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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도시
  분류 : 도시의 이념과 모델
  영어 : Community City
  한자 : 共同體 都市


오늘날 도시와 공동체는 쉽게 양립하기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고대 유럽 정치사상의 출발점에서 도시는 가장 포괄적이며 자족적인 공동체로 규정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 헬라스 지역의 도시국가(polis)를 ‘코이노니아 폴리티케(koinōnia politike)’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오늘날 ‘도시국가 공동체’ 혹은 ‘정치 공동체’로 번역되곤 한다. 물론 ‘코이노니아’는 인간들 사이에 실재하는 모든 관계, 집단 등을 포괄하는 단어였기 때문에 오늘날 다소의 가치 혹은 이념을 함유하게 된 단어인 ‘공동체’로의 번역이 부적절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적어도 ‘코이노니아 폴리티케’의 경우, “으뜸가는 좋음을 가장 훌륭하게 추구”(<정치학>, 15)하는 “완전한 자족이라는 최고 단계”(<정치학>, 20)에 이른 코이노니아로 규정되기 때문에 ‘도시국가 공동체’라는 번역이 무리한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쓰는 ‘자족(autarkeia)’이라는 표현은 그저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다는 의미의 자족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시민들이 함께 모여 토론하고 우애를 나누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즉 “그저 사는 것”이 아닌 “좋은 삶”이 달성되는 공동체가 도시국가이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도시국가가 자연의 산물이며, “인간은 자연본성상 도시국가적 동물”이라고 말한다(<정치학>, 20). 이것은 도시를 반자연적인 장소로 보는 근대적 관념과는 크게 다르다.

이렇듯 최고 단계의 자족 공동체이자 자연의 산물로 간주되었던 도시는 18세기 이후 인간의 자연을 타락시키는 장소, 자족성을 상실하여 농촌 공동체를 수탈하는 장소로 이미지화되기 시작한다.

18세기 후반에 루소는 도시를 인간의 자연을 타락시키는 곳이자 “인류 파멸의 구렁텅이”(<에밀>, 102)로 규정하며, 소설 <신 엘로이즈>를 비롯한 여러 저작에서 건강한 시골과 타락한 도시를 대비시킨다. 그런데 그는 시민들의 공동체 소속감이 높았던 도시국가였던 고대의 스파르타나 당대의 제네바를 칭송한 데 반해, 학문과 예술이 꽃피었던 고대의 아테네나 당대의 대도시 파리를 경멸하였다. 이것은 모든 시민의 참여를 통해 공동체가 유지되는 소도시는 긍정하지만, 연극이 상연되는 극장에서 배우와 관객이 분리되어버리듯이 시민들의 유대가 무너져버린 대도시를 혐오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도시의 반자연성에 대한 이러한 혐오는 19세기의 낭만주의에서도 발견된다.

19세기에는 도시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문예사조인 모더니즘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긍정은 인공성과 개인주의에 대한 긍정일 뿐, 도시를 다시 공동체로 간주하고 긍정한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보들레르는 자연을 범죄의 원천으로 간주하고 그에 반해 여성의 화장을 비롯한 인공적인 것들을 찬양하였다(<현대생활의 화가>, 83-84). 그에게 도시는 유행 속에서 영원한 것을 포착할 수 있게 해주는 장소이자 군중 속의 고독한 개인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장소였다(<현대생활의 화가>, 33-34; <파리의 우울>, 33-34).

20세기에 들어와서도 도시는 사회학자들에 의해 공동사회(게마인샤프트, Gemeinschaft)에 대비되는 익명사회(게젤샤프트, Gesellschaft)의 대표적 장소로 간주되었다. 물론 공화주의자들은 꾸준히 고대 도시국가의 이상을 견지해왔으나 이 이상은 현실적인 도시계획이나 도시운동과 결합되지 못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공동체주의(communitarian) 정치철학,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이론, 뉴어버니즘(new urbanism) 도시계획 등의 만남은 공동체 도시의 이상을 부활시키려는 현실적 흐름이 되었다.

루소의 억압적 공화주의에 반대하는 다원주의적 공화주의자들이라 할 수 있는 공동체주의자들은 건국 시기 미국 자치공동체의 전통을 부활시키려 했다(<민주주의의 불만>). “나홀로 볼링”을 치는 것이 사회적 자본이 축소되어 경제적으로도 손실이라는 주장(<나 홀로 볼링>) 역시 지역 공동체 회복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리고 지구단위 계획과 교통망을 중시했던 모더니즘 도시계획에 반발한 새로운 도시운동인 뉴어버니즘은 이러한 이상에 부합하는 자족 신도시 건설을 실제로 추진하였다. 뉴어버니즘의 설계 원칙이 목표로 하는 것은 “공동체 감각”이다(Emily Talen의 논문 참조). 그럼에도 뉴어버니즘에 의해 건설된 신도시는 계획가들의 계획과 달리 자족성을 실현하지 못했고 다른 도시들에 비해 지역 정치에 대한 참여 수준이 높지도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김흥순 논문 참조).

공동체주의 도시 혹은 뉴어버니즘 도시지구화된 세계 사회 속에서 고대의 도시 이상 혹은 미국 건국 초기의 도시 이상을 실현하기 어렵다. “근접성 없는 공동체(community without proponquity)” 개념의 등장에서 알 수 있듯이, 오늘날 사람들 사이의 공동성은 더 이상 공간성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지역 혹은 장소는 개인들은 자신의 삶의 맥락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러한 조건에서 ‘공동체 도시’는 그 자체로 실현되기 어렵다. 그래서 오히려 ‘도시 속의 공동체들’, 즉 ‘도시 공동체(urban community)’가 더 현실적인 이상일 수 있다.


<참고문헌>
아리스토텔레스, 천병희 역. <정치학>, 숲, 2009.
장 자크 루소, 이환 역. <에밀>, 한길사, 2003.
장 자크 루소, 서익원 역. <신 엘로이즈>, 한길사, 2008.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박기현 역. <현대 생활의 화가>, 인문서재, 2013.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황현산 역. <파리의 우울>, 문학동네, 2015.
마이클 샌델, 안규남 역. <민주주의의 불만>, 동녘. 2012.
로버트 D. 퍼트남, 정승현 역. <나 홀로 볼링>, 페이퍼로드, 2009.
Emily Talen, "Sense of Community and Neighbourhood Form: An Assessment of the Social Doctrine of New Urbanism", Urban Studies, Vol. 36, No. 8, 1999.
김흥순, 「뉴어버니즘의 실제: 미국 켄틀랜즈의 사례」, <국토연구> 제51권, 2006.

작성자: 정성훈(서울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