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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과 예술
  분류 : 도시설계와 디자인
  영어 : Gentrification and arts
  한자 :


국내 학계와 대중 매체, 활동가들 사이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빈번하게 언급되면서 학술 용어로뿐 아니라 사회적 실천의 언어로도 폭넓게 자리잡고 있다. 이와 함께 도시 환경 변화에서 예술의 지위와 의미에 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이는 많은 부분 개발 이익을 노리는 자본의 유입에 의한 지역 원주민의 축출이라는 젠트리피케이션의 개념을 차용한 한국 언론에서 원주민은 종종 쫓겨나는 예술가와 상가세입자의 이미지로 재현한 데에서 연유한다. 이같은 재현에서 예술, 예술가는 도시의 낙후된 지역에 활기를 불러일으키지만 이내 지가 상승을 촉발하여 예술가 자신뿐 아니라 지역 주민의 축출을 일으키고, 나아가 도시 경관을 동질적으로 상업화하는 존재로 그려졌다. 이 재현이 확대, 재생산됨에 따라 예술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첨병 혹은 희생양으로서 지위와 이미지를 획득했다.

젠트리피케이션 담론에서 예술이 주요 행위자로서 지위를 일관되게 가졌던 것은 아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원인과 양상을 이론화하려는 여러 시도들 중에서 예술을 젠트리피케이션의 설명 변수로 보는 시각이 본격적으로 두드러진 것은 1980년대 이후의 일이다. 예술과 젠트리피케이션이 맺고 있는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1960년대에 젠트리피케이션 개념이 처음 만들어진 이래 지난 50여 년 간 지역에서 원주민의 축출이라는 도시 현상이 어떻게 개념화되고 변용되어왔으며, 이 흐름에서 예술이 젠트리피케이션 담론의 주요어로 부상한 것은 어떤 맥락에서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젠트리피케이션, 도시(재)개발, 도시재생에서 예술을 보는 시각을 추적함으로써 도시 담론에서 예술의 위치성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살펴보는 작업이다.

도시사회학자 루스 글라스(Ruth Glass)(1964)가 처음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당시 예술이 이론의 주요어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글라스는 지역 인구 특성의 변화를 중심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설명했기 때문인데 이론의 초점은중산층 거주자 유입에 있었다. 글라스는 런던의 노동자 계급 지역에 상대적으로 높은 임대료를 지불하는 중산층이 유입되고 점차 중산층 인구 비중이 높아지면서 노동자 계급 거주자를 대체하는 현상에 주목했다. 노동자 계급이 우세했던 지역의 주요 계급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지역의 공간적, 사회적 특성 또한 변화한다는 관찰이 초기 젠트리피케이션 이론의 골자였다. 이후 미국 대도시의 현실을 바탕으로 이론을 발전시킨 맑시스트 지리학자 닐 스미스(Neil Smith)(1979)는 지역을 변화시키는 자본의 유입과 부동산 행위자, 개발자에 주목했다. “지대 격차(rent gap)”는 스미스가 젠트리피케이션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주요 개념이다. 그는 뛰어난 도시 접근성에 비해 물리적으로 낙후된 지역, 노후화된 시설, 저소득층 인구 밀집 등을 이유로 가치가 일시적으로 저평가된 지역에 개발 이익을 노린 자본이 유입되는 것으로 보았다. 요컨대 글라스와 스미스의 설명에서 주요한 도시 환경 변화의 요인과 현상은 계급과 지대 격차로 집약된다.

예술, 예술가가 젠트리피케이션 이론에서 주요 행위자로 등장한 데에는 뉴욕 기반의 도시사회학자 샤론 주킨(Sharon Zukin)(1987)의 영향이 크다. 주킨의 접근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촉발되는 과정에서 문화 예술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소위 “문화자본”에 주목한 것인데 예술가, 작가, 교수, 선생 등 문화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독특한 방식으로 도시 공간을 전유하면서 지역에서 문화자본이 상품화된다는 설명이다. 주킨은 경험적 연구를 통해 상업적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이 갤러리-부띠끄-카페의 단계별 진입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 해석에서 예술, 예술가는 지역 변화의 초기 과정에서는 젠트리케이션을 촉발한 주체, 후기 과정에서는 축출의 객체로서 그려진다. 주킨의 논의가 확장, 변용되면서 도시 환경 변화에서 예술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첨병”, “돌격대” 또는 “희생양”의 이미지를 부여받았다.

