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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도시
  분류 : 도시의 이념과 모델
  영어 : human rights city
  한자 : 人權都市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the city)” 등 인권도시 개념의 기원으로 고려될 수 있는 것들은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인권도시’ 개념이 정확히 쓰인 것은 2000년 미국에 본부를 둔 세계인권교육운동(The People's Decade for Human Rights Education)이 인권교육 운동 차원에서 사용하면서부터이다.

2000년에 <도시에서의 인권보장을 위한 유럽 헌장(European Charter for the Safeguarding of Human Rights in the City)>이 채택되었고, 2004년 세계사회포럼에서 <도시에 대한 권리에 관한 세게 헌장(World Charter on the Right to the City)>이 채택되었으며, 2005년부터 유네스코와 유엔-해비타트는 <도시에 대한 권리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개별 도시 차원에서는 2006년에 <몬트리올 권리와 책임 헌장(The Monréal Charter of Rights and Responsibilities)>이, 2010년에 <멕시코시 도시에 대한 권리 헌장(Mexico City Charter for the Right to the City)>이 제정되었다. 2011년에는 도시인권 개념과 과제를 포괄적으로 규정한 문서인 <도시에서 인권을 위한 지구 헌장-의제(Global Charter-Agenda for Human Rights in the City)>가 채택되었고, 2013년 9월 제 24회 유엔 인권이사회에서는 <지방정부와 인권> 결의가 컨센서스로 채택되었다(홍성수, 2014: 50-51).

한국에서 인권도시 개념은 2000년대 중반 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하던 경상남도 진주시의 인권단체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고(한국인권재단, 2014: 3), 2010년을 전후하여 수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인권조례를 제정하면서 널리 퍼져나갔다. 2014년 초 기준으로 서울특별시, 광주광역시, 부산광역시, 대전광역시, 울산광역시, 경기도, 강원도, 충청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등의 주요 광역자치단체, 그리고 서울 성북구, 부산 해운대구를 비롯한 45곳의 기초자치단체에 인권기본조례가 제정되어 있다(홍성수, 2014: 52). 특히 광주광역시는 인권조례뿐 아니라 인권헌장을 제정했으며, 이를 실질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인권담당관실을 설치하고 인권지표를 개발해 자체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한국에서 인권도시 개념에 대한 정의는 은우근에 의해 처음 이루어졌다. 그는 PDHRE의 인권도시 정의를 참조하여, 인권도시를 “인권주체의 참여 속에서 인권가치의 구현을 도시 운영에서 가장 핵심으로 추구하며, 인권의 틀을 통해 사람들의 삶의 발전을 도모하는 공동체”(은우근, 2009: 130)로 정의하였다. 2011년 5월 광주에서 열린 세계인권도시포럼에서 채택한 <인권도시 선언>에서는 인권도시를 “지방정부, 지방의회, 시민사회, 기업과 기타 이해관계자들이 인권 기준과 규범에 근거한 파트너십의 정신으로 모든 거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지역적 차원에서의 인권 거버넌스”로 정의하였다(한국인권재단, 2014: 5).

그러나 이러한 정의에는 첫째, 인권도시가 전세계적 차원에서의 인권위기에 대응하고자 하는 지역적 노력임이 부각되고 있지 않으며, 둘째, 지역적 인권 해석이나 인권 구체화를 위한 문제의식이 충분히 담겨있지 않으며, 셋째, 다른 인권공동체와 구별되는 도시에서의 권리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이러한 비판을 고려하여 다시 정의한다면 “인권도시는 전세계적 인권 침해에 맞선 지역적 인권 실천의 단위로서, 지역 인권 당사자들의 참여를 통해 그 도시에 고유한 인권의 가치와 규범을 창출해내며, 글로벌 시대의 도시 문제로 인해 일어나는 권리 침해에 특별히 대응하는 도시”로 정의될 필요가 있다(정성훈, 2012: 400). 이와 더불어 인권도시에는 “전세계 인권 규범과 인권 체제의 재구성에 기여하는 도시”라는 보편주의적 지향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인권도시 운동의 대표적인 사업으로 진행되어 온 인권조례 제정이 과연 인권도시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일인가에 관해서는 회의적인 평가도 제기되고 있다. 조례가 선언적, 상식적 수준에 머문다는 평가, 조례의 시행을 위한 집행력이 담보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평가, 아래로부터의 시민사회 동력이 동반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안진, 2011: 560-561). 또한 지역의 인권 현실을 파악하고 인권 과제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인권도시가 권리를 구체적으로 보장해줄 수 없다는 지적, 국가 단위 인권보장체계를 지역 단위로 축소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하면서 “‘인권도시’에 대한 과장된 기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미류, 2012: 161-167). 그리고 많은 외국의 인권도시 사례나 외국에서 인권조례가 거둔 성과에 대해 이야기되곤 하지만, 한국은 그들 나라들에 비해 지방분권화 수준이 현저히 낮다는 점도 조례 제정 중심의 인권도시가 갖는 실효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따라서 한국에 적합한 인권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리고 글로벌 시대 아래로부터의 인권 위기 극복을 위한 공동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들이 해결되어야 한다. 첫째, 인권도시는 지역적 특수성과 인권의 보편성을 대결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주민들의 참여 과정 및 시민운동과의 소통은 물론이고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발굴해내는 아래로부터의 형성 과정을 중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진주가 형평운동의 역사를, 그리고 광주가 5.18 정신을 인권도시 추진의 주요한 문화적 자산으로 삼았듯이, 인권도시는 지역 문화가 보편적 인권을 수용할 수 있는가를 시험해보는 기획이어야 한다. 그런데 과거의 역사적 운동을 지역적 특수성을 발굴해내는 원천으로 삼는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지역문화에 내재된 인권 잠재력을 발굴해내는 일, 그리고 국가 차원에서는 파악되지 못하고 있는 지역의 비가시화된 비참을 드러내는 일 등도 진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능동적 주민의 참여와 시민운동의 협력은 기본이다. 이에 더하여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실상과 그들의 권리 요구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인권도시 형성 과정이 잘 진행될 때만 인권도시는 국가의 하위 업무 대행자가 아니라 인권의 보편성을 시험하고 보완하는 운동이 될 수 있다.

