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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
  분류 : 디지털도시성
  영어 : cyborg
  한자 :

사이보그(cyborg)는 ‘인공두뇌학적 유기체(cybernetic organism)’를 줄인 말로, 정보이론(informatics)을 통해 심적 현상을 설명하거나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사이버네틱스 이론을 활용하여 구축된 현실 또는 가상의 존재자를 일컫는다. 기본 개념은 맨프레드 클라인즈(Manfred E. Clynes)와 네이선 클라인(Nathan S. Kline)이 1960년에 처음 제시했다. 당시의 주안점은 인간이 우주 공간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의 개념적 초안을 제시하려는 것이었다. 해당 대목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외부 연결에 의해 복합적으로 구축된 항상적 상태를 무의식적으로 통합된 채 기능하는 체계를 일컫기 위한 말로서 ‘사이보그’를 제안한다. 사이보그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유기체의 자기조절적 체계를 확장하는 외부 구성 요소를 능동적으로 통합한다. (Clynes and Kline 1995:30-31)

이처럼 협의의 사이보그가 유기체와 기계가 피드백 고리를 통해 통합된 자기조절적 체계를 뜻한다면, 사이보그 기술이 구현된 사례 중 하나는 인공심장과 같은 보철 장치를 장착한 신체이다. 인공심박기는 체내에서 입력되는 전기 자극에 반응하여 심장에 전기 펄스를 전달함으로써 심장박동을 조절하는 피드백 시스템을 구현하기 때문이다. 사고로 인해 팔이나 다리 등을 잃거나 쓸 수 없게 된 사람들에게 일종의 외골격과 같은 반자율적 로봇 의수족을 제공하는 기술도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이 또한 사이보그 기술의 한 종류로 분류된다. 

세계에서 최초로 현실의 사이보그가 된 사람은 스페인 출생의 영국 예술가 닐 하비손(Neil Harbisson)으로 여겨진다. 그는 2010년, 동료 예술가인 문 리바스(Moon Ribas)와 공동으로 “사이보그 재단(Cyborg Foundation, https://www.cyborgfoundation.com)”을 설립했다.  사이보그 재단은 신체의 사이보그적 변형을 추구할 권리 및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신체 변형을 하지 않을 권리, 사이보그 신체를 지닌 사람들이 전통적인 신체를 가진 사람들과 평등하게 대우받을 권리 등, 일련의 ‘사이보그 권리’를 제정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하비손은 선천적으로 색맹이었다가 2004년에 색상을 음계로 변환해 주는 인공 안테나를 두개골을 관통하여 접합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의 여권 증명사진에는 이 안테나 모습이 담겨 있는데, 이는 그 안테나를 신분 구성 요소로 공인한 것과 마찬가지이고, 그를 법률상으로 사이보그로 인식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Stix 2016).

이처럼, 유기체적 기능을 보조하거나 회복하는 것뿐 아니라, 신체 능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기계적 요소와 접합을 꾀하는 것이 사이보그의 전형적인 이미지다. 그러한 상상은, 1980년을 전후한 시기의 소설, 텔레비전 시리즈물 및 극장 영화와 같은 매체를 통해 널리 확산되었다. 한국에서도 방영된 적 있는 《6백만불의 사나이(The Six Million Dollar Man)》(1973-8) 및 《소머즈(The Bionic Woman)》(1976-8)를 비롯, 《토탈리콜(Total Recall)》(1990)이나 《터미네이터(The Terminator)》(1984)와 같은 영화, 《공각기동대: 이노센스(イノセンス)》(2004)와 같은 애니메이션이 대표적인 사례다. 사이보그는 기술지배적인 디스토피아 사회에서 조성된 반체제적 흐름을 소재로 삼는 장르, 사이버펑크(cyberpunk)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사이버펑크의 효시로 볼 수 있는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의 《뉴로맨서(Neuromancer)》(1984)는 사이버스페이스에 외장형 단말기가 아닌 내장형 장치를 통해 접속하여 활동하는 것이 일반화된 세계를 묘사하고 있는데, 《매트릭스(The Matrix)》(1999)를 비롯해 사이버스페이스를 다룬 이후 작품 대다수에서 전형적으로 사용되는 모티프를 상당수 담고 있다. 

이처럼 가장 큰 주목을 받는 사이보그는 주로 인간과 기계의 하이브리드이지만, 인간 외 생물체와 기계의 접목 시도는 보다 이른 시기부터 적극적으로 시도되어 왔다. 예컨대 최근의 사례를 보면,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존 대비리(John Dabiri)를 포함한 공동연구진은 해파리에 전극을 삽입하여 일반 해파리보다 세 배 빨리 유영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을 2020년 1월,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즈(Science Advances)』를 통해 발표했다. 이들 연구진에 따르면 전극에 수온 및 조류와 같은 측정 지표를 감지해 송신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여 해양 자료를 수집하는 기법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이다(Bushwick 2020). 

