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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시티
  분류 : 디지털도시와 문화적 재현
  영어 : Simcity
  한자 :


심시티’(Simcity)1989년에 윌 라이트(Will Wright)가 고안한 PC·비디오 게임 작품으로, 도시 건설·경영 시뮬레이션이 게임의 한 장르로 자리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에드워드 소자(Edward, W. Soja)포스트메트로폴리스(Postmetropolis)에서 하이퍼리얼리티가 지배하는 도시정치에 관한 장에서 이 게임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장 전체에 심시티들’(Simcities)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다(소자, 2019:305-49).

심시티에 대한 소자의 관심은 단지 이 게임이 도시 시뮬레이션 분야에서 얻은 명성 때문만은 아니다. 소자가 심시티에 주목한 이유는 도시 공간에 대한 이 게임의 관점과 오늘날 대도시의 작동 방식 사이에서 나타나는 유사성에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게임의 원리를 살필 필요가 있다. 심시티의 개발자인 윌 라이트는 다른 게임의 배경 지도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도시 경영을 게임화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밝힌다(https://www.gamasutra.com/view/feature/134754/the_replay_interviews_will_wright). 이 아이디어는 비어있는 도시의 영역을 분할하고, 그곳에 갖가지 시설들을 지어나가는 심시티의 플레이 방식으로 구체화되었다. 즉 심시티는 플레이어가 어떻게 시설을 짓고 배치하느냐를 도시의 성공과 발전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삼는다. 이러한 플레이 방식은 공간을 중심으로 도시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관점에 기반해 있다. 특히 심시티는 도시 공간을 주거, 상업, 공업의 세 영역으로 분할하는데, 그에 따라 게임상에서 플레이어가 하는 모든 조작은 이 세 영역들을 발전시키는 것으로 귀결된다. 물론 심시티는 어디까지나 가상의 도시를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각 요소들을 아무리 세밀하게 건설하고 배치하더라도, 그것은 현실적인 도시의 복잡성에 미치지 못하며 두 차원은 서로 구분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도시 연구의 차원에서 이 게임이 도시의 현실을 어느 정도로 정밀하게 재현하는지 자체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도시에 대한 이 게임의 관점이다. 가령 이 게임이 전제하는 주거, 상업, 공업이라는 분할은 도시를 생산성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도시계획가나 관료의 입장에서 도시를 디자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도시를 일종의 상상적인 패치워크로 환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소자는 도시를 시뮬레이션하는 이러한 방식과 현실의 도시가 작동하는 양상이 서로 점점 흡사해지고 있다는 점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도시는 마치 게임처럼 궁극의도시를 구현하는 하나의 시뮬레이터(simulator)가 되었다(소자, 2019:335).

마이클 디어(Michael Dear)와 스티븐 플러스티(Steven Flusty), 소자의 논의에서 심시티가 포스트모던적인 관점에서 제시된, 도시의 인식론적 구조조정을 포괄하는 용어로 쓰였다고 설명한다(Michael Dear, Steven Flusty. 1998:58) 도시의 인식론적 구조조정이란 도시의 작동이 특정한 인식적 구조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자가 심시티라는 게임 제목을 도시 분석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자가 보기에 오늘날 대도시는 게임 속 도시 같은 하이퍼리얼리티의 공간으로 재구조화되었고, 가상화라는 틀을 벗어나서는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그에 따르면 이제 현실의 도시가 게임에 등장하는 가상의 구조 속 가상 도시를 따라가며, 도시의 실제적인 운용은 시뮬레이션 게임과 진배없이 되었다(장세룡, 권윤경, 2009:17).