둘째, 국가 차원과 글로벌 차원의 조직과 제도에 의해 이루어지는 인권 침해의 지역적 양상을 추적하고, 그것에 맞설 수 있는 지역의 규범을 확립하고 자원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 지자체가 독자적인 인권조례와 인권기구를 갖춘다는 것은 국가기구가 막기 어려운 혹은 국가기구가 자행하는 인권 침해에 대해 맞설 수 있는 지역 역량을 키운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최근에는 글로벌 경제에 조응하기 위해 특별법에 의해 예외적으로 권리가 제한되는 지구가 생기고 있으며, 자유무역협정을 비롯한 여러 국제 경제 협정에 의해 초국적 기업이 국내법에 어긋나는 조치를 하더라도 제재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국처럼 지방분권화 수준이 미약한 나라에서는 한 도시가 이러한 인권침해에 맞서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모든 제도 개혁은 그것을 할 수밖에 없게 없도록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성숙할 때만 가능하다. 즉 지금 상태에서 법적으로 가능한 조치들을 취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도시 차원의 인권독립기구 설치, 인권 모니터링, 인권 저항운동 활성화 등을 통해 분권화된 미래를 예비해나갈 수 있다.

셋째, ‘도시에 대한 권리’의 문제의식 하에서 특히 주거권, 이동권, 접근권, 전유권에 대한 지역특수적 보장 제도를 마련해나가야 한다. 각 공동체는 그에 고유한 절박한 권리들을 필요로 한다. 서로를 잘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제한된 공간에 거주하면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마주치는 도시에서 긴급한 권리는 인권도시 추진에서 특별히 부각될 필요가 있다. 우선 도시에서 ‘배제’는 무엇보다 주거공간을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일어나며, 장애인이나 경제적 약자는 이동수단을 마련하지 못해 도시적 삶의 특징을 향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러한 이동은 공공공간 혹은 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와 결부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그러한 공간을 변형하여 전유하는 작업에 동참할 수 있는 권리도 가져야 한다(강현수, 2010: 28). 최근 서울시가 뉴타운 정책을 철회하고 주택개량사업과 마을공동체 사업을 펼치고 있듯이, 각 도시는 그 도시에 고유한 방식으로 이러한 주거권, 이동권, 접근권, 전유권 등의 실현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참고문헌>
강현수, 『도시에 대한 권리 –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 책세상, 2010.
미류, 「‘인권도시’에 대한 기대와 우려」, 한국공간환경학회, 『공간과 사회』 제39호, 2012.
안진, 「인권조례 제정운동의 성과와 한계: 광주광역시, 전북, 울산광역시 인권기본조례를 중심으로」, 전남대학교 법학연구소, 『법학논총』제31집 제2호, 2011.
은우근, 「인권 거버넌스의 실현으로서 인권도시」,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민주주의와 인권』 제9권 1호, 2009.
정성훈, 「보편적 인권 정당화의 위기와 인권도시의 과제」,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민주주의와 인권』 제12권 3호, 2012.
한국인권재단, 『2014 한국인권도시 백서』, 2014.
홍성수, 「한국사회에서 인권의 변동 -세계화, 제도화, 지역화-」, 안암법학회, 『안암법학』 43권, 2014.

작성자: 정성훈(서울대 철학과 시간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