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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영토화와 재영토화
  분류 :
  영어 : De-territorialization and Re-territorialization
  한자 : 脫領土化와 在領土化


최근 도시연구자들은 전쟁, 기아, 정치적 억압, 종교적 불관용 및 지속적인 빈곤에서 비롯된 대규모 이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현상들을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로, 또 이로 인해 발생한 이주민들을 ‘난민’(refugee)으로 부른다. 또 대규모로 이동한 난민들이 원 거주지에서 실행했던 문화적 관행에 따라 이주한 지역의 일상생활을 조직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도시연구자들은 이를 ‘재영토화(re-territorialization)’라고 일컫는다.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양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 도시공간에서 일어난 종족적(ethnic) 구성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주제이다. 대규모 이주는 현대의 정치 불안과 전 지구적 경제 변화 그리고 전쟁이 현지 주민들에게 미친 영향의 심각성을 보여준다(Appaduari, 1996).

탈영토화/재영토화 과정의 사례 가운데 하나가 유럽 유태인의 학살(holocaust)과 그 결과이다. 독일 나치의 침략을 받은 유럽 국가들에 거주하던 유태인들이 대규모로 학살되거나 이주한 결과, 시오니즘, 즉 고대의 성스러운 땅(Holy Land)에 있는 유태인의 고향을 찾겠다는 오래된 염원이 세계적으로 지지를 받게 되어, 1948년 유태인 국가인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귀결되었다. 유태인은 유럽과 중동 두 지역에 걸쳐 거주해온, 근본적으로 다양한 종족 집단들이지만, 이스라엘이라는 한 국가로 재영토화되어 통합되었고, 그 이후 이런 과정이 제도화되면서 질적으로 새로운 문화가 창출되었다.

불행히도 탈영토화된 종족과 종교적 집단들 가운데 재영토화를 제대로 이룬 경우는 많지 않다. 이들 중 티벳인이야말로 가장 오랫동안 고통 받은 집단일 것이다. 1950년 중국의 티벳 침공과 이어진 티벳 종교와 문화에 대한 탄압으로 인해 난민들은 인도 등지로 잇달아 탈출했다. 외국에 도착한 종교 지도자들은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티벳 문화를 보존하고자 노력했는데, 인도의 다르질링 지역사회가 대표적이다. 물론, 티벳인들은 인도 외에도 세계 곳곳으로 진출했고, 전체적으로 보아 여전히 탈영토화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한때 자신들의 국가를 가졌지만 이제는 다른 나라에서 국가 없이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티벳인의 사례가 난민 집단들 가운데 가장 혹독하다고 할 수는 없더라도, 정치적 극한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팔레스타인인과 비아프라족(Biafrans), 쿠르드족(Kurds)과 같은 다른 난민 그룹들의 상황도 혹독하다. 그들은 현재 탈영토화되어 있는데다 자신의 국가를 가져본 적도 없다. 이들처럼 자신의 영토 바깥에서 일정 수준의 종족 정체성(ethnic identity)을 유지하며 많은 인구를 지닌 집단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20세기의 격동이 세계적 수준에서 많은 사람들을 그들의 땅에서 쫓아냈음을 뜻한다.

물론 이와는 달리 대규모의 난민들이 도시를 바꾼 사례도 존재한다. 카스트로가 주도한 쿠바 혁명 이후 쿠바를 탈출한 난민들이 대거 몰려든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의 경우가 그렇다. 쿠바인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마이애미에는 ‘작은 아바나(Little Havana)’라는 별칭까지 얻었고, 이런 과정을 겪으며 전에는 남부의 흑인과 백인 그리고 북부 출신의 은퇴한 유태인들이 섞여 살았지만, 이제는 히스패닉계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늘었다(Portes and Stepick, 1993).

영국에서는 예전의 영연방(Commonwealth) 국가들(구 식민제국의 현대적 형태)에서 온 이주민들이 도시들을 변화시켜왔다. 17세기 이래 식민 핵심과 과거 종속 지역 사이에서 돈과 사람이 오가는 일은 지구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현재 런던에서는 300개가 넘는 언어들이 사용된다. 일부 종족 집단은 미국에서처럼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면서 도심에서 시골로 이주해갔다. 한편, 발칸반도나 아프가니스탄 출신처럼 많은 종족집단들의 탈영토화는 유럽 도시들의 많은 부분을 재영토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민 인입 도시들(host cities)이 이들 이주민을 적절히 수용하지 못하고, 이주자들이 사회의 사회경제적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면서, 이들 중 젊은 층은 범죄집단이나 테러조직에 휩쓸리기 쉽다. 예컨대 파리의 문화는 과거의 식민지였던 북부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인해 완전히 변하고 말았다.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및 라틴 아메리카 출신 사람들의 탈영토화/재영토화 문제는 이주와 지구화,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의 현재 과정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미주:
* 여기서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개념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천개의 고원』에서 전개했던 이론적 논의와는 다른 맥락으로 사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Appadurai, A. 1996. Modernity at Large: Cultural Dimensions of Globalization. Minneapolis, MN: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Portes, A. and A Stepick, 1993. City on the Edge: The Transformation of Miami. Berkeley, C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M. 고트디너와 레슬리 버드 저, 남영호, 채윤하 역, 도시인문학총서 16, <도시연구의 주요개념>(라움, 2013), pp.41-44

작성자: 신재진(서울시립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