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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위기
  분류 :
  영어 : Fiscal Crisis
  한자 : 財政 危機


지난 수십 년 간 인구의 분산과 경제의 쇠퇴로 인해 미국 도시의 자원 기반은 크게 약화되었다. 수많은 기초자치단체들이 기본적인 서비스조차 제공하지 못할 정도로 잉여세입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따금 지방정부들은 주정부와 중앙정부의 도움으로 예산의 적자 분을 충당해야 했다. 적자가 점점 심해지면서 자치단체 정부들은 이른바 ‘재정위기(fiscal crisis)’라는 상황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O’Conner, 1973; Gottdiener & Hutchison, 2000). 영국에서, 상급 자치단체가 하급 자치단체의 재정권을 흡수하는 일, 또 지방정부의 서비스를 민간 공급자에게 넘기거나 민영화하는 것도 동일한 맥락이었다. 프랑스나 독일과 같이 영국보다 더 분권화된 체제를 가진 나라들도 중앙-지역 관계가 재정적인 압박에 처하는 상황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주의 재정 위기는 중심 도시들뿐 아니라 모든 수준의 각급 정부에게 악영향을 끼쳤다. 물론, 미국 연방 정부는 책임을 묻는 더 상급의 기관이 없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 빚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시와 교외는 그럴 수 없다. 영국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 지방 정부들(boroughs)은 중앙정부의 통제 아래에서 부채를 발행할 수 있었다. 독일의 주는 여전히 채권을 발행할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중앙 정부의 통제 내에서, 또 유럽 공동체 회원국들에게 할당된 예산 적자 한도 내에서만 가능하다. 특정 지역이 재정 적자로 곤란을 겪는다면, 각급 정부 역시 그 영향을 받게 된다.

시는 자치단체이기 때문에 파산할 수도 있다. 1970년대 미국 일부 도시는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었고, 이 가운데 클리블랜드는 1978년 결국 파산했다. 이런 현상은 국가 경제가 경기 불황으로 인한 침체를 주기적으로 겪었던 1800년대에는 더욱 흔한 일이었다. 영국의 경우 공식적으로 지방당국이 파산할 수는 없다. 만일 지방당국이 다음 회계연도의 예산을 책정할 때 중앙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에서 적자재정을 편성한다면, 피선된 카운슬(council)의 위원들은 과잉재정적자에 대해 기소되고(개인적으로 재정적 책임을 지게 된다), 또 직무 정지를 당할 수도 있다. 최근 노동당 정부는 ‘신지방주의(New Localism)’를 제창했다. 본질적으로 기술주의적 접근인 이 정책은, ‘최고 가치(Best Value; 지방 정부에 대한 전국적 감사조직인 ‘감사위원회’의 프로그램)‘에 해당되는 지방 정부는 그 지방의 공적 자산의 판매에서 발생한 자본 수입의 일부를 보유하는 방식으로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각 지역에서 기업의 법인세는 중앙정부가 통제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자치 단체(borough)로 금융 특구인 런던의 시티(the City of London)1)는 예외이다. 연방정부 체제로 구성된 미국이나 독일과는 달리,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주 단위의 재정위기 충격도 중앙정부의 기능을 통해 조정한다. 그렇다고 해도, 그 지역 주민에게 미치는 충격이 덜한 것은 결코 아니다.

재정위기관리를 복잡하게 만든 중요한 요인은 정부의 긴축재정과 구조조정 기간 동안 생겨난 다양한 이해관계였다. 지방자치단체에 고용된 이들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은 고용 축소에 맞서 투쟁했지만, 재정적자 해결을 위해서는 공공 부문의 해고도 필요하다는 것이 일반적 정서였다. 노동자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클리블랜드의 경우 시의 노동조합들은 결국 해고와 임금삭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위기 속에서 지방자체단체의 선출직들은 마치 뜨거운 방석 위에 앉아있는 것과 같았다. 주 정부는 시 정부에 재정적으로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정위기가 터질 때까지는 그 지원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보고조차 들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주 정부는 대개 시의 재정을 지출과 함께 반환하도록 일선의 실무 당국에 요구했고, 또 이는 올바른 조치였다. 주 정부가 통제하는 이러한 외부 위원회는 재정위기가 닥칠 때마다 설립되었고, 이를 시민들이 싫어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이를 더욱 싫어한 사람들은 지역의 공무원이었다. 왜냐하면 위원회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실패했음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낙인이었기 때문이다.

재정위기 기간 중 활발하게 움직인 또 다른 이해당사자 집단은 바로 사적 부문 자체였다. 공공 서비스가 축소된다면 그 지역에서 생활의 질은 하락하게 되고, 그런 지역의 사기업들은 상황이 더 좋은 지역으로 이전하게 된다. 예를 들어 1970년대에는 상당수 기업체의 본사와 수많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이제는 뉴욕시를 떠날 때라고 생각해 다른 주로 옮겨갔다. 하지만 은행과 금융 부문만큼은 떠나지 않았는데, 이 부문은 도심부동산에 깊이 관여해 있던데다 위기 상황에서는 금리가 평상시보다 높아 시 당국의 새로운 재정체제에서 주요한 수혜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재정위기 시기에 은행의 사업성과는 상당히 좋았는데, 이는 시 정부들이 대체로 파산하는 것보다는 고금리의 부채조달을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재정위기는 도시 경제 일반이 쇠퇴하는 증후이다. 1950년대 이래 대도시의 탈집중화와, 인구 및 기업체의 시 외곽과 선벨트(sunbelt)로의 이동으로, 도시 경제의 쇠퇴라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와는 반대로, 시외와 선벨트 지역들은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 지역도 사회기반시설과 공공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할 자금을 대기 어려웠기 때문에 재정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대규모 인구이동은 1950년대에 시작되었다. 주와 연방 정부의 프로그램이 이를 20여 년간 지원했지만 그 이후에도 지속하기에는 세입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막상 1970년대 재정적자가 심해지자 시와 교외는 모두 대부분의 미국인이 원하는 정도로 서비스 및 삶의 질을 보장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1970년대가 지나도 재정 삭감과 예산 부족이 만연했으며, 부유한 지역의 경우는 항상 예외이지만, 일반 시민들은 전과 마찬가지로 지역사회에서 삶의 질이 떨어지는 고통을 격지 않을 수 없었다. 자본이 이윤을 통제하고 정부 세입이 제한되는 경제 체제에서 대도시권의 기초자치단체들은 재정 압박이라는 유령의 지배 아래 살아가게 된다. 이런 이유로 재정위기는 21세기에 이르러서도 도시민의 삶의 질을 위협하고 있다.


1)  런던의 시티(the City of London)는 런던 광역시가 아니라, 마치 뉴욕의 월 스트리트처럼 세계의 금융기관이 몰려 있는 런던 광역시 중심부의 한 지역이다.


<참고문헌>
Audit Commission (1995), Local Authority Performance Indicators, 1993/94. London: HMSO.
Gottdiener, M. and R. Hutchison, 2000. The New Urban Sociology, 2nd Edition, NY: McGraw-Hill.
O’Connor, J. 1973. The Fiscal Crisis of the State. NY: St. Martin’s Press
Smith, P. (ed) 1996. Measuring Outcomes in the Public Sector. London: Taylor & Francis.
고트디너와 레슬리 버드 저, 남영호, 채윤하 역, 도시인문학총서 16, <도시연구의 주요개념>(라움, 2013), pp.57-62

작성자: 신재진(서울시립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