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이미지
도시인문학 사전
모두보기모두닫기
박스하단
사전 > 도시인문학 사전
 
산책자(발터 벤야민의)
  분류 : 도시문화
  영어 : Flâneur
  한자 : 散策者/漫步客

산책자/만보객(이하 산책자)19세기 대도시 파리에 등장한 새로운 지식/문학 생산자로서, 풍요와 모더니티, 산업화된 현대 사회의 익명적 관찰자이다.

산책자는 왕정복고기 저널리즘과 혁명 이후 공공 공간의 정치에서 탄생한 근대 지식인의 새로운 유형이다. 이러한 인물유형을 도시적이고 현대적인 경험의 상징적 원형으로 처음 주목한 이는 독일의 마르크스주의 비평가 발터 벤야민이다. 그는 보들레르의 시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산책자를 도시의 아마추어 탐정-관찰자인 현대 도시 군중 및 지식인의 본질적 유형으로 묘사한다.

기존의 문화/문학생산자 계급이 귀족이나 기관에 소속됐던 것과 달리, 산책자는 19세기 파리의 자본주의 저널리즘의 유동성 속에서 문예란 기고에 의지하여 지식을 생산한다. 이때 산책자의 정신과 생리는 기존의 학자계급과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감지하며 활성화된다. 도시의 유동성에 동기화된 그의 인식은 끊임없이 명멸하는 도시경관의 혼란스러운 명세를 포착하는 과정에서 파노라마(panorama)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결정된다(발터 벤야민, 2013: 78-78). 산책자는 자신이 채집한 대도시의 온갖 자질구레한 세목을 문예란에 늘어놓는 방식(파노라마), 즉 세태나 유행에 편승함으로써 대도시의 문화생산에 간여한다. 이들에 의해 19세기 파리 저널리즘 문예란에 펼쳐진 수많은 시시콜콜한 문예물의 흐름은 그 자체로 도시 군중의 집단적인 감각의 융성과 개인의 소외라는 양가성을 체현한다.

벤야민은 빈민가, 사창가, 술집 등 19세기 대도시 파리의 어두운 거리와 익명적 공간을 친숙하게 배회하면서도 군중의 익명성에 저항한 보들레르 시에 나타난 보헤미아주의에서 이러한 산책자적 양가성의 기원을 발견한다. 산책자로서 보들레르의 시적 태도는 19세기의 유행과 문화를 결정하는 대도시 군중의 집단적이고 익명적인 감각(대혁명과 왕정복고로 인해 형성된 정치적감각)을 추수하여 성공을 거둔 빅토르 위고와 같은 문화 생산자 유형과 쌍벽을 이룬다. “위고가 현대 서사시의 영웅으로 대중을 예찬하는 순간, 보들레르는 영웅의 피난처를 대도시의 대중 속에서 찾고 있었다. 시민으로서 위고는 군중 속에 섞여 온다. 보들레르는 영웅으로서 거기에서 떨어져 나온다.”(벤야민, 2013:123)

벤야민이 보들레르가 체현하는 산책자 특유의 양가성 -사회적으로 반항적인 보헤미안이자 저널리즘 문예란의 상품 생산자- 에 주목한 이유는 그 속성에서 20세기의 지식/문화 생산자로서 자기 자신이 속한 계층의 실존적 기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기관이나 연구실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저널리즘 산업에 종사하는 20세기 유럽 각지의 보들레르-산책자의 후예들은 불안정한 경제적 토대에서 지식과 문화를 생산해야 한다. 그들은 대도시 군중이라는 익명 집단의 정치적·문화적·사회적 감각을 불가피하게 추수함과 동시에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증명해야 하는 객관적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벤야민의 입장은 19세기 산책자들의 후예인 20세기의 지식/문화 생산자들의 이익이 자본주의 체제 절대다수 군중인 프롤레타리아의 이익에 수렴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수잔 벅 모스, 204:389).

 

참고문헌:

발터 벤야민, 김영옥·황현산 역,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 제정기의 파리/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 외, 도서출판 길, 2013.

수전 벅 모스, 김정아 역,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문학동네, 2004.

 

작성자: 윤재민(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