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이미지
도시인문학 사전
모두보기모두닫기
박스하단
사전 > 도시인문학 사전
 
도시 내 예술실천
  분류 : 도시설계와 디자인
  영어 : Art practice in city
  한자 : 都市 內 藝術實踐


도시 내 예술실천이 지니는 위치성과 의미에 관한 탐색에서 “예술행동주의(art activism)”에 관한 보리스 그로이스(Boris Groys)의 언급을 참고할 만하다. 그로이스에 따르면 예술행동이란 예술계 혹은 예술계가 작동하는 전반적인 정치적, 사회적 조건을 비판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예술을 매개로 그 조건 자체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다(Groys, 2014: 1). 예술을 매개로 하는 실천은 노동과 빈곤, 환경, 젠더, 가부장주의와 위계, 정의와 민주주의 투쟁에 관여하며 이를 일상의 정치로 가져온다. 관여하는 예술은 순수 예술의 영역과 사회의 영역 간 구분을 의문시하며 끊임없이 미학과 정치의 교점을 모색하며 일어닌다.

예술실천을 지칭하는 언어로 “창조적 저항(creative resistance)”(Novy and Colomb, 2013), “문화행동주의(cultural activism)”(Buser et al., 2013), “예술행동주의(art activism)”(Groys, 2014), “아티비즘(artivism)”(Poposki, 2011), “행동주의 미학”, “관계 미학”, “참여 예술(engaged art)” 등이 있다.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개념화되지만 이들 언어는 공통적으로 “예술, 그리고 나머지 사회”라는 날카로운 이분법을 근본적으로 거부하며 미적 실천과 정치적 실천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실천을 지칭한다. 따라서 예술실천의 관점에서 예술의 중립성이나 탈정치성, 탈맥락성이란 이미 성립하지 않는 기울어진 언어이다. 오히려 예술실천은 사회에서 주변화된 위치성을 이용해 사회에 관습적으로 통용되던 규범을 초월하며 기존 세계에 구성된 경계를 재구성한다. 또한 예술실천은 사회에 깊숙이 뿌리를 내린 채 전통적으로 정치의 영역에서 다루던 문제를 예술의 촉수로 감지하고 예술의 언어로 번안해낸다. 예술가는 투쟁을 “인정”이라는 상징자본으로 변환시킨다는 점에서, 혹자는 부르디외의 “상징투쟁” 개념에 기대어 예술가를 “상징투쟁자”라 일컫는다(김동일, 양정애, 2013).

도시는 예술실천의 현장이자 또 실천의 대상으로서 특유의 공간성을 지닌다. 도시는 공적 담론이 생산되는 마주침의 장이자 정치적 행동을 가능케 하는 상호 인지의 장, 생산과 노동의 장이며, 장소는 장소를 둘러싼 권력과 위계, 인정받은 권리와 배제된 권리를 재현한다. 따라서 예술실천이 도시적 공간성을 지닌다는 것은 도시라는 장이 담지하고 있는 권력과 위계를 예술의 실천 양식으로 전복시키고 예술의 상상력으로 재기호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예술이 관여하고자 하는 대상(예술계 자신을 포함하여)이 규율과 위계, 관계적 존재로서 인간의 위기, 공적 삶의 쇠퇴, 끊임없는 성장에도 불구하고 심화되는 소외의 문제라면, 그와 같은 모순으로 가득 찬 도시 현장은 곧 관여하는 예술의 작업장이 된다. 즉, 도시에서 사회운동과 예술실천의 교차점이 두드러지며, 여기서 도시 현장을 재료로 하는 장소특정적 예술의 접점이 발생한다. 특히 도시 문제를 자신의 문제와 동일시하거나 이에 공감한 예술가들이 도시 문제에 결합할 때 예술의 실천력은 극대화된다. 도시의 스펙타클에서 가장자리로 내몰린 존재들(예를 들어 서울의 동자동, 종로3가의 쪽방촌과 고시원, 기차역 앞의 노숙인), 권력에 의한 검열(소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강제철거(뉴타운 사업 추진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했던 북아현제3구역, 상가건물임대차 갈등), 극단적인 지가 상승으로 인한 축출(홍대에서 사라지는 공연장, 인사동에서 사라지는 공방)이 도시에 예술이 관여하는 지점을 만들어낸다.

실천이 발현되는 양식은 장르와 예술가 개인들의 지향에 따라 다변화된다. 도시 내 투쟁 공간을 점거한 채 일어나는 뮤지션들의 공연에서는 현장성이 두드러지며, 현장과 사건을 상대적으로 오래 곱씹는 문학은 예리한 묘사력과 지속적 확장성을 가진다. 문학적 예술실천의 일례로 1971년에 도시재개발 광주대단지사건을 소재로 쓰여진 조세희 작가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반복되는 국가 폭력과 자본 폭력을 고발하기 위해 2009년 용산참사 현장에서 낭독되며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건축에서는 모더니즘도시공간을 회의하는 “아나키텍처”(anarchist, architecture)(이임수, 2014)의 반(反)도시계획적 실험을 들 수 있다. 국가와 시장이 다뤄 마땅하지만 현대 도시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의제를 다루는 이들의 직접행동은 전술적 도시계획(tactical urbanism), DIY도시계획(Do-It-Yourself urbanism) 등으로도 명명된다.1) 예컨대 아나키텍트를 자처하며 2000-2010년대 런던에서 활동한 스페이스하이재커(Space Hijackers) 그룹은 해도 되는 행동과 해서는 안 되는 행동에 관한 규율이 은근하게 작동하는 공공공간을 점거하고 그곳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유쾌한 파티를 벌이는 등의 방식으로 도시 규율에 관여했다. “아방가르드 다다, 초현실주의, 상황주의의 영향을 받은” 스페이스하이재커의 “장난스러운 일탈”(Gilchrist and Ravenscroft, 2013)은 공간이 재현하는 권력을 전복시키는 실천이다.

