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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 압축(하비의)
  분류 : 공간사회학
  영어 : time-space compression
  한자 :


시공간 압축의 개념은 세계적인 지리학자이며 마르크스주의자인 하비(D. Harvey)가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에서 가장 핵심적 요소로 제시한 것이다. 이 개념은 “개인적 또는 공공적 의사결정에 드는 시간의 지평이 축소되는 한편, 위성통신과 교통비용의 하락으로 그러한 의사결정이 훨씬 멀리 있는 여러 지역으로 즉시 전파될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하비, 1995; 194). 즉 시공간 압축이란 교통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라 인간 생활의 공간적 범위가 확장되고 시간적 속도도 빨라졌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공간과 시간이 인간 활동에 미치는 제약적 조건은 급속하게 감소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즉 공간은 정보통신으로 묶인 ‘지구촌’으로 줄어들거나 경제적으로, 생태적으로 상호의존하는 ‘우주선 지구호’로 축소되었으며, 시간 지평은 바로 지금 모든 것이 존재한다고 할 정도로 짧아졌다(하비, 1995; 294). 

이러한 의미에서 하비의 시공간 압축이라는 개념은 자넬(Janelle, 1969)이 제시한 ‘시공간적 수렴’(time-space conversion)이나 기든스(Giddens, 1981)가 제시한 ‘시공간적 거리화’(time-space distanciation) 등의 개념과 유사하다. 이 용어들은 근대 교통・통신기술의 발달로 거리의 마찰효과가 감소되면서 인간 활동의 시공간적 도달 범위가 급속히 확대되었음을 의미한다. 예로, 교통의 발달로, 영국 런던에서 에딘버러까지 여행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1776년 마차로 5760분 걸리던 것이 1966년 비행기로 180분으로 줄었다. 이러한 시간거리의 단축에 의한 시공간적 수렴은 먼 거리에 있는 사람과 상호작용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줄여줌으로써 개인이나 집단의 시공간적 이동성뿐만 아니라 상호소통이나 영향력의 시공간적 확장, 즉 시공간적 거리화를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하비의 시공간 압축의 개념은 단지 교통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른 시공간적 거리의 단축효과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비가 처음 이 용어를 제안한 이유는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하에서 시간에 의해 공간이 어떻게 절멸되는가(annihilate)를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자본은 한편으로 상호교류하기 위해 즉 교환하기 위해 모든 공간적 장애를 무너뜨리고, 전체 지구를 자본의 시장이 되도록 정복하고자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간으로 공간을 절멸시키고자 한다. ... 자본이 더욱 발전할수록, 자본은 동시에 시장의 더 큰 불균등한 팽창과 시간에 의한 공간의 더 큰 절멸을 더욱 추구하게 된다”(Marx, 1973; 539).

하비에 의하면, “시공간 압축은 시간을 통한 공간의 절멸과 회전시간의 단축을 끊임없이 추구하려는 자본축적의 압박에서 발생된다”(하비, 1995; 373). 즉, 자본주의의 발전과정 나아가 사회의 진보 과정은 ‘공간의 정복, 모든 공간적 장벽의 철폐, 궁극적으로 ’시간에 의한 공간의 절멸‘을 수반한다. 물론 전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인간은 물리적 공간의 이동에 필요한 시간을 줄이기 위하여 교통 기술과 수단을 발전시켜 왔지만, 특히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공간 압축은 급속히 촉진되었다. 왜냐하면, 자본에 의해 작동되는 모든 경제활동은 시공간 압축을 통해 자본의 회전시간을 감소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예로,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적기(just-in-time) 생산체계는 새로운 전자제어 기술과 소규모 일괄생산들을 결합시켜 필요한 시간과 장소에 상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상품 재고를 줄이고 자본의 회전시간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또한 자본의 회전을 가속화하기 위하여, 포디즘의 수직적 통합 경향과는 반대되는 수직적 분화(하청, 아웃소싱 등)를 추구하게 되었다.