이처럼 예술에 수동적, 객체적, 도구적 지위를 부여하는 도시 담론은 문화예술 기반의 도시재생, 도시개발, 공공정책 이론에서도 나타난다. 일례로 창조도시 논의에서 예술가는 도시 환경을 창조적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창조계급으로 분류되었다. 대표적으로 도시경제학자 리차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의 연구(2002)가 소위 “창조도시도시공공정책 수립의 근거가 되었는데, 그는 연구에서 도시 인구 대비 예술가, 음악가, 작가, 디자이너 인구 비중을 “보헤미안 인덱스”로 지표화하여 창조계급 인구도시 성장과의 양적 상관관계를 지닌다고 보았다. 이처럼 예술을 통로 삼은 지역 환경 변화는 도시 주요 성장 동력으로서 제조업이 쇠퇴한 탈산업화시대에 새로운 성장 견인책을 고민하는 공공의 정책 목표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공공예술은 지역 경제 성장을 매개하는 “부드러운” 도시재생의 끌개로 도구화된다. 예술가들은 상대적으로 지가가 저렴한 곳에서 작업실, 공방을 운영하면서 자신들의 문화 자본을 지역화하여 자본의 유입을 이끄는 것으로 여겨진다. 언제부터인가 도시재생 논의에서 예술가의 존재는 도시를 재생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옹호되고 지자체의 환영을 받게 되었으며, 예술인 마을, 창의산업센터와 같은 수사를 통해 선별되고 전시되었다. 그 기저에 도구화된 예술이 있으며, 이는 기본적으로 예술을 젠트리피케이션의 첨병으로 보는 시각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닐 스미스와 제이슨 해크워스(Jason Hackworth)는 “예술이 자본의 유입을 부드럽게 하는(smooth the flow of capital)”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Hackworth and Smith, 2001: 467). 그럼에도 이들의 접근은 여전히 개발 차익을 노리는 투기 자본의 유입을 해석의 중심에 두며 젠트리피케이션이 신자유주의적 도시 정책의 새로운 양태가 되었음을 지적한다.

국내 젠트리피케이션 연구 동향은 2013년 전후를 기점으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특히 경험 연구에서는 문화예술적 해석을 차용해 주거지 상업화를 설명하는 접근이 두드러진다. 비교적 최근에는 예술이 도시개발의 도구로서 지위를 수동적으로 부여받기를 거부하고 젠트리피케이션에 문제를 제기하며 저항을 주도하는 현상 또한 포착된다. 젠트피케이션 담론과 현상에서 객체로 주변화되었던 예술, 예술가가 주체로 나서며 논의 지형을 재구성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기획 <서브컬처: 성난 젊음>에서는 인디 문화와 도시, 젠트리피케이션의 관계를 조망한다. 이 기획은 주요 활동 지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경험한 예술가의 날 것의 시선에서부터 이론적 해석까지 담아냄으로써 국내 젠트리피케이션 논의와 실천의 지형을 파악하고 있다. 특히 이 기획을 엮은 단행본에서는 임동근이 던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은 예술과 도시, 이를 매개하는 통치의 작동이라는 점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보여준다: “언제부터 도시 내에서 예술가들에게 활동의 자율성을 정부가 용인했던가? 또 언제부터 낙후지역에 레지던시를 마련하고 문화를 도시성장의 주요 요소로 정부가, 언론이, 또 우리 자신이 생각하게 되었는가?”(서울시립미술관, 2016: 78)


<참고문헌>
서울시립미술관. 「서브컬처: 성난 젊음」. 2015.
Florida, R. 2002. ‘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 and how it is transforming work, leisure, community and everyday life’. New York.
Glass, R. L. 1964. London: aspects of change (Vol. 3). London: MacGibbon & Kee.
Hackworth, J., & Smith, N. 2001. ‘The changing state of gentrification’ Tijdschrift voor economische en sociale geografie 92(4): 464-477.
Smith, N. 1979. ‘Toward a theory of gentrification a back to the city movement by capital, not people’ Journal of the American Planning Association 45(4): 538-548.
Zukin, S. 1987. ‘Gentrification: culture and capital in the urban core’ Annual Review of Sociology 13(1): 129-147.

작성자: 한윤애(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연구보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