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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러웨이
  분류 : 디지털도시성
  영어 : Donna Jeanne Haraway
  한자 :

도나 해러웨이(1944~)는 미국 콜로라도 덴버 출생의 페미니스트 이론가, 과학학자이자 문화연구자로,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 초반에 이르는 시기에 형성된 페미니즘 이론 및 과학학 연구의 흐름을 대변하는 주요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콜로라도 주립대학에서 동물학, 철학, 문학을 전공한 뒤, 예일대학교에서 이블린 허친슨(Evelyn Hutchinson) 및 스콧 길버트(Scott Gilbert)에게 사사하여 1973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논문은 1976년에 『결정, 직조, 장: 20세기 발생생물학의 유기체주의적 은유들(Crystals, Fabrics, and Fields: Metaphors of Organicism in Twentieth-Century Developmental Biology)』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학위를 마친 뒤에는 하와이 대학, 존스 홉킨스 대학 등의 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뒤, 현재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산타크루스 캠퍼스의 의식사(History of Consciousness) 학과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자벨 스텡어스(Isabelle Stengers),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 어슐러 르 귄(Ursula Le Guin), 마릴린 스트래선(Marilyn Strathern) 등의 학자, 그리고 오랜 기간 재직한 산타크루즈에서 애너 칭(Anna Tsing), 첼라 샌도벌(Chela Sandoval), 샌디 스톤(Sandy Stone) 등의 학자와 동료 또는 사제관계로 학문적 교류를 해 왔다. 

그는 1985년 『사회주의 리뷰(Socialist Review)』에 기고한 「사이보그 선언」을 통해 널리 읽히기 시작했다. 이후 20세기 초에서 1,2차 세계대전 및 냉전 기간에 식민주의, 탈식민, 냉전을 배경으로 진행된 영장류학 연구의 역사를 검토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경계, 젠더 관계가 재구축되는 현상을 조명한 『영장류의 시각(Primate Visions)』(1989), 「상황 속의 지식」 및 「포스트모던 신체의 생명정치: 자가면역체계 담론의 구성」등, 초기 주요 논문을 모은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Simians, Cyborgs, and Women)』(1991), 유전체 연구 시대의 생명공학과 하이브리드 존재자들에 대한 사유를 담은 『겸손한_목격자@제_2의_천년(Modest_Witness_@Second_Millenium)』(1997), 개와 인간의 자연문화(naturecultue)적 공진화의 역사 및 상호 관계 구성의 윤리를 다룬 『반려종 선언(The Companion Species Manifesto)』(2003) 및 같은 주제를 심화한 저작 『종들이 만날 때(When Species Meet)』(2007) 등을 발표했고, 최근에는 『문제를 안고 살아가기(Staying with Troubles)』(2016), 『인구 대신 친족을 만들기(Making Kin Not Populations)』(2018) 등의 저작을 출간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해러웨이의 사유를 특징짓는 키워드로 잘 알려진 ‘사이보그’나 ‘반려종’ 외에도 ‘상황 속의 지식(situated knowledges)’, ‘부적절한/전유되지 않은 타자(inappropriate/d others)’ 등을 들 수 있다. 이 개념들을 연결하는 것은 불순성(non-innocence), 의외성(unexpectedness), 비본질성(non-essentialist) 등의 특징이다. 가령 해러웨이가 ‘사생아’라고 선언하는 사이보그는, 역사적으로 볼 때 태생이 무고하지(innocent) 않지만, 자신을 탄생시킨 권력관계에 저항하는 정치적 주체성의 모델로 재전유될 의외의 가능성을 지닌다. 

관련된 내용을 담은 해러웨이의 대표작 「사이보그 선언」은 미국 정치를 관통하는 보수 개신교적 세계관, 그리고 서구 사유에 내포된 종말론적 세계관 및 이항대립적 요소들을 검토하면서, 순수성과 온전성을 상징해 온 자연의 개념이 세계의 정보과학적 재편과 더불어 상징적, 물질적 효력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진단하고, 자연과 문화의 경계에 있는 존재로서 사이보그에 주목한다. ‘인공두뇌 유기체’인 사이보그는 기계와 유기체, 물질과 정신이라는 데카르트적 이항대립의 범주 속에서 상호대립적으로 파악되어 온 존재자들의 하이브리드(hybrid)이다. 정보과학(informatics)의 등장이 그 존재를 가능케 했다. 심적 현상을 정보처리의 언어로 설명하고 재현할 수 있게 되면서, 유기체와 기계 사이에 기계적 연결을 넘어선 연결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1980년대로의 전환기에 등장한 신자유주의와 그 전후한 시기의 세계질서를 좌우하던 냉전 체제는 정보이론을 명령-통제-통신-첩보, 곧 해러웨이가 C3I라고 요약해 부르는 틀로 구성했다. 예를 들면 생명 현상은 DNA라는 물리적 형태로 구현된 암호들이 담당하는 것으로 개념화되고, 그 암호를 ‘해독’하는 것이 생명 현상에 접근하는 표준적인 방법론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당시 상황에서는, 정보과학의 패러다임만이 아니라 비디오 게임이나 영화와 같은 대중 매체들 역시 전쟁이라는 테마에 깊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와 같은 문제를 마주하여, 기술과학이 자연 및 자연과 동일시되는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한다는 문제의식이 공감대를 사고 있었는데, 해러웨이는 여성과 자연을 동일시하게끔 만드는 이분법 자체가 평화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항대립적 세계관을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는 이미지로서 사이보그가 갖는 가능성에 표를 던진다. 사이보그는 전쟁 무기로 고안되는 일이 빈번한 만큼 무고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종말과 부활 같은 관련 은유들로부터도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고, 무엇보다도 시대의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존재방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본래의 용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 이미지를 재전유하는 정치적 실천은, 사이보그를 부적절한/전유되지 않는 타자로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줄 것이다.   

