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이미지
도시인문학 사전
모두보기모두닫기
박스하단
사전 > 도시인문학 사전
 
도시위생정책
  분류 : 서양도시사
  영어 : Public Health
  한자 : 都市衛生政策


프랑스에서 ‘공공위생’을 뜻하는 단어는 Hygiéne publique이다. Hygiéne urbaine은 ‘도시위생’, Hygiéne sociale은 ‘사회위생’, Santé publique은 ‘공중보건’을 의미한다. 영국에서 ‘공중보건’을 의미하는 Public Health가 19세기 전반부터 도시계획에 적용된 개념인 반면, 프랑스에서는 ‘공공위생’이 주로 사용되었고 19세기 후반에 ‘사회위생’과 ‘공중보건’이라는 용어가 도시행정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19세기 초반까지 비위생적 환경이 정비되지 못한 도시는 전염성 질병의 온상이었다. 도시의 중간 계급들은 극빈층을 방치하거나 노동 계급의 거주 구역을 전염병에 희생되도록 남겨 둔 채, 전염병과 공장 매연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도시의 외곽으로 옮겨갔다. 도시의 나쁜 공기는 전염병의 원인으로 간주되었다. 나쁜 공기(miasma)를 전염병의 매개체로 정의한 ‘대기 감염설(théorie miasmatique)’은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와 로마의 의학자, 철학자인 클로디우스 갈레누스(Claudius Galenus)에 의해 수립된 이래 1861년 파스퇴르가 『자연발생설 비판』을 통해 ‘병균 원인설(théorie des germes)’이 입증되기 이전까지 전염병을 설명하는 유력한 의학이론 중 하나였다.

자본주의 성장과 더불어 나타난 도시의 산업화와 과밀화 현상은 예기치 않은 많은 문제를 제기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전염병에 대한 통제는 도시의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콜레라, 티푸스, 결핵 등은 하수 시설과 깨끗한 식수가 없고 공장, 철도, 일반 주택의 굴뚝에서 나오는 매연이 하루 종일 사라지지 않는 곳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프랑스에서는 1830년대 이른바 ‘위생주의자(hygiéniste)’들이 등장하면서 도시 내 공공위생의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취급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위생의 육체적, 정신적, 의학적, 사회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른바 ‘위생’에 대한 의식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고, 개인과 사회의 건강을 위해 공중보건 법률과 제도를 수립하고자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7월 왕정의 위생주의자로 대표되는 포데레(F. E Fodéré), 파랑-뒤샤틀레(A.J.B. Parent-Duchâtelet), 빌레르메(L.R. Villermé) 등은 근대 초기 도시의 대표적 전염병인 콜레라에 대해 연구를 공중보건의 문제로 전환시켰다. 즉, 콜레라 박멸을 위해 청결성과 공공 보건 조치를 치유법으로 제안한 것이다.

프랑스 최초의 도시계획 법률로 평가받는 1850년 비위생건물정화법(loi sur l’assainissement des locaux insalubres)이 제정되면서 주거위생에 대한 국가의 행정적 개입이 처음으로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생주의자들의 정책적 제안이 관철되기 시작한 것은 쓰레기 처리, 하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스만의 도시개조사업이 진행되면서 부터이다. 도시를 기계적인 방식으로 분석한 오스만에게 자연적 ‘순환’은 먼저 건강한 도시환경을 건설하면 공기와 햇빛, 물과 하수의 자유로운 순환이 수행하는 청소 기능을 의미하였다. 더불어 ‘순환’은 도시 전역에서 이루어지는 돈, 사람 그리고 상품이 마치 자연적 흐름과 같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자본의 순환이기도 하였다.

1850년대 파리의 지하로 하수도 망이 확충되고 정비대면서 도시의 위생 상태는 개선되었다. 빈민가를 헐어내고, 상하수도를 갖추어 위생조건을 개선하려는 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의 추진은 걸음마 단계에 있었다. 유럽의 도시 중 하수도와 급수시설을 정비한 파리에서도 1인당 목욕 횟수는 2회에 미치지 못했고, 런던의 경우 25만 넘는 가정의 화장실 분뇨는 수거되지 못한 채였다. 한편, 하수도 망은 부르주아가 많이 거주하는 도시의 서쪽에 집중되었고, 노동자와 빈곤층이 거주하는 파리의 경계지역은 설치가 미미하였다. 오스만의 도시개조사업과 함께 도시의 공간은 계급적으로 재배치되었다. 경제적 지위에 따라 거주하는 공간이 달라지고 부자와 빈자의 교류가 차단되는 사회적 분리현상(ségrégation)이 나타났다. 사실 오스만이 계획한 도시정비사업의 목적은 여기에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 이래 정치적 소요상태를 일으키는 주체였던 노동자와 빈민을 도시의 밖으로 추방하는 것은 부르주아와 중산층이 무질서와 폭동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자 불결함과 더러움, 오염으로부터 보호되는 정책이었다. 일자리를 찾거나 무작정 도시를 돌아다니는 잡다한 노점상, 넝마주의, 쓰레기청소부, 거리의 음악가, 광대, 심부름꾼 소년, 소매치기, 임시 일꾼 등, 파리의 ‘진정한 유랑민’들은 도시를 오염시키는 존재들이었다.

‘거주자의 건강과 삶을 약화시키는 조건과 상태가 발견되는 건물’을 제한하려는 비위생건물정화법은 건물 소유주의 사적 소유권 침해여부 문제와 부딪치면서 법률의 실효성은 축소되었기 때문에 비위생건물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프랑스의 위생주의자들은 1850년 법에 대한 개정을 통해 보다 실효성 있는  위생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가면서 19세기 마지막 30년 동안 많은 수의 보고서와 서적을 출간하였다. 제3공화정이 안정화 될 무렵, 1886년 공화파 의원 지그프리드(J. Siegfried)와 그의 동료의원 50여명이 공중보건 조직법 계획안을 하원에 제출하였고 1887년 상공부 장관 록로와(E Lockroy)가 공중보건 조직법과 비위생건물정화법을 의회에 제출하였다. 결국 의회에서 약 11년간의 끊임없는 논의를 거친 공중보건법 계획안은 1902년 법률로 공표되었다.

1902년 프랑스의 공중보건법은 해당 법률의 대상을 큰 세 개의 범주 개인, 건물, 지역으로 나누고 전염병 예방, 백신, 주거 위생 강화, 강하수도 설비 관리 감독 등 포괄적 규정들을 포함하였다. 위생규정의 의무적 적용, 건축 허가서 발행, 비위생건물의 정화, 상하수도, 화장실, 정화조 감시, 건물 위생 관리 대장 의무화(caiser sanitaire) 등 도시위생을 위한 핵심조항이 명문화되면서 도시 행정당국은 전염병 예방과 주택 위생을 위한 시 자체의 조례를 제정하였다. 이로써 위생에 관련된 도시 내 공간에 대한 공적 규범이 실질적으로 관철되었다.


<참고문헌>
데이비드 하비, 김병화 역,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생각의 나무, 2005.
민유기, 「19세기 후반 파리의 도시위생 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합의」, 『프랑스사 연구』, 14호, 2006.
Lion Murard, Patrick Zylberman, L'hygiène dans la République: la santé publique en France, ou, l'utopie contrariée : 1870-1918(Paris: Fayard), 1996.
Patrice Bourdelais (ed.), Les hygiénistes : enjeux, modèles et pratiques(Paris: Éditions Belin), 2001.
Jeanne Gaillard, Paris, la ville 1852-1870(Paris: L’Harmattan), 1997.

작성자: 문종현(세종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