도시의 가상화는 단순히 도시의 외관이나 제도를 바꾸는 차원을 넘어 일상적 현실을 대체’(replacing reality)하는 수준으로 파급되며, 이것은 도시 거주민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소자는 가상화된 도시를 살아가는 시민심시티즌(simcitizen)’으로 명명하고 이들이 거주지를 선택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설명한다(소자, 2019:335). 그에 따르면 심시티즌은 게임 속에서 선택을 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자신의 거주지를 고른다. 그것은 일련의 장소 이미지의 패키지를 선택하는 것에 가깝다. 가령 로스앤젤레스는 온갖 국적성, 취향, 정체성들을 상징하는 공간들의 패치워크로 이루어져 있으며, 심시티즌은 테마공원에 나열되어 있는 이러저러한 랜드중에 하나를 고르듯 자신이 살아갈 곳의 이미지와 계약을 맺게 된다. 처음에 이 과정은 자율적이고 진취적인 자기 연출로 보일 수 있지만, 이내 상황은 역전된다. 소자에 의하면 심시티즌의 계약은 궁극적으로 그들이 선택한 이미지들에 대한 헌신으로 전환된다(소자, 2019:335-9).

소자는 심시티즌의 이러한 처지로부터 가상 도시의 부정성을 포착한다. 특히 소자는 가상 도시의 삶이 투기성이 강한 사이버 금융 세계와 결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주목한다. 소자의 이러한 관점은 실제 사례에 바탕한 것으로, 소자는 1994년 오렌지카운티의 파산 과정을 소개한다. 오렌지카운티는 파산하기 전까지 지방 정부 재정 운용의 성공 모델로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는 세수부족으로 인해 재정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오렌지카운티는 인근 지역과 함께 거대한 투자풀을 설립해 자금을 운영하기로 했고, 적어도 초기에는 성공을 거두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오렌지카운티의 세금 징수관이 도박에 가까운 투자를 결행하면서 도시는 혼란에 빠진다. 담당자의 오판이 막대한 투자손실로 이어졌고, 오렌지카운티는 당시 지방정부로서는 전례없는 지불불능사태에 직면했다. 소자에 의하면, 이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 게임과 같은 가상 도시의 재정 운영 방식은 결과적으로 도시를 재부팅할 수 없는 파국으로 밀어 넣었고, 거주민에게 고통을 초래했다(소자, 2019:339-42).

소자는 사이버 금융 세계에서 세수 부담을 만회하려는 지방 정부의 무모함이 작은 정부의 환상에서 시작되었음을 지적한다. 소자에 의하면 작은 정부는 시뮬레이션 정부이며, 거대 정부론에 맞서는 일종의 하이퍼리얼리티였다. 소자는 작은 정부를 내세웠던 레이건-부시 시절 미국 공화당의 이데올로기적인 공세가 하이퍼리얼리티를 이용했으며, 이것이 미국 전체를 가상화하는 심아메리카’(SimAmerica)의 형성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심아메리카는 갖가지 이미지를 통해 보수적 하이퍼리얼리티를 글로벌한 차원으로 확산시켰는데, 그 주된 내용은 아무 규제가 없는 자유 시장이 가장 우월한 경제체제이며, 경제적 쇠퇴는 노동 조합이나 환경주의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 등이다(소자, 2019:342-6).

심아메리카의 부상은 보수주의 하이퍼리얼리티 세력에 의해 도시 상상계와 국가 상상계가 장악되는 상황을 의미하며, 이 개념 속에는 가상화된 도시의 미래에 대한 소자의 위기의식이 집약되어 있다. 소자는 결코 비관적인 입장을 취하지는 않지만 진보적인 정치 세력이 진정한 물적 현실을 드러내거나, 자본주의의 지속성을 탈신비화하는 전략으로는 이러한 상황에 맞설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하이퍼리얼리티의 전선에 개입하지 않는 한 진보 정치는 살아남기 어렵다. 바꿔 말해 이것은 점차 확대되는 심시티들의 세계에서 이미지 전쟁(image wars)’이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소자, 2019:348).

 

참고문헌:

 

에드워드 W. 소자, 이현재·박경환·이재열·신승원 옮김, 포스트메트로폴리스 2, 라움, 2019.

장세룡, 권윤경, 탈근대 도시(Postmodern Urbanity)의 탐색부산의 도시성 이해를 위하여, 한국민족문화34,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09, 335-68.

Michael Dear, Steven Flusty, “Postmodern Urbanism”, Annals of the Association of American Geographers, Vol.88 No.1, Association of American Geographers, 1998. pp. 50-72.

https://www.gamasutra.com/view/feature/134754/the_replay_interviews_will_wright

 

작성자:신승원(서울시립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