해러웨이는 사이보그 외에도 다양한 비인간에 관심을 갖고 인본주의적 전제들을 비판하는 작업을 해 왔다. 예를 들어 『겸손한_목격자』(해러웨이 2007) 및 『종들이 만날 때』(Haraway 2008)에서는 실험동물의 활동을 대속 또는 희생으로 이해하는 것보다는 노동의 일종으로 이해할 때, 그들 삶의 구체적 조건을 보다 개선시킬 여지가 있다고 보았다. 이는 2016년에 출간된 인터뷰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해러웨이 2019). 이 인터뷰에서 해러웨이는 모든 생명체가 동등한 가치를 갖고 생명 자체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명우선(pro-life) 입장은 사실상 절멸론적 입장으로 전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바닥에 둥지를 트는 새가 살고 있는 섬에 고양이가 서식하기 시작했을 때, 고양이의 개체 수를 통제하지 않으면 새가 멸종 위기에 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고양이에 손을 댈 수 없어 아무 개입도 하지 않는 것은 무고함/책임없음(innocence)의 상태에 머물고자 하는 순수주의적 욕망의 발현일 수 있다. 오히려, 무고하지 않은 행위(고양이 개체수 조절)에 가담하는 것이 삶의 지속성(ongoingness)을 보전하는 데에서는 더 중요한 태도일 수도 있는 것이다. 

과학학 분야에서 많이 읽히는 논문으로는 「상황 속의 지식」과 「실뜨기 놀이(A Game of Cat’s Cradle)」(1994)가 있다. 과학에서의 인식론적 질문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글들이다. 널리 인용되는 첫 번째 논문(해러웨이 2002)은 샌드라 하딩(Sandra Harding)의 ‘계승자 과학(successor science)’ 개념에 대한 논평이다. 페미니스트 입장론(feminist standpoint)으로 일컬어지는 하딩의 인식론은 근대과학 프로그램에 내재된 계몽주의적 이상의 기본 가치를 긍정하고, 그 이상을 더 완전한 형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시각을 포함해 관련된 당사자들의 관점과 이해관계가 종합적으로 고려되었을 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강한 객관성(strong objectivity)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러웨이는 과학적 지식의 보편성 내지는 온전성보다는 상황에 따라 구성된 지식의 부분성에 주목하며, 삶의 양태를 체현하는 특수 형식을 지닌 감각이자 실재의 부분적 파악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서 시각(vision)의 은유를 통해 과학적 지식의 의미를 이해하려 한다.

또 다른 논문으로, 「마르크스주의 사전의 ‘젠더’」(해러웨이 2002) 및 「테디 베어 가부장제」(Haraway 1989)가 있다. 「젠더」 논문은 사전 항목으로 작성된 것인 만큼 개념의 역사적 출현부터 단어가 사용되는 다양한 의미 및 용법, 함의 등을 비교적 평이한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 「테디 베어 가부장제」는 『영장류의 시각』에 독립된 장으로 수록되었던 글로서(Haraway 1989), 뉴욕 자연사 박물관의 ‘아프리카관’에 전시된 디오라마가 제작된 역사를 그 제작자인 칼 애컬리(Carl Akeley)라는 인물을 추적하며 검토하고, 박제와 그 배치가 자연을 재현하는 방식을 분석함으로써 ‘자연’이 물리적, 상징적으로 모두 위기를 맞았던 20세기 초반에 재구성되는 양상을 분석한다. 개와 인간의 진화사적, 문화사적, 개인사적 관계 구성을 서술함으로써 ‘자연문화’ 개념을 제시하는 『반려종 선언』과(해러웨이 2019), 노화 및 생태 환경의 파괴와 같은 삶의 조건에서 ‘보다 잘 살고 잘 죽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내용을 담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기』(Haraway 2016) 및 『인구 대신 친족 만들기』(Clarke and Haraway 2018)와 같은 책들은 삶의 장소로서 지구라는 유한한 공간, 상상적으로 구성됨과 동시에 물리적으로 현존하는 자연이라는 공간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참고 문헌

다나 해러웨이 지음, 민경숙 옮김,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자연의 재발명』, 동문선, 2002.  

다나 해러웨이 지음, 민경숙 옮김, 『겸손한_목격자@제2의_천년. 여성인간©_앙코마우스™를­_ 만나다』, 갈무리, 2007. 

도나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 옮김, 『해러웨이 선언문』, 책세상, 2019. 

Haraway, Donna. Primate Visions: Gender, Race, and Nature in the World of Modern Science, Routledge, 1989.

_____, When Species Meet,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08. 

_____, Staying With the Trouble: Making Kin in the Chthulucene, Duke University Press, 2016.

Clarke, Adele E., and Haraway, Donna (eds), Making Kin Not Population, Prickly Paradigm Press, 2018. 

 

작성자: 황희선(서울대학교 인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