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 만들기(Making Kin)란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가 제안한 개념으로, 다종(multispecies)이 얽혀 살아가는 쑬루세(Chthulucene) 시대에 요구되는 생존 윤리이자 실천 전략이다. 해러웨이는 오늘날을 인류세(Anthropocene), 자본세(Capitalocene) 등으로 명명하며, 인류가 ‘이중의 죽음(double death)’이라는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한다. 여기서 이중의 죽음이란, 생명의 단순한 소멸을 넘어 생태계 전체의 돌봄과 재생 능력마저 무너진 파괴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인간은 더 이상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행위자로 존재할 수 없다. 해러웨이는 쑬루세를 “손상된 땅 위에서 응답-능력을 키워 살기와 죽기라는 트러블과 함께하기를 배우는 일종의 시공간”(해러웨이, 2021:8)으로 정의한다. 이 시공간에서 “우리의 과제는 창의적인 연결망 안에서 친족을 만드는 것”(해러웨이, 2021:7)이다. 해러웨이는 이를 “기이한 친족(oddkin) 만들기”(해러웨이, 2021:9)로 칭하는데, “혈통이나 계보에 묶인 실체가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을 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며, “가장 다정한 것들이 반드시 핏줄로 엮인 친족”일 필요도 없다고 강조한다.(해러웨이, 2021:177~178) 따라서 친족의 범위는 인간에 한정되지 않는다. 동물, 식물, 곰팡이, 박테리아 같은 비인간 생명체는 물론, 기술, 이야기, 기억 등 비물질적 존재들까지도 친족 만들기의 중요한 행위자로 포함된다.
이러한 친족의 확대와 재구성은 지구에 사는 모든 존재가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하며, 이는 삶과 죽음, 돌봄과 책임이 얽힌 “두터운 현재 안에서 함께 잘 살고 잘 죽는 법을 배우는 실천”(해러웨이, 2021:7)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를 가장 분명히 보여주는 선언이 “자식이 아니라 친족을 만들자”(해러웨이, 2021:176)라는 구절이다. 이는 생물학적 재생산을 통한 인간 중심적인 계보 확장에 대한 비판으로, 기존의 혈연 중심적 관계 모델을 해체하고 다종의 존재들과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 것을 제안한다. 이는 “페미니스트의 중요한 실천으로서 생식과는 다른 방식의 친족 만들기”(최유미, 2023:74)이자, 더 이상 과거의 방식으로는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시대에 우리가 맺어야 할 새로운 관계성의 윤리를 제시하는 것이다.
해러웨이는 『트러블과 함께하기(Staying with the Trouble)』의 마지막 장에 수록된 SF 서사 「카밀 이야기(The Camille Stories)」를 통해 친족 만들기를 서사적으로 구현해낸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생식을 줄이고, 멸종 위기의 종들과 새로운 방식으로 얽히기 위한 실천을 그린다. 주인공 카밀은 공동체의 결정에 따라 왕나비의 유전자와 관련 미생물을 이식받아 태어난 인간-나비 공생체다. 카밀은 왕나비와 살기와 죽기의 그물망을 공유하는 존재로, 생식이 아닌 생태적·돌봄적 연결을 통해 친족이 된다. 이처럼 카밀과 왕나비의 관계는 ‘혈연’이 아닌 ‘공생(becoming with)’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친족의 가능성을 암시하며, ‘친족 만들기’가 어떻게 다종의 얽힘 속에서 실천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측면에서 “SF 글쓰기로서 카밀 이야기는 비인간 행위자들에 의한 역사-만들기”(김은주, 2024:115)로 이해될 수 있다.
이처럼 ‘친족 만들기’는 단순한 개념이나 상상의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카밀 이야기」가 보여주듯, 이는 다종의 존재들이 얽혀 살아가는 세계에서 위기와 상실에 응답하고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려는 구체적인 실천이다. 또한, 손상된 지구 위에서 인간과 비인간을 포함한 지구에 사는 모든 존재들이 서로를 돌보며 함께 살아가기 위한 “테라폴리스(Terra Polis)”(해러웨이, 2021:23)를 향한 시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친족 만들기’는 트러블과 함께 머무르며,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연결하려는 움직임이다.
참고문헌
Haraway, Donna J. Staying with the Trouble: Making Kin in the Chthulucene. Duke University Press, 2016.
도나 해러웨이, 최유미 역, 『트러블과 함께하기: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 마농지, 2021.
(한국어 번역본에서 ‘kin’은 ‘친척’으로 번역했지만, 이 글에서는 ‘친족’으로 썼음을 밝힌다.)
최유미, 「인류세 시대의 페미니스트 스토리텔링 –도나 해러웨이의 「카밀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국종교』 56,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2023.
김은주, 「홀로바이온트의 응답하기, 기억하기 : 해러웨이의 친족 만들기와 SF 글쓰기를 중심으로」, 『한국여성철학』 42, 한국여성철학회, 2024.
작성자: 김혜선 (한양대학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