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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상상계
  분류 : 디지털도시와 문화적 재현
  영어 : Urban Imaginary
  한자 :

도시 상상계’(Urban Imaginary)도시 연구에서 로스앤젤레스 학파를 대표하는 에드워드 소자(Edward W. Soja)3공간(Thirdspace), 포스트메트로폴리스(Postmetropolis) 등의 저술에서 제시하고 있는 개념이다.

철학과 사회 이론에서 상상계는 정신분석의 세 가지 기본 영역(실재계, 상징계, 상상계) 중 한 영역을 지시하는 것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 기본적인 의미는 주로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연관되어 이해되고 있다. 라캉은 초기 이론인 거울단계(the mirror stage) 이론에서 인간의 자아가 거울에 비친 모습 혹은 자신과 닮아 있는 대상의 이미지로부터 출발하여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생후 6~8개월 정도 된 아이에게 거울의 상은 안정되고 완결된 이미지로 비춰지게 되는데, 아이는 바로 이 이미지와의 동일시를 통해 자기 신체와 자아의 통일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런데 거울단계 이론에서 라캉의 강조점은 상상된 것과의 동일시를 통해 형성된 자아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이는 주체의 자기 형성 과정이 실재가 아닌 허구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미지는 분열과 소외의 원인으로서, 일종의 한계로 작용하게 된다(장 라플랑슈·장 베르트랑 퐁탈리스, 2005:191). (정신분석학의 또 다른 기본 영역인 상징계도시 상상계의 관계는 본 항목의 후반부에 서술된다).

정신분석학적인 상상계 논의는 이후 다양한 영역에서 이미지에 대한 논의를 촉발하는 한 계기가 된다. 공간과 도시에 대한 이론에서 제시되고 있는 상상계 논의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정신분석학에서 이미지가 주체의 형성에 결부되었다면 여기에서 이미지는 공간을 구축하는 효과와 결부된다. 다만 그 초점은 이미지의 허구성이나 한계가 아닌, 이미지가 지닌 생산적인 힘으로 옮겨진다.

3공간에서 소자는 공간적 차원에서 상상적인 것이 단순히 정신적인 것이거나 비실재적인 것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공간과 상상적인 것을 결합하는 사유의 지성사적 원천은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소자는 3공간1장과 2장을 르페브르가 공간의 생산(La production de Lespace)에서 제시한 공간의 삼중성(‘지각된 공간’-‘인지된 공간’-‘체험된 공간’)을 분석하는데 할애한다. 여기에서 소자는 르페브르가 제시한 세 가지 공간성을 1공간’, ‘2공간’, ‘3공간이라는 자신의 용어로 다듬어 수용하고 있으며, 이 중 도시 상상계 개념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은 2공간(Second space)’이다(Soja, 1996:26-82).

