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사이보그(Disabled Cyborg)는 사이보그 이론(Cyborg Theory)과 장애학(Disability Studies)의 교차점에서 등장한 개념으로, 생물학적 신체와 기술, 그리고 정체성의 경계를 재구성하려는 포스트휴먼적 사유를 반영한다.
이 개념의 이론적 기초는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가 1985년에 발표한 「사이보그 선언(A Cyborg Manifesto)」에 있다. 해러웨이는 “우리는 모두 키메라chimera로, 이론과 공정을 통해 합성된 기계와 유기체의 잡종, 곧 사이보그다. 사이보그는 우리의 존재론이며, 정치는 여기서 시작된다.”(해러웨이, 2019:19)라고 선언하며, 사이보그를 인간과 기계, 자연과 문화, 생물학과 기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혼종적 존재(hybrid being)’로 정의한다. 이러한 사이보그 존재론은 성별, 인종, 성적 지향, 민족성 등 고정된 정체성 범주에 내재한 배제와 억압에 저항하는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특히 여성, 유색인종, 제3세계 노동자, 퀴어 등 억압과 배제를 경험한 이들이 사이보그 개념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유연하게 재구성하고, 기존 권력 구조에 맞서 정치적 목소리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이론적 역할을 했다.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존재론은 장애학(Disability Studies)과 접목되어 ‘장애 사이보그(Disabled Cyborg)’라는 새로운 이론적 틀로 확장되었다. 특히 기술 의존적 신체를 결핍이나 보완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능력주의적 시각을 비판하면서, 보조기기, 인공장치, 디지털 기술과의 결합을 통해 형성되는 신체를 하나의 존재 방식이자 윤리적·정치적 가능성으로 조명한다. 이에 따라 ‘장애 사이보그’는 장애를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기술과 환경, 그리고 관계적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수행적 주체성으로 사유한다. 나아가 이 개념은 신체의 경계와 자율성, 그리고 의존성에 대한 기존 통념을 전복하며, 신체를 둘러싼 권력과 윤리의 문제를 새롭게 조명하는 비판적 담론의 장을 형성한다.
이러한 관점은 이후 여러 장애학자들과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에 의해 더욱 이론적으로 확장되었다. 대표적으로 앨리슨 케이퍼(Alison Kafer)는 『Feminist, Queer, Crip』(2013)에서 페미니즘, 퀴어, 크립 이론을 결합해 장애와 기술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한다. 케이퍼는 “이제는 장애인이 단순히 ‘보조’ 기술이나 ‘적응’ 기술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장애 있는 몸이 자명한 사이보그라고 쉽게 언급하지 않는 대신, 장애와 사이보그 사이의 관계를 가장 잘 논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케이퍼, 2023:304)고 주장한다. 이는 장애인의 삶을 단순히 결핍을 보완하는 기술의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미래 가능성을 재구성하는 존재론적 실천의 장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장애인의 삶을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다양한 감각과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동적 신체로 파악하며, 정상성, 치유, 미래 담론에 도전한다. 흔히 당연시되는 장애인의 ‘미래 없음(futurity denial)’에 맞서, 케이퍼는 “불구화된 정치(cripped politics)”와 “불구 미래성(crip futurity)의 정치”를 통해 장애의 미래를 새롭게 상상하고 정치화할 것을 제안한다.(케이퍼, 2023:31) 이는 비장애 중심주의와 장애의 탈정치화를 넘어, 장애가 미래 가능성과 정치적 상상력의 원천임을 강조하며 “장애의 미래에 대한 탐구”(케이퍼, 2023:129)를 적극 요청하는 것이다.
김초엽과 김원영은 공저 『사이보그가 되다』(2021)에서 “김초엽은 보청기를 착용하고 김원영은 휠체어를 타며 생활하듯, 우리는 기계와 결합한 유기체라는 점에서만 보아도 ‘사이보그적’인 존재일 것이다”(김원영, 2021:11)라고 가정하며, 기술과 신체가 결합된 존재로서의 ‘장애인 사이보그’를 상정한다. 이들은 “현실의 장애인들”이 “더 극적으로 기술과 관계를 맺고 살아”(김초엽, 2021:38)간다는 점에 주목한다. 예컨대 보청기가 유발하는 염증, 휠체어 사용 중 발생하는 신체적 제약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새로운 감각은, 기술과 환경과의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서 장애인 사이보그의 정체성과 일상이 재구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나아가, 장애인 사이보그의 존재론이 보편적 인간 조건에 대한 성찰로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장애인 사이보그를 이야기하는 것이나 기술과 취약함, 기술과 의존, 기술과 소외를 살피는 것이 결국 모든 이들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싶다. 독립적이고 유능한 이상적 인간과 달리, 현실의 우리는 누구도 취약함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김초엽, 2021:40)
특히 이들의 작업은, 해러웨이가 제시한 사이보그 존재론을 현실의 구체적 맥락 속에서 구현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해러웨이는 “사이보그 신체는 순수하지 않다. 에덴에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이보그 신체는 통합적 정체성을 추구하지 않기에 종말 없는 (또는 세계가 끝날 때까지) 적대적 이원론을 발생시키며, 아이러니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해러웨이, 2019:83)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은 기술과의 결합이 고통과 불화를 동반하는 장애인 사이보그의 현실에서 가시화된다. 예를 들어, 보철물이 신체를 짓누르고, 보청기가 염증을 유발한다. 이는 기계와 인간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은 채 “불화”하며, 이 “불완전한 동거”(김초엽, 2021:138) 자체가 장애인 사이보그의 삶을 구성하는 본질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기계와 연결된 장애인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감각을 경험하고, 하이브리드 신체로서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해 나가기도 한다.
이처럼 장애 사이보그는 기술, 신체, 사회가 복잡하게 얽힌 관계 속에서 장애를 고정된 결핍이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로 재정의하며, 미래의 존재론적 상상력을 확장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정상성과 능력 중심의 이분법을 해체하고, 선형적 시간성에서 벗어난 다양하고 비동기적인 삶의 경험을 포용한다. 또한, 장애 사이보그는 차이와 의존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윤리와 공동체의 가능성을 열며, 우리 모두가 지닌 취약성과 상호 연결성을 성찰하게 한다.
참고문헌
도나 해러웨이, 황희선 옮김, 「사이보그 선언 –20세기 후반의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주의 페미니즘」, 『해러웨이 선언문』, 책세상, 2019.
앨리슨 케이퍼, 이명훈 옮김,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 –불구의 미래를 향한 새로운 정치학과 상상력』, 오월의 봄, 2023.
김초엽, 김원영, 『사이보그가 되다』, 사계절, 2021.
작성자: 김혜선 (한양대학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