사이보그는 정의상 인공물과 자연물의 결합체이고 개념적으로는 현실에 구현되지 않은 가상의 기술을 암시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특히 픽션에서는 고도로 기술의존적인 도시공간과 결부되어 묘사되는 일이 빈번하다. 사이버펑크를 특징짓는 공간은 대개 수직적이고 과밀한 하이테크 거대 도시다. 이와 같은 공간의 거주자는 타고난 신체에 머무르기보다, 비슷한 수준의 복잡성을 지닌 기술을 활용해 공간과 통합된 채 활동한다고 묘사된다. 현실에서는 2020년 현재, 가격 제약 및 사람들의 선호에 따라 내장장치보다는 외장형인 웨어러블 기기(wearable device)가, 그리고 그보다는 스마트폰과 같은 물리적으로 분리된 형태의 기기가 압도적으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적극적인 신체 변형을 통해 인간 종의 진화적 한계를 넘어선 삶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던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 또한 미래보다는 근과거를 연상시키는 이미지에 가깝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현대의 삶은 이미 사이보그적인 것인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은 개념의 확장 덕분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사이보그의 개념을 존재론적으로 검토하여 그 의미를 은유적으로 확장시킨 대표적 문헌은 1986년에 발표된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사이보그 선언」이다(해러웨이 2019). 이 글은 냉전을 배경으로 한 1980년대 중반의 상황에서 사이보그와 관련된 기술과학적 실천 및 대중적 상상과 정치적 사안들을 분석하면서, 이후의 관련 담론에 큰 영향을 주었다. 「선언」에서는 기계 및 유기체와 같이 이질적이고 (존재론적 또는 개념적으로) 모순적인 것의 종합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사이보그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제시한다. 선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이항대립적인 개념 쌍에 의해 파악되고 구성되던 근대 세계가 근대 이후(postmodern)의 세계로 이행하는 과정을 요약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이 사이보그라는 것이다. 해러웨이는 인간과 동물, 유기체와 기계,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 혼란 및 붕괴는 그와 같은 과정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당시에는 이와 같은 상황을 마주하여 유기체적 온전성을 고수하거나 회복하려는 다소간 낭만주의적이고 반과학적인 정치적 입장이 정치적 보수 뿐 아니라 진보 진영에서도 등장했다. 캐롤린 머천트의 『자연의 죽음』과 같은 책이 그와 같은 당시 추세를 반영하는 저작 중 하나다. 해러웨이는 이에 대해 “우리는 모두 [이미] 사이보그다”라고 논평하며 기술과학(technoscience) 수용 여부 자체에 대한 논의보다는 어떤 형태의 사이보그 또는 기술과학적 실천을 구상할 수 있을 지에 대한 논의가 현실 정치에 보다 적합하며 실효성이 있고, 더 나은 진보 정치의 자원을 모색할 수 있게 해 준다고 주장했다. 가령 전자 제품 조립 공장에서 일하던 아시아의 여성 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적 사유화의 시작과 더불어 공공의 자원을 박탈당하고 새로이 임노동 시장으로 진입한 20세기의 프롤레타리아로, 자동화와 더불어 확대된 서비스 산업 분야 여성 노동자들의 인상적인 노조 활동과 더불어 현실의 사이보그를 가능케 하는 물적 기반을 제작하며 착취되고, 새로운 정치적 연대를 상상할 수 있게 해 주는 양상을 보인다고 논의되었다.  

1980년대 후반 냉전의 종식, 1990년대 이후 지구화(globalization)의 진행은 세계의 양극화된 구조를 변경했다. ‘종합될 수 없는 모순’으로 파악되던 냉전 시대의 이념적 대립 및 그와의 연계 속에서 구성되었던 기술과학적 실천은 전지구적 단일 시장에 맞춰 전환되었고, 하이테크 기기들은 일상생활 속 필수품이 될 만큼 널리 보급되었다. 모두가 사이보그이며 기계는 ‘인간을 파괴하는’ 적이 아니라 ‘다정한 나 자신’일 수 있다는 1986년의 선언은 이제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는 명제가 되었고, 사이보그를 이루는 양 극 요소인 기계와 유기체의 개념적 대립 또한 지난 시대의 산물로 여겨지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그런 면에서 「선언」이 예측하던 내용들은 상당 부분 현실에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도 있다. 

 

참고문헌

Bushwick, Sophie, “Cyborg Jellyfish Could One Day Explore the Ocean,” Scientific American, January 29, 2020, from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cyborg-jellyfish-could-one-day-explore-the-ocean/

Clynes, Manfred E. and Kline, Nathan S.,  “Cyborgs and Space.”, in Gray, Christopher.H., Figueroa-Sarriera, Heidi J., and Steven Mentor (eds.), The Cyborg Handbook, New York: Routledge, 1995, pp. 29–34. 

Stix, Madeleine, “World’s First Cyborg Wants to Hack your Body,” CNN, January 7, 2016, from https://edition.cnn.com/2014/09/02/tech/innovation/cyborg-neil-harbisson-implant-antenna/index.html

캐롤린 머천트 지음, 전규찬·전우경·이윤숙 옮김. 『자연의 죽음 : 여성과 생태학, 그리고 과학 혁명』, 미토, 2005. 

도나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 옮김, 「사이보그 선언」, 『해러웨이 선언문』, 책세상, pp.15-112, 2019.  

 

작성자: 황희선(서울대학교 인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