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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주변부 도시의 재현
  분류 : 한국의 도시영화
  영어 : Town around Seoul Movie
  한자 : 漢城 周邊部 都市


도시 외곽에 대상(帶狀) 형태로 발생한 소규모 도시를 ‘위성도시(satellite town)’라 부른다. 이 명칭이 전근대적이라는 지적이 1960년대에 이미 나왔지만 서울과 부산 외곽에 주로 형성되었던 주변부 시가에 대한 명명의 근대화는 시급하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강남 개발이 마무리되고 서울의 주택난이 심각해지자 상황은 달라졌다. 제6공화국이 1기 신도시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베이비 붐 세대가 1990년대 중반 이 부동산 시장의 소비자로 대거 입성하면서 위성도시를 대체할 만한 용어‘신도시(new town)’가 부상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위성도시는 자체의 의미 지분을 여전히 갖고 있다. 위성도시가 역사적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도시라면, 신도시도시 계획의 일환으로 개발된 지역을 가리키는 방향으로 의미 분화를 이룬 것이다.

한국 영화에서 서울 외곽의 재현은 트라우마적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연쇄살인, 공단 화재, 집단 성폭행 등 사건 양상은 다양하나, 개발 자체가 원주민에게 트라우마로 재현된다는 데 이 지역 영화의 독특함이 있다. 신도시 개발은 대개 구도심과의 조화, 원주민과의 융합을 고려하지 않고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1기 신도시로 지정된 분당, 산본, 일산, 중동, 평촌 가운데 산본은 군포시, 중동은 부천시, 평촌은 안양시에 소속되어 있어 이곳에 들어선 신도시도시 내의 신도시(new town in town)로 분류된다. 반면, 분당은 개발 이전 성남의 남단녹지였으며, 일산은 전형적인 근교농업지역으로 주민 대다수가 농민이었다. 따라서 구(舊)일산 원주민이 신도시 건설 후 겪은 개발 지역과의 이질감과 상대적 박탈감(윤현신, 2000: 121)은 여타의 신도시가 겪지 못했던 것이라 하겠다.

<초록물고기>(1997, 이창동)는 개발 이전의 일산을, 막둥이(한석규 분)의 가족사진을 통해 제시한다. 이들 가족은 일산에 땅을 소유했었지만, 아버지의 사망과 신도시 건설 이후 뿔뿔이 흩어졌다. 이들은 신도시 주민을 상대로 파출부, 계란 행상을 하거나 구도심에서 다방 레지로 생계를 유지해 나간다. 영화의 도입부의 한 장면. 군 제대 후 이러한 변화를 체감하게 된 막둥이는 군복차림으로 지하철 출구에서 뒷모습으로 멍하니 서 있다. 그의 머리 위에 ‘일산신도시’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명시되었으나 그것은 지시대상과 연결되지 못하는 불구의 기호이다. 이 숏은 신도시 개발 후 원주민이 느끼는‘장소상실(placelessness)’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막둥이의 정체성은 장소성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그는 고향 집을 배경으로 한 옛날 가족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닌다. 이 사진은 미애(심혜진 분)가 막둥이가 죽은 후 장소의 동일성을 확인하는 지표가 된다. 막둥이가 추구하는 질서는 사진 속에 박제된 과거의 어느 순간이다. 막둥이가 사라지자 그의 가족은 한데 모여 새로운 방식의 삶을 실천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막둥이라는 인물의 과거지향성이 시대착오적인 것임을 영화가 인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창동은 막둥이가 제시하는 이상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신도시 건설이 우리 이웃의 삶을 어떠한 방식으로 변화시켰는지 알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파주>(2009, 박찬옥)는 2기 신도시 파주를 배경으로 한다. 2기 신도시도시로서 자족기능을 갖추지 못한 1기 신도시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향의 개발이 추진되었다. 그럼에도 개발을 반대하는 원주민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파주>는 주거지를 파괴하려는 움직임에 맞서 싸우는 철거대책위원회 활동을 그리는 한편, 미스테리 구조의 멜로드라마를 보여준다. 지나간 운동권 세대 중식(이선균 분)이 철대위의 중심에서 활동하면서 부모가 물려준 집을 지키려는 처제 은모(서우 분)를 돕는다. 은모는 거주권(the right of residence)을 지키려는 싸움보다 언니인 은수(심이영 분)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에 관심이 더 많다. 그 결과 투쟁이 전면에 나오지 못하고 형부와 처제 간에 흐르는 심리의 미묘함이 파주를 둘러싼 안개처럼 영화를 뒤덮게 된다. 이 영화의 파주(坡州)는 파주(破住)면서 동시에 파주(把住)인 것이다. 엔딩 신(scene)에서 미애(한예리 분)의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아 파주를 빠져나가는 은모의 반대편 차선에는 나이트클럽 업주이자 개발업자 보스(이경영 분)가 검은색 중형차를 타고 스쳐 지나간다. 이들의 엇갈림은 원주민과 이주민 삶의 방향성과 차이를 가시화한다.