국내에서는 오래간 지속된 젠트리피케이션 반대 운동의 계보에서 2000년대 후반 이후 예술가들의 결합이 운동에서 뚜렷한 한 축을 이루었으며, 이는 상징적인 예술실천으로 자리매김했다. 임대료 상승으로 작품 활동의 터전과 사회적 관계망의 붕괴를 겪은 예술가들과, 유사한 이유로 삶의 공간에서 쫓겨나는 상가세입자들이 공유한 내몰림의 문제는 이질적인 저항의 주체들을 결집시켰다. 강제집행에 저항한 2009년 홍대의 칼국수집 두리반, 2015년 한남동의 “동네미술관”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이 그러한 예술 실천 지대가 되었다(이선영, 한윤애, 2016). 2017년 대중음악상 심사위원단 특별상을 수상한 컴필레이션 앨범 <젠트리피케이션>은 두리반, 테이크아웃드로잉 등 현장을 무대 삼아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도시적 문제를 대중음악로 전화시킨 것이었다. 이는 사적소유권 중심의 부동산 체제와 그로 인한 도시 소외 맥락을 작품으로 전유한 것으로 관습적, 규범적으로 당연시되는 지배 체제에 파열음을 만들어내는 미학적 실천들이다.

한편 예술실천은 사회적 실천력과 미학적 성취가 상충하지 않는지 끊임없이 질문받고 스스로 질문한다. 소위 1980년대 한국의 민중예술은 때로 그 실천적 가치에 비해 미학적 성취가 적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또 일각에서는 예술의 사회적 참여를 예술의 도구화로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도시 내 예술실천이 우려하는 현실적인 문제로, 실천의 결과가 실천의 목표물이었던 예술의 극단적 상품화, 부동산 붐에 포섭되는 모순이 있다. 대안적 예술공간이나 공동작업장과 같이 도시의 극단적인 상품화에서 탈주, 생존하려는 공간적 실천들이 “자가발전”에 실패하거나, 과하게 성공하여 지역의 임대료 상승을 부추기고 자기 존재의 철거를 초래하는 것이다(Bresnihan and Byrne, 2015). 실천 결과가 자신이 반대했던 거대 자본에 의해 판매가능한 균질한 상품이 되거나 부동산 시장의 형태로 취해지고(임대료), 국가에 의해 전시, 기획되는(관광지활성화 정책) 문제는 도시 내 예술실천이 고민하는 지점이자 끊임없이 실천의 목표가 재생산되는 지점이다.



<주석>
1) 이와 관련된 이론적 논의로는 커트 이브슨(Iveson, 2013), 실천으로는 건축가 고든 마타-클락(Gordon Matta-Clark), 1980년대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한 PAD/D(Political Art Documentation and Distribution), 2015년 뉴욕근대미술관의 전시 ‘불균등 성장: 팽창하는 메가시티를 위한 전술적 도시계획(Uneven Growth: Tactical Urbanisms for Expanding Megacities)’을 참조할 만하다.


<참고문헌>
김동일, 양정애. 「상징투쟁자로서의 예술가」, 『문화와 사회』, 제 14권, 2013.
이임수. 「아나키텍처 (Anarchitecture)· 안티젠트리피케이션 (Anti-gentrification)」,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제 40권, 2014.
Bresnihan, P., & Byrne, M. 2015. ‘Escape into the city: Everyday practices of commoning and the production of urban space in Dublin’ Antipode 47(1): 36-54.
Buser, M., Bonura, C., Fannin, M., & Boyer, K. 2013. ‘Cultural activism and the politics of place-making’ City 17(5): 606-627.
Gilchrist, P., & Ravenscroft, N. 2013. ‘Space hijacking and the anarcho-politics of leisure’ Leisure Studies 32(1): 49-68.
Groys, B. 2014. ‘On art activism’. e-flux journal 56: 1-14.
Novy, J., & Colomb, C. 2013. ‘Struggling for the right to the (creative) city in Berlin and Hamburg: new urban social movements, new ‘spaces of hope’?’ International Journal of Urban and Regional Research 37(5): 1816-1838.
Poposki, Z. 2011. ‘Spaces of democracy: Art, politics and artivism in the post-socialist city’ Studia Politica. Romanian Political Science Review 4: 713-724.

작성자: 한윤애(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연구보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