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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도시 또는 빛나는 도시(르 코르뷔지에의)
  분류 : 유토피아 및 공동체
  영어 : Cité Radieuse de Le Corbusier, Le Corbusier’s Radiant City
  한자 :

19세기 후반의 사회 사상가들은 노동자 계급의 생활환경 개선에 집중해 많은 노동자 주택 건설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르코르뷔지에의 도시에 대한 아이디어는 1915년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이런 다수의 19세기 전략가들이 수행한 길고 힘든 사회적 행동 통제 연구들을 카드로 정리하고 분석하면서 시작됐다.(M. Tafuri, 1990:460~462) “필요의 결정(la détermination des beoins)”생산품(produit de la Productuon)” 주택이라는 19세기에 제시된 두 모델의 공존을 시도하며 르코르뷔지에가 1922년에 첫 도시계획안으로 발표한 인구 300만 명의 현대도시(Une Ville contemporaine de 3 millions d’habitants)’는 혁명으로 집권한 나폴레옹 3세가 환기가 잘 되고 아름다운 파리 건설이라는 미명으로 시작한 파리 개조 사업(Transformations de Paris sous le Second Empire)에 대한 문제점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1927년까지 시행된 이 도시계획이 당시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원인 1, 2위인 독감과 결핵에 건축적·도시적으로 아무런 대처를 못 했고, 현대도시에 걸맞은 교통체계와 정보 선점을 위한 속도 경쟁력에도 뒤처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1925년에 이 계획안을 실재하는 파리에 적용시킨 부아쟁 계획(Plan Voisin)’을 발표해 역시 격렬한 논쟁을 유발한 르코르뷔지에는 미학적 관점이 아닌 기술적·사회적·경제적 영역에 중점을 두고 1928년부터 시작한 일련의 근대건축국제회의(Congrès internationaux d’architecture moderne)를 주동하며 공적·사적 권력들을 상대로 새로운 도시에 관한 개념적이고 선전적인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G. Ciucci, 1990:88~95) 1929도시 재조직을 위한 모스크바 당국의 질문서에 대한 회신에서 이성적인 체계로서, 새로운 도시 시스템을 위한 기준 격자(grille)가 적용된 빛나는 도시를 제안했던 르코르뷔지에는 이듬해 브뤼셀에서 열린 제3차 근대건축국제회의에서 빛나는 도시라는 새로운 비전을 공식화했다. 현대도시의 방사형 디자인과 달리 이 빛나는 도시는 머리, 척추, , 다리를 가진 인체의 추상적인 형태에 기반을 둔 선형 도시로서, 머리에는 사업 구역, 목에는 호텔과 대사관, 가슴에는 주거, 배에는 제조업과 창고업, 다리에는 중공업 구역이 설정됐다.

기능적 도시(The Functional City)’라는 주제로 근대건축국제회의의 관심을 도시계획으로 본격적으로 넓힌 1933년 제4차 회의는 33도시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당시 도시가 직면한 사회적 문제를 엄격한 기능적 분리와 넓은 간격으로 배치된 높은 아파트 블록으로 인구를 분배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르코르뷔지에는 이듬해에 이때의 논의를 바탕으로 저서 빛나는 도시(La ville radieuse)를 발간했고, 4차 회의의 의사록은 이 책과 1930년대 초반에 근대건축국제회의에서 수행됐던 도시 연구를 기반으로 하여 1943년에 르코르뷔지에에 의해 아테네 헌장(Athens Charter)으로 정리되어 발간됐다.

빛나는 도시는 전체 대지의 12%에만 건물이 들어서고 나머지 88%는 녹지와 집 바로 앞에서 매일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 등에 할애되는데, 이때 건물은 필로티(pilotis) 위에 올라서 지면 전체를 보행자가 이용할 수 있다. 더 이상 복도 같은 길(rue-corridor)”은 존재하지 않으며, 확실한 보차분리 하에 한 동당 2,700명의 주민을 기준으로 하는 주거단위(l’unité d’habitation)가 들어서는데, 각 단위는 마르세유 등에서 실행된 것처럼 기계적 수직 순환, 보급, 보육원, 유치원, 초등학교, 의료 및 응급 입원 서비스 같은 공유 서비스를 제공한다.(Le Corbusier, 1964:31~36)

