론을 정교하게 발전시켜 복잡한 현대를 읽어 내는 지도제작적 독법을 제시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반면, “유목적 윤리에 대하여(On Nomadic Ethics)”라는 부제가 붙은 트랜스포지션에서는 차이에 대한 브라이도티 작업의 윤리적 차원이 전면에 부각된다. 차이와 다양성을 주요 준거로 삼는 여러 윤리적 접근 방식들이 탐색되고, 여러 위치(물질과 담론, 현실과 인식, 이론적 사변과 정치 기획, 분과 학문과 담론 층위)를 가로질러 상이한 관점에서 다층적으로 바라보기가 강조되며, 변화와 변혁에 관한 정치적 열정이 윤리와 연결되어 논의된다. 브라이도티에게 유목적 윤리란 한편으로는 상처받고 상실하고 박탈당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체념과 수동성을 넘어 나아가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차이를 가로질러 연대하는 친화성을 리좀적으로 증식하는 것이다. 브라이도티에게 부정성을 넘어 나아가는 유목적 윤리가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연대하고 책임지는 공동체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출판된 포스트휴먼(2013)포스트휴먼 지식(Posthuman Knowledge)(2019) 역시 차이와 타자, 주체와 윤리의 문제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유목적 주체메타모포시스트랜스포지션 삼부작의 연속선 위에 놓여 있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가 사는 현실에 대한 진단이다. 브라이도티는 현재 세계를 포스트휴먼 조건(posthuman condition)’ 혹은 포스트휴먼 곤경(posthuman predicaments)’으로 진단하는데, 포스트휴먼 조건이란 우리’, 즉 이 지구행성의 인간과 비-인간 거주자들이 현재 4차 산업혁명과 6차 대멸종 사이에 놓여있음을 의미한다. 4차 산업혁명은 로봇공학, 인공지능, 나노기술, 생명공학, 사물인터넷 같은 진보한 기술들의 융합과 관련되어 있고, 디지털, 물리적 그리고 생물학적 경계들이 흐려지고 있는 상황을 가리킨다. 6차 대멸종이란 인간 활동의 결과로 현재 지질학적 시기에 여러 종들이 죽어가고 있음을, 더 구체적으로는, 진보된 자본주의의 체계적인 가속들과 기후변화의 엄청난 가속 사이에 우리가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잊지 말아야할 것은 기술적 매개로 이루어지는 빠른 변모들이 오래된 불평등과 독특하게 결합되어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충하는 힘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포스트휴먼 도전이라고 브라이도티는 말한다.

포스트휴먼의 위치를 수많은 변화들의 모순적인 속도들의 융합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해도 그것이 생성하는 긴장과 역설, 고통과 불안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고 브라이도티는 말한다. 오랫동안 인간의 자기 개념을 지탱해온 보편주의적 대문자 인간(Man) 개념도, 예외적인 종으로서의 인간종(Anthropos)’ 개념도 이러한 도전을 설명하기에도 미흡하고 대응할 적절한 도구를 제공하기에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라이도티는 포스트휴먼 조건과 곤경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책인 포스트휴먼에서 1장과 2장을 포스트-휴머니즘포스트-인간종중심주의에 할당하여 기술적으로 매개된 포스트휴먼적 조건이 인간과 비인간들의 경계를 흐리게 하고 있고, 진보된 자본주의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있는 상황은 휴머니즘과 인간종중심주의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어서 일종의 위기로 느껴질 수 있지만, 바로 이러한 위기와 변화가 그리고 이러한 위기가 요구하는 포스트-휴머니즘과 포스트-인간종중심주의가 우리에게 새로운 포스트휴먼 조건을 이해하고 이에 긍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잠재력과 도구를 제공한다고 강조한다. 2013년의 포스트휴먼이 근대 휴머니즘의 한계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문제, 포스트휴먼 조건의 비인간성/비인도성을 다루면서 포스트휴먼 조건들을 전방위적으로 탐색하고 대문자 생명(Life)을 재개념화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2019년에 출간된 포스트휴먼 지식은 포스트휴먼 주체들의 특징을 개괄하고 그것들이 (포스트)인문학 분야 안팎에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학문들을 탐색하면서 포스트휴먼 조건에 효과적인 원칙과 담론들의 메타 패턴들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비판적 틀을 제공하고자 한다. “포스트휴먼 주체,” “포스트휴먼 지식생산,” “비판적 포스트인문학,” “포스트휴먼적 사유를 거쳐 긍정적 사유로 나아가는 이 책의 전개에는 포스트-휴머니즘과 포스트-인간종중심주의가 따로 혹은 결합하여 영향을 미치는 포스트휴먼 융합이 멸종을 가리키는 지표이거나 위기이기는커녕 오히려 풍요롭고 복잡한 역사적 전이를 보여주는 전조라는 브라이도티의 믿음이 깔려있다. 그러므로 포스트휴먼 조건을 이해하게 하고, 포스트휴먼 주체의 대안적 구성들을 찾아내면서, 급속히 팽창하고 있는 포스트휴먼 지식 생산을 평가하고, 긍정적인 윤리학 안에 포스트휴먼 인식 주체들과 그 주체들의 지식을 기입하고자 하는 이 두 포스트휴먼 저서들은 포스트휴먼 조건과 담론에 대한 포괄적인 소개이면서 동시에 포스트휴머니즘에의 적극적인 개입이다.

 

참고문헌


Braidotti, Rosi(1994). Nomadic Subjects: Embodiment and Sexual Difference in Contemporary Feminist Theor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Braidotti, Rosi(2002). Metamorphoses. Towards a Materialist Theory of Becoming. Cambridge: Polity Press.

Braidotti, Rosi(2006). Transpositions: On Nomadic Ethics. Cambridge:Polity Press.

Braidotti, Rosi(2013). The Posthuman. Cambridge: Polity Press.

Braidotti, Rosi(2019). Posthuman Knowledge. Cambridge: Polity Press.

로지 브라이도티(2013). 포스트휴먼이경란 옮김. 아카넷, 2015.

이경란(2017). 로지 브라이도티, 포스트휴먼. 서울: 커뮤니케이셔북스.

이경란(2019). 로지 브라이도티의 포스트휴먼: 포스트휴먼 주체와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을 향하여. 탈경계인문학 122, 26. 33-59.

 

작성자: 이경란(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