생산조직 및 유통과정에서 자본의 회전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촉진된 이러한 가속화과정은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노동 강도의 강화(가속화)를 의미한다. 또한 생산에서 회전시간의 가속화는 그에 상응하는 교환과 소비 부문의 가속화를 수반한다. 유통산업의 발달로 상품들이 시장에서 더욱 빠르게 순환할 수 있게 되었고, 은행의 전산화와 신용카드의 사용 증대는 화폐의 유통속도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신용화폐의 증가는 미래에 발생할 수익을 미리 앞당겨 사용한다는 점에서, 시간적 압축의 또 다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시공간적 압축은 생산기술, 노동과정, 이데올로기, 소비 관행 등에서 즉흥성과 순간성을 초래한다. 인스턴트 식품이나 패스트푸드에 함의된 즉시성과 일회용컵이나 과대 포장 등에서 나타나는 처분성의 가치와 미덕이 강조된다. 이러한 점에서 하비는 자본의 순환과 축적을 촉진하기 위해 추동된 시공간적 압축이 오늘날 사회생활의 특이성을 만들어내는 근대적 아비투스(Habitus)를 변화시키는 방식에 관심을 두었다. 즉 자본 회전시간의 일반적인 가속화 과정과 이에 따른 시공간적 압축은 포스트모던 사회의 사고방식이나 정서, 행동방식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조건지운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새로운 시공간 경험, 즉 시공간 압축이라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어떤 종류의 대응이라고 주장된다(하비, 1995; 345).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근대성을 ‘견고한 모든 것이 공기 속에 녹아 버리는’ 세계로 서술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버만(Berman, 1982)의 해석에 의하면, ‘견고한 모든 것’, 즉 인간의 불완전한 내피를 감싸고 있는 숭고한 가치들, 영원성과 불멸성, 절대적 진리, 본질적 인간성에 대한 믿음 등은 더 이상 현대사회의 본질이 되지 못한다. 하비는 ‘시공간 압축’의 개념에서 ‘압축’이라는 용어를 신중하게 사용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역사가 생활의 속도에서 가속화되는 경향으로 특징지워지지만, 이를 통해 세계가 때로 우리 앞에 ‘무너지는’ 것처럼 느끼도록 하기 때문이다. 시공간적 압축의 효과는 견고한 모든 것이 ‘녹아 버리거나’ 또는 ‘무너지는’ 느낌을 가지도록 한다. 하비는 이러한 특이한 가변성(volatility), 즉 사회적 변화 리듬의 가속화가 어떻게 자본축적의 쉼 없는 팽창을 통해 점차 지구화되는 공간경제의 구조에서의 광범위한 전환과 연계되어 있는가를 보여주고자 했다(Gregory, 2009).

하비에 의하면, 이러한 포스트모던 시공간 압축의 조건은 자본주의적 근대화 과정에 내재한 딜렘마를 때로 과장하지만, 이에 대한 대응들은 과거와는 분명 차이를 보인다. 즉 1960년대 이후 서구 자본주의에서 발생한 시공간 압축의 강도는 경제적, 정치적, 사회문화적 영역들에서 심각한 순간성과 분절화의 특성들을 가지는 포스트모더니티 조건을 만들어낸다. 특히 이러한 시공간적 압축의 결과는 혼란적이며, 때로 위협적이라고 주장된다. 즉 시공간 압축은 ‘큰 소용돌이’, ‘불길한 예감’, 충격이나 붕괴감, 그리고 이로 인한 ‘정체성의 위기’를 초래하는 것으로 강조된다. 시공간 압축을 통한 공간과 시간의 객관적 성질의 근본적 변화는 우리가 세계를 재현하는 방식의 변화를 초래한다. 예로, 시공간 압축은 예술의 장르들(회화, 영화 등)에서 세계를 재현하는 방식을 바꾸도록 요구한다. 이에 따라, 시공간 압축의 조건들에 대응한 미학적 반응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혼란과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어떤 형태로든) 미학으로의 회귀가 보다 뚜렷해진다. 시공간 압축의 국면들은 분열적이기 때문에 미학으로의 회귀 및 설명과 적극적인 투쟁의 장으로서 문화의 힘으로의 회귀가 그러한 시기에 특히 첨예해지리라고 예측할 수 있다”(하비, 1995; 397). 즉 시공간 경험의 변화에 따라, 과학적 판단과 도덕적 판단 간 연계에 대한 확신은 무너지고, 사회적, 지적 관심의 초점으로서 미학이 윤리를 압도하며, 이미지가 서사(narratives)를 지배하고, 일시성과 분열이 영원한 진리와 통일된 정치에 우선하는 것처럼 간주된다. 그러나 하비는 이러한 미학적 대응보다는 “연속적인 파동을 겪는 시공간 압축의 역사의 일부로서 이러한 상황을 역사적 맥락 속에 놓음으로써 ...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을 역사 유물론의 분석과 해석”에 따라 접근할 것을 강조한다.