도시 낙서 괴담을 모티프로 활용한 <숨바꼭질>(2015, 허정)은 이주자의 시선에서 도시 공간을 바라본다. 성수(손현주 분)가 보여주는 청결과 위생에 대한 강박증은 장소의 역사와 기억을 밀어내고 신도시에 입성한 이주자 내면의 불안과 공포의 반영이다. 그의 심리적 균열은 아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가족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양자면서 부모로부터 모든 재산을 상속받았고, 빈곤의 밑바닥에서 도움을 청하는 형 성철(김원해 분)의 간절한 요청을 무시하며 살아왔다. 이러한 설정은 신도시 주민이 누리는 안온한 일상이 한국 사회에 내재한 구조적 모순에서 취한 이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해석으로 이어지게 한다. 계급적 약자의 시선에서 볼 때 신도시 이주자가 된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모순의 부당한 수혜자인 것이다. 이들 역시 무분별하게 하우스푸어를 양산하게 한 정책의 피해자라고 보아야 할 것이지만, 이러한 사정을 알 리 없는 주희(문정희 분)의 부동산에 대한 소아병적 집착과 광기는 부당이득 취득이라는 표면적 혐의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난다. 평화(김지영 분)의 영어 실력에 주희가 자부심을 드러내는 장면은 이들의 욕망이 중산층 따라잡기의 일환임을 드러낸다. <숨바꼭질>에 나오는 성수의 아파트는 2기 신도시인 김포시 소재의 S-아파트, 지방으로 설정된 주희의 아파트는 서울의 동대문 아파트에서 로케이션이 이루어졌다. 1965년 건설된 서울시 최고(最古)의 아파트로, 한때 연예인 아파트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유명세를 탔던 동대문 아파트와 김포의 신축 아파트와의 지역적 설정의 전도가 인상적이다.

수원은 삼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지닌 위성도시이며, 식민지 근대기에 걸출한 인물을 다수 배출한 곳이다. 최초의 여성화가 나혜석도 수원 출신인데, 그의 일대기가 영화화되기도 했다-<화조>(1979, 김수용)-. 홍상수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는 수원의 화성행궁, 금불상, 화성박물관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영화감독 춘수(정재영 분)는 행궁에서 가장 예쁜 ‘복내당(福內堂)’에서 모델 출신 아마추어 화가 희정(김민희 분)을 만난다. 이들의 관계가 어긋나거나 순조로워짐에 따라 춘수가 수원에 온 목적인 관객과의 대화는 실패하거나 성공을 거둔다. 복내당의 명칭은‘복을 생겨나게 하는 것은 안으로부터이다’라는 문장에서 왔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와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로 이루어진 2부 구성은 반복을 통해 불가역적인 현재의 시간을 마법적으로 돌려놓는 한편, 현재에 대한 긍정을 보여준다. 화성은 수원이 1949년 읍에서 시로 승격됨에 따라 화성군으로 분리되었다가 2001년에 군에서 시로 승격되었다. <살인의 추억>(2003, 봉준호)은 자체의 중심을 지닌 소핵도시로서 화성을 재현한다. 1980년대 중반 살인사건 수사를 해야 할 경찰 병력은 도심의 민주화 시위를 막기 위해 치안 공백을 빚어내고, 농촌 주민의 삶은 새로 들어선 공장 지대로 인해 이전과 전혀 다른, 이질적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익명적 이웃과의 무차별적 만남은 주민에게 일상의 위협과 공포를 야기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근대로의 이행기에 나타난“도시 공간, 그리고 전근대적인 도농 혼합공간과 개인 일상의 이데올로기적 관계를 정확하게”보여준다(이승환, 2006:51).

