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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수 사유
  분류 : 포스트휴먼과 도시
  영어 : Tentacular Thinking
  한자 : 觸手 思惟


촉수 사유(Tentacular Thinking)’인류세라 불리는 파괴적 사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기 위한 개념으로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가 제안했다. 해러웨이는 자신의 책, Staying with the Trouble(국역본:트러블과 함께하기)에서 인류세, 자본세, 대농장세, 쑬루세 등 지금 벌어지고 있는 기후위기와 생태위기에 관련된 담론들을 다루는 장의 제목을 촉수 사유(Tentacular Thinking)라고 달고, “생각하세요. 우리는 생각해야만 합니다를 제명(epigraph)으로 붙였다. 이 구절은 이자벨 스탕제르(Isabelle Stengers)와 벵시안 데스프레(Vincian Despret)Women Who Make a Fuss에서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에 대한 오마주로 쓴 문장이다. 울프는 3기니에서 여성들에게 생각할 것을 촉구했다. 촉수 사유(Tentacular Thinking)에서 해러웨이는 이 문장을 반복적으로 인용하면서 촉수 사유는 페미니스트의 사유방법임을 드러낸다.

페미니스트에게 사유는 포기할 수 없는 것이지만 난감한 것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들은 노예와 어린이와 함께 오이코스라 불리는 노동의 영역에 배속되어 정치에서 배제되었다. 그리스인들이 보기에 오이코스에 배속된 자들은 말을 할 수 있지만 말을 가지지 못한 자들이었다. 즉 그들의 말은 단지 필요나 욕구만을 표현할 뿐, 로고스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로 사유는 말을 가진 자들의 전유물, 즉 남성의 것이었고, 여성은 사유 능력이 부족한 자로 취급되었다. 이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저항 중 하나는 사유가 아니라 느낌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가령, 오드리 로드(Audre Lorde)는 자신의 산문, 시는 사치가 아니다에서 백인 아버지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우리 안의 흑인 어머니시인는 우리의 꿈속에서 이렇게 속삭인다. 나는 느낀다. 그러므로 나는 자유롭다.”(오드리 로드, 2018:39) 로드는 전통적인 사유의 개념이 유색여성들을 2등 인간으로 취급하는 명령이었음을 드러내면서, 느낌에 대한 절대적 긍정을 주장한다. 흑인 어머니의 느끼라는 속삭임은 백인 아버지의 명령인 사유를 기각하면서 자유를 준다.

사유에 대한 해러웨이의 접근은 로드와 다르다. 해러웨이는 버지니아 울프가 이야기 했고, 스탕제르와 데스프레가 이어받아 말한 생각하세요. 우리는 생각해야만 합니다를 통해 오히려 사유할 것을 촉구한다. 그는 특히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나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에게서 포착한 사유불능에 빗대어 기후위기와 생태위기에 무감한 우리가 아이히만처럼 사유불능에 빠진 것은 아닌지를 묻는다. 예루살렘에서 열린 아이히만의 재판을 방청한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가리켜 연민이나 정서가 결여된 사람도 아니고, 멍청한 것도 아니지만 타인의 관점에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특별히 천박한 자였다고 했다. 일찍이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을 노동, 작업, 행위로 구분한 바 있는데, 이때 행위는 물질적인 매개를 거치지 않고 타인과 관계하는 활동, 즉 말을 의미했다. 아렌트가 보기에 말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타인의 현존이 전제되어 있지만 아이히만은 상투적인 관용구들 없이는 한 마디도 말할 수 없는 자, 타인을 향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놀이를 하듯이 상투어들을 내뱉을 뿐인 자, 다시 말해 말을 하는데 철저히 무능력한 자였다. 아렌트는 말에 대한 아이히만의 이러한 무능력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없는 무능력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런 면에서 아렌트의 사유 불능은 사유는 말에 기인한다는 전통적인 통념에 충실한 개념이다.

하지만 해러웨이에게 사유는 철저히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것이다. 해러웨이는 이를 촉수 사유(tentacular thinking)”라고 부른다. 해러웨이가 보기에 아이히만은 말을 결여한 자라기보다 철저히 무감각한 자였다. 아이히만에 대해 해러웨이는 이렇게 쓴다. “여기 어떤 사람이 있었다. 나그네일 수 없었고, 얽힐 수 없었고, 살기와 죽기의 선들을 쫓을 수 없었고, 응답-능력을 배양할 수 없었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자신에게 설명할 수 없었고, 결과들 속에서 그리고 결과와 함께 살 수 없었고, 퇴비를 만들 수 없었던 어떤 사람이 있었다. 평범한 사유의 결여에서 세계는 문제가 아니다. 도려낸 공간들은 모두 정보를 평가하기, 친구와 적을 결정하기, 바쁜 일을 하기로 채워진다. 부정성, 그런 확실성을 도려내기가 빠졌다. 여기 무감각한 한 인간이 있었다.”(Haraway, 2016:36)

