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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도시
  분류 : 도시의 이념과 모델
  영어 : cooperative city
  한자 : 協同組合 都市


국제협동조합연맹(ICA, international cooperative alliance)은 1995년 맨체스터 총회에서 협동조합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enterprise)를 통해 공동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의 자율적 단체(autonomous association)"라고 정의했다. 미국 농무부(USDA)는 1987년 미국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협동조합은 이용자가 소유하고 통제하며, 이용규모를 기준으로 이익을 배분하는 사업체(business)"라고 정의했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경제에서 이익극대화를 추구하는 일반 회사와는 다른 고유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시장 안에서 작동하고 그 원리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경제적 차원의 사업체이지만, 동시에 경제외적인 목적을 추구하고 사회에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사회적 차원의 단체인 것이다(자마니, 2012:22). 협동조합은 조합원(member)이 이용자(user)인 동시에 소유자(owner)라는 점에서 ‘이용자소유회사’로도 불린다. 주식회사 같은 ‘투자자소유회사’가 소유자인 주주에게 최대의 투자이익을 제공할 목적으로 운영되는 반면, 협동조합은 소유자인 조합원에게 최대의 이용 편익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협동조합은 경쟁적 사업(business)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압력단체로 활동하는 협회 조직과도 명확히 구별된다. 경쟁이 없는 독과점 사업을 주로 운영하는 공기업과도 다르다.(NHERI리포트, 2010:9)

전 세계 협동조합들은 협동조합 원칙(cooperative principles)을 공유하고 있다. 1995년에 개정된 국제협동조합연맹의 협동조합 7대 원칙은, 1.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가입 2.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통제(1인1표) 3.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4. (조직의) 자율과 독립 5. (조합원에 대한) 교육훈련 및 정보제공 6. 협동조합 간의 협동 7. 지역사회 기여이다.

협동조합 사업체는 공동의 신뢰 생태계가 형성돼있는 곳에서 자라난다. 당연히 많은 협동조합은 공동체가 살아있는 도시의 산물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중세도시길드를 협동조합의 원형적 모습으로 여긴다. 상인과 장인집단의 대표들이 각자의 이해를 호혜적으로 관리하는, 서로 연대하고 가난을 배려하는 사업체였던 것이다.

근대적 형태의 협동조합은 산업혁명 초기 공장들이 모여 있는 유럽의 도시에서 시작됐다. 최초의 성공적인 협동조합으로는 영국 랭카셔 지역의 작은 도시 로치데일에서 싹을 틔운, 공정한 선구자들의 ‘로치데일 협동조합(Rochale Society of Equitable Pioneers)’이 꼽힌다. 1844년 28명의 공장노동자들이 28파운드의 출자금을 모아, 품질과 가격 속이지 않고 밀가루와, 버터, 설탕, 오트밀을 판매하는 협동조합 가게를 열었다. 협동조합의 대표적 모델인 소비자협동조합의 탄생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는 목수들의 노동자협동조합이 생겨났다. 독일의 도시와 농촌에서는 농민과 도시서민의 고리채 해결을 이끈 신용협동조합이, 덴마크에서는 그룬트비히(Grundvigts) 주교가 주도한 농민협동조합이 결성됐다.

소비자협동조합, 노동자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농민협동조합, 이 네 가지 모델이 협동조합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협동조합의 다섯 번째 모델은 한 세기 뒤인 1960년대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사회적 협동조합’이다. 사회적 부조와 연대를 목적으로 하는 이탈리아의 사회적 협동조합은 1991년 법률 제정으로 뒷받침됐으며, 조합원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활동한다는 점에서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상호협력을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럽 사회적기업의 원형으로 인정받는다.(자마니, 2012:47~48)

협동조합 생태계가 살아있는 대표적인 ‘협동조합 도시’로는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주의 볼로냐가 꼽힌다. 다섯 가지 모델의 수많은 협동조합들이 실핏줄처럼 퍼져, 도시경제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굴지의 대기업집단으로 성장한 노동자협동조합 몬드라곤그룹이 소도시 몬드라곤 경제를 지배하고 있으며, 캐나다의 퀘벡주는 최대 금융기업으로 성장한 데자르뎅 신용협동조합이 도시와 농촌의 협동조합 생태계를 이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시가 도시 마을의 협동조합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많은 협동조합들은 글로벌 대기업 규모로 성장했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2011년에 발간한 <글로벌 300 리포트>를 보면, 전 세계 300대 협동조합 기업의 총매출이 1조6000억 달러(2008년 기준 환산)에 이른다. 세계 9위 경제대국인 스페인의 국내총생산보다 많고, 8위인 러시아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농업(4720억 달러), 금융(4300억 달러), 소매(3540억 달러) 분야 협동조합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져, 전체의 77.8%에 이르렀다. 보험협동조합(2820억 달러), 노동자협동조합(350억 달러), 의료협동조합(270억 달러)들이 뒤를 이었다(ICA, 2011).

협동조합이 전체 경제의 주류로 올라서지는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본 조달에 불리하다는 큰 약점을 안고 있다. 자본주의 기업(투자자소유회사)은 주식시장 등을 통해 자유롭게 대규모 자본을 동원할 수 있는데 반해, 협동조합은 조합비로만 자본을 동원할 수 있다. 게다가 자본의 사회적 성격을 강조한다. 협동조합이 (1주1표가 아니라) 1인1표의 민주적 방식을 채택한다는 점 또한 의사결정의 신속성을 저해하고 내부 갈등을 키울 수 있는 소지가 된다.

이중적 정체성의 협동조합이 성공하기 위한 필수요건으로 협동조합 네트워크의 존재가 부각된다. 스페인의 몬드라곤(Mondragon)이나 이탈리아의 볼로냐(Bologna)에서도 네트워크가 중요한 구실을 했으며, 이것이 지방정부의 지원과 어우러지면서 세계적인 협동조합 모델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다. 전통적 협동조합의 1인1표 및 자본조달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새로운 시도도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신세대협동조합(New Generation Cooperatives)은 조합원의 출자 지분 거래를 허용하고 출자규모에 따라 조합원의 사업이용 권리에 차등을 두었다. (정태인, 2013:201~203)

우리나라의 협동조합은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그 이전까지는 농협, 수협, 엽연초, 산림, 중소기업 중앙회, 신협, 새마을금고, 생협 등 8개 개별 협동조합법이 있었지만, 주로 1차 산업 중심이었고 정부 주도로 만들어졌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 가운데 2015년에 1조원 매출 규모로 성장한 한살림, 아이쿱, 두레, 행복중심 등 생협의 발전은 눈부시다. 협동조합기본법은 5인 이상 모이면 금융을 제외한 모든 경제, 사회 분야에서 자유롭게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물꼬를 텄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주식회사, 사단법인 등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형태의 협동조합이란 사업조직의 등장도 가능하게 했다.(이대중, 2014:63) 기본법이 시행된 2012년 12월 이후 2016년 4월말까지 3년여 사이에 새로 문을 연 협동조합이 9300여개에 이른다.


<참고문헌>
스테파노 & 베라 자마니(Zamagni, Stefano & Vera) 공저, 송성호 옮김,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 La Cooperazione』, 붇돋움, 2012.
NHERI 리포트 통권96호, 『협동조합길라잡이』, NH농협경제연구소, 2010.
ICA, 「Global 300 Report 2010」, 2011(http://ica.coop/en/global-300).
정태인 이수연, 『정태인의 협동의 경제학』, 레디앙, 2013.
이대중, 『협동조합 참 쉽다』, 푸른지식, 2014.

작성자 : 김현대(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