안양은 서울과 경부선에 인접한 지리적 조건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시흥에 소속된 농촌에서 위성도시로 성장했다가 현재는 자체의 추진력을 지닌 지방 도시로 위상을 굳혔다. 안양은 “마음을 편안하게 지니고 몸을 쉬게 한다”는 의미를 지닌, 극락정토(極樂淨土)와 같은 말이다(오흥석, 2008:?). 이러한 의미를 활용한 영화가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2010, 박찬경)이다. 박찬경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결합된 형식으로 이를 그려낸다. 그는 안양을 여공의 도시로 간주, 이 공간을 여성 중심의 숏으로 재현한다. 이 영화가 중심으로 다루는 사건은 1988년 안양에서 발생했던 ‘그린힐 공장 화재 사건’이다. 이는 밖으로 자물쇠가 걸린 기숙사에서 잠자던 22명의 여공이 한밤의 화재로 전원 사망한 사건이다. 영화는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굿을 제안한다. 비극적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망각되어버린 이들을 기억으로써 부활하게 하고 남겨진 자의 상처를 위로하는 치료제로서 영화의 기능을 되새겨보게 하는 영화이다.

이외에 서울 외곽 지역을 다룬 영화로, 밀양에서 일어났던 집단 성폭행 사건을 이천 지역으로 옮겨 재현한 <시>(2010, 이창동)가 있다. 이 장소 이동은 한국의 도시가 대부분 비슷비슷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것 같다. 가해자 학부형의 이기적인 모습이 특히 그러한데, 이들이 사건 수습을 의논하는 장소가 부동산이라는 점 또한 한국 사회의 재산 증식 욕망과 수단이 유사하다는 점을 말한다. 이 영화는 소녀 취향으로 시를 쓰는 할머니 미자(윤정희 분)가 보여준 타자의 고통에 대한 놀라운 감응력과 고통, 그리고 윤리적 선택을 그리고 있다. 손자 종욱(이다윗 분)이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 집단에 속해있다는 사실은 그녀의 고통을 더욱 구체화하는데, 미자는 가족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 보다 열린 타자의 세계로 나아간다. 이 과정은 종욱에서 박 형사(김종구 분)로 파트너가 교체되는 배드민턴 신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되었다. 그런데 왜 이천(利川)이 배경이 되었을까? 강에서 투신자살을 한 소녀와 이 도시를 지나가는 강줄기의 만남이 이에 대한 답이 될 듯하다. 이 강은 이천(利川)이라는 명칭과 관련된 고사를 갖고 있다. 고려 건국 초기 한 이천 주민이 강을 건너서 태조 왕건을 이롭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인데, 이는 미자 역시 피해자 소녀와 동일한 죽음을 선택했다는 암시를 떠오르게 한다. 영화는 두 여성이 사라져간 강물을 스크린 가득 메우면서 마무리된다. 이때 이 강을 어떻게 건너는 것이 우리의 이웃과 사회를 이롭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진다.


<참고문헌>
「이천시」, 『네이버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64764&cid=43740&categoryId=44178>, (2016. 05. 25).
윤현신, 「신도시와 주변 구도시 주민의 삶의 질에 관한 의식의 비교 연구: 일산신도시와 구(舊)일산을 사례로」, 『지리학논총』, 제36호, 2000, 8.
이승환, 「현대 도시공간 재현의 이데올로기적 변화에 관한 연구: <살인의 추억>과 <극장전>을 중심으로」, 『한국문화콘텐츠학회논문지』, Vol. 6 No. 8, 2006.

작성자: 진수미 (서울시립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