2공간은 이 개념의 저본이라고 할 수 있는 르페브르의 인지된 공간’(espace conçu)과 마찬가지로, 일차적으로 재현’(representation)으로서의 공간을 의미한다. 그에 따르면 도시 공간에 대한 경험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특정한 재현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 재현들은 대체로 한 사회의 생산양식과 지배 이데올로기, 그로부터 형성되는 지배적인 담론에 의해 좌우된다. 대표적으로 도시계획가나 기술관료가 주도하는 도시계획의 공간 재현이 여기에 해당된다(르페브르, 2011:87, Soja, 1996:67). 다만 소자와 르페브르는 모든 공간적인 재현이 지배 이데올로기나 담론에 따라 기계적으로 결정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가령 도시 유토피아의 구상처럼 공간의 재현이 전복적이고 급진적인 양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비유클리드 공간처럼 새로운 개념틀을 도입함으로써 전통적인 재현의 구도를 반전시키거나, 예술가가 작품을 통해서 공간에 대한 창조적인 연출에 성공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소자의 목표는 단순히 공간에서 지배의 관철을 묘사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상상적인 것이 도시 재구조화에 미치는 영향과 그 복잡성을 드러내는 데 있다. 이때 재현 개념은 도시 공간의 역동에 상상계가 관여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소자에 따르면 재현이란 언제나 상상적인 것의 유연하고 복합적인 운동의 결과로, 르페브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법적인힘이 있다(Soja 1996:53). 이 마법적 힘은 상상적인 것, 즉 이미지들이 단지 재현되거나 보여지는 것일 뿐 아니라, 스스로 재현하고 보는 것이기도 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전자의 재현이 어떤 기초적인 현실을 비추는 거울처럼 수용되는 재현을 가리킨다면, 후자의 재현은 훼손되지 않은 온전한 실재나 완전히 투명하고 객관적 시선에 대한 환상이 사라진 이후의 재현을 가리킨다.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주장한 대로, 실제로 오늘날 디지털 매체는 객관성과 투명성의 환상을 대체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됨으로써 재현의 의미 변화를 입증하고 있다. 이러한 재현관에 따르자면, 주체의 시선이 객관적이거나 투명하다는 것 역시 하나의 재현일 뿐이다. 모든 재현은 언제나 구성된 이미지들, 즉 상상적인 것의 관계들로부터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재의 굴레를 벗어난 재현개념이 상상적인 것의 새로운 경로를 마련해주었다면, ‘공간은 상상적인 것의 역동이 직접적으로 펼쳐지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간의 생산에서 르페브르가 언급한 공간의 혁명실재적인 것상상적인 것의 경계를 허물고 통합하는 과정이기도 한데, 이러한 주장은 도시상상계라는 두 개념을 서로에게 접근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소자는 르페브르의 주장을 산업사회적 단계를 경과한 20세기 후반의 대도시 공간으로 끌어들인다. 여기에서 상상적인 것의 우위는 앞으로 실현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이미 실현된 것으로 간주된다. 즉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상상인지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으며, 실재와 상상은 마치 한 몸처럼 실재이면서 동시에 상상인 것’(real-and-imagined)이 된다. 소자는 로스앤젤레스(Losangeles)를 그 대표적인 사례로 든다(소자, 1996; 2019). 그에 따르면 로스앤젤레스는 포스트모던화도시, 이곳에서는 상상적인 것들이 각축을 벌이며, 실재와의 경계는 점점 사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실제적인 도시 공간의 분석에서 상상적인 것의 영향을 통합적으로 지시하는 것은 소자의 관점에서 필요불가결한 일이었을 뿐 아니라, 그것은 우리 시대의 도시를 이해하는 데에서 매우 중요하다. ‘도시 상상계라는 조어의 정당성이 가시화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포스트메트로폴리스도시 상상계의 보다 구체적인 용법과 의미가 드러나고 있는 저술이다. 여기에서 소자는 도시 상상계도시 현실에 대한 정신적 또는 인지적 지도 그리기(mapping)’이자, 도시 공간에서 생각하고, 경험하고, 평가하고, 결정하는 행동에 필요한 해석 기준(interpretive grid)’으로 규정한다(소자, 2019:308). 여기에서 지도 그리기와 해석 기준이란 우리가 어떤 공간을 경험하기에 앞서서 주어지는 재현들을 통합적으로 지시하는 표현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이 재현들을 통해서 비로소 도시 공간들의 경계를 인지할 수 있게 되며, 이로부터 도시적인 생각과 행위의 실제적인 양식들이 탄생하게 된다.

소자는 도시 상상계의 성좌를 이루는 재현들이 포스트포드주의, 지구화, 정보통신기술의 혁명 등 도시를 둘러싼 다양한 역사적 과정과 분리될 수 없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포스트포드주의적 경제는 도시의 물리적인 권역과 생활반경을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도시를 단일한 중심성으로부터 그려왔던 방식을 변화시켰다. 즉 포스트포드주의는 도시를 전통적인 산업적 생산이라는 중심성으로부터 이탈하게 하는 동시에 이전에는 뚜렷했던 도시 경제와 일상생활의 경계들을 불분명하게 만들었다. 지구화의 영향력도 중요하다. 물리적 거리의 제약이 점차 약화되고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연결의 양상이 지구적인 수준으로 변화함에 따라 도시는 분명 이전과 다른 스케일 속에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인터넷 기술과 디지털 매체의 폭발적인 확산은 이제까지 침투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던 모든 영역들이 접속가능하며, 모두에게 개방될 수 있다는 환상을 주입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소자는 도시 재구조화의 과정에서 도시 상상계가 우리 인식과 경험의 변화들을 교묘하게 조작하는 특정한 규제 형식(form of regulation)’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도시 상상계는 질서 유지를 위해 도시 생활에 대한 시민 의식과 대중 이미지조작이 이루어지는 영역이기도 한데, 소자는 이 조작을 곧 정신을 가지고 노는것에 비유한다(소자, 2019:307-8). 소자의 이러한 주장에는 사고와 판단이 이미지에 종속될 가능성, 곧 이미지가 사태를 조종하는 권력이 될 가능성이 함축되어 있다. 실제로 디지털 시대에는 기업과 정치인, 수많은 개개인이 이미지를 자신에게 우호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도시 상상계를 구성할 힘을 획득하는 자가 사이버 세계에게 승자가 되기 때문이다(이현재. 2018:142). 그에 따라 심지어 범죄로 여겨질 수 있는 행위도 불사하게 된다. 전세계적으로 인터넷 댓글을 통한 조작이나 합성 사진·딥 페이크(deep fake) 영상을 이용한 가짜 뉴스제작 같은 일들이 끊이지 않는 것은 모두 권력 획득을 위해 이미지를 불법적으로 조작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도시 상상계를 구성할 힘을 획득하는 자가 사이버 정치에서 승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도시 상상계는 도시 공간을 둘러싼 헤게모니와 전략들이 부딪히는 전쟁터로 떠오르게 된다. 즉 현대 사회에서 계급·지역··연령 등에 결부되어 증식해왔던 갈등의 전선이 이제 도시 상상계라는 영역으로 집결하고 있는 셈이다.

