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이미지
도시인문학 사전
모두보기모두닫기
박스하단
사전 > 도시인문학 사전
 
농민공과 신노동자
  분류 : 중국도시문화
  영어 : Rural Migrant Workers & New Workers
  한자 : 農民工, 新工人


중국에서 ‘농민공’(農民工)이라는 용어는 농촌 호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농업에 종사하지 않고, 도시로 이주하여 노동을 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농민공은 개혁개방 30년 동안 소유제의 다원화, 기업형태의 다양화가 진행되면서 새롭게 출현한 집단으로서 이제까지 민공(民工), 품팔이(打工者), 공돌이(打工仔), 공순이(打工妹) 맹목적 유동인구(盲流), 외래공(外來工)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불려왔다(嚴善平, 2014: 9). 최근까지도 농민공들은 농촌 호적 소유자라는 신분적 특수성으로 인해 농민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 모호한 집단으로 규정되어 왔다. 그러나 2천 년대에 접어들면서 농민공의 규모가 급성장하게 되고, 농민공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 되었다. 이에 따라 2006년 3월 27일에 중국 국무원은 <농민공 문제의 해결에 관한 약간의 의견>(國務院關于解決農民工問題的若幹意見)을 발표하여 농민공이 중국의 ‘새로운 노동대군’이며, ‘이미 산업노동자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 되었다’고 명확하게 규정했다. 농민공의 전체 규모는 2016년 현재 대략 2억 8천만 명 정도인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그중에 ‘농업에 종사하지 않고 농촌도 떠난’(離土離鄉) ‘외지유출 노동자’는 약 1억 7천만 명으로 이들이 도시지역 취업 노동자의 절대적 비율을 점하고 있다. 또한 ‘농업을 그만두었지만 농촌을 떠나지는 않은’(離土不離鄉) ‘본지 노동자’는 약 1억 1천만 명에 달한다. 

중국에서 농민공이 형성되어온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된다. 제1단계는 1978년~1988년까지의 ‘험난한 유동’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농민들의 이주노동에 대한 정부의 엄격한 통제가 시행되었고, 도시에 와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맹목적인 유동인구’(盲流)로 불렸다. 또한 1980년대부터 농촌에서 집체생산조직이었던 인민공사(人民公社)가 해체되고, 가족단위의 농업경영체제가 확립되면서 거대한 규모의 잉여 노동력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의 지원 하에 농촌 공업기업인 향진기업(鄕鎭企業)이 육성되어 농촌의 잉여 노동력을 대규모로 고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향진기업에 고용된 농민공은 1980년대 중엽부터 계속 급증하여 1992년에는 1억 명을 돌파했으며, 농가 안에 농업 종사와 비농업 종사의 가정 내 분업이 이루어졌고, 겸업·재택·통근 등의 노동형태가 나타나게 되었다(嚴善平, 2014: 79). 두 번째 단계는 1989년부터 2002년에 이르는 ‘품팔이(打工者) 열풍’의 시기로서, 2002년에 농민공의 규모는 이미 1.2억 명에 달했다. 이 시기에 농민의 도시로의 이주에 대한 정부의 통제는 더 이상 없었으며, 도시와 공업의 발전을 위해 대량의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농민들에게 도시로 와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이주해온 품팔이들은 도시에서 ‘임시거주자’의 신분일 뿐이었으며, 언제든 다시 본적지로 송환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세 번째 단계는 2003년부터 2008년에 이르는 ‘신공민(新公民)/신노동자(新工人)’의 시기이며, 2008년 초에 농민공의 수는 이미 2.1억 명에 달했다. 특히 정책적 변화의 측면에서 이 시기는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2003년에 농민공에 대한 ‘수용송환’(收容遣送) 제도(1982년에 제정된 ‘수용자송환조례’에 따라 도시로 이주해온 농민공들은 주민신분증, 잠주증, 재직증을 항상 소지하고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강제로 수용·송환되었다)가 폐지되었고, 2008년부터는 ‘노동계약법’이 시행되어 법률적으로는 농민공도시호적의 노동자들이 단일한 노동체제로 편입되었기 때문이다(呂途, 2013).  

그러나 여전히 중국 사회에서 농민공 신분의 이중성, 주변성, 모순성은 곳곳에서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농민공시민 혹은 공민 신분을 갖춘 존재로 간주되지 않기에 이등 시민 혹은 비(非)시민으로 취급되었으며, 도시생활에서 제도적으로 기본적 권익을 보장받지 못한다. 또한 취업차별, 고용불안, 저임금 및 고강도의 노동 조건을 감내하고 있으며, 사회보장제도로부터의 배제, 도시로 이주한 농민공 자녀들에 대한 학교 교육제도의 결여, 농촌에 남겨진 아동의 양육 문제 등 농민공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러한 농민공 문제의 현실적 상황에 대해 쑨리핑(孫立平)은 ‘파열된 사회’라는 개념을 제기한 바 있다(孫立平, 2006). 즉 ‘파열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물질적 생활수준과 생존의 환경은 서로 다른 시대에 놓여 있다. 예컨대 베이징 도시의 중심은 즐비한 오피스텔, 금융센터, 쇼핑몰 및 고급 아파트로 가득 차있으며, 도시 중산계급 아파트의 지하실에는 청소노동자, 경비원, 파트타임 노동자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시 외곽에는 여러 업종에 종사하는 농민공들이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농민공의 직업, 사상, 소비 관념은 도시화되었지만, 이들의 임금수준, 생활환경, 사회보장은 도시화되지 않았다. 이러한 현실적 상황은 노동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환기의 사회문제이다. 도시의 발전은 대규모의 노동력을 필요로 했지만, 농촌으로부터 이주해온 노동자들이 도시발전과 경제발전의 성과를 공평하게 향유하지 못하게 되면서 사회에 파열이 발생하게 되었고, 농민공 집단은 이러한 사회의 파열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정규식, 2017).