해러웨이의 촉수 사유는 아렌트처럼 고결한 정신능력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니고, 로드처럼 완전한 자유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해러웨이는 영어에서 촉수(tentacle)는 더듬이를 의미하는 텐타쿨룸(tentaculum)과 더듬다, 시도하다를 의미하는 라틴어 텐타레(tentare)에서 왔음을 상기시킨다. 촉수는 더듬이이자 더듬어서 연결을 시도하는 감각기관이다. 곤충의 더듬이는 물론이고 거미의 다리를 포함해서 모든 종류의 수족(手足), 신경망, 편모나 섬모, 근육을 이루는 섬유다발, 서로 엉겨 붙어서 펠트처럼 보이는 미생물, 진균류 균사들, 식물의 넝쿨손들, 땅 속의 뿌리들, 컴퓨터들이 연결된 인터넷 망이 촉수이다. 이런 촉수들이 외부로 뻗어나가 서로 관계를 맺는다. 그러므로 촉수 사유는 외부로부터 오는 사유이다. 그것이 사유인한 관념의 연쇄이지만 정신 속에 이미 있는 익숙한 관념으로부터 정해진 트랙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외부와의 접촉을 통해, 감각을 통해 촉발되는 사유이다. 그것은 어쩌면 기존의 관계를 위험하게 만들면서 다른 연결을 만들게 하는 사유일 것이다.

또한 촉수는 외부로 뻗는 것이지만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촉수가 특정한 몸에 붙어 있는 것처럼, 촉수 사유는 특정한 상황 속의 사유, 다시 말해 체현적인 사유이지, 모든 곳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촉수 사유가 주관적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상황 속에 있는 자들은 혼자가 아니고,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고 일상의 문제에 대처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촉수 사유는 보편과 중립을 가장하지 않고, 페미니스트 객관성을 추구한다. 이때 페미니스트 객관성은 해방에 관한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그리고 통상적으로 불평등한 구조화에 관한 것이다.”(다나 해러웨이, 1991:360)

또 다른 촉수의 특성은 한정된 개수를 가진다는 것이다. 촉수는 다른 것과 연결하지만 모든 것과 연결하지는 못한다. 아무리 많은 촉수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한정된 개수를 가질 뿐이다. 그래서 새로운 연결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연결을 끊어야 한다. 촉수에는 반드시 탈착과 부착이 있다. 그러므로 촉수 사유는 모든 것과 연결된 합일을 꿈꾸지 않는다. 어떤 사유와는 결별해야 다른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탈착과 부착이 차이를 만든다.

뿐만 아니라 촉수는 이곳저곳을 여행하게 하는 다리이기도 하다. 여행이란 언제나 낯선 것을 만나는 것이기에 촉수 사유는 있을 법 하지 않는 연결을 만들고, 그것으로부터 통념적인 생각을 위험에 빠뜨린다. 가령 해러웨이가 쓴 사이언스 픽션, 카밀 이야기(The Camille Stories)에서는 인간이 위기에 처한 동물을 돌보기 위해서 동물과 유전자 이식을 통한 공생체가 된다. 인간의 질병치료 연구를 위해 동물들에게 인간의 유전자를 이식하는 현실의 일은 우리의 통념 속에서 당연한 일이거나 혹은 무자비한 폭력이다. 하지만 위기에 처한 동물을 돌보기 위해 인간에게 그들의 유전자를 이식한다면 어떨까 하는 물음은 통념과는 아주 다른 세상을 만들게 된다.

해러웨이가 촉수사유를 생각하는데 도움을 준 사람은 메릴린 스트래선(Marilyn Strathern)이다. 스트래선은 인류학의 사유실천에 대한 사유를 통해, “다른 관념을 생각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관념을 사용하는지가 중요하다”(Haraway, 2016:34)는 점을 강조했다. 사유란 관념의 연쇄인 까닭에 무엇으로부터 출발하느냐에 따라서 아주 낯선 것조차도 동일성 속으로 쓸어 담아 버릴 수도 있다. 가령 자연을 자원으로만 여기고 부분별한 파괴행위를 일삼는 행태를 비판하기 위한 사유를 전개할 때, 지구에 새겨진 인간의 발자국이라는 관념으로 접근한다면 인간만이 유일한 행위자이고 그 나머지는 여전히 수동인 상태로 여기는 동일한 구도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촉수 사유는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로 도달했는지를 중시한다. 모든 사유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어떤 생각들이 생각들을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 어떤 지식들이 지식들을 아는 지가 중요하다. 어떤 관계들이 관계들을 관계시키는지가 중요하다. 어떤 세계들이 세계들을 만드는 지가 중요하다. 어떤 이야기들이 이야기들을 이야기하는지가 중요하다”(Haraway, 2016;35)

 

참고문헌:

최유미, 해러웨이, -산의 사유, 도서출판 b (2020)

Donna Haraway, Staying with the Trouble, Duke University Press (2016), [국역본]도나 해러웨이, 트러블과 함께 하기, 최유미 역, 마농지 (근간)

다나 해러웨이,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민경숙 역, 동문선 (1991)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김선욱 역, 한길사 (2017)

오드리 로드, 시스터 아웃사이더, 주해연, 박미선 역, 후마니타스 (2018)

 

작성자: 최유미 (수유너머 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