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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자 연결망 이론
  분류 : 디지털도시성
  영어 : Actor Network Theory
  한자 : 行爲者 連結網 理論

행위자 연결망 이론(ANT, Actor Network Theory)은 행위 주체 및 대상의 개념 대신 인간과 비인간을 아우르는 다양한 행위자(actor)들이 구성하는 공동 작용을 분석하여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전통적인 범주들이 존재자들 사이에 차등을 두고 주체와 대상으로 이분하는 것과는 달리, 존재론적으로 평준화된, 또는 상호 대칭적인 것으로 이해된 이질적 존재자들이 이루는 네트워크의 활동에 주목해서 의미와 현상이 출현한다고 보는 것이 특징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일상적인 사물이나 권력과 같은 정치학적 개념은 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네트워크의 효과로 출현하는 결과물이다. 이 때 여기서 언급되는 네트워크란, 채워지기 위해 있는 형식화된 틀이나 추상적 관계와 같은 것이 아니고, 공동 작용 자체로서 내적 위계나 층위가 없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행위자 연결망 이론의 네트워크 개념은 사회과학에서 널리 사용되는 일반적인 네트워크 개념과는 차별화된다. 행위자도 마찬가지다. 의식을 갖는 주체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공동 작용에 참여할 수 있는 행위능력(agency)을 갖는 것은 모두 행위자로 간주될 수 있다. 이처럼 행위자 연결망 이론은 모든 존재를 평준화된 단일 평면에서 사고하는 일반화된 대칭성(generalized symmetry)을 기본적인 존재론적 전제로 삼는다. 

분야의 대표적인 연구자로는 프랑스의 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 프랑스의 과학학자인 미셸 칼롱(Michel Callon), 영국의 사회학자인 존 로(John Law) 등이 있다. 이 세 학자가 1980년대 초반 공동 작업을 통해 이론의 기초를 처음 제시했고, 이후 과학학(STS,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에서 이론적 모델로 많이 차용되다가, 사회과학 전반에 걸쳐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ANT는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여러 개념적 장치들을 제시한다. ‘번역(translation)’, ‘결절(punctuation)’, ‘동맹(coalition)’과 같은 개념들이 그런 예다. 결절은 서로 다른 행위자들이 안정적인 네트워크를 이루게 되어 하나의 대상(object)과 같은 상태를 이루는 것을 뜻하고, 그를 통해 이루어지는 공동 활동이 각자가 원하는 바로 치환되는 과정을 ‘번역’이라 부른다. 서로 다른 행위자가 공동 목표에 따라 네트워크에 편입되는 것을 ‘동맹’을 맺는다고 한다. 

미셸 칼롱(2010)이 분석한, 과학자와 가리비, 어부의 사례를 예로 들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프랑스에서는 1970년대에 가리비 소비가 비약적으로 증가하여 포획량이 늘어났고, 이에 따라 가리비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해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프랑스 국립 해양 연구소의 과학자들과 어부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책 회의를 열기에 이른다. 서로 다른 관심사를 지닌 이들 행위자들이 이루는 네트워크 속에서 가리비와 관련된 ‘과학 지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성되는지, ANT의 기법을 사용하여 분석하는 것이 해당 논문의 주요 내용이다.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 세 명은 일본 방문을 통해 가리비 양식이 가능하다는 점을 배우고, 프랑스에 서식하는 가리비 종(species)에서도 그와 같은 장치를 구성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지 연구하기로 한다. 네트워크는 이 과학자들이 규정한 행위자(자신들, 가리비, 어부, 과학자 사회)들 각각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의하는 ‘문제제기(problematizing)’ 과정을 통해 구성된다. 네트워크가 구성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결절점, 이 사례에서는 문제제기를 해서 각자의 정체성을 해당 네트워크에 맞는 방식으로 규정하는 연구자들을 ‘의무통과점(OPP, Obligatory Passing Point)’이라고 부른다. 이 네트워크의 전체 목표는 가리비의 안정적 번식이다. 과학자들은 이에 대한 지식을 생산함으로써 과학자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고, 가리비는 자신의 존재를 영속시킬 수 있게 되며, 어부는 가리비를 지속적으로 잡아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고, 과학자 사회는 가리비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작동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행위자들의 ‘관심을 끌어야(get interested)’ 한다. 즉 앞에서 제시된 문제제기 방식에 따라 각 행위자가 정체화되고 네트워크에 연합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을 ‘등록(enrollment)’이라 부른다. 과학자들은 가리비의 관심을 끌어 등록하기 위해 촘촘한 그물로 만들어진 자루를 제공한다. 가리비 유생은 이 자루 안에 붙어서 포식자와 조류의 흐름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게 된다. 가리비가 실제로 자루에 부착되어 세 명의 과학자가 도표나 논문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면 이 네트워크에 ‘동원(mobilization)’된 것이다. 이처럼 네트워크가 각각의 행위자를 동원할 수 있도록 의미화되는 과정을 ‘번역(translation)’이라 부른다. 이 전체 과정은 과학자 사회에는 가리비에 대한 생물학적 지식이라는 형태로, 어부들에게는 지속적 수확에의 약속이라는 형태로 번역될 것이다. 

