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이미지
도시인문학 사전
모두보기모두닫기
박스하단
사전 > 도시인문학 사전
 
판자촌
  분류 : 서양도시사
  영어 : Shantytown
  한자 : 板子村


1978년에 설립된 유엔 인간 주거 계획(United Nations Human Settlements Programme, UN-Habitat)에 따르면 판자촌이란 빈곤한 계층이 다수를 이루며 거주하는 비위생적이고, 공공 치안이 불안한 도시의 일부지역을 의미한다. 1990년과 2005년 사이 개발도상국인구 중 약 47%에서 37%의 사람들이 이러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판자촌(bidonville)이라는 단어는 20세기 초 북아프리카의 대표적 프랑스 식민지 도시인 튀니지의 외곽지역에 건설된 마을이 지칭하였다. 농촌에서 떠나온 가난한 사람들은 양철, 판자 등 도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재를 활용해 이곳에서 집을 짓고 살았다. 프랑스어 bidonville과 유사한 의미를 지닌 영어 단어 shanty town, slum 등은 영국작가 제임스 하디 보(James Hardy Vaux)가 19세기말 아일랜드 더블린의 누추하고 정리정돈 되지 못한 도시의 풍경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이다. 흥미롭게도 판자촌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와 영어 단어는 모두 식민지 도시에서 원주민이 거주하는 열악한 주거형태를 묘사하는 공통된 기원을 지닌다.

프랑스에서 판자촌이 도시 현상으로 발생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이다.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도시에 농촌에서 이탈한 사람들과 외국인 이주 노동자가 유입되면서 주택부족현상이 심각해짐에 따라  파리 외곽지역인 낭떼르(Nanterre)와 느와시 르 그랑(Noisy-le-Grand)에는 대규모의 판자촌이 형성되었다. 1970년 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정부의 적극적인 주택정책으로 인해 판자촌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판자촌의 주민들은 새로운 주택으로 수용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프랑스에서 판자촌은 단지 눈에 보지지 않게 되었을 뿐 보다 작은 규모로 여러 도시의 외곽에 형성되어있다. 이곳에는 미등록 체류자, 집시, 빈민, 노숙자, 유랑민 등이 거주한다. 특히 ‘칼레의 정글’로 불리는 지역에서는 영국으로 입국하기 위한 수천 명의 미등록 체류자가 판자촌을 이루고 거주하고 있다.

판자촌에 해당하는 단어는 세계 여러 언어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판자촌은 터키에서는 gecekondus, 브라질에서는 favelas, 앙골라에서는 Musseques, 인도에서는 Jhugi 혹은 Bustee, 파키스탄에서는 Kachi abadi, 스리랑카에서는 Mudduku,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lmijondolol Township, 포르투칼에서는 Bairro de Lata, 스페인에서는 Chabolas, 아르헨티나에서는 Villas miseria 등으로 불린다.

판자촌은 그 이름의 다양함만큼이나 그 역사적 배경도 다양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의 흑인 거주구(township)는 다른 나라의 판자촌과는 구분되는 특징을 지닌다. 본래 township은 영국이 활발히 해외식민 활동을 펼칠 때,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에서 영국인 이주자들에게 토지가 분배되는 행정단위로 조직된 임시거주지를 의미하였다. 그러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인종분리정책(apartheid)에 따라 계획된 흑인거주지를 의미한다. 인종분리를 위해 계획된 도시의 한 부분인 township에 건설된 주택들은 오로지 유색인들을 위해 합법적이면서도 견고하게 지어졌다. 그러나 점차 빈곤한 흑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주택에 덧붙여진 형태로 많은 불법적 주택이 만들어졌다. 약 2백만 이상의 주민이 거주하는 요하네스버그 근처의 소웨토(Soweto)가 대표적인 판자촌이다. 또한 인도의 뭄바이에서는 7백만, 약 도시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 외곽에 위치한 다하라비(Dharavi) 판자촌에서 거주하고 있다. 특히 카스트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적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는 불가촉천민(Intouchables)들이 주민의 다수를 이루고 있다. 한편으로 이들에게 도시는 경제적 성공을 통해 사회적 신분상승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상과 같이 전 세계 도시에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판자촌을 유엔 인간 주거 계획에 따라 다음과 같이 기능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 첫째, 판자촌에서는 식수와 생활용수, 상하수도 시설, 전기 공급, 도로, 가로등, 쓰레기 처리시설 등 필수적 도시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전무하다. 둘째, 주거시설의 대부분이 주거시설에 부적합한 재료를 사용한 불법적인 시설물 이거나 혹은 건축에 필요한 법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한 시설물이기 때문에 건축법이나 주택법이 적용되지 않은 주거형태이다. 셋째, 한 주택에 여러 가족이 공동으로 거주하면서 먹고, 자고, 일하기 때문에 주택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초과된 인원이 거주하고 있다. 넷째, 비위생적이며 위험한 주거조건이다. 위생에 필요한 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전염병에 취약하고 홍수로 인한 침수나 도시에서 발생하는 유해한 공기, 물 등의 오염에 노출되어 있는 지역이다. 다섯째, 근본적으로 주거의 불안전성이 높은 지역이다. 판자촌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주택과 토지에 대한 계약서가 미비하기 때문에 법률적으로 보장된 주거에 대한 권리를 보호받지 못한다. 여섯째, 빈곤과 사회적 배제이다. 도시에 거주하는 빈민들이 모두 판자촌에 거주하는 것은 아니다. 빈민들이 도시의 여러 장소에 거주할 수 있지만 판자촌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빈곤은 경제적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이다. 즉, 가난하기 때문에 판자촌에 거주하는 것이다. 일곱째, 주민들은 주거에 필요한 최소면적에서 생활한다. 누추한 주택이 많이 분포되어 지역인 것 뿐 만아니라 야영장과 같이 많은 주민이 작은 면적에 거주한다.

2002년 나이로비에서 열린 UN회의에서는 판자촌에 대한 통계조사를 실시하기 위해서 “식수에 대한 접근이 부적합하고, 위생과 도시기반 시설에 대한 접근이 부적합하며, 질 낮은 주택 형태와 초과인구 그리고 주거의 불안전성”으로 판자촌을 정의하였다. 보다 구체적으로 UN은 하루에 1인당 20리터 이상의 깨끗한 식수를 공급받을 수 있고, 최소한 1인당 5 m2 이상의 주거 면적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참고문헌>
Mike Davis, Planet of Slums: Urban Involution and the Informal Working Class(New York: Verso), 2006.
UN-HABITAT, The Challenge of Slums, Global Report on Human Settlements 2003, United Nations Human Settlements Programme(London: Earthscan Publications), 2003.
Dominique Kalifa, Les Bas-Fonds. Histoire d'un imaginaire(Paris: Seuil), 2013

작성자: 문종현(세종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