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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도시시
  분류 : 중국도시문화
  영어 : Chinese Urban Poems
  한자 : 中國 都市詩


도시 공간의 출현을 전제로 하는 도시시는 20세기 초반, 중국에 근대적인 도시가 점차 형성되면서 더불어 등장하였다. 하지만 상하이(上海)처럼 도시문학의 토양이 잘 갖추어진 곳은 극소수였기 때문에 중국의 현대시 연구자들은 보편적으로 1930년대나 이르러서야 진정한 의미의 '도시시'가 출현하게 되었다고 본다. 도시의 발전과 이주가 이루어지면서 중국 시인들은 도시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종횡으로 교차하는 거리, 끊임없는 인파, 전차,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빌딩, 왁자지껄한 시장, 나이트클럽, 도박장, 극장, 경마장 등 서구화된 도시의 새로운 풍물들이 작가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 들어온 것이다. 이와 같은 도시 속에서 중국 현대 시인들의 민감한 감각 신경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자동차(전차) 소음’, ‘기계의 굉음’ 등과 같은 외부 자극에 익숙해지고 혹은 마비되기도 하면서, 동시에 도시 문명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갖기 시작하였다. 

20세기 초반 중국 문단에 비교적 구체적으로 ‘도시시’라는 단어가 언급되고 알려진 데에는 문예잡지 『현대(現代)』의 노고가 밑받침 되었다. 『현대』의 편집장이었던 스저춘(施蟄存)은 ‘도시’ 문화에 관한 글을 자주 게재하였고, 자신의 시관(詩觀)을 밝힌 글을 통해 ‘도시시’의 가치를 누차 강조했다.(施蟄存, 1933: 6). 이후 『현대』 (第5卷 2期, 1934. 6)에 20세기 도시 생활에 맞는 새로운 시의 탄생을 강조한 외국 논문이 한 편 실렸는데, 이 글을 직접 번역한 스저춘은 기계 시대의 새로운 감각과 새로운 제재로 구성된 ‘도시시’가 시가미학의 변혁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중국 현대시가 나아갈 필연적 방향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도시시’의 가장 큰 특징은 현대 도시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시인들의 감수성이 예전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그것은 고층 빌딩의 시계탑을 “보름달”로 묘사한 쉬츠(徐遲)의 작품 「도시의 보름달(都會的滿月)」(『현대』 제5권 1기)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로마자로 쓴/ ⅠⅡⅢ Ⅳ Ⅴ Ⅵ Ⅶ Ⅷ Ⅸ Ⅹ Ⅺ Ⅻ가 나타내는 열 두 개의 별이/ 기어를 돈다.// 한밤의 보름달, 입체적 평면의 기계부품./ 빌딩의 높은 탑에 붙어 있는 보름달/ 또 다른 빌딩을 내려다보는 도시의 보름달.// 時針과 같은 사람,/ 分針과 같은 그림자,/ 어쩌면 도시의 보름달 표면을 바라볼지도 몰라.// 도시 보름달에 담겨진 공허한 哲理를 알고/시각의 나눔을 알게 되자/ 밝은 달이 등불, 시계와 동시에 있게 되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시는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도시인의 기계적이고 판에 박힌 일상생활에 대한 비판으로 읽혀질 수 있다. 그러나 1930년대에는 시계탑도 드문 시대였다.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 속에서 기계 문명에 대한 단순한 예찬에서 벗어나 심오한 철학적 사고를 담은 시를 발표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독자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시인은 단순히 도심의 ‘시계탑’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현대인의 감수성으로 도심의 ‘시계탑’과 자연의 “보름달”을 연결하며, 여기에 "철리적 사고가 풍부한 도시 시인의 감각적 특색을 보여주었던"(孫玉石, 2002:288) 것이다. 

도시 기계문명 아래 비춰진 도시 풍경과 도시인이 체험한 느낌, 또 도시 생활 속의 새로운 사물과 그것이 일으킨 감각, 광경을 어떻게 시 쓰기에 도입할 것인지가 도시 시인들의 주요 고민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스저춘의 「복숭아빛 구름(桃色的雲)」(『현대』, 제2권 5기)은 이와 같은 고민을 성공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공장 굴뚝 위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짙은 연기는 “복숭아빛” 구름을 연상시키는데, 이것은 공장으로 대변되는 대량 생산의 공업 문명 세계에 대한 찬미로 읽혀질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행까지 읽고 나면 시인이 결코 도시 문명을 예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은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복숭아빛 구름”과 공장 철문으로부터 여공들이 나올 때의 공포스러운 “먹구름”을 절묘하게 대비시켜, 도시 공업 사회가 반드시 핑크빛 미래를 약속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주었다. 1930년대 ‘도시시’는 다른 어느 시대에 표현된 작품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훨씬 시적인 감수성을 지닌 장르로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도시가 소재나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문제를 고민케 하는 주체로 부상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1930년대 현대시에 나타난 ‘도시시’에 대한 탐색과 실천은 새로운 내용을 갈망하던 당시 젊은 시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줌과 동시에 도시화와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달라진 시인들의 사고인식이 어떻게 문학에 반영되었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어서  1940년대 시인들은 자신들이 몸소 겪은 ‘도시’ 생활과 그들이 직접 영향을 받은 서구 모더니즘으로 인해 ‘도시’를 정치적 타락과 살인, 간음, 노동 착취가 이루어지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리게 된다. 특히 구엽파(九葉派) 시인들은 현실에 뿌리내리면서도 결코 리얼리즘의 문학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며 자신들이 직면한 현실을 상징과 비유, 때로는 직설적인 비판을 통해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구엽파 시인의 손에 빚어진 ‘도시시’에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담겨 있는데, 이러한 시적 분위기로 인해 항웨허(杭約赫)의 「부활의 땅(復活的土地)」이나 탕치(唐祈)의 「시간과 깃발(時間與旗)」 등은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이 조화를 이룬 성공작으로 평가받았다.(游友基, 1997: 378) 이밖에도 뚜윈세(杜運燮)의 「물가를 쫓는 사람(追物價的人)」이나 천징롱(陳敬容)의 「겨울날 황혼녘 다리 위에서(冬日黄昏橋上)」 역시 ‘도시시’의 범주 안에서 논의될 수 있다. 중일전쟁과 더불어 주춤했던 ‘도시시’ 창작은 1940년대 구엽파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했지만, 1930년대 시인들과는 달리 그들의 ‘도시시’에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도시’ 생활 속에서 느끼는 순수한 내면 고백이나 서정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졌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그들의 작품 중 순수하게 ‘도시시’로 꼽을만한 작품은 드문 편인데, 이점이 바로 1930년대 ‘도시시’와의 변별점을 구성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이처럼 1930,40년대를 거치며 중국의 도시시는 성숙해갔으나,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공산당의 문예방침에 따라 문학은 농촌생활과 혁명역사, 도시의 계급투쟁을 반영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으면서 기존 도시시의 창작은 더 이상 맥락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중국의 도시시는 개혁개방 이후인 1980년대가 되어야 다시 등장한다.


<참고문헌>
魯迅, 「〈十二個〉後記》」, 『魯迅全集: 集外集拾遺』, 人民文學出版社, 1981년.
施蟄存, 「又關於本刊中的詩」, 『現代』, 第4卷 第1期, 1933.11.
孫玉石, 「『現代』시의 역사적 위치와 예술 탐색」, 『中國學』, 제18집, 2002.
游友基, 『九葉詩派硏究』, 福建敎育出版社, 1997.

작성자: 이경하(덕성여자대학교 중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