이와 같이 하비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으로서 시공간 압축의 개념은 포스트모던 사회이론에서 흔히 부각되는 심미적 대응보다는 역사유물론적 접근을 통해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하비는 이러한 상황들을 이해하기 위해 좌파보다는 보수적 이론가들, 예로 토플러, 벨 등의 주장을 급진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하비(1995; 348)에 의하면, 토플러는 거대사회를 향한 가속적인 흐름이 개인의 일상적 경험과 맞부딪쳐 붕괴된 여러 방식들을 제시했으며, 특히 소비에서 재화의 회전시간을 가속화시키기 위한 일과성이 ‘공적 및 사적 가치체계의 구조에서 순간성’을 만들어내고, 뒤이어 분절화된 사회의 ‘공감대 균열’ 및 가치 다양화의 환경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보여준다. 벨은 19~20세기 전환기에 교통과 통신체계의 발달로 ‘물리적 거리’는 압축되었으며, 이에 조응하여 그가 지칭한 ‘심미적 거리(aesthetic distance)’도 근대성의 문화적 형성을 특징짓는 즉각성, 충격, 감수성, 동시성에 미치는 영향에 의해 압축된다고 주장한다. 하비는 이러한 설명들에 추가하여 재현의 문화적 위기를 자본축적의 위기와 관련시키고자 한다. 즉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는 20세기 말 유연적 축적체제에 의해 추동된 시공간 압축의 새로운 단계의 징후로 이해된다.

요컨대 하비의 시공간 압축의 개념은 단순히 교통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른 시공간적 단축 효과를 서술할 뿐만아니라 포스트포드주의적 축적체제에 내재된 자본 회전시간의 가속화와 이에 따른 시공간적 의식과 재현 방식의 변화를 관련지워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개념화에 대해 몇 가지 문제점이 지적될 수 있다. 하비의 시공간 압축의 개념은 기본적으로 ‘절대적 공간’ 개념, 즉 공간을 사물과 분리된 용기(container)로 간주하는 용어 또는 메타포라는 점이 지적된다(Gregory, 2009). 달리 말해 시공간적 압축의 개념은 사물들 간의 관계 또는 네트워크의 효과로서 공간이 생성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가까운 것과 먼 것, 국지적인 것과 지구적인 것이 어떻게 상호침투하면서 새로운 시공간적 편성을 만들어내는가를 설명하기에는 미흡하다. 또한 시공간 압축의 개념은 지구지방화 과정 속에서 전개되는 공간적 차별성, 즉 지리적 불균등발전에 대한 설명이나 함의를 내포하지 않고 있다.

하비가 1989년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했던 시공간 압축이라는 용어는 이제 지리학뿐만 아니라 시・공간에 관심을 가지는 사회이론이나 분석에서 일반화된 개념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 하비는 이 개념을 2000년대 이후에는 더 이상 세련되게 논의하지 않았고, 대신 이 개념과 더불어 (또는 이 개념보다 더 중요하게) 다른 개념들, 예로 ‘공간적 조정’(spatial fix)의 개념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 개념은 하비가 『자본의 한계』(1982)에서 제시한 이후 가장 최근에 출간한 저서, 『자본의 17가지 모순』(2014)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논의되고 있다. 공간적 조정의 개념은 한편으로 총자본의 일부가 특정 장소에 물리적으로 고정됨을 의미하며 또한 과잉축적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지리적 확장 과정에서 장소에 고정된 가치가 위협받는 모순된 상황을 의미한다(하비, 2014; 230). 공간적 조정의 개념은 시공간 압축이나 ‘시간에 의한 공간의 절멸’의 개념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즉 하비(1995; 314)의 서술에 의하면, “‘시간을 통한 공간의 절멸’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특수하고 고정적이며 움직일 수 없는 공간들을 생산해야 할 뿐만 아니라 회전시간이 느린 부문에 장기적인 투자(공장 자동화, 로봇 등)를 하여 자본의 회전시간을 가속화해야 한다. ... 시공간 압축은 이러한 모순의 연계구조 속에서 작용하는 힘들의 치밀함에 대한 징표”로 간주된다. 그 외에도 하비의 공간 관련 개념들은 자본의 순환과정을 설명하는 ‘3차 순환론’이나 신자유주의의 핵심으로 제시된 ‘탈취에 의한 축적’의 개념 등과 관련시켜 이해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최병두, 「데이비드 하비의 지리학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간들」, 『한국학논집』, 42, 7-38, 2011.
Berman, M., All That is Solid Melts into Air, Verso, New York, 1982; 윤호병 외, 『현대성의 경험』, 현대미학사. 2004.
Giddens, A., A Contemporary Critique of Historical Materialism, Macmillan, London, 1981; 최병두 역, 『사적 유물론의 현대적 비판』, 나남, 1991.
Gregory, D., Time-space compression, in Gregory, D. et al., The Dictionary of Human Geography, Wiley-Blackwell, London, 757-758, 2009.
Harvey, D., The Limits to Capital, Blackwell, 1982; 최병두 역, 『자본의 한계』, 한울, 1995.
Harvey, D., The Condition of Postmodernity, Blackwell, 1989; 구동회,박영민 역,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 한울,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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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lle, D., 1969, Spatial reorganization: a model and concept, Annals of the Association of American Geographers, 59, 348-364.
Marx, K., 1973(edn), Grundrisse, Harmondsworth, Middlesex.

작성자: 최병두(대구대 지리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