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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 필라델피아, 건국기 미국의 문학시장
  분류 : 영미도시문화
  영어 : Charles Brockden Brown, Philadelphia, Literary Markets in Nation-building America
  한자 :


브라운(Charles Brockden Brown)은 미국소설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어빙(Washington Irving)에 앞서 동시대의 유럽의 작가들에게까지 문명(文名)을 널리 알리며 미국문학의 국제적 위상을 드높였던 선구적 작가였다. 사후에 작품 전집이 출간되었던 최초의 미국작가도 브라운이었을 정도로 그는 대중적 인기를 지속적으로 누렸으며 포(Edgar Allan Poe), 호손(Nathaniel Melville), 멜빌(Herman Melville)과 같은 후대 미국 작가들의 존경과 추앙을 받았다. 하지만 브라운은 이들 후배 작가들의 유명세에 가려 일반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의 삶과 문학의 의미를 제대로 조명하기 위해서는 그의 출생지이자 작가로서 주요 활동 공간이었던 필라델피아(Philadelphia)의 정치적, 문화사적 역할과 기능과 당시의 출판시장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브라운은 퀘이커교도(Quaker) 집안의 다섯 형제 중 넷째로 1771년 1월 17일에 펜실베니아 주에서 가장 큰 도시였던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당시 미국 제일의 국제무역항이었던 필라델피아는 독립혁명 이전 식민지 미국의 수출입 중심의 국제무역경제의 중심지였던 까닭에 브라운의 부친과 형제들은 모두 상업과 금융업에 종사하였다. 이와 같은 배경은 훗날 브라운이 언론인으로서 활동할 때 문학과 예술과 관련된 글뿐만 아니라 당대의 경제 정책 및 철학과 관련된 수준 높고 면밀한 분석을 쓸 수 있었던 밑바탕이었다. 또한, 필라델피아는 미국 내 정치와 출판문화의 중심지였다. 식민지인들에게 부당하게 적용하였던 영국의 세금과 교역 정책에 반발하여 1774년에 대륙 의회가 개최되었고 1776년 7월 4일 독립선언서가 공표되었으며 1787년에 헌법이 제정된 곳이 필라델피아였다. 독립혁명 기간 동안에 의회활동 역시 대부분 필라델피아에서 이루어졌으며 독립 이후 1790년부터 10년 동안 신생 미합중국의 첫 수도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렇듯 미국 민주주의의 심장이었던 필라델피아에서는 대중을 상대로 한 신문들과 잡지들이 활발하게 출간되고 독자를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었다. 1760년에 필라델피아의 인구는 20,000여명 정도로 이미 식민지 주들 중에서 가장 많은 인구수였고, 1790년에는 두 배가 넘는 42,000여명으로 증가되어 여전히 미국 내에서 제일의 인구수였던 까닭에 필라델피아에서는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의 사례와 같이 출판업에서의 성공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대중의 인기를 기반으로 정치적 출세까지 이룰 수 있었다. 실제로 필라델피아는 1840년대 들어 뉴욕(New York City)에 추월당하기 전까지 미국 내에서 부동의 선두를 유지하던 출판업의 중심 도시로 신문, 잡지, 기타 정기간행물의 숫자가 다른 도시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매사추세츠 주, 뉴욕 주, 오하이오 주를 제외한 어떤 주의 간행물 수치보다도 많았다. 특히, 신생 미합중국의 정치와 경제의 요충지로서 건국 방향과 미래에 대한 활발한 논의들이 온갖 간행물들을 통해 게시되었으며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까지 지면을 통한 토론과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던 까닭에 필라델피아에서 유능한 전업 문필가로 살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가능하였으며 성공한 문필가의 지위와 위상은 그 어느 도시에서보다 높고 안정적이었다.