행위자 연결망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과학자, 가리비, 어부들이 이루는 연결망 자체가 하나의 ‘사회(society)’이다. 존 로는 이론의 기본 개념들을 설명하는 「ANT에 대한 노트」라는 글에서, “사회적인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이종적인 질료간의 질서 있는 네트워크”라고 적는다(로 2010:42). 그 함의는 무엇일까? 원칙적으로는 로가 설명하는 것처럼 인간 외의 질료가 네트워크에서 사라지게 된다면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라고 불렀던 것 자체가 유지되지 않을 수도 있다. 네트워크를 이루는 행위자들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 내지는 ‘선호도’를 갖고 있으며, 이와 같은 차이는 네트워크의 붕괴를 야기하는 저항력의 일종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실체로 간주되는 존재자들은 앞서 말한 것처럼 다분히 가역적인 네트워크의 효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하나의 사물 내지는 대상으로 보이는 컴퓨터는 그 자체가 다양한 구성 요소들의 집합체이며, 그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은 특히 컴퓨터가 오작동을 일으킬 때이다. 특히 실재하는 사물인 것처럼 취급되던 고전적인 사회과학 개념들, 예컨대 권력(power)과 같은 것도 행위자들이 이루는 연결망의 효과로 산출되는 것으로서, 누군가가 확보하거나 쟁취하기 위해 거기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행위자가 권력을 확보한다는 것은 새로운 문제제기를 통해 자신 이외의 행위자들의 관심을 끌고 동원할 수 있는 전략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로가 요약해서 말하는 것처럼, “나폴레옹은 보잘것없는 노숙자와 다를 것이 없고 IBM도 구멍가게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 ANT의 핵심 가정이다. 만일 어떤 것이 다른 것에 비해 더 커진다면, 어떻게 그 규모, 권력, 조직 등이 발생되는지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로 2010:40). 또, 인식론으로서 행위자 연결망 이론은 과학적 지식 또한 과학자들이 연구 대상과 실험 기구들, 곧 다양한 비인간 행위자들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하여 이들이 전개하는 공동 활동이 그래프와 표 등으로 번역되고 과학자 사회의 동원에도 성공하여 논문이라는 ‘불변의 가동물(immutable mobiles)’로 구성된 것이라고 논의한다. 

ANT의 관점에서 볼 때, ‘자연’과 ‘사회’ 같은 근대적인 개념 쌍은 실재에 대한 부정확한, 또는 별로 효과적이지 못한 묘사이다. 예컨대 라투르의 견해에 따르면 현재 직면한 환경문제 등은 바로 그와 같은 구분이 적실하지 않음을 역설하는 증거와도 같다. 이와 같은 구분은 인간과 비인간을 최대한 구분지어 분리하는 ‘정화(purification)’ 작용을 특징으로 했던 근대화의 결과로 생겨난 것으로서, 실재 자체가 작동하는 양상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다. 그는 『자연의 정치학(Politics of Nature)』(2004)에서 이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이 책에서는 사실과 가치의 엄격한 구분이 실재에 가까운 지식을 얻게 할 수 있다는 근대적인 전제가 실패했다고 논의된다. 인간이 구성하는 사회의 요소를 자연 환경에 더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이루는 이질적인 존재자들의 네트워크 전체를 다룰 수 있는 정치생태학을 전면에 부각시킬 때, 당면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태는 ‘사실의 문제(matters of fact)’가 아니라 ‘관심의 문제(matters of concern)’의 관점에서 파악될 필요가 있다.

행위자 연결망 이론은 공간을 관계론적으로 분석할 때 많이 활용되는 이론 중 하나다. 조너선 머독(Jonathan Murdoch), 수전 왓모어(Susan Whatmore), 나이젤 스리프트(Nigel Thrift), 리처드 스미스(Richard G. Smith)와 같은 인문지리학자들의 연구들이 대표적이다. 가령 스미스는(Smith 2003) 2000년대를 주름잡았던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 담론을 검토하며 ‘글로벌한 것’과 ‘로컬한 것’ 또는 차등적인 스케일들의 개념 쌍을 사용하는 대신 연결이 긴 것과 짧은 것, 더 지속적인 것과 일시적인 것, 더 많이 연결된 것과 덜 연결된 것의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고, 인간 뿐 아니라 비인간 행위자들을 이 연결망에서 적극적으로 고려할 것을 제안한다. 가령 불변의 가동물들은 어떤 도시가 거리 제약을 넘어 다른 도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해 주는 행위소로서, 해당 도시를 세계 도시 네트워크로 구성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참고문헌

미셸 칼롱 지음, 심하나·홍성욱 옮김, 「번역의 사회학의 몇 가지 요소들: 가리비와 생브리외 만의 어부들 길들이기」, 『인간, 사물, 동맹』 pp. 57-94, 2010. 

존 로 지음, 최미수 옮김, 「ANT에 대한 노트: 질서 짓기, 전략, 이질성에 대하여」, 『인간, 사물, 동맹』 pp.37-56, 2010.

브루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엮음. 『인간, 사물, 동맹: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과 테크노사이언스』, 이음, 2010.

Latour, Bruno, Politics of Nature: How to Bring the Sciences into Democracy,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4.

Smith, Richard G., “World City Actor-Networks,” Progress in Human Geography 27(1):25-44, 2003.

 

작성자: 황희선(서울대학교 인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