이미지들의 이러한 각축전은 이미지가 그 자체로 현실을 총괄하는 재판관이 되었거나, 적어도 이미지에 그와 같은 지배의 욕망이 결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상상계에 대한 상징계(the symbolic)의 우위를 주장해 온 전통적인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이러한 상황은 문제적이다. 거울단계 이론에 따르면 주체 형성 과정에서 상상적인 것과의 동일시는 언제나 불완전하기 때문에, 상징적인 것과의 동일시를 통한 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달리 말해 이미지가 언어적 세계와의 관계를 통한 보완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소자의 논의는 이미지를 언어의 결핍으로 바라보는 관점에 의존하고 있지 않다. 실재와 가상의 구분이 사라진 상황에서, 소자의 관심은 상상계의 역동이 어떠한 정치적 실천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의 문제로 향한다. 그의 논의에서 상상계와 상징계는 엄밀히 구분되지 않는다.

앞선 사례들에서 보듯이, 디지털 공간에서 이미지를 선점하고 자기편으로 장악하는 것은 더 이상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문제는 도시 상상계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기획의 규범적 토대가 불분명하다는 데 있다. 가령 보드리야르는 한때, 기호 이미지가 장악한 자본주의의 외부에 회복되어야 할 상징적교환의 세계가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기도 했다(Baudrillard, 1992). 이후 보드리야르는 이러한 관점을 포기하고, 대안적 정치에 관한 한 냉소적인 입장에 가까워진다. 소자는 이에 비해 이미지의 정치가 지닌 가능성을 훨씬 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소자의 논의는 이미지의 정치가 어떻게 진보적이거나 윤리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도시 상상계에 대한 향후 연구에서 중요하게 다뤄질 수 있는 한 가지 문제일 것이다.

요컨대 도시 상상계의 개념은 디지털 매체가 지배하는 도시 환경에서 이미지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성공적으로 포착한다. 이와 동시에 이 개념은 이미지 전쟁터로서 도시가 주조하는 폭력과 균열이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 것인지, 또 그 규범적 토대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후속 문제를 암시한다.

참고문헌:

앙리 르페브르, 양영란 옮김. 공간의 생산, 에코리브르, 2011.

에드워드 W. 소자, 이성백·남영호·도승연 옮김, 포스트메트로폴리스 1, 라움, 2018.

에드워드 W. 소자, 이현재·박경환·이재열·신승원 옮김, 포스트메트로폴리스 2, 라움, 2019.

이현재. 디지털 도시화와 사이보그 페미니즘 정치 분석 : 인정투쟁의 관점에서 본 폐쇄적 장소의 정치와 상상계적 정체성 정치. 도시인문학연구. Vol 10. No.2 2018.

장 라플랑슈·장 베르트랑 퐁탈리스, 임진수 옮김, 정신분석 사전, 열린책들, 2005.

Jean Baudrillard, The Mirror of Production, trans. Mark Poster, St. Louis : Telos Press, 1992.

Edward W. Soja, Thirdspace: Journeys to Los Angeles and Other Real-and-Imagined Places, Blackwell, 1996.

 

작성자:신승원(서울시립대 강사)