이러한 배경은 브라운이 변호사가 되기를 희망하던 부친의 바람에 따라 법학을 전공하였지만 문필업에 뜻을 두고 178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필라델피아에서 간행되었던 신문과 잡지에 시사적인 문제들에 대한 논평을 게재하게 된 계기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1793년부터 브라운은 필라델피아의 문학계 인사들과 가깝게 교류하면서 본격적으로 전업 문필가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고, 1795년부터 장편소설을 구상하며 필라델피아에서 매주 발행되었던 문학잡지에 그 일부를 싣고 다른 단편들도 게재하기 시작하였다. 1798년 9월에 출간된 『위랜드』(Wieland)는 그의 첫 장편소설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평론가들과 대중의 주목을 받았고 이에 응답하듯 그는 1800년까지 매년 연달아 소설 작품들을 세상에 선보였다. 이처럼 브라운이 소설가로 전환한 이유는 건국기 미국 내 출판시장만의 환경 및 조건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신생 국가였던 미국의 시민들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민주적 공화정의 일원이라는 독자적인 정치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에 자부심을 느꼈지만 그에 부합하는 변별적인 문화적 정체성을 보유하지는 못하였다. 여전히 미국인들은 영국과 대륙의 문학작품들을 주로 읽고 그 영향을 받았던 까닭에 미국문학이라고 명확하게 지칭할 수 있는 장르와 작품을 생산해내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특히, 건국기의 혼란과 위기 속에서 대중들의 주된 관심은 정치적, 사회경제적 논제들이었고, 따라서 신문과 잡지들에 실린 논평들이 문화적 이슈나 비전을 다루는 경우는 드물었다.

브라운이 펴내기 시작한 소설작품들은 이러한 빈틈을 메우기 위한 시도였다. 하지만, 단순히 출판시장의 틈새를 공략하기 위한 전략은 아니었다. 그는 문학을 통해 철학, 역사학, 정치학, 경제학이 제대로 이해하거나 논의할 수 없는 사회와 인간존재의 보다 복잡하고 심오한 모순을 포착하고 폭로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합리적 이성과 계몽의 이상만을 맹목적으로 앞세운 철학담론들과 사회개혁 사상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비이성, 불합리, 허위의 기제로서의 욕망과 갈등의 문제들을 천착하였다. 이 때문에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의 작가로 유명한 셸리(Mary Shelley)를 비롯한 동시대의 영국의 소설가들은 브라운의 반계몽주의적이고 반인본주의적인 소설작품들의 진가를 알아보고 인정하였다. 하지만, 워낙 출판시장 내에서 순수문학이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이 미약하였던 까닭에 이에 실망한 브라운은 1801년에 마지막 작품을 펴낸 이후로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고 시사적인 논평을 주로 싣는 문예잡지의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다른 잡지들에도 다방면의 주제들을 다루는 글들을 활발하게 기고하며 살아갔다. 그는 특히 필라델피아의 노예제 관련 역사와 형법제도를 연구하면서 그 성과를 책으로 출간하려고 했으며 이 밖에도 인권, 상업, 지리, 보건 등과 관련된 글들을 써냈다. 1810년, 39세에 결핵으로 사망할 때까지 브라운은 필라델피아의 대표적인 문필가로서 활동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9세기 후반 이후 오랫동안 잊혀졌던 그가 다시 1990년대 이후 학자들과 독자들의 관심과 주목을 다시 받게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선구적으로 펴낸 소설작품들의 의미와 중요성이 재평가되기 시작하면서였다. 오늘날 그의 문학은 건국시기 미국의 내적 긴장과 모순, 출판시장의 특징과 한계, 필라델피아의 역사적 위상 등을 연구하는데 있어 요긴한 역사적 사료이자 미학적 성취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참고문헌>

Cody, Michael, Charles Brockden Brown and the Literary Magazine: Cultural Journalism in the Early American Republic, McFarland & Company, 2004.

Kamrath, Mark L., The Historicism of Charles Brockden Brown: Radical History and the Early Republic, Kent State University Press, 2009.

Ringe, Donald A., Charles Brockden Brown, Colorado State University, 1991.

Robert A. Gross and Mary Kelley Eds., A History of the Book in America Vol. 2 An Extensive Republic: Print, Culture, and Society in the New Nation, 1790-1840. Chapel Hill: The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10.

Rubin-Dorsky, Jeffrey, “The Early American Novel” in The Columbia History of the American Novel. Ed. Emory Elliott.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1.

작성자: 한광택(한국외대 영어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