한편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농민공의 세대 구성이 전환되기 시작했다. 즉 1980년대 이후에 출생한 ‘신세대 농민공’이 점차 농민공의 주력이 되고, 노동운동의 주체로 자리를 잡는 것과 함께 이들의 새로운 특성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2015년을 기준으로 신세대 농민공이 전체 농민공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60%에 육박한다). 신세대 노동자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부분 농사 경험이 없기에 귀향정책을 통해 농촌으로 되돌아가기 어려운 집단으로 도시에 정착해서 생활을 영위하고자 한다. 둘째, 이전 세대에 비해 학력수준과 직업훈련 수준이 높고, 인터넷 공간에서의 의사소통이 자유로우며, 인터넷을 통해 입수한 정보와 지식을 기반으로 권리의식이 높은 편이다. 셋째, 급속한 경제성장의 시기에 성장했기에 물질적으로 비교적 풍부한 생활을 경험했고, 따라서 소비에 대한 욕구와 발전에 대한 기대가 높다. 넷째, 이전 세대에 비해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이 강하다. 이처럼 이전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육수준이 높고 권리의식도 강한 신세대 노동자가 최근 중국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 그리고 노동분쟁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하면서, 이들의 강한 계급의식과 단체 행동의 배경, 그리고 저항의 동력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정규식, 2017).

이러한 측면에서 이제 ‘농민공’이라는 용어는 더 이상 시대적 상황에 맞지 않으며, 폐기되어야 할 구시대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들을 ‘신노동자’(新工人)로 규정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뤼투(呂途)에 의하면 신노동자 집단은 개혁·개방 과정의 산물이며,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새로운 정책과 법률, 윤리규범 및 도농관계와 사회관계의 산물이다. 중국의 개혁 과정에서 산업의 주역으로 등장한 신노동자들은 과거 사회주의 시기에는 호구제도라는 제도적 차별 속에서 하나의 분명한 정체성을 갖는 사회적 주체가 아닌 농촌과 도시를 오가면서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불안정한 집단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최근 신세대 농민공을 주축으로 한 신노동자는 자신들이 개혁개방의 과정에서 새롭게 형성된 노동자임을 자각하고 있으며, 기존의 농민공이라는 ‘이중적 신분 정체성’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신노동자’로 호명하며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고 있다. 즉 이제 더 이상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사회집단이 아닌, 새로운 변혁의 주체로 중국 정치 과정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신노동자’라는 호명은 일종의 요구가 담긴 개념이다. 신노동자라는 개념에는 노동자를 비롯한 모든 노동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경제·정치적 지위의 향상에 대한 요구가 내포되어 있다. 즉 이 개념에는 새로운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창조하려는 갈망이 반영되어 있다(呂途, 2013).

2010년에 팍스콘(富士康) 공장 노동자의 연쇄 투신자살과 난하이 혼다(南海本田) 자동차 파업 등 노동자들의 저항이 확산되기 전까지만 해도 일반적으로 중국 농민공은 집단적 저항의식과 권리의식이 매우 낮은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일부 연구자들은 농민공을 ‘계급 실어증’에 빠진 존재로 분석하기도 했으며, 농민이며 노동자인 농민공의 ‘유동적 정체성’이 오히려 중국 사회의 안정성을 창출하는 구조적 기능을 담지 한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했다(Pun & Lu, 2010). 그러나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파업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기존의 노동관계 제도로는 노동자들의 높아진 권리 의식과 평등 의식에 부응하는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특히 신세대 농민공의 계급의식에 대한 자각은 독립적인 노동자 조직의 형성을 촉구하고 있으며, 공회(工會, 중국 노동조합)와 정부에게도 노동제도의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따라서 ‘남아 있을 수 없는 도시’와 ‘돌아갈 수 없는 농촌’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처한 중국 신노동자들이 노동과정의 소외, 전제적 관리방식, 도시에서의 기본적 권리 박탈, 차별적인 이등시민 신분에 대해 어떠한 ‘저항의 정치’를 만들어나갈 것인지를 더욱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정부 당국의 정책변화는 어떠한 양상을 보일 것인지도 중국 사회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참고문헌>
정규식, 「중국 노동체제의 제도적 특성과 노동자 저항의 정치적 동학」, 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 박사학위 논문, 2017.
呂途, 『中國新工人: 迷失與崛起』, 法律出版社, 2013.
孫立平, “我們在開始面對一個斷裂的社會?”, 《360doc個人圖書館網站》, 2006.
嚴善平, 『중국의 도시화와 농민공』, 백계문 역, 한울, 2014.
Pun,Ngai & Lu,Huilin. “Unfinished Proletarianization: Self, Anger and Class Action among the Second Generation of Peasant-Workers in Present-Day China”, Modern China, Vol. 36, No. 5, 2010.

작성자: 정규식(성공회대 노동사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