인구 300만 명의 현대도시계획안에서부터 빛나는 도시에 이르기까지 르코르뷔지에는 개인의 이해를 집단의 이해에 종속시켜 당시 많은 도시에 만연했던 과밀화, 비위생적인 생활환경, 사회문제 등의 해결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기능성, 효율성, 질서에 초점을 맞춘 고층, 고밀도 도시 환경을 구상하면서 생활, , 여가 활동을 위한 구별된 구역들과 함께 도시 내의 기능들을 분리해 각 활동이 최적화되어 보다 조화롭고 생산적인 도시 환경을 형성하고자 했다. 고층, 고밀도 추구는 그로 인해 도시 전체에 광대한 녹지를 확보하고 폭증하는 도시 교통을 지상과 지하, 공중을 통해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빠른 통신 네트워크를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도시민의 건강을 위해 햇빛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자 한 것은 +형 평면의 고층건물과 그림자를 드리는 전통적인 중정형 주거가 아닌 요철형의 긴 주거단위로 가능한 외기를 많이 면하려는 이상적인 제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역사를 향해 던진 시선만이 우리에게 광채를 되찾게 해준다”(Le Corbusier, 1925)라며 저서 건축대학 학생들과의 대화(Entretien avec les étudiants des écoles d’architecture, 1943)에서도 과거야말로 나의 스승이며 앞으로도 계속 인도자로 남을 것이라고 고백하며 전통의 중요성과 토착성에 대한 깊은 인식을 지닌 르코르뷔지에가 사실상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과도하게 합리적이고 너무나 급진적으로 보이는 빛나는 도시를 밀어붙인 데서 그가 당시의 심각한 도시 상황을 간단한 치료(médecine) 해법은 망상이며 수술(chirurgie)이 필요한 중병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Le Corbusier, 2004:192) 1935년 첫 방문한 뉴욕을 보고 마천루들이 너무 작고 너무 붙어 있어 당시 이미 하루 150만 대의 교통량을 보인 뉴욕이 교통지옥이 됐으며, 도시가 무한정 넓어져 뉴욕 도심의 일터로 왕복하는 데 하루 4시간을 허비하는 많은 직장인을 염려하며, ‘빛나는 도시개념을 따라 기존의 모든 건물을 생활 및 작업 장치가 장착된 하나의 거대한 데카르트 고층건물로 대체할 것을 제안했다.(Le Corbusier, 2017) 도시계획은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설비(équipement)”라고 여긴 그는 1929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부아쟁 계획을 소개할 때 빛나는 도시에도 적용할 수 있는, 자금 동원과 재정 보증, 행정력 동원 같은 정책수단까지 알려주며, 도심 재개발을 통해 4~10배에 달하는 가치 창조를 얻는 업무지구를 만들고 여기서 얻은 이익으로 새로운 교통수단과 공공서비스를 구축하는 방안까지 상세하게 설명하며 실현 가능성을 타진했다.(Le Corbusier, 2004:187~233)

도시의 다양한 규모와 장소성 상실, 역사성 소거 등으로 인해 경직되고 비인간적이라는 우려를 낳은 빛나는 도시 개념을 온전히 따른 성취는 없지만, 르코르뷔지에를 신뢰한 코스타(Lúcio Costa)와 니마이어(Oscar Niemeyer)가 계획한 행정 신도시 브라질리아에는 이 개념의 영향이 뚜렷하다. 르코르뷔지에 자신은 1949년에 위임받은 찬디가르 행정 신도시 디자인에서 자신의 꿈 일부를 실현시켰다. 그가 설계와 건설을 맡은 마르세유 위니테 다비타시옹(1945~1952)은 북아프리카의 프랑스령이었던 느무르(Nemours)와 알제(Algiers)에서 개발했던 빛나는 도시아이디어의 부분적 구현이었는데, 이후 베를린과 프랑스의 네 도시에 한 동씩 더 들어섰다. 르코르뷔지에의 도시계획에 대한 사상과 이론은 적잖은 반론에 부딪혔지만, 그가 강조한 기능적 구역 설정, 녹지의 통합, 효율적인 교통 시스템의 고려는 현대 도시계획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참고문헌:

Tafuri, Manfredo, “Machine et mémoire: la ville dans l’oeuvre de Le Corbusier” in Le Corbusier une encylopédie, Centre George Pompidou, Paris, 1990.

Giorgio Ciucci, “La poésie en casier” in Le Corbusier, une encyclopédie, 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1990.

Le Corbusier & P. Jeanneret, OEuvre complète volume 3, 1934-38, Les Editions d’Archirecture Zurich, 1964.

Le Corbusier, 프레시지옹, 정진국·이관석 역, 동녘, 서울, 2004.

Le Corbusier, Almanach d’Architecture Moderne, Les Éditions Crès et Cie, Paris, 1925.

Le Corbusier, Quand les cathédrales étaient blanches, Bartillat, Paris, 2017.

 

작성자: 